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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 <남자다움이 만드는 이상한 거리감>을 읽고

순돌이 아빠^.^ 2021. 5. 27. 12:12

https://youtu.be/nkXOrkeZyqQ

Artur Rubinstein - Liszt, Liebestraum nº3 

 

제목만 보면 남자들이 뭐가 문제인지 욕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 ^^

원래 제목인 'the will to change'였네요.

'변하려는 의지' 정도 될까요? ^^

 

이 책의 목적은 '남자는 나쁜 놈이고, 너희는 이런 저런 나쁜 짓을 했으니 정신차려라'가 아닌 것 같아요.

물론 남성들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나와요.

그리고 그런 모습은 어디서 유래됐을까 생각해봐요.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데는 가부장제와 같은 사회적인 환경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거에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남성들이 자신의 마음과 삶을 치유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아픔이나 두려움, 수치심 같은 것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자기 자신과 소통할 수 있고, 다른 이들과 연결될 수 있는 존재가 되자는 거구요.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표현하고

사랑으로 연결된 존재가 되자는 건 아닐까 싶어요.

 

쉽진 않아요.

남성이 싸우고 두들겨 부수고 올라서는 얘기는 넘쳐나지만

풍성한 삶의 경험과 타인을 향해 열린 마음,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가진 남성을 만나고 경험하기가 쉽진 않으니까요. 

 

산업 혁명이 세상을 크게 바꿨다면

남성들이 사랑의 능력을 키워갈수록 

또 한번 세상은 큰 변화를 겪게 될 거라 생각해요.

 

저를 포함한 남성들이여,

다른 사람 위에 올라서는 강한 사람이 되기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깊은 멋진 인간이 되어보자구요 ^^

 

만국의 남성들이여, 사랑하자!

벨 훅스, <남자다움이 만드는 이상한 거리감>, 2017, 책담

 

그때까지 나는 남자에 대해 내가 느끼는 바를 누구와도 이야기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남자를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여성들이 남성에 관해 공개적으로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우리 여성들과 남성들의 관계-우리가 딸, 누이, 할머니, 엄마, 아주머니, 연인, 그리고 때로는 성적 대상으로 목격해온 관계-를 깊이 있게 탐구하기를 두려워하며, 심지어 우리의 무지, 그러니까 우리가 남성에 대해 사실은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인정하는 것조차 두려워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이든 제대로 알지 못할 때 두려움과 불안감이 더 커진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남성을 남성 폭력, 즉 그들이 여성과 아이에게 가하는 폭력고 관련해서만 아는 것은 불완전하며 적절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 9 

 

여성들은 중대하고 심각한 비밀-특히 남성중심주의라는 일상의 전략을 드러낼 수 있는 비밀, 그러니까 우리 개인의 삶에서 남성의 힘이 어떤 식으로 발휘되고 유지되는지에 관한 일상의 전략을 드러낼 수 있는 비밀-을 절대 말하지 않도록 길들여져왔다. - 13

 

그저 남자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바람, 그들이 죽어 없어지는 걸 보고 싶다는 바람을 표현하는 편이 더 나았다. 

바버라 데밍은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글에서 이런 갈망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나는 사랑과 슬픔을 마음에 담고 아버지에게 꼭 매달렸다. 내 슬픔의 일부는 사랑했던 아버지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내가 더 자유로워질 거라는 것 또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나는 슬퍼하고 있었다. 그건 내가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슬픔이었다. 아버지가 내게 힘을 휘두를 거라는 두려움 없이 그를 마음대로 만질 수 있는 유일한 때가 아버지가 죽어서 누워 있는 그 순간이라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었다.”

내가 스스로의 힘을 아직 알지 못했던 20대 젊은 여성이었을 때, 나는 인생의 남자들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어린 시절에 시작되었다. 그런 식으로 아버지의 격렬한 분노와 폭력에 대응했다. 나는 아버지가 사라지는, 죽어서 없어지는 꿈을 꾸곤 했다. 

죽음은 “아버지가 집에 올 때까지 기다려”라는 선포에서  비롯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길이었다.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너무 강렬했고, 내게 가해지는 아버지의 힘은 너무도 생생했다.

나는 생각하곤 했다. ‘아버지가 죽는다면, 우리는 살 수 있을 텐데’ 

나중에 어른이 되고 나서 내 인생의 남자(같이 사는 그 남자는 보통 때에는 세심하게 배려하다가 이따금씩 분노를 터뜨리면서 폭력적으로 변했다)를 기다리며 나는 또 생각했다. 

‘그가 사고를 당해 죽는다면, 그래서 집에 오지 않는다면 난 자유롭게 살 수 있을 텐데’ - 15



여자라면 누구나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어 한다. 여자라면 누구나 살아가면서 남자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사랑받고 싶어 한다.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혹은 양성애자든 독신주의자든 여성은 아버지, 할아버지, 삼촌, 오빠, 남자 친구의 사랑을 느끼고 싶어 한다….여성들은 조롱과 동정과 수모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 감정을 감히 말하지 못한다. 

여자 아이 혹은 남자아이는 아버지가 자신을 인정하고 알아봐주고 존중해주고 보살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나라 곳곳의 광고판은 이런 메시지를 전한다. “매일 밤 수백만 명의 아이들이 아버지의 관심을 간절히 바라면서 잠자리에 든다” - 23, 25

 

이성애자인 여자아이들과 동성애자인 남자아이들이 여성과 남성으로 성장해 연애를 할 때 이들은 남성의 사랑을 찾고 알려고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좀처럼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대개는 격한 분노, 슬픔, 그리고 끊임없는 실망을 느끼며, 이런이유 때문에 남성의 사랑으로 감동과 치유를 받길 원하던 자신의 일부를 차단해버린다. 그런 다음 남성들이 줄 수 있는 긍정적인 관심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만족하는 법을 배운다. 그들은 그 관심을 과대평가하는 법을 배운다. 그것이 사랑인 척 가장하는 법을 배운다. 남성과 사랑에 관해 진실을 말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그들은 거짓으로 사는 법을 배운다.

 

어릴 적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했다. 아버지가 나를 눈여겨봐주고 내게 관심과 애정을 주길 바랐다. - 25

 

개혁적 페미니스들은 남성과 사랑의 본성에 관한 훌륭한 지혜를 알려주기보다는 남성의 힘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어쨌든 남성은 강하며 모든 걸 가지고 있다는 개념을 확고히 했다. 페미니스트 관련 저술들은 남성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고통을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한 인간이 사랑할 수 없을 때 그 영혼을 좀먹는 끔찍한 공포를 말해주지 않았다. 그 냉담함 때문에 남성들을 부러워하는 여성들은 남성들이 느끼는 괴로움의 깊이를 우리에게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다.

우리가 말하지 않은 진실은 남성들이 사랑을 갈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

많은 남성들이 그렇듯 앤서니도 그가 선택한 관계들 대부분에 행복하지 않았다. 남성들이 관계에서 느끼는 불행, 사랑에 실패했을 때 느끼는 슬픔은 우리 사회에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바로 가부장 문화에서는 남성들이 불행한지 아닌지에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감정의 고통을 느낄 때, 여성에게 감정은 당연히 중요하며 중요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성차별주의 사고 덕에 여성들 대부분은 적어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 마음을 친한 친구에게든 치료사에게든 혹은 비행기나 버스에서 옆에 앉은 낯선 이에게든 말할 수 있다. 남성들은 가부장적 관습에 따라 일종의 감정적 금욕을 배운다. 이 가부장적 관습에서는, 아무 느낌도 가지 않는다면 더 남자다운 것이겠지만 혹여 무엇을 느끼고 그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해도 느낌을 틀어막고 그 느낌을 잊고 그 느낌이 사라지게 하는 것이 남자다운 태도라고 가르친다.

남자다운 척한다는 것이 말하는 바는 진짜 남자라면 고통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 28-31

 

그의 말이 맞았다. 그의 느낌이 고통스럽거나 부정적일 때에는 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내가 그의 나약함과 약점을 알게 되어서 그때까지 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강한 남성의 모습이 심각하게 일그러져버리는 거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그때 나는 각성한 페미니스트 여성이었으면서도 약한 감정을 드러내는 게 싫다는 이유로 내 남자가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지 않으려 했다. 

그러니 대다수 여성들이 남성이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는 것은 나약한 것이라는 성차별적 원칙을 굳게 믿으면서 남성들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으려 하는 것, 특히 상처받고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 하는 것은 당연하다. - 33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들이 표현해도 된다고 진정해주는 딱 한 가지 감정이 있다. 바로 분노라는 감정이다. 진짜 남자는 화를 낸다. 남자가 아무리 난폭하게 화를 내고 상대에게 해를 미친다 해도, 그 행동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가부장적 남성성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어떤 사람이 고통이나 영혼의 괴로움을 감추려 할 때, 분노는 그것을 숨기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두려움이 있을 때 우리는 사랑에서 멀어진다. 그렇지만 여성들은 자신이 남성들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그들에게 좀처럼 말하지 않는다. 

“아버지, 이유가 뭔가요? 왜 그렇게 늘 화를 냈던 건가요? 왜 우리를 사랑하지 않았나요?”

여성들은 살아가면서 두려움 때문에 남성들과 가까이 있지 못한다. 두려움 때문에 여성들은 사랑에서 멀어진다.

 

예전에 나는 여성들만 남성들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성들과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남성들도 다른 남성들에게 두려움을 느낀다는 말을 꽤 여러 번 들었다. 실제로 자신의 감정을 느끼는 남성들, 그리고 사랑을 하는 남성들은 혹여 공격이나 창피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대개는 다른 남성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감춘다. - 33-36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를 두었던 30대 후반의 어느 흑인 남성은 최근에 부모가 되었는데 다정한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할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그는 다정한 롤 모델을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를 두려워했다. 그의 아버지는 여기저기 떠돌며 일을 하느라 대부분의 시간 동안 집을 비웠다. 그리고 집에 있을 때면 재미 삼아 아들을 아무렇게나 놀리고 비웃었다. 아들에게 한껏 빈정거리고 경멸하는 투로 말하는가 하면 말 한마디로 창피를 주기도 했다. 

나는 그 남자와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 물었다. “여러분이 마음을 닫고 살아왔다면, 자신의 감정을 모르는 척해왔다면, 그러면 여러분의 아들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어떻게 알 수 있지요? 여러분은 지금까지 사랑을 실천하는 법을 어디에서, 그리고 언제 배웠습니까?

 

그는 사랑에 관한 수업을 듣는 다른 남자들과 내게 말한다. “내 아버지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그 반대로 합니다” 모두가 웃는다. 

과거나 현재의 상황이 어떻든, 나이나 경험이 어떻든, 어떤 남성이라도 아버지와 반대로 행동하는 수준을 넘어설 때 비로소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지난 4년 동안 여행을 하고 강의를 하면서 만난 모든 남성에게서 배운 한 가지 분명한 진실이 있다. 남성들은 사랑을 알고 싶어 하며 사랑하는 법을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언제든 한 사람의 남성이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가부장적 경계를 용감하게 넘을 때 여성과 남성, 그리고 아이들의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근본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나는 살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 문화가 남성들이 전쟁을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킬 때, 남성들은 죽이고 살인을 즐기는 것이 자신들의 본성이라고 일러부는 가부장적 사고를 더 확실하게 받아들이게 되낟. 남성 폭력에 관한 뉴스가 쏟아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남성과 사랑에 관한 뉴스는 전혀 듣지 못한다. - 36-40

 

오빠가 ‘남자아이들’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고, 다른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는 능력을 버리고, 혹시라도 남자다워 보이지 않을까 봐 두려운 마음에 누이들과 어울리지 않던 그 시절, 엄마의 아버지인 대디 거스는 가부장제를 따르지 않는 편이 더 편하다는 걸 깨달았다. 

내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는 사랑의 기술을 행동을 실천한 남자였다. 그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표현했으며, 그러면서도 가부장적 속박에 갇혀 있었다. 할아버지와 60년 넘게 부부로 살았던 할머니는 관계를 맺는 데에는 지배자 모델이 있어야 한다고 늘 굳게 믿었다. 남자다움을 내세우는 남성들에게 외할아버지 대디 거스는 별로 남자다워 보이지 않았다. 그는 공처가처럼 보였따. 나는 가부장적 아버지가 외할아버지를 가리켜 유약하고 하면서-그리고 지배라는 행동을 통해 자신은 여자에게 휘둘리지 않을 것임을 엄마에게 알리면서- 경멸하던 것을 기억한다. - 41

 

가부장제는 남성은 선천적으로 우세하며, 약하다고 여겨지는 모든 존재(특히 여성)보다 우월하고, 그 약한 존재들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권리, 그리고 여러 다양한 형태의 심리적 테러

리즘과 폭력을 통해 그 지배를 유지할 궈니를 태어날 때부터부여받았다고 주장하는 정치사회 시스템이다.

부모님 모두 가부장제를 믿었다. 두 분은 종교를 통해 가부장적 사고를 배웠다.

교회에서 부모님은 신은 남자가 이 세상과 거기에 있는 몯느 것을 지배하도록 창조했으며, 남자가 그 임무를 수행하도록 돕고 남자에게 복종하고 강한 남자에게 언제나 종속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여자의 의무라고 배웠다. 두 분은 신이 남자라고 배웠다.

주변의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두 분도 가부장적 사고를 받아들인 후 그것은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가르쳤는데, 이 가부장적 사고가 삶을 제대로 사는 ‘자연스러운 방법’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여자가 난폭하게 행동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배웠다. 오빠는 (아무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난폭하게 행동하려는 의지로 자신의 가치가 결정된다고 배웠다. - 53

 

다음 순간 아버지가 덥석 나를 잡더니 칸막이 문에서 판자 하나를 뜯어내 그걸로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넌 여자아이야. 아버지가 뭘 하라고 하면 그대로 해야지” 아버지는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제대로 알 때까지 매질을 계속했다.

힘이 센 커다란 남자가 어린 딸을 인정사정없이 때린 이 일에 대한 기억이 여성이라는 성의 위치를 내게 알려주는 역할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 기억은 그 사건을 보았고 기억하는 모든 사람, 내 형제자매, 그리고 성인 여성인 엄마에게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우리 가정의 지배자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지배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처벌을 받을 것이며 심지어 벌을 받다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기억해야 했다. 이렇게 우리는 가부장제를 경험으로 익혔다. - 56

 

“사전에서는 ‘가부장제’를 ‘씨족이나 가정에서 아버지가 집안 문제와 종교 문제 모두를 지배하는 특징을 가진 사회 조직’으로 정의한다. 가부장제는 남성중심주의와 힘을 그 특징으로 한다” 존 브래드쇼는 또 이렇게 덧붙인다. “가부장적 법칙이 지금도 여전히 세상의 종교 시스템, 학교 시스템, 가정 시스템의 대부분을 지배한다” 

가부장제가 유지되는 기초인 맹목적 복종, 두려움을 제외한 모든 감정의 억압, 개인 의지의 파괴. 권력을 가진 존재의 생각과 어긋나는 모든 생각의 억압”

남성처럼 여성 역시 이 시스템에 사회화된다. 여성들 대부분은 원래 가족에게서 가부장적 태도를 익혔으며 대개는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그리고 그 태도는 학교와 종교 기관에서 더 강화된다. 

가부장적 폭력의 가장 흔한 형태는 가부장적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일어나는 가정 폭력이다. 이런 폭력의 핵심은 대부분 지배자 모델을 강화한다는 것인데, 이 모델에서 권력을 가진 존재는 힘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지배하는 존재로 여겨지며 상대를 정복하고 예속시키고 굴복시켜 그 지배를 유지할 권리를 갖는다. - 60- 61

 

이나라의 시민들은 자신이 두려워한다는 걸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채로 가부장제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우리의 집단 무의식 속에 가부장제의 규칙이 아주 깊숙이 묻혀 있는 것 - 68

 

남성들이 남성이라는 존재의 본질적 선함을 되찾으려 한다면, 그리고 평안의 기초가 되는 솔직함과 감정 표현의 공간을 되찾으려 한다면, 우리는 가부장적 남성성을 대신할 수 있는 모습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 모두 변해야 한다. - 74

 

남자아이들을 올바로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 내면의 삶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그래서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그들의 권리가 지속적인 존중과 지지를 받으며, 사랑하고 사랑받으려는 그들의 요구가 이루어지는 사적 공적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 106

 

마티 탬 로링marti tamm loring은 그녀의 획기적인 저서 <감정 학대emotional abuse>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감정 학대는 한 개인이 다른 사람의 냄녀을 체계적으로 약화하고 파괴하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피해자가 지닌 본질적 개념, 느낌, 인식, 성격의 특성은 계속 과소평가된다...감정 학대를 규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그 학대가 일정한 모습을 띤다는 것이다...감정 학대를 구성하는 것은...비하하고 통제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이다” - 112

 

친밀한 관계에서 남성의 분노가 흔히 여성에게 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관계에서 많은 남성들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가부장제란 이름으로 자신을 보호하지 않았거나 감정적 유대를 무자비하게 단절했을 때 느꼈던 분노와 격분을 다시 느끼게 된다.

많은 십 대 남자아이들이 가부장적인 엄마에게 심한 경멸과 분노를 느낀다. 가정 밖 세상에서는 성차별주의에 따라 엄마가 무력하다는 거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집 안에서 자신을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엄마를 짜증스러워한다. 그는 가정에서 엄마가 마음대로 자신을 지배하려 하는 것을 타당한 힘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을 제대로 키우려고 심리적 테러리즘이라는 기술을 사용하는 엄마에게 격분하지만, 비슷한 기술을 사용하는 또래 남자들이나 권위 있는 인물에 대해서는 칭송한다.

엄마가 성인 남성이 아들에게 가하는 학대에 공모할 때, 엄마(혹은 나중에엄마를 대신하는 상징적 존재)는 아들이 휘두르는 폭력의 표적이 될 것 - 118

 

확실히, 성인 남성에게 분노를 품고 있는 가부장적 엄마들은 아들에게 그 감정을 표출한다. 그들은 성인 남성에게 거부당한 감정적 연결을 아들에게 요구하면서 잘못된 관계를 강요하거나 혹은 아들을 끊임없이 과소평가하고 망신을 주는 감정적 학대를 할 수 있다. 이런 가부장적 폭력을 당하면서 남자 아이는 자신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할 수 있다. 폭력을 정당한 복수로 여길 뿐이다.

 

페미니즘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이상적으로 그린 탓에 어머니의 사디즘, 즉 여성이 아이들, 특히 남자아이들에게 행하는 폭력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굉장히 어려워졌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배자 문화에서 나타나는 힘의 역할 때문이든 혹은 단순한 분노의 반영이든, 여성이 아이들에게 믿기 힘들 만큼 폭력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가부장 문화에서 여성들은 자신들이 힘을 휘두를 수 있고 자유롭게 지배할 수 있는 집단에 대해 남성들만큼이나 폭력적이다. 대개 그 집단은 아이들이거나 힘이 더 약한 여성들이다.  남성 폭력이 그렇듯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여성 폭력은 감정 학대, 특히 막말과 창피 주기의 형태를 띠게 되며, 따라서 입증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성인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의 뿌리를 연구하려 한다면 어머니의 사디즘을 연구해야 한다. - 120 

 

<남자다운 남자>에서 프랭크 피트먼은 남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 대부분이 사랑받기를 원하는 반면, 누군가를 지배하려 하는 사람들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기꺼이 사랑을 포기한다” 어떤 남자든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꼭 감정적으로 건강해야 하거나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 124

 

가부장적 조건에서 승리하는 남성들은 그들 삶의 질적 측면에서는 패하게 마련이다. 그들은 사랑으로 연결되는 대신 가부장적 남자다움을 선택한다. 먼저 자기애를 포기하고, 그 다음에는 그들이 줄 수 있고 받을 수 있으며 그들을 다른 이들과 연결해줄 사랑을 포기한다. - 133

 

결국 폭력에 반대하고 죽음에 반대하기로 하는 남자들은 충만하게 잘 살고 싶기 때문에, 그리고 사랑을 알고 싶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들이 진짜 영웅인남자들, 우리가 그 삶을 알고 존중하고 기억해야 하는 남자들이다. - 136 

 

미국에서 성관계를 하지 않거나 아주 가끔씩만 한다고 하는 남성들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섹스가 남성이 해야 하는 뭔가라고 믿는다. 이런 생각의 바탕이 되는 것은 남성들이 활발하게 성생활을 하지 못하면 행동에 서거나 혹은 미쳐버리고 말 거라는 믿음이다.

이런 이유로 강간-데이트 강간이든, 부부 사이의 강간이든, 혹은 낯선 사람에 의한 강간이든-이 아직 심각한 범죄로 인식되지 않는다. 

‘남자는 당연히 그래야지’라는 생각이 우리 문화에서 남성의 성폭력을 용인하는 분위기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그들은 성관계의 세계에는 항상 지배하는 쪽과 순종하는 쪽이 있다고 배운다. 그들은남성이 여성을 지배해야 하며 강한 남자들은 자신보다 약한 남자들을 지배해야 한다고 배운다.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남성들은 가부장적 사고와 실천을 순순히 따를 때 자신들이 받게 되는 주요 보상을 중 하나가 성적으로 여성들을 지배할 수 있는 권리라고 일찌감치 배운다. 그리고 여성이 주위에 없다면, 그들은 자신보다 약한 남성을 ‘여성’의 자리에 놓을 권리를 갖는다. - 141-143

 

남성들이 일의 본질에 대한 우울함 때문에 가정생활에서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정도를 입증하는 조사는 거의 없다. 현대 가부장제는 낙담한 남성 근로자들에게 하나의 타협점을 제시했다. 불경기 때문에 빼앗겨버린 남자다움이라는 특전을 성의 영역에서 여성을 지배하는 것으로 만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행위의 세상에서 충족감을 얻을 수 없을 때 남성은 분노한다. 실제로 여성들은 특히 성의 영역에서 남성지배에 진절머리를 내며, 남성들이 일에서 얻지 못하는 만족을 섹스에서 얻으려 할 때 ‘가정의 행복’이 더 커지기보다 갈등만 심해진다. - 170

 

딘 오니시는 <관계의 연금술>에서 일을 줄여 자아실현을 할 시간을 만들려고 애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이런 통찰력을 보여준다.

 

어떤 일을 하려는 목적이 인정과 힘을 더는 거라면-”이봐, 나 좀 봐. 나는 특별해. 나는 중요한 사람이야. 나는 너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 가치가 있어”-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려고 하면서 오히려 그들과 멀어지는 것이다.  -181

 

분명히, 남성들에게는 자신을 규정하기 위해 여성이든 혹은 여성적인 것의 상징이든 ‘상대’를 꼭 적으로 만들지 않고도 자기주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남성들은 완벽한 남성의 모델, 즉 완전하고 스스로 분열되지 않는 남성의 모델을 필요로 한다.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개개의 여성들은 그들이 건강하고 사랑이 충만한 아들을 책임감 있고, 사랑이 충만한 남자로 키울 수 있음을 보여 주었지만, 이런 양육 모델이 성공한 모든 경우를보면 여성들이 자신의 아들에게 성인 남성-아버지, 할아버지, 아저씨, 남자 친구, 동료-의 모습을 모범으로 제시하며 그런 남성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교육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선구적인 페미니즘이 우선 해야 할 획기적인 행동 하나는 지배자 모델에서 벗어난 윤리적이고 생물학적인 범주의 남성다움과 남성성을 되찾는 것이어야 한다. 

비지배자 문화에는 창의적이고 생명력이 유지되며 삶의 질을 높여주는 남성성이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

이는 그들에게 남자다움이나 남성다움을 포기하도록 요구함으로써 가능한 게 아니라 그들이 남자다움의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이고 가부장적 남성성을 거부해 남자답다는 것을 지배나 폭력을 행사하려는 의지와 동일시하지 않도록 요구함으로써 가능하다. - 199-200

 

남성들에게 다른 존재 방식을 제시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서로 의존하며 어울려 살아가는 것을 모든 생명체의 유기적 관계로 보는 파트너십 모델로 지배자 모델을 대체해야 한다. - 203

 

마사이 현자는 테렌스 리얼에게서 좋은 전사의 특징을 말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무엇이 좋은 모라니(전사)를 만드는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위대한 전사를 만드는지는 말하겠습니다. 맹렬함이 필요한 순간이 올 때, 좋은 모라니는 아주 흉포해집니다. 그리고 친절함이 필요한 순간이 올 때, 좋은 모라니는 굉장히 다정해집니다. 자, 위대한 모라니를 만드는 것은 어떤 순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능력입니다.” 완전한 사람이 보여주는 특징을 갖추고 자란 여성들은 다정하게, 단호하게, 그리고 혹시라도 공격성이 필요할 때면 공격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완전하고 자아가 분열되지 않는 남성들은 마사이 현자가 훌륭하게 설명한 그 감정적 식별을 실제로 할 수 있는데, 그들은 단순히 반응하기보다 상황에 관련된 반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적 남성성에 갇힐 때 남성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무조건적으로 반응하고 과잉반응한다. - 207

 

가부장적 남성성은 진짜 남자라면 고립과 단절을 이상적으로 그리면서 자신의 남자다움을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스트 남성성은 진짜 남자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행동과 공동체 형성을 통해 되는 것이라고 남성들에게 말한다. - 209

 

우리 사회의 많은 남성들이 어떤 지위도, 특권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자본주의 가부장제에서 어떤 보상도 거저 받지 못하며 어떤 특전도 받지 못한다. 이런 남성들에게 여성과 아이에 대한 지배는 가부장적 존재를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 것이다. 이런 남성들은 괴로워한다. 그들의 고통과 절망에는 한계나 경계가 없다.

그들은 자신이 느끼는 그 강렬한 괴로움을 인정하기보다는 감추려 한다. 아닌 척한다. 그들은 무력하다고 느낄 때에도 힘과 특권을 가지고 있는 양 행동한다. - 238

 

남성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행하는 폭력은 대개 자신에게, 그리고 자신 안에서 벌어진 폭력을 반영하는 것 - 240

 

남성들은 자신의 영혼이 중요하며 영혼을 돌보는 일이 그들 존재의 주요 과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남성이 지배자 모델을 통해 힘을 추구하기보다 살아가면서 영혼의 충만함을 더 드러내려 한다면, 우리가 아는 세상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할 것이다. - 254

 

남성들의 심장이 연민으로 가득 차고 사랑으로 열려 있을 때, 그럴 때 다음과 같은 달라이 라마의 말처럼 된다.

“사원이나 교회, 모스크나 회당이 필요 없고, 복잡한 철학이나 교리 혹은 신조도 필요 없어 진다. 우리 자신의 심장, 우리 자신의 마음이 신전이며 교리는 연민이기 때문이다.” - 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