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잠을 많이 잡니다. 거의 매일 낮잠을 자고, 밤에도 다른 일이 없는 날이면 대체로 9~10시 사이에 잡니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잠으로 보내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
그런데 어제는 새벽 1시가 넘어 잤습니다. 저한테는 기적과 같은 일이지요. 넷플릭스 <그리고 베를린에서> 때문입니다. 우연히 끌려서 틀었다가 끝까지 다 보느라. ㅋㅋ
장면 하나 하나, 대사 하나 하나에 담긴 게 너무 많은 것 같아 일일이 기억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을 것 같아요. 게다가 정통(?) 유대인 공동체에 대해 좀 더 알면 좀 더 많은 것을 느낄 수도 있겠지요
정통? 원 제목은 Unorthodox였나봐요. orthodox가 정통적인 뭐 그런 뜻이니까, un을 붙였으니 정통이 아니, 비정통적인 쯤 될런지 모르겠네요
유대인이 공동체에서 탈출(?)한 에스티가 베를린에서 자유를 찾는다는 내용인데...묘한 기분이 들어요. 러시아에서의 포그롬, 독일의 홀로코스트 등을 되뇌이고 되뇌이는 유대인 공동체에서 벗어나 독일의 베를린에서 자유를 찾는다니...
에스티가 베를린에서 만나는 친구들부터가 자유롭고 다양한 사람들이에요. 이스라엘에서 왔지만 과거 역사보다는 현실에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사람, 나이지리아에서 온 동성애자, 예멘 등 아랍권 출신 등등 그야 말로 온갖 사람들이 섞여 살면서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음악도 연주하며 살아요.
전 세계에서 모여든 온갖 사람들이 모여사는 뉴욕에서 살아 온 에스티, 평생 뉴욕 밖이라고는 나가본 적도 없는 에스티, 유대인 공동체 사람들 말고는 거의 만나본 적이 없는 에스티, 영어를 쓰지만 뉴욕 사람 같이 않은 에스티. 그러니까 미국의 뉴욕에 살지만 흔히 생각하는 미국의 뉴요커는 아닌 셈인 거지요.
컴퓨터를 써 본 일도 없고, 인터넷 검색도 할 줄 모르고...어디 그 뿐인가요. 여자니까 많이 배워도 안 되고, 남들 앞에서 노래를 해서도 안 되고...그러다 보니 교육을 받지도 못하고 특별한 기술도 없고 돈도 없고 인맥도 없는 신세가 된 거지요.
밥하고 청소하고 섹스하고 애 낳고, 밥하고 청소하고 섹스하고 애 낳고, 밥하고 청소하고 섹스하고 애 낳고...
섹스를 했다고 하기 보다는 섹스를 당했다라는 수동태로 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이것저것 다 필요 없고 그저 남자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남자가 여성의 몸에 자지를 밀어 넣고 몇 번 헉헉대다 임신하고 애 낳는 식이 행동이 반복되니까요. 남자에게는 쾌락을 주고 여자는 아기를 얻는다는....무슨 이상한 거래 같은 이야기들 속에서.
창살도 울타리도 없지만 떠나기도 거부하기도 쉽지 않은 그 무엇들 속에서.
남편될 사람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에스티는 얀키에서 말해요.
자기는 다르다고. 다른 여자들 하고 다르다고.
그래요. 에스티는 달라요. 에스티의 엄마가 달랐듯이 말이에요.
음악 연주를 듣고 눈물을 글썽이며 감동을 해요. 그리고 학교에 들어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해요. 돼지고기를 먹으면 큰 탈이 나는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닫기도 하지요.
전통, 의무, 책임, 여자 등등에 매여서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는 삶을 거부해요. 기존의 관습이나 질서에 맞춰 살아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지만 결국에서 이게 아니다 싶어 벗어나기로 한 거지요.
아름다움을 느끼고 기쁨을 찾아요. 아픈 것은 아프다고 할 줄 알고 이건 아니라고 소리치기도 해요. 새로운 것들 앞에 자신을 열어 놓고 또다른 삶을 시작하는 용기도 지니고 있구요.
유대교든 이슬람이든 기독교든 유교든 암튼 세상 어딘가에서는 일어날 법한 일이에요. 에스티든 말랄라든 누군가는 겪었을 법한 일이구요.
좋은 작품 재미나게 잘 봤습니다.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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