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구체성'이다. 그들의 세계는 생기 있고 정감이 넘치고 상세하면서도 단순하다. 왜냐하면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추상화를 통해 복잡해진 것도, 희박해진 것도, 통일된 것도 없다.
자연 만물의 본래 모습에 입각해서 말한다면 오히려 반대이겠지만, 신경학자들은 '구체성, 구체적인 사상'을 열등하고, 고려할 가치가 없고, 통일성이 결여되었고, 퇴보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체계화, 조직화에 관한 한 당대 제일인자로 불렸던 쿠르트 골드슈타인 등은 인간의 정신에 추상화와 분류를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일단 뇌에 손상을 입으면 인간은 고상한 영역으로부터 인간적이라고조차 말할 수 없는 차원 낮은 '구체성'의 수렁으로 대동댕이쳐진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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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구체성이야말로 기본이다. 현실을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것으로, 개인적이며 의미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이 '구체성'이다. 만일 '구체성'을 상실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나오는 P선생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골드슈타인의 사고와는 정반대로 '구체성'에서 전락해서 '추상성'으로 빠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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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기억을 쫓는 남자>에 나오는 자제츠키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본질적으로는 인간임에 틀림없다. 그의 추상능력이나 서술 능력이 아무리 황폐해졌다고 하더라도 그는 어디까지나 도덕성과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인간인 것이다. - 291-292
-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알마,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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