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외국인이나 외국의 것이라면 모조리 멸시하는 것 같다. 그러나 병적 멸시는 병적인 아첨의 반대편 얼굴이다.멸시와 아첨은 한 영혼 속에서 공존한다. 마야콥스키가 바로 좋은 예다. 그는 자신의 시詩에서 파리와 미국에 대해 침을 뱉었지만, 셔츠는 파리에서 사고 싶어 했고 미국산 만년필을 준다면 테이블 밑에라도 기어들었을 것이다. - 155
- 솔로몬 볼코프, <증언-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회고록>, 온다프레스
'사랑.평화.함께 살기 > 생명.인간.마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약자에 대한 경멸과 강자에 대한 비굴함 (0) | 2022.03.14 |
---|---|
모든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지배자들 (0) | 2022.03.14 |
무례하고 잔인한 인간, 그리고 추종자들 (0) | 2022.03.12 |
오랫동안 억눌렀던 감정이 폭발하는 (0) | 2022.02.21 |
부르주아의 공허와 불행 (0) | 2022.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