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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라민 바라니 - <화이트 타이거>를 보고

순돌이 아빠^.^ 2021. 5. 2. 21:23

2012년 5월1일 노동자의 날에 봤습니다. 굳이 노동자의 날에 맞춰 보려고 했던 거는 아닌데 보고 나니 그렇더라구요 ^^

 

충격적이었다고 하기에는 안 어울리는 것 같고, 그렇다고 그냥 인상 깊었다라고 하기에는 모자란 것 같습니다. 아무튼 마음 묵직하게 새겨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 한편을 놓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자고 한다면, 장면 장면마다 나눌 이야기가 너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인도 사회에 대해 더 잘 알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말이에요.

영화의 배경은 인도입니다. 주인공은 인도의 아주 낮은 신분 출신의 발람이구요. 신분과 가난이라는 커다란 제약(?) 또는 늪(?)에서 벗어나는 이야기구요. 

 

<희망의 딸들>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이 또한 인도를 배경으로 하면서 인도의 불가촉천민 여성들의 삶을 담고 있습니다. <희망의 딸들>에서는 그들이 삶의 늪에서 벗어나도록 교육을 받고 직업을 찾는 과정이 나옵니다.  

 

<화이트 타이거>에서 발람도 늪에서 벗어나기는 하는데 좀 다른 방법을 사용합니다. 음...범죄는 범죄인데…

 

공부를 열심히 해도 가난이라는 늪에서 벗어날 수 없어 어린 나이부터 차를 파는 가게에서 석탄 깨는 일을 합니다. 그러다 어느 부잣집의 운전기사로 취직을 하지요.

 

그 부잣집이란 게 그동네 지주의 집입니다. 땅을 가지고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힘들게 일한 사람들의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거둬가지요. 거만한 태도로 큰 소리치고 농민들의 뺨까지 때려가면서 남의 노력을 빼앗아 갑니다. 

 

힘든 노동의 결과를 빼앗아가는 것도 짜증나는데, 지주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치 자신들이 농민들의 주인이라도 되는양 행세하는 꼴이 아주 가~관입니다. 

발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주와 그의 가족을 향해 주인님 주인님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을 향해 부모와 같다면서 굽신거립니다. 주인 앞에서는 늘 허리를 숙이고 발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지요. 그의 표정이나 몸짓, 말투가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좋은 일도 네네, 싫은 일도 네네, 알아도 네네, 몰라도 네네입니다. 욕을 해도 알겠습니다. 두들겨 맞아도 알겠습니다 입니다.

 

이런 모습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인지, 아니면 현실에 빗대어 표현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왠지...인도의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일 것 같아 마음이 무겁네요. 

 

경제적인 착취는 물론이고, 인격적인 학대와 모욕이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가해하는 쪽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별 문제 아니라는 듯이 그러지요. 당하는 쪽은 늘 그래왔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여기거나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어금니 꽉 물고 참는 거지요. 

 

그러는 과정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농민들과 그의 가족들은 가난의 족쇄를 끊기 힘들지요. 수도도 전기도 병원도 학교도 모두 남의 이야기입니다. 

 

한번은 주인인 아쇽이 발람에게 인터넷에 대해 아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발람은 별 거 아니라는 표정을 밝게 지으며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씀만 하시면 시장에 가서 사 오겠다고 합니다. 

 

지주집 자식들은 에어콘 나오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근사한 호텔에서 생활하고 시끌벅적 파티를 즐기는동안, 가난한 농민의 자식들은 그나마 학교를 다녀 글자를 읽을 수 있으면 다행으로 인터넷이 뭔지도 모르고 치약과 칫솔도 없이 살아가는 거지요. 지주가 농민들에게 거둬갔던 그 돈이 쓰일 데 안 쓰이고 엉뚱한데 쓰인 결과입니다. 

인격적으로는 어떻습니까. 발람이 하인들이 주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말합니다.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는 걸까, 아니면 증오하면서도 사랑하는 걸까 라구요. 

 

주인집에서는 그들이 교통사고 뺑소니를 저질러 놓고도 그 죄를 발람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합니다. 없는 죄를 자백하는 문서에 서명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발람에게 다정하게 대합니다. 늘 욕하고 업신여기더니 딱 그 순간만큼은 바닥이 아닌 소파에 앉도록 하지요. 

 

발람도 처음에는 그런식으로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을 잘 모시고, 주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하인이 되는 것은 큰 축복처럼 여기지요. 하지만 그것도 한 두번이지요. 폭언을 일삼고 무시하고 조롱하며 윽박지르기를 계속하는데...사람의 마음이 언제까지 좋을 수만은 없겠지요. 

미국에서 살다온 아쇽은 처음에는 발람을 괴롭히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아버지나 형이 아쇽을 학대하면 왜 다른 사람에게 그러냐고 말리고 항의를 하지요. 그런데 그런 아쇽도 점점 변해갑니다. 자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일이 생기자 곧바로 발람을 화풀이를 늘어놓습니다. 미국 같았으면 고소 당했을 일이 아무렇지 않은듯 버젓이 벌어지는 거지요.

 

경제적 착취와 인격적인 학대까지. 이게 계급 사회의 모습인가 싶어 답답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해 나서는 ‘위대한 사회주의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앞에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노력하겠다던 그들 또한 뒤에서는 지주들에게 뇌물을 받아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펴지요. 

 

발람이 말합니다. 자기 같은 사람들이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범죄 아니면 정치라고.  참 씁쓸한 말입니다. 뇌물이 잔뜩들어 있는 빨간 가방을 들고 커다란 간디 동상 앞을 오가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더라구요.

요즘 뉴스에 인도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하루에도 수십만명씩 코로나 확진자가 늘고 있고, 산소통을 비롯한 의료 장비가 부족해 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받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이야기입니다. 화장장이 모자라 공터에 나무를 쌓아놓고 시신을 태우고 있지요.

 

KF 94냐 KF-AD냐 할 것 없이 마스크라는 것 자체가 없어서 아무 천이나 가지고 얼굴을 가리면서 불안해 하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병이나 바이러스라는 게 계급과 신분을 가리겠냐만 어쨌거나 결국은 또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더 많이 위험에 노출되고, 더 많이 죽어갈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발람이 호텔 마당에 서서 아쇽이 생활하고 있는 호텔을 올려다보니다. 높고 높은 호텔이지요. 주인들은 근사한 호텔 방에서 딩가딩가 하는 동안 운전기사들은 호텔 지하에 있는 눅눅한 창고에서 생활합니다. 

 

한 하늘 아래 같이 살아가는 인간인데 어찌 이리 다르게 살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계급이 낮고 가난한 자들은 닭장 속 닭들과 같은 운명에 갇힌 걸까요

 

발람이 저지른 일은 범죄입니다. 그래서 수배자 명단에 오르지요. 자신이 저지른 일 때문에 한참을 괴로워하구요.

 

지주나 정치인들이 저지른 일은 범죄가 아니라 사업이고 활동이 됩니다. 그들은 수배자 전단이 아니라 tv 화면에 세상의 구원자로 근사하게 비치기도 합니다. 자신이 저지른 일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구요. 

 

그들이 직접 사람을 죽이지 않더라도 다른 인간을 가난과 질병 속에서 죽도록 만들거나, 인격을 모욕하고 모멸감을 안겨준다면 그들이 저지른 일 또한 범죄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굳이 부자는 아니어도 어느만큼 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일이 없는 세상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