사랑.평화.함께 살기/삶.사랑.평화-책과 영화

쥬세페 토르나토레, <피아니스트의 전설>을 보고

순돌이 아빠^.^ 2020. 3. 29. 08:03

어제는 길을 걷다 문득 '마스크 쓴 봄'이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봄을 알리듯 아이들이 길에서 신나게 놀기는 노는데 모두들 마스크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려진 봄'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벚꽃도 피고 개나리도 피었는데 코로나에 가려서 맘껏 즐기기 어려우니 말입니다. 어느 목련은 벌써 꽃잎을 떨구기까지 하는데 말입니다.





무언가 불안하고 무언가 답답한 날들을 밝혀주는 영화를 한 편 만났습니다. <시네마 천국>을 만든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피아니스트의 전설>입니다. 


큰 바람이 치는 바다, 수 천 명의 사람이 타고 있는 큰 배도 어쩔 수 없이 이리저리 흔들려요. 맥스는 휘청휘청 정신이 없고 우웩 토를 하고 난리입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주인공인 나인틴은 이리저리 떠다니는 피아노를 연주하며 웃습니다. 


아...너무 너무 멋진 장면이에요. 말로 설명하면 되게 단순한데...정말 그 장면이 계속 계속 마음에 떠올라요. 비바람에 배가 출렁이고, 수 천 수 만의 사람들이 스쳐지나가고,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나인틴은 계속 그 자리에서 연주를 해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해도, 큰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해도 나인틴은 자신의 음악을 연주합니다. 





88개의 유한한 건반으로 무한의 음악을 만든다고 해요.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래요. 88개의 건반으로 만든 아름다운 음악이 이 세상에 정말 많아요. 건반이 더 많다면 더 많은 음악을 만들 수 있겠지만, 88개만으로도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고, 즐겁게 연주를 하고, 어울려 춤을 추기에 모자람이 없어요. 


우연히 TV를 돌리다 유명한 방송 작품을 많이 만들었던 PD의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그 사람이 그러더라구요. 일 밖에 모르고, 열심히 일만 하고 살다보니 어느 날 내가 도대체 뭐하고 사는 건지 싶었다고...


더 많은 건반이 있으면 나쁠 거야 없겠지만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몰라요. 1,000개의 건반을 가진다고 해도 아름다움과 기쁨이 먼 나라의 꿈 같을 수도 있을 거구요. 음악을, 인생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으면 좋겠어요.






배에서 음반을 녹음하려 하는데 창 밖으로 한 사람이 보여요. 나인틴은 그 사람에게 마음이 끌려서 저도 모르게 건반을 눌러요. 너무 너무 아름다운 장면이에요. 음악이란 이런 건가 보다 싶고...


아무 말 하지 않고 음악만으로도 나인틴이 그 사람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가 느껴져요. 나인틴이 느낀 것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또 그 음악을 통해 나인틴이 무얼 느꼈을지를 제가 알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해요. 음악이란 것이 사람과 사람을 잇는 그 어떤 건가 봐요. 


오래돼서 쓸모없어진 배를 폭파한다고 해요. 그래서 맥스가 나인틴을 찾기 위해 배 곳곳을 뒤져요. 하지만 어디에도 나인틴이 없어요. 그 때 맥스가 찾아낸 방법이 축음기를 가져와서 음악을 트는 거에요.  음악 소리를 듣고 어딘가에서 나인틴이 나타나지요. 


음악이 가진 아름다움과 기쁨

음악이 불러일으키는 추억과 설레임

음악이 우리에게 전하는 위로와 용기

어쩌면 그런 것들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조차 만날 수 있게 해 주는지도 몰라요.  






나인틴이 그런 말을 해요. 전쟁통에도 자신은 계속 연주를 했다고...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가 자신이 겪은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2차 세계대전 때 추운 겨울날 폭격을 맞아 파괴된 연주회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연주회를 연 적이 있다고...


며칠 전에 라디오에 이응광이라는 가수가 나왔어요. 코로나 때문에 예정되어 있던 모든 연주회가 취소되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런 얘기를 하면서 '상록수'를 부르는데...제 마음이 울컥하더라구요. 


사람이

사람의 음악이

질병도 전쟁도 가난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용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