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수인은 가난한 노동자의 자식이고, 야구하는 여자에요. 이렇게 말을 하고 보니 벌써부터 맘이 살짝 답답해지네요. 가난한 노동자의 자식이자 야구하는 여자라...
영화 <빌리엘리어트>에서 빌리는 가난한 노동자의 자식이고, 발레하는 남자지요. 빌리의 아빠는 광산에서 일하면서 치매인 어머니와 두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야구소녀>의 주수인 엄마는 낮에는 공장에서, 밤에서 식당에서 일하며 남편과 자식들을 부양하고 있어요. 부모가 가난하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싶지만...음...
대한민국에서 누군가 예체능을 전공한다고 하면 대뜸 '집안 형편이 좀 되는구나'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그만큼 돈이 많이 든다는 거지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어릴 때 여러 해 동안 바이올린을 했대요. 꽤나 잘 했었지만 결국은 포기했구요. 왜냐하면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ㅠㅠ
주수인도 남들은 가는 전지훈련을 못 가요. 왜냐하면 전지훈련비를 낼 수가 없으니까요.
노력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돈이 많이 들어서 꼭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해야 한다는 건 참 슬픈 일 같아요. ㅜㅜ
저는 야구를 좋아합니다.
최동원이 롯데 자이언츠를 우승으로 이끌 때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롯데의 팬이었어요. ^^
야구를 좋아하니까 야구에 관한 영화가 반가웠어요.
그리고 여자 선수가 야구를 하는 모습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구요.
수십 년 동안 수많은 경기를 봤지만 단 한번도 여자 선수가 경기하는 걸 본 적이 없거든요.
야구라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고
야구를 하면서 다른 사람과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도 힘든 일일 것 같아요.
대한민국에서 여자가 야구를 한다는 것도 힘든 일이고
대한민국에서 여자가 야구를 하면서 고통을 이기고 성장한다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일 것 같아요.
그렇기에 더욱 <야구소녀>가 좋고, 주수인이 좋아요.
엄마의 만류도
코치의 조롱도
프로야구단의 비웃음도...
답답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결국 노력해서 이겨내거든요.
꿈이 있고
정말 좋아하는 게 있어요
그것을 위해서 좌충우돌 온갖 일을 겪기도 하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지요.
프로팀 입단에 실패했던 코치에게 당당하게 말합니다.
제가 대신 들어가 드릴게요
어느 프로 야구단이 주수인이 야구와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러니까 선수가 아니라 야구와 관련된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하나 만들어 주지만 주수인은 거절해요.
주수인이 원했던 것은 여자에게도 자리를 하나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여자에게도 똑같이 평가 받고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는 거거든요.
그리고 결국 주수인은 손가락 끝에서 피가 나도록 연습을 해서 선수단에 들어갑니다.
야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투수가 150km를 던진다는 건 참 큰 장점이에요. 타자는 1초도 안되는 짧은 순간에 투수의 손에서 떠난 공을 때려야 하니까, 공이 빠르다는 건 정말 큰 장점이 되는 거지요.
하지만 공이 빠르다고만 해서 되는 건 아니에요. 제구가 잘 되지 않거나 타자와의 승부에 자신이 없거나 하면 아무리 150을 넘게 던져도 결국에는 오래 버티지 못하더라구요.
반면에 150되지 않아도 경기를 잘 풀어가는 선수들이 많아요. 롯데의 노경은이나 두산의 유희관도 그렇고, 삼성의 최채흥도 그렇잖아요. 공이 아주 빠르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방법, 자신만의 장점을 가지고 야구를 잘하는 거지요.
노경은도 예전에는 150씩 던지고 그랬어요.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요즘은 140 중반대의 빠른 공과 다양한 변화구를 던져요. 그 가운데 하나가 너클볼이구요.
주수인도 처음에는 150을 목표로 연습을 해요.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리고 나중에는 코치의 말대로 주수인 자신만의 장점을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요. 그게 바로 너클볼이었구요. 남들이 잘하는 걸 따라가기 보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쪽으로, 단점을 극복하기 보다 장점을 살리는 쪽으로 바뀌었던 거지요.
이 과정에서 주수인의 야구 실력이 성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성숙도 이루어집니다. 그런 모습이 참 좋더라구요. 누군가 제가 좋아하는 야구를 하면서 실력도 기르고 인간적인 성숙도 이루었다고 하니... ^^
꿈
노력
성장
참 멋진 일이에요.
남자든 여자든
십대이든 70대이든
꿈을 갖고 노력하면 언제까지나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것이 우리 인간이지 싶어요.
그래서 삶이란 게 설레기도 하고 희망이란 걸 갖게 되는 걸 거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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