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여성.가족/성.여성.가족-여러가지

여성들이 조직을 만들고 세력화 한다는 것

순돌이 아빠^.^ 2022. 1. 27. 10:59

양대 정당여성들의 끝 모를 배신에 진력이 난 일부 대표들은 전국 대회를 열고 제3당, 그러니까 여러 대의 중에서도 여성 평등을 위해 싸우는 당을 창당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를 제안했다. 이 발의는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평소에는 전미여성연맹의 전국 대회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언론들이 격분과 노여움, 조롱으로 들끓었다. <워싱턴포스트>의 ‘아웃룩’ 섹션의 편집자 조디 앨런은 한 의견 기사에서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갈등이 아니라 합의를 해야 할 때”라고 명령했다.

게다가 이들의 결의안은 심지어 신당을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창당 가능성을 고민하는 ‘조사위원회’를 요구했던 것뿐이었다. 그리고 대표들이 고민해 보고 싶었던 당은 언론에서 떠들어 대는 것 같은 ‘여성 정당’도 아니었다. 대표들은 이 당을 인종 불평등, 가난, 오염, 군사주의에도 맞서 싸울 인권당이라고 폭넓게 정의했다.

언론과 기성 징치인 들(대통령을 비롯해서 민주당 전국위원회 의장, 메인 주와  미시건 주 주지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정치인들이 비난의 말을 쏟아 놓았다)의 공포 반응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도가 지나쳤다. 그 어떤 논설위원도 존 앤더슨이나 배리 커머너가 불과 8년 전에 제3당을 만들었을 때 이들을 청부 살인하자고 제안하지 않았다.

제3당 아이디어가 촉발시킨 강력한 조롱은 여성 정치인들에게도 그만큼 강렬한 불안감을 안겨 주었음에 틀림없었다…실세들이 겁을 먹은 것이다. 정계의 기득권 세력들은 전미여성연맹의 안을 ‘비현실적’이고 ‘철없다’며 조롱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켈로비치의 1989년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다수 여성들은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평균적인 미국 여성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가 자신들과 가깝다고 생각했을까? 다수 여성이 전미여성연맹, 여성운동 지도자들, 그리고 페미니스트 세 집단을 언급했다. - 425-428 

 

반격이 지배하던 1980년대에 여성들이 대단히 적극적이고 당당한 전략을 구사했던 얼마 안 되는 사례에서 이들은 결국 공적인 분위기를 바꿔 놓았고 자신들의 언어로 의제를 설정했으며 많은 개별 남성들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1989년 다시 활기를 찾은 낙태 선택권 옹호 운동이 낙태를 둘러싼 정치를 180도로 바꿔 놓은 사건이 여기에 부합하는 교과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1989년 4월9일 자신의 몸을 통제할 권리를 옹호하는 여성 50만명 명이 국회의사당에서 행진을 하며 워싱턴 D.C. 최대의 시위를 벌였고 낙태 클리닉 문에서 낙태 반대 시위대와 맞붙었다. 

대대적으로 동원된 이 낙태권 동맹은 1989년 주 입법부에 제출된 수백 건의 낙태 반대 법안 중 몇 개만 빼고 전부 무력화시켰고, 낙태권 후보자들을 주지사 선거와 의회 선거에서 낙승시켰으며, 심지어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 리 애트워터가 공화당은 낙태 문제를 ‘비호하는 정당’이라고 재명명할 정도로 겁먹게 만들었다. - 661

 

- 수전 팔루디, <백래시-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 아르테, 2021

 

노동자들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노동자들이 모이듯

여성들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여성들이 모이는

 

https://youtu.be/rptW7zOPX2E

헬렌 레디Helen Reddy - I Am Woman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 ABC

 

한겨레
huffpost

https://www.huffpost.com/archive/in/entry/photos-women-across-india-march-against-hate-and-violence_in_5ca5e327e4b082d775e12c14

 

PHOTOS: Women Across India March Against Hate And Violence

In New Delhi the march began in  Mandi House and culminated in Jantar Mantar.

www.huffpo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