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동안 가슴이 쿵쾅쿵쾅 뛰고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어요. 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닌지, 이제 그만 좀 편안해지면 안 되는 건지도 싶었구요.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만약 제가 글을 쓴다면 이런 글을 쓰고 싶어요 ^^
193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해요. 가뭄과 흉년으로 땅을 빼앗긴 농민들이 서부로 이주해서 살아가는 이야기에요.
살아가는 건 맞는데...살아간다고 하기보다는 죽지 않고 버틴다고 해야할지..
글을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읽었어요.
하나는 사회 문제.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았지만 은행이나 00회사 같은 것들에게 땅을 빼앗긴 사람들, 일거리를 찾아 먼 길을 헤매지만 일거리는 없고, 오갈데 없이 굶주리며 떠도는 사람들.
많은 이들이 땅을 잃는동안 소수의 인간은 토지 소유를 늘려가고. 어떻게든 노동자의 임금을 적게 주기 위해 온갖 술수를 쓰고. 부당함이나 권리를 주장하면 빨갱이로 몰거나 죽여버리고.
다른 하나는 인간.
온갖 인간의 모습이 나와요. 톰, 존, 전도사, ‘샤론의 장미’ 등등.
그 가운데서도 ‘어머니’가 제일 마음에 남더라구요. 어머니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어머니’가 보여주는 모습 때문에요.
힘겨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애를 쓰고, 문제가 생기면 손 놓고 있기보다는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하고, 다른 사람이 곤경에 처하면 할 수 있는한 도와주려고 하는 모습.
그 ‘어머니’에게서 강인함과 생명력 같은 것을 느꼈어요.
<분노의 포도>가 1930년 미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속의 이야기는 2021년 현재에도 이 지구 위에 계속되고 있겠지요. 누군가는 가난에 허덕일테고, 누군가는 살기 위해 용을 쓰겠지요.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케해준 참 좋은 소설이었어요.
존 스타인벡 아저씨, 고마워요 ^^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동서문화사, 2017
지주들이 토지에 찾아들었다. 아니, 그보다도 지주들의 대리인이 더 빈번히 찾아들었다.
…
소작인들은 저마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앞마당에 서서, 네모난 자동차가 밭가를 달려가는 모습을 불안한눈으로 쳐다보았다. 마침내 지주 대리인들이 차를 앞마당으로 몰고 와서, 차에 탄 채로 창문을 열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소작인 대표들은 차 옆에 잠시 서 있다가 아내 웅크리고 앉아 막대기를 하나 찾아내어 흙 위에 무언가를 끼적였다.
…
여자들과 아이들은 그들의 남편과 아버지가 지주 대리인들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그들 모두는 자신보다 더 거대한 무언가에 얽매여 있었다.
…
토지 소유자가 은행이나 금융회사일 경우 지주 대리인은 이 모든 것이 다 그쪽에서 필요로 하는 것으로서, 그들이 그렇게 요구하고 그렇게 주장하며, 기다려 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
그들은 인간인 동시에 노예이고 은행인 기계인 동시에 주인이기 때문이다. - 25
잠깐, 하지만 은행이나 회사는 그렇지가 않아. 그것들은 공기로 숨을 쉬지도 않고 베이컨도 먹지 않으니까. 그것들은 이윤으로 호흡을 하지. 금리를 먹고 말이야.
…
은행은-그 괴물은 이윤을 얻으려고 24시가 안달이거든. 그놈은 기다리지를 못해. 죽어버릴 테니까...괴물은 성장을 멈추는 순간 죽는 거야. 그놈은 자나깨나 제 덩치를 부풀릴 생각만 하거든. - 47
이제까지 쭈그리고 있던 남자들은 성이 나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 할아버지가 이 땅을 손에 넣었어. 그러기 위해 인디언들을 죽이거나 쫓아낼 수밖에 없었고. 그 다음엔 아버지가 이 땅에서 태어나 잡초랑 뱀들을 다 없애버렸어. 그러다 흉년이 들어서 아버지는 돈을 얼마 정도 빌려야 했어.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태어났고, 저 문간에 있는 우리 아이들도 태어났어. 아버지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했지. 그 뒤론 은행이 지주가 되었지만 우리는 변함없이 그대로 살았고, 작물을 가꿔서 그 일부를 먹고 살아왔어. - 48
전도사의 얼굴은 기도가 아니라 숫제 명상하는 표정이었다. 그 목소리에는 기원이 아니라 진지함이 깃들어 있었다.
…
“나는 이제 예전과 같은 식전 기도는 도저히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이 아침식사의 거룩함을 기뻐합니다. 이 집에 사랑이 있음을 기뻐합니다. 그것뿐입니다” - 106
아마도 그런 아름다운 곳은 처음 볼 거요. 사방이 온통 과수원이며 포도원인 정말 아름다운 곳이지요. 거기서 30피트 땅 밑에 지하수가 흐르는 편평하고 기름진 땅을 지나게 되는데, 그곳은 개간되지 않은 땅이죠. 하지만 당신은 그 한 조각도 차지할 수 없을 거요. 그건 ‘토지가축회사’ 소유니까요. 놈들한테 그 토지를 경작할 생각이 없으면 몇 년이 지나도 미개간지로 남는 거요. 거기 들어가서 옥수수라도 좀 심어 보싱. 당장 교도소에 들어가게 될 테니까”
“좋은 토지라고요? 그런데 그걸 내버려둔단 말이요?” - 251
어머니가 눈을 들어 딸을 쳐다보았다. 어머니의 눈에는 인내심이 깃들어 있었지만, 이마에는 지친 주름살이 몇 겹이나 새겨져 있었다. 어머니는 계속 부채질을 하며 판지 조각으로 파리를 쫓았다. “젊어서는 말이다, 로자샨, 모든 일이 다른 것과 동떨어져 일어난단다. 그건 정말 외로운 일이지. 나도 안다. 그런 기억이 있어, 로자샨” 어머니는 딸의 이름을 사랑스럽게 불렀다. “너는 곧 아기를 낳게 된다. 로자샨, 하지만 그건 너에게는 외롭고 아주 동떨어진 일이야. 그것 때문에 아픈 경험을 하게 될 거고, 그 아픔도 외로운 아픔이 될 거야.
…
“하지만 그런 것이 뒤바뀌는 시기가 온단다. 그 시기가 오면 죽음도 수많은 죽음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고, 출산도 수많은 출산 중 하나에 지나지 않게 돼. 출생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되어버리지. 그 뒤부터는 모든 게 조금도 외롭지 않게 돼. 고통도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게 되고. 그건 이제 외로운 고통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로자샨, 네가 알아듣도록 얘기해 주었으면 좋겠다만 잘 되지 않는구나” 어머니의 벅찰 만치 부드럽고 애정에 넘치는 그 목소리에 ‘샤론의 장미’는 눈물이 왈칵 솟구쳐 앞이 보이지 않았다. - 256
일찍이 캘리포니아는 멕시코에 속했었고, 그 땅은 멕시코 사람의 것이었다. 그런데 누더기를 입고, 흥분한 미국사람들이 떼 지어 몰려들었다. 땅에 굶주린 그들은 함부로 그 땅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
굶주림에 미친 사람들은 땅을 놓고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웠다. 이렇게해서 훔친 땅을 그들은 총으로 지켰다. 집과 광을 짓고, 땅을 갈아서 농작물을 심었다. 이것들은 그들의 소유물이 되었고 그 소유물은 소유권을 낳았다.
...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불법 점거자들은 불법 점거자가 아니라 지주가 되었다. - 282
어머니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식구들은 먹여야겠고, 이 아이들은 어떡하지?” 아이들은 꼼짝도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서서 어머니를 보고 있었다.
…
존 아저씨는 비로소 그 눈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천천히 씹으며 톰에게 말했다. “너 이거 먹어라. 난 배고프지 않구나”
“오늘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잖아요”
“그렇긴 하다만, 배가 아파서 먹고 싶지 않다”
톰은 조용히 말했다. “그 접시를 텐트로 가지고 가서 잡수세요”
존이 고집을 부렸다. “먹고 싶지 않다니까. 텐트 안에서도 이놈들은 보인다”
…
바깥에서 아이들이 막대기며 숟가락이며 녹슨 함석조각으로 냄비 밑바닥을 긁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겹겹이 둘러싼 아이들에 가려 냄비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들은 말도 하지 않고, 싸우지도, 옥신각신하지도 않았다. 거기에는 조용한 집념과 거북한 맹렬함이 있었다. 어머니는 보지 않으려고 등을 돌렸따. “다시 이런 일은 없을 거다. 우리 식구끼리만 먹을 거야” - 314
서부에서는 고속도로로 나오는 이주민의 수가 계속 불어남에 따라 공포감이 일었따. 재산이 있는 자는 그 재산 때문에 떨었다. 한 번도 굶주린 일이 없는 사람들은 굶주린 인간의 눈을 보았다. 아무런 부족함 없이 살아온 사람들이 이주민의 눈에서 욕망의 불꽃을 보았다. 그리하여 도시 사람들과 조용한 교외의 주민들은 자기방어를 위해 모여들었다. 그리고 인간이 싸움을 할 때 반드시 그러하듯이, 자기들이 선善이고 침략자들이 악惡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그들은 말했다. 저 오키 놈들은 더럽기 짝이 없고 무식하다. 타락한 색광이다. 오키놈들은 도둑이다. 닥치는 대로 훔친다. 소유권이라는 관념이 없다. - 345
과일 썩는 냄새가 이 주 전체에 퍼진다. 그 새콤달콤한 냄새는 이 고장을 덮는 커다란 슬픔이다. 접목도 하고, 우량종자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결실을 굶주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방법은 찾아내지 못한다.
…
오렌지가 몇 트럭씩 땅에 버려진다. 사람들이 몇 마일 밖에서 그 과일을 주우러 차를 몰고 와서 오렌지를 주워갈 수 있다면, 열두 개에 20센트나 주고 누가 오렌지를 사먹겠는가? 호스를 든 사나이들이 그 오렌지에 석유를 뿌린다.
…
여기에는 법으로도 적발해 낼 수 없는 범죄행위가 있다. 여기에는 통곡으로도 다 표현하지 못하는 슬픔이 있따. 여기에는 우리의 모든 성공을 뒤집어 엎는 실패가 있다. 기름진 땅, 쪽 고르게 심어진 과일나무들, 단단한 나무줄기, 무르익은 과일, 그런데도 홍반병에 걸린 어린아니는 오렌지에서 수익이 오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죽어가야 한다. 검시관은 사망 증명서에 이렇게 써넣어야 할 것이다. ‘영양실조로 사망’ 그것은 식량을 썩혀야 하기 때문에, 부득이 썩혀야 하기 때문에 비롯된 죽음이다.
…
사람들의 눈에 패배의 빛이 떠오르고 굶주린 사람들의 눈에 분노가 서린다. 사람들의 영혼 속에서 분노의 포도가 가득 차고 가지가 휘게 무르익어 간다. -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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