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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비헤이비어>를 보고

순돌이 아빠^.^ 2020. 7. 6. 12:31

 

소개가 눈을 끌기도 하고, 키이라 나이틀리가 나온다고 해서 봤습니다. 보고 나니까 유쾌하기도 하고, 뭔가 많은 생각이 떠오르더라구요. 그래서 한 번 더 봤습니다.

 

처음 볼 때는 샐리의 모습이 마음에 많이 들어왔었는데, 두 번째 보니 샐리뿐만 아니라 조, 샐리의 엄마 그리고 미스 월드에 참여했던 제니퍼의 모습까지 조금 더 느껴지더라구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요즘도 미스코리아 대회 하나?'였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꽤나 크고 유명한 대회였던 것 같아요. 여성들의 외모에 대해 칭찬을 할 때 주로 쓰던 말이 '너 커서 미스 코리아 대회 나가도 되겠다'이거나 '어머 미스 코리아처럼 생겼네'였거든요.

 

그리고 자라면서 큰 관심을 두지 않아서 그런 게 있는지 없는지 별 생각 없었는데 어느날 뉴스에 미스 코리아 대회가 나왔던 것 같아요. 여성단체의 요구로 테레비 중계를 안하게 되었다나 뭐라나...아무튼 뭔가 큰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오늘 '미스 코리아'라고 검색을 해 보니 여전히 대회는 열리는가봐요. 올해도 참가신청을 받고 있네요.

 

<미스비헤이비어>에 보면 미스 월드 참가자들의 가슴, 허리, 엉덩이 둘레를 재는 장면이 나와요. 00-00-00식으로 기록을 하고 발표를 하는 거지요.

 

음...많은 사람 앞에 여성을 세워놓고 특정 부위의 크기가 얼마나 되고 굴곡이 어떻게 되고 부피가 어떻게 되는지 등을 살펴보는 것...동전도 앞뒷면이 있다며 수영복 입은 여성들을 앞으로 서게 했다 뒤로 서게 해서 심사위원들이 아랫쪽에서 빤히 바라보는 거...왜 그런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그런 것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게 무었이었을까요?

 

영화 속 여성들이 이런 대회를 가축시장에 비유해요. 그러면서 외치죠.

 

우리는 예쁘지도 않고, 추하지도 않고, 화가 날 뿐이다.

 

그리고 피켓을 들고 있어요.

 

여성도 생각이 있다.

 

앗, 여성도 생각이 있다라고 하니 뭔가 좀 애매한 것 같은데...women have minds라고 했던 것도 같고...그러니까 여성의 외모만을 놓고 평가하며 즐기는 미스 월드 대회장 앞에서 여성에게도 생각이 있다는 식으로 항의를 하는 것 같았어요.

 

만약 누군가 취직을 하거나 어떤 사회적 지위를 얻으려 할 때 피부색이나 출신 지역 때문에 우대 받거나 차별을 당하면 안 되겠지요. 그런 외적인 요인으로 사람을 대우하면 안 되잖아요.

 

마찬가지로 누군가 얼굴의 생김새나 몸의 모양새를 가지고 우대를 받거나 차별을 받아서도 안 되겠지요. 남성에게도 그렇듯이 여성에게도 생각이 있고, 감정이 있고, 꿈이 있고, 능력이 있잖아요.

 

영화 제목이 <미스비헤이비어>에요. 감독이 어떤 의미로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 모르겠지만...사전에 misbehavior라고 찾아보니 이렇게 나와요.

 

명사
[불가산] 나쁜 행실, 버릇없음, 비행, 부정 행위.
참고
[어원] mis-(잘못된, 나쁜)+behavior(행동)


영화에 여성을 구경꺼리로 만들고 여성운동을 조롱하는 밥 호프라는 사람이 나와요. 그 사람의 아내가 밥 호프에게 이런 식으로 말해요.

 

당신이 보기에는 저 사람들이 미친 것 같죠?

 

누군가에게는 싸가지 없고 정신나갔고 미친 짓처럼 보일 거에요.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미스 월드를 개최하고 그것을 보며 키득거리고 흥분하는 사람이 제 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요. 베트남전에 참전하고 있는 수많은 군인들 앞에 미스 월드를 내세워 성적 농담이나 일삼는 것이 잘한 짓은 아닐테니 말이에요. 

 


영화에 보면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종차별정책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번 나와요. 인종차별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니까 우습지도 않게 구색을 맞추려고 흑인 여성 한 명을 추가로 대회에 참여 시켜요. 그래서 한 명은 미스 south africa가 되고, 다른 한 명은 미스 africa south가 되지요. ^^;;;

 

피부색만으로 사람을 구별하고 차별하면 안 되겠지요. 겉모양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고 대우하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잖아요. 누군가 제 머리가 크다거나 배가 나왔다거나 다리가 짧다고 빤히 쳐다보고 놀리고, 그런 것들로 저를 대하면 참 기분 나쁠 것 같아요. 여차하면 한 판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구요.

 

저는 저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제가 무엇을 느끼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제가 힘들거나 외로울 때 위로를 해 주는 사람이 좋아요.
제가 그렇듯이 다른 사람도 그럴 거잖아요.
남자도 여자도 백인도 흑인도 모두 마찬가지일 거에요.
샐리와 조를 미친 것들이라고 비난하던 밥 호프도 아내의 위로가 필요하구요.

 

이들의 모습을 볼 때 '해방감'이란 말이 떠올랐어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래요. 자세한 배경 이야기는 잘 모르지만...어쨌거나 '미친년' 소리 들어가며, 유치장과 법정을 들락거리며 애써 노력했던 분들이 있었으니까 우리 사는 세상이 이만큼 온 거겠지요.

 

대학 입학 면점을 보는데 남편의 생각은 어떠냐와 같은 것은 더 이상 묻지 않게 되었거나 그런 일이 적어졌을 거구요. 논문 주제로 '스코틀랜드의 산업혁명'은 훌륭하고, '여성노동자의 관점'은 편협하다는 식의 평가도 조금은 줄어들었을 거구요.


경상도 출신의 남성으로 한국 사회를 살면서 저는 저의 외적인 요인으로 무언가 차별을 받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저의 능력이나 의지가 부족해서 하지 못한 일이 있을지언정 다른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거지요.

샐리가 대학 입학 면접 자리에서 몇 번이고 억양을 바꿔가며 했던 말이 mature였어요.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였구요.

 

mature
1.성숙한 2. 숙성한 3.성장 4.나이든 5.성인용

 

저 같은 성인 남성은 어디가도 쓸 필요가 없는 말이지요. 하지만 여성인 샐리는 남성 면접관들 앞에서 이 말을 강조해서 했지요. 자기도 잘 할 수 있다구요.

 

조가 영화에서 많이 썼던 말이 establishment였어요.

 

(the Establishment) (집합적) (단수·복수 취급) (기성) 권력 기구, 권위 조직, 체제; 특권 계급, 지배층, 통제 단체
참고
(※종종 모욕적으로 씀)

 

남성들은 면접관 앞에서 굳이 자신이 성인이고 혼자 열심히 할 수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여성들은 어찌보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야 했던 건 두 인간 무리 사이에 큰 차별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한 무리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어느 선 위에 있고, 다른 무리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어느 선 아래에 있는 거지요. 그래서 그 선에 어느만큼 가까이라도 가려면 온갖 용을 써야 하는 거구요.

 

경상도 출신 남성인 제게 의지와 능력 말고 다른 것이 문제 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리 되면 좋겠어요. 나무와 인간의 유전자가 상당히 비슷하다는데 하물며 인간들끼리의 차이란 게 크면 얼마나 클 것이며,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게 차별을 받아야 할 이유가 될 필요도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