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는 항상 좋아했으니까...
...
"싫다고 했잖아. 다른 반 남자애들도 잔뜩 구경 온다며" 그 아이는 정말 싫은 모양이었다.
...
"싫다면 할 수 없지. 그런데 남자애들이 구경 오는 건 왜 싫은데?" 그런 데 꽤 둔했던 나는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놀린단 말야" "응? 왜?" "가슴이 흔들린다고 놀린다고!" - 26
- 권김현영,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2019, 휴머니스트
제 경험 밖의 일입니다.
친구들이 제 머리가 크다거나 다리가 짧다고 놀린 적은 많지만...그 때문에 특별히 상처를 받거나 창피함을 느끼거나...그 때문에 제 몸을 가리거나 숨겨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고등학교 때 남자애들이 여자애들의 가슴을 보고 젖소니 껌딱지니 하며 놀렸던 것 같습니다. 그럴 때 남자애들은 너무 당당하게 얘기를 했고, 여자애들이 움츠러들거나 화를 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그런 식으로 누군가를 놀리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그냥 누군가를 놀리는 상황이 재미있어서 같이 웃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여성의 가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몰랐고, 그런 놀림이 어떤 의미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그리고 수 십 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여러 장면이 스칩니다. 놀렸던 남자애들과 놀림을 당했던 여자애들의 모습이 스치기도 하고...
왜 그랬을까요? 왜 남자애들은 여자애들의 가슴을 가지고 놀렸고, 여자애들은 남자애들의 놀림을 받아아 했을까요?
왜 머리를 흔들며 달리기를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아닌데, 달리기를 하며 가슴이 흔들리는 건 놀림감이 되는 걸까요?
몸의 형태나 움직임
남성과 여성,
놀림과 창피함
음...
여성의 몸을 보고 그것이 가슴이라고 생각하는 과정은
시각적으로 특정한 형태나 움직임에 뒤따르는 음영의 변화 등을 느꼈을테고
그것이 여성의 가슴이라는 것으로 "인지"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뇌 활동이 관련 있을 테고...
그 다음에 놀림이라는 과정은 시각적 활동과는 별개로 또다른 마음의 활동일텐데
여성을 놀리는 남성의 마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하지 않고 놀리는 일까지 벌어진 걸까?
시각 정보가 여성의 가슴이라는 형태로 인지/해석 되고
놀림이라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의 과정,
그런 남성의 뇌와 마음의 활동이 컴퓨터 화면으로 출력되어서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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