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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 <제르미날>을 읽고

순돌이 아빠^.^ 2022. 2. 22. 09:14

<목로주점> <나나>에 이어 에밀 졸라의 글 가운데 세번째로 읽은 소설입니다. 

 

이런 글이 또 있을까 싶을만큼 너무 너무 너무 훌륭한 글이었습니다. 그냥 좋다고만 하기에는 제 마음을 죄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훌륭하다고 했습니다. 

 

사회와 계급의 모습, 인간과 그들 사이의 관계, 노동자와 노동, 그리고 그것을 예술의 말로 표현하는 것까지.

 

<목로주점>과 비교하면…음…둘 다 좋아요. 가난한 자들, 여성들, 노동자들의 삶이 잘 드러나요.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와 비교하면…음…둘 다 그 당시 사회상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가끔 책을 읽다보면 누가 읽고 싶다는 사람 있으면 내 돈 내고 사주고 싶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이 그렇네요. ^^

 

에밀 졸라, <제르미날1>, 문학동네

 

빵 부스러기조차 구경할 수 없었다. 이렇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목적지도 없이, 매서운 삭풍을 피할 곳조차 없이 여기저기 길바닥을 떠돌면서 - 1권 14

 

“어쨌거나 빵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만 있다면 좋겠군요!” 에티엔은 다소 뜬금없이 세번째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무렴. 그렇고말고! 빵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만 있다면 어이상 무얼 바라겠나!” - 1권 25

 

남자들과 카트린이 갱에서 돌아오면 뭐라도 먹게 해야 했다. 불행하게도, 아직까지는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발명해내진 못했기 때문이다. - 1권 141

 

탄차 운반부 여자들이 상점에 올 때마다 메그라의 아내가 침실을 비워준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것을 사실이었다. 광부가 외상 거래를 연장하기를 원할 때는 자기 딸이나 아내를 보내기만 하면 되었다. 고분고분 말만 잘 들으면, 못생겼든 예쁘게 생겼든 그런 건 아무 상관 없었다.

 

여전히 눈빛으로 메그라에게 간청하던 라 마외드는 그가 조그만 눈을 가늘게 치켜뜨며 그녀의 옷 속을 꿰뚫어보는 것 같은 불쾌한 느낌에 화가 났다. - 1권 146 



다시 몽수를 가로질러 갈 때, 라 마외드는 단호한 태도로 메그라의 상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에게 거듭 간청한 끝에 빵 두덩어리와 커피, 버터 그리고 100수까지 기어이 빌렸다…그가 원하는 사람은 라 마외드가 아닌 카트린이었다. 그녀는 딸을 보내 나머지 음식을 가져가라는 그의 말을 듣고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 1권 155

 

마외는 탄광회사에서 경매에 부친 마흔 곳의 작업장 중 하나도 따내지 못할까봐 잠시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경쟁자들 모두가 앞다퉈 입찰가를 낮췄다. 다들 위기설과 실업의 공포에 사로잡혀 잔뜩 겁을 집어먹은 터였다. 탄광 기사 네그렐은 그들의 악착스러운 모습에 느긋한 태도를 보이며 입찰가가 가능한 한 낮아지도록 내버려두었다. - 1권 230

 

대혁명 이후로 모든 민중이 평등한 존재가 된 게 아니었던가? 이제 투표도 같이 하는 마당에, 노동자가 그에게 봉급을 주는 주인의 노예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 1권 262

 

어린 알지르는 에티엔의 얘기 중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몇 마디로 자기만의 행복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알지르가 바라는 것은 아주 따뜻한 집에서 아이들이 뛰어 놀며 마음대로 실컷 먹을 수 있는 삶이었다. - 266

 

그는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느라 목이 매어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탄광일로 단련된 남자의 거친 얼굴이 절망으로 부풀어오르더니, 굶다란 눈물이 뜨거운 빗줄기처럼 눈 밖으로 넘쳐흘렀다. 그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식탁 위에 50프랑을 내던지면서 어린아이처럼 흐느꼈다.

“자, 받아요!”그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게 내가 줄 수 있는 전부요..우리 몫을 모두 합친 거요!”

엄마가 울자 알지르는 놀라서 두 팔로 그녀의 목을 감싸안았다. 에스텔은 소리를 질러댔고, 레노르와 아일도 함께 훌쩍거렸다. - 285

 

새하얀 앞치마를 두른 하녀가 주인의 마차를 타고 이웃 도시로 장을 보러 간다는 사실은 여자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노동자들은 배가 고파 다 죽게 생겼는데, 저들은 꼭 생선을 사야만 한단 말인가?

어둠이 짙어지면서 비가 더 세차게 내리고 아이들이 시끄럽게 울어대는 가운데, 여인네들은 여전히 탄광촌을 그들의 눈물로 채우고 있었다. - 287

 

대표단은 창가를 향해 손을 뻗은 그의 모호한 몸짓을 눈으로 좇았다. 저기라니, 저지가 대체 어디란 말인가? 아마도 파리를 말하는 것일 터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이 어딘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들에게 파리는 결코 가 닿을 수 없는 경건한 나라, 두려우리만큼 먼 곳에서 성소 깊숙이 몸을 숨기고 있는 미지의 신과도 같았다. 그들에게 그곳을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멀리서 몽수의 만여 명의 광부들을 짓누르는 거대한 힘으로 느껴졌다. 사장이 이야기할 때마다 바로 그 무시무시한 힘이 그의 뒤에 숨어서 신탁을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 346

 

그녀는 남자를 일찌감치 알아버린 여자가 보여주는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로 아무런 분노의 기미도 없이 자기변명을 늘어놓았다. 사는 게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카트린은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다른 삶을 꿈꿔본 적이 없었다. 폐석 더미 뒤에서 강제로 처녀성을 빼앗기고, 열여섯 살에 첫아이를 낳고, 사귀는 남자와 결혼하더라도 계속 빈곤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게 그녀 같은 여자에게 주어진 삶이었다. - 359

 

그렇게 서로 사랑할 수 있는 행복을 마음껏 누리면서도 삶이 힘들다고 불평들을 늘어놓다니. 참으로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자들이 아닌가! 그는 자갈밭에서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해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여자와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저들처럼 굶어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그 무엇으로도 위로가 안 될만큼 불행하다고 생각하면서 빈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 436

에밀 졸라, <제르미날2>, 문학동네

 

“이런 바보 같은 여잘 봤나?...알았어. 다정하게 굴겠다고 맹세할게. 따지고 보면 내가 다른 남자들보다 더 고약하게 군 적도 없지만 말이야!”

 

그를 바라보던 카트린은 눈물 속에서 다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쩌면 그의 말이 옳은지도 몰랐다. 지금까지 살면서 행복한 여자는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그의 맹세를 별로 믿지는 않았지만 다정하게 구는 그를 보면서 마냥 기뻐했다. 부디 앞으로도 내내 이렇게만 지낼 수 있다면! - 35

 

그는 빵을 먹을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고통받지 않는 건 아니었다. 삭막해진 부부생활, 고통스러운 그의 삶 전체를 떠올릴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혀오면서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헐떡거렸다. 빵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고 해서 모든 게 순조로운 건 아니었다. - 101

 

게다가 이제는 더이상 아무도 에티엔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돌들이 계속해서 빗발쳤다. 그는 자신이 행동하라고 부추겼던 이들이 거친 야수처럼 변한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억눌린 감정을 표출하는 데 시간이 한참 걸렸지만, 일단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한 뒤로는 광포한 폭도로 돌변해 줄기차게 분노를 쏟아내고 있었다. - 105

 

하지만 그녀의 목에서는 거친 소리만이 희미하게 새어나왔다. 누군가가 차가운 두 손으로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그는 본모르 영감이었다.

그는 오래도록 비참한 삶을 이어온 끝에 얼이 빠지고 굶주림에 취한 듯 보였다. 그런데 어떤 해묵은 원한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불현듯 반세기 동안의 체념 상태에서 깨어난 듯했다. 그는 오랜 세월 광부로 살아오는 동안 갱내 가스와 붕괴 사고의 위험 속에서 열 두 명의 동료를 죽음에서 구해냈다. 그리고 이 순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충동에 이끌려 젊은 여인의 새하얀 목덜미에 홀린 듯 그녀의 목을 졸랐던 것이다. 그는 오늘 또다시 말문을 닫고 불구의 늙은 짐승 같은 얼굴로 손끝에 힘을 주면서 아득한 시절의 추억을 반추하는 듯했다. - 113

 

운 나쁘게도 하필 그 시각에 그곳에 있게 된 카트린은 몇 발짝 떨어진 눈앞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폭력 행위를 지켜보며 망연자실했다. 그동안 고통받은 것으로는 부족한가? 대체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불행이 이토록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걸까? 그 전날까지만 해도 카트린은 파업을 하는 사람들의 분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처럼 이미 충분히 불행한 사람은 더이상의 불행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증오를 쏟아내고 싶은 욕구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 213

 

두 사람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머무르며 끝내 이루지 못했던 자신들의 불행한 사랑을 떠올렸을 뿐이다.

하지만 에티엔은 한없는 슬픔에 잠겨 카트린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미친듯이 힘껏 끌어안았다. 평온한 삶에 대한 욕구, 행복을 갈망하는 주체할 수 없는 욕구가 물밀듯이 몰려왔다. - 265

 

땅속에 파묻힌 광부들을 구조하는 일은 그들을 더욱더 열광시켰다. 네그렐은 마지막으로 구조를 시도하는 임무를 맡았고, 그를 돕겠다는 지원자들이 넘쳐났다. 광부들은 피 끓는 형제애를 내세우며 한달음에 달려와 너도나도 팔을 걷어붙였다. 그들은 파업을 했던 사실도 잊은채 임금 문제에도 더이상 신경쓰지 않았다. 동료들이 죽음의 위험에 직면한 순간부터 아무 대가 없이 자기 목숨을 내놓고자 했다. 모두가 그곳에 와 있었다. 저마다 연장을 손에 들고 어느 곳을 내리치면 되는지 말해주기를 기다리며 흥분으로 몸을 떨었다. - 298

그리고 또다시, 여전히, 땅과 가까워지는 것처럼 동료들이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더 또렷이 들려왔다. 뜨겁게 달아오른 햇살이 비치는 젊은 아침에 전원이 잉태한 것은 바로 그 소리였다. 사람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복수를 꿈꾸는 검은 군대가 밭고랑에서 서서히 싹을 틔워 다가올 세기의 수확을 위해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하여 머지않아 그 싹이 대지를 뚫고 나올 것이었다. - 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