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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쉘>을 보고

순돌이 아빠^.^ 2020. 8. 30. 16:51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더라구요. 영화 곳곳에 실제 있었던 장면이 나오기도 하고 당사자의 인터뷰를 들려주기도 해요.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과 후에 많은 여성들이 트럼프의 여성에 대한 폭력이나 폭언에 대한 증언들을 쏟아냈어요. 하지만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지금도 대통령의 자리에 있지요. 도대체 어떻게 저런 사람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지도 싶고, 도대체 어떻게 저런 사람을 그 많은 미국 사람들이 대통령으로 선택했는지 모르겠어요. 

영화 <밤셸>은 트럼프와 친한(?) 폭스 뉴스와 관련이 있어요. 폭스 뉴스의 우두머리들이 여성들을 성적으로 괴롭혔던 것에 관한 이야기에요.

좋은 자리를 줄테니 나랑 섹스하자. 뭐 그런 식이에요. 물론 노골적으로 섹스를 하자고 하기보다는 은근히 암시를 하거나 알아서 생각해 보라는 식이 많아요. 마치 무슨 정당한 거래처럼 분위를 만들기도 하지요. 

 

직장에서 업무만 잘하면 되지 섹스는 왜 해야 되며, 치마는 왜 꼭 짧게 입어야 하는 걸까요. 치마의 길이와 업무가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우두머리 로저는 케일라에게 치마를 자꾸 위로 올려보라고 해요. 좀 더 중요한 자리를 맡고 싶었던 케일라는 당황하고 불안해하고 창피해하고 어쩔 줄 몰라하면서 치마를 올려요. 로저는 아예 별도의 출입구를 만들어서 여성들이 드나들게 만들어요. 회사 사무실에서 그녀들을 성적으로 괴롭히는 거지요.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지지요. 얼마나 자주 이런 식의 일이 벌어지는지는 우리가 알 수가 없어요. 아주 많을 거라는 짐작이 대부분이지요. 왜냐하면 피해 여성들이 자신이 겪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어려우니까요.

당장에 직장에서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가족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무섭지요. 가해자를 욕하기 보다 자신을 향해 '꽃뱀'이니 '헤픈년'이니 하면서 손가락질이 돌아올지도 모르구요. <밤쉘>속 잘나가는 방송 진행자 메긴조차도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하기 힘들어 해요. 평생 꼬리표를 달고 다닐까 싶은 거지요.

 
꼬리표는 가해자가 달 생각을 해야지 피해자가 왜 그런 걱정을 해야 하는 걸까요? 그런데 그게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에요. 가해자 남성을 향해서는 '아이고 저런 나쁜 놈'하며 한번 욕하고 끝나더라도, 피해자 여성을 향해서는 두고 두~고 '쯧쯧' '쟤가 글쎄...' '니 잘못은 아니지만 그래도...' '너도 바라는 게 있었던 거잖아...'식의 얘기가 끝이 없어요. 

심지어는 '여자가 몸 단속을 어떻게 했길래' '얼마나 쉬워 보였으면...' 식인 거에요. 사무실에서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남자가 갑자기 끌어안고 키스를 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몸 단속' 얘기가 왜 나오는 걸까요?  

아무튼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레첸이 용기를 내서 로저를 고소해요. 그레첸의 용기와 행동 덕분에 그동안 아무말 하지 못하던 여성들이 자신들의 피해를 증언하기 시작해요. 로저에게 피해를 입은 여성이 한 두 명이 아니었던 거에요. 회사내 가해자가 로저만 있었던 것도 아니구요. 

서지현이라는 여성이 자신이 겪었던 성적인 괴롭힘을 방송에 나와서 증언한 적이 있어요. 저도 그 장면을 보면서 많이 놀랐어요. 저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그렇고, 그런 일을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어요. 서지현씨의 용기 있는 행동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피해에 대해 증언 했고, 방송과 영화 등 여러 분야의 가해 남성들이 활동을 멈췄어요. <밤쉘>의 로저가 폭스 뉴스에서 떠났듯이 말이에요. 

제가 보지 않고 듣지 않아 모르겠지만 서지현씨에게도 온갖 비난과 욕설이 쏟아졌지 않을까 싶어요. 왜 이제와서 그러냐부터 그 정도일 가지고 이렇게까지 할 것 있겠냐 등등등. 피해자가 자기 피해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되레 욕을 먹고 사회에서 매장될 수 있다면 어떤 피해자가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어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집을 읽은 적이 있어요. 어떤 분이 그러셨어요. 일본군도 밉지만 한국 사람들도 밉다고. 그 수근거림과 손가락질과 이상한 눈초리...

하지만 그 많은 손가락질과 욕지거리를 뚫고 그레첸과 서지현 같은 분들이 용기를 내주셨기 때문에 가해자들은 처벌을 받을 수 있었던 거겠지요. 

그래도 영화니까 피해자들의 온전한 승리로 끝나면 좋겠지만...케일라도 회사를 떠나요. 다른 곳에서는 다르게 살 수 있을까 싶고, 다른 회사는  다를까 싶은 의문을 품고요. 

한편으로는 그레첸의 용기와 로저의 몰락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케일라를 보면 씁쓸한 마음이 계속 남아요. 케일라가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케일라가 떠날 수 밖에 없었다는 것과 다른 회사는 다를까 하는 그 물음 때문에...

남성들이 보내는
그 눈빛
그 말투
그 손짓

그리고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해야 하는지 싶은
그리고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일이었으면 좋았을 것 같은
그리고 거절하기도 어렵고 받아들이기는 정말 싫은
그 짓거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