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思想
사회, 정치, 인생 등에 대한 일정한 견해나 생각
우리 각자는 우리 나름의 사상을 갖고 있겠지요. 그게 꼭 무슨 00주의나 무슨 00이즘이 아니어도 상관 없지요. 그럴 필요도 없구요.
우리는 그런 사상을 바탕으로 인생을 설계하고 친구를 만나고 투표를 하고 그러니까요.
<중국고대사상사론>은 말 그대로 중국의 여러 사상들에 대한 이야기에요. 참 재미 있었어요. 뭐랄까...개인의 수양에서부터 정치학을 아우르는 큰 흐름 같다고 할까요.
누가 보면 정치하고 개인의 수양하고 무슨 관계냐 할 수도 있을테고, 누가 보면 정치란 곧 개인의 수양을 기반으로 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영화 <사도>에 보면 왕인 송강호가 신하들 앞에서 세자를 공부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이 국무회의나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여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와 함께 글을 읽고 토론을 하는 것이 되겠지요. ^^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인간의 삶이 어떻고, 대통령이 언행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토론한다면...요즘으로 보면 우스운 일일 수 있겠지만...조선 시대에는 그렇게도 했나봐요.
이것이 한편으로는 왕이나 황제의 마음 먹기에 모든 것이 달려 있는 지배 체제의 영향일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인간의 됨됨이가 개인의 세상살이에서부터 국가의 운영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구요.
아무튼 공자나 묵자, 맹자 등 여러 사람의 여러 사상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논어>나 <묵자>를 그냥 읽는 것도 좋고, 또 '사상사'를 통해 그런 사상이 어떤 배경과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좋더라구요.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사상이 어떤 맥락 속에 서 있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짚어볼 수 있어 좋구요.
저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세상살이의 길잡이를 삼을 수도 있구요. ^^
리쩌허우, <중국고대사상사론>, 한길사, 2005
<의례>의 각 편은 예의를 매우 상세하게 규정하며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후세에 예의에 대해 근거 없이 함부로 무책임하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또한 예의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지나치게 까다롭기만 한 형식적인 예절만은 아니다.
원시예의로서 그것들의 원형은 본래부터 매우 중요한 사회적 기능과 정치적 작용을 가지고 있다. 태고 시기의 씨족들은 바로 이런 원시예의를 통하여 활동했는데, 그들은 그것을 통해 무리르 조직하고 단결시켰다. 그리고 정해진 사회질서와 규범에 따라 생산활동을 하고 생활하게 하여 전체 사회의 생존과 활동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이런 ‘예의’는 모든 씨족성원에 대해서 엄청난 강제성과 구속력을 가졌다. 이것은 오늘날의 법률에 해당하는 것으로, 사실상의 성문화되지 않은 관습법이라고 할 수 있다. - 55
이런 것들은 모두 경제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패배하여 몰락의 운명에 처해 있는 씨족귀족들의 특징들을 반영하고 있다. 공자가 비록 동분서주하여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주례를 회복하려 하지만 그의 노력은 하나같이 벽에 부닥치고 만다.
이런 기초 위에서 찬란한 전국 문명과 강력한 진과 한 제국이 출현…그러나 동시에 선진의 사회체계 속에 여전히 남아 있던 대량의 원시적 예의체제 속에 들어 있는 씨족 내부의 여러 가지 민주적, 인애적仁愛的, 인도적 잔재들은-춘추 시기의 많은 중소 씨족국가의 도시국가 형태 민주정치를 포함하여-이런 진보적 경향에 의해 파묻히거나 사라져버렸다. - 63
공자는 주례를 옹호하는 사람으로 보수적이고 낙후성을 띠며 또는 반동적이다. 그러나 그는 잔혹한 착취와 억압에 반대하며 상대적으로 온화한 상고 시기의 씨족 통치체제를 유지하고 회복할 것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민주적 방식과 인민 위주의 관점들을 가지고 있다. 공자의 인학仁學 사상체계는 바로 이런 모순되고 복잡한 기초 위에서 성립되었다. - 65
‘예’는 혈연을 기초로 하고 있고, 등급(주로 신분의 서열을 지칭함)을 특징으로 하는 씨족통치 체계이다. 이런 씨족통치 체계를 옹호하거나 회복하기를 요구하는 것이 ‘인’을 말하는 근본목표라고 할 수 있다. - 69
‘인학’ 사상은 외재적 측면에서 원시 씨족체제가 가지고 있던 민주성과 인도주의를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인仁이라는 글자는 사람을 말하는 인人과 이二로 구성되어 있고, ‘친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관점은 맹자가 말하는 ‘인이라는 것은 인人이다’ ‘자기집 노인을 공경하여 그 마음이 남의 집 노인을 공경하는 데까지 미치게 하고, 자기집 아이를 사랑하여 그 마음을 남의 집 아이를 사랑하는 데까지 미치게 한다’는 말로 충분히 증명되는 것으로 보인다. - 80
‘인’의 첫번째 요소는 개체에 대한 사회적인 의무와 요구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다. 이것은 사람(즉, 그 당시 사람이 가지고 있던 구체적인 내용은 씨족귀족을 지칭하는 말이다..)과 사람의 사회관계와 사회적 교류를 인성의 본질로 보고, 또한 ‘인’의 중요한 표준으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
‘인’의 주체적 내용은 이런 사회적 교류와 상호책임을 말하는 것이다. - 84
‘인’은, 내재적인 측면에서는 개체로서의 인격이 가지고 있는 주동성과 독립성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 85
이른바 ‘실천(용)이성’이 우선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이성정신 또는 이성적 태도이다.
…
‘실천이성’은 어떤 신비적인 열광이 아니라 냉정하면서도 현실적, 합리적인 태도로 사물과 전통을 해설하고 처리한다. 금욕적인 태도나 또는 욕망을 마음대로 발산하는 식으로 인간의 감정과 욕망을 억압하거나 방임하는 것이 아니라, 이지적으로 정욕을 바르게 인도하고, 만족시키고, 절제한다.
…
‘실천이성’에서는 외재적인 상제의 명령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비이성적 권위에 맹종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세계를 구원할 수 있고(인도주의), 또 자아완성(개체인격의 완성과 사명감)이 가능하다 - 93
이론적인 측면에서 해결하기 힘든 철학적 과제를 토론하고 논쟁하려는 것에 초점을 두지 않으며…중요한 것은 현실생활 속에서 어떻게 그것을 적절하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 - 94
이런 모든 것은 종교적 열광이나 신비적 교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성을 실천으로 이끌어가는 길잡이로 삼아 감정과 욕망, 의지를 조절하고 규제하기만 하면 될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이나 사변이 아니라 행동 자체이다. - 95
일상적인 인간사 속에서 감정과 욕망을 적절하게 만족시키면서 평형을 잘 유지하여 반이성적인 열광과 맹목적인 복종을 피하는 이런 경향들 - 97
인학 구조의 원형인 실천이성…현실세계를 강조하고 실용과의 연관성에 지나치게 치우친 나머지 과학적인 추상적 사변을 상대적으로 무시하거나 경시하고, 심지어 반대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중국의 고대 과학은 오랫동안 경험론의 수준에만 머물러 있었고, 이론의 깊이 있는 발전이나 순수사변적인 관심 또는 애호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추상적 사변이론의 발전 없이는 현대과학의 충분한 발전을 있을 수 없는 것 - 106
동시에 실천이성은 감정이 드러내는 표현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극기, 인도引道와 자기조절의 방침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로써 정情을 조절하는 것과 ‘감정에서 생겨나지만 예의에 부합해야한다’는 것들은 바로 생활과 예술 속의 정감이 항상 자아억압 상태 속에 놓이도록 하여 그것을 통쾌하게 표현해내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
무조건 참아야만 하는 것을 장점으로 여기는 장공백인과 같은 태도 등은 일종의 노예적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 107
공자는 ‘예’를 ‘인’으로 해석하고, 아울러 이런 외재적인 예의를 문화심리 구조로 바꾸어놓았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을 인간이라는 같은 부류라는 자각 또는 자아의식으로 만들어 놓아서 사람들이 개체로서의 인간의 위치와 가치, 의의를 의식하게 하고, 다른 사람과의 일상적인 교류, 즉 세속의 현실생활 가운데 존재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현실생활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공동체 안에서 사회이상을 실현하고, 개체로서의 인격이 완성되며, 마음의 만족과 위안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 - 110
맹자는 도덕적 자율을 강조하기 때문에 개체의 인격가치와 개체가 떠맡은 도덕적인 책임과 역사적 사명을 극도로 부각시키고 있다.
…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종교적인 헌신이 아니라, 자아의 주체적인 선택이다. -128
맹자가 주장하는 이러한 도덕적 자율을 최고의 기준으로 삼는 독립적인 개체로서의 인격 - 130
위의 맹자의 발언을 통해 보면 실제로 당시의 사회가 이미 씨족의 전통적인 예의 제도에서 자유민을 해방시켜 자유민이 독립적인 지위를 얻고 있다는 객관적인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떠한 사상이든 모두 현실적, 사회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맹자는 이러한 현실적 상황을 개체의 숭고한 도덕과 품격의 수립이라는 단계로 끌어올려 사상사에서 하나의 위대한 창조적 체계를 이루고 있는데, 이것이 후대에 미친 영향은 엄청나다. - 131
이것은 외재적으로 나타나는 표면적 현상에 의해서 미혹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
여러 나무가 움직이는 것은 적이 오는 것이다…새가 날아오르는 것은 매복한 것이요, 짐승이 놀라는 것은 복병이 있음을 말한다.
이것은 어떤 경험적인 현상으로부터 교전에 이롭거나 해로운 것을 발견해내는 데 있어서 관건이 된다. 그러므로 그가 중시하는 것은 현상의 나열이 아니라, 어떤 현상을 신속하게 추리하여 관련되는 본질을 찾아내는 것이다.
…
이것은 현상과 본질 사이의 차이와 모순에 주의하는 것이다.
…
또한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 고대의 병가들이 전쟁중에 취한 사유 방식은 단순한 경험적 귀납이나 관념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명확한 주체활동과 이해를 목적으로 삼아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관찰과, 현실을 빠르게 파악하는 바탕 위에서 다른 많은 부차적 요소들을 가능한 한 빨리 제거해버리고 잡다한 세부적인 내용들을 피하여 사물의 핵심을 분명하고 집중적으로, 신속하고 분명하게 발견하고 파악하려는 것 - 184
병가의 이런 변증법적 사유는 주체가 자신이 처해 있는 생사존망과 자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절실한 이해라는 실체의 투쟁 가운데 획득되고 요구되는 인식방식이다.
자연현상, 예를 들면 ‘지형’ 역시 전쟁의 이해(지리를 말함)라는 각도에서 착안된 것이지만, 위에서 말한 일체의 관찰, 이해, 분석, 평가, 고려, 결정 등은 모두 주체(아군)의 행위 속에서 진행된 것들이다. 이 때문에 객체는 여기서 정관적靜觀的인 인식대상이 아니라, 주체와 서로 관계가 밀접하다. 즉, 주체의 공리적 실용을 목적으로 파악할 때 객체는 주체와 이해, 행동이 서로 분리되는, 항상 안정된 대상으로 관찰되고 처리되는 것이 아니다.
이로부터 변증법은 대립항 모순 쌍방의 상호의존과 상호침투를 중요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또한 대립항 모순 사이의 줄어들고 늘어면서 서로 전환하는 관계와 어떻게 그것들을 주동적으로 운용할 것인가에 더욱 관심을 둔다.
…
적의 힘이 실하면 준비하고, 적이 강하면 피하고, 적을 성나게 하여 어지럽게 만든다. 비굴하게 행동하여 적을 교만하게 만들고, 편안하게 있으면서 수고롭게 만들고, 친하면 이간시키고, 준비하지 않을 때 공격하고, 생각하지 않을 때 친다.
전체적으로, 여러 가지 모순을 단순히 묘사하거나 발견하고 이해하여 사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의 활동 속에서 모순을 이용하고 전개한다. 구체적 조건과 정황에 따라서 신축성 있게 주체의 활동을 결정하고 변화시켜, 기존에 이미 정해지거나 원래 있던 인식구조에 국한되거나 구속 또는 속박되지 않는다. - 187
순자는 허일이정虛壹而靜을 통하여, ‘심’의 대청명大淸明에 도달하여 대상을 인식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
순자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살펴볼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허일이정’이라고 말한다. 허의 의미는 주관적인 편견이나 선입견 또는 주관적인 감정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하고, 일은 사물이나 상태를 집중하여 보는 것을 말하고, 정은 정화갛게 보기 위해서 마음을 정지시키는 것을 말한다. 즉, 이런 마음의 허심, 집중, 정지를 통하여 대청명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 253
한편으로는 모든 실제적이지 못한 추상적 사변을 배척하고, 인식의 경험성과 실용성을 강조한다. - 255
순자 철학은 이러한 구체적 방식을 통하여 공자 인학의 실용이성을 발전시켰다. 이런 이성은 여전히 자연에 대한 실증적 과학탐구의 의미보다는 일체의 모든 초경험적 미신이나 거짓에 반대하고 자연에 대한 상식적인 관점을 찾아내려 하는 데 있다.
천도의 운행에는 불변의 법칙이 있는데, 이것은 요 임금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걸 임금 때문에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 259
그것은 세계관, 역사관이면서 동시에 인생관이다. 세계관과 인생관이 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 바로 중국 철학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이다. - 264
그것의 기본특징은 유학의 출발점인 ‘수신’에 세계관적인 형이상학적 기초를 부여하여 ‘하늘이 명한 것을 일러 성性이라 하고, 이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 하고, 도를 따르는 것을 교敎라고 한다’는 핵심적 내용을 제기하고 있다.
이로부터 <중용>은…인성이 하늘로부터 부여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인간이 가진 본성은 보편적, 필연적으로 선험적인 선善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선한 본성을 펼치려고 노력하고 실현해야 할 것(진성盡性, 성기成己)을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도’이며. 힘써 수양하여 그것을 자각하고 의식하는 것이 바로 ‘교’이다. - 276
동중서와 그의 추종자들은 어떤 자연현상, 예를 들면 일식, 지진, 수재, 가뭄, 동식물의 이상현상(가령 목木에 변화가 생기고, 봄에 나무가 시들고 가을에 나무가 자라는 경우) 등을 군주에 대한 하늘의 경고로 해석했는데, 이것은 후세에도 거의 불변하는 법칙이 되었다. 동중서가 이러한 체계들을 만들어낸 것은, 주로 그것을 통해서 군주의 전제권력과 사회의 통치질서를 확고히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
동중서가 자연적 사물을 도덕화하고, 자연으로서의 천에 인격(의지나 명령, 감정)을 부여한 것은 일종의 신학적 관념론이다. 그러나 이 신학적 관념론의 기본정신은 사회질서(곧 왕조의 통치)와 자연법칙이 서로 연계되어 조화롭고 안정된 전체질서를 만드는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 - 311
동중서의 입장에서 말하면, 천과 인간이 서로 교통, 감응하고 화합, 통일함으로써 전체 구조의 균형과 안전성,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도’이다. 이 ‘도’는 천도이면서 동시에 인도이기도 하며, 자연사물의 운행법칙이면서 또한 인간세상(사회)의 통치질서이기도 하다. - 315
이 체계자체는 최고의 권위와 신념이 될 만한 근거를 지니고 있는데, 그것도 바로 ‘천도’ ‘천의’ ‘천’이다. 이에 근거하여 천자는 ‘천’으로부터 ‘명’을 받으며 황권은 이미 신이 부여했다. - 356
이 때문에 개체적 존재의 의의는 자신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신과 교통하는 것에 있는 것도 아니며, 육체적 정신적 향락을 누리는 것에도, 내세나 제도(濟度:현실의 고해에 있는 중생을 피안으로 인도함)하는 것에 있는 것도 아니다. 개체적 존재의 의의는 바로 이 현세적 삶 속에, 보통의 생활 속에, ‘날마다 행하는 일상적인 윤리’ 속에, ‘너-나’의 관계 속에 있다. - 357
송명이학의 경우는 공맹의 전통을 이어받아 인간 본성의 선함을 강조하여 “네가 편안하면 그렇게 하라”(공자의 말), “측은한 마음은 사람이면 모두 갖고 있다”(맹자의 말)는 심리학과 윤리학이 서로 용해된 기본원칙을 관철하고 있다. - 463
송명이학은 이 문제를 한쪽으로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발전시켜 ‘내성’으로 하여금 ‘외왕’에서 벗어나게 하고, 심지어 벗어나서 독립적인 가치와 의미를 가지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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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 이후 내(內:즉 내성)는 시간이 갈수록 지배와 주재의 위치에 있었고, 모든 문제의 발생과 근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유일한 이론적 내용이 되기도 했다….반드시 먼저 ‘정심정의’한 후에 치평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 520
이런 ‘내성’의 학은 보통 사람의 경우에서는 분명하게 어떤 준종교적인 수양과 체험이나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 되어서 이를 통하여 내재적인 와넝과 초월로 향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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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 이후의 명청 시대에 이르면 ‘평상시에 손은 걷어두고 심성만을 말하다가 위기에 처하여 죽음으로 군주에게 보답한다’는 것이 이학자의 전형적인 태도와 이학의 전형적인 결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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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 이후의 도덕적 요구는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여 행정의 재능이나 관록이 어떠한가에 대해서는 조금 묻거나 심지어 아예 묻지 않고, 대부분은 충성할 수 있는가? 효도할 수 있는가? 청렴하고 공평한가? 등등의 도덕적 품성을 통하여 관리를 뽑거나… -520
이학이 순수한 철학적 사변을 발전시키고 도덕적 자각의 주체성을 배양했다는 점에서는 매우 큰 공헌을 했지만, 현실사회의 발전과 정치제도의 개혁이라는 점에서는 보수 또는 반동적 작용을 한 것은 분명하다. - 538
황종회에게 군주의 권력이 지나치게 강하고 황제가 제멋대로 나쁜 짓을 하여 ‘천하를 잃어버리는’ 것을 변혁하는 방법은 이미 이정, 주자, 왕양명 등이 주로 강조하던 ‘정인심(正人心:마음을 바로잡음)과 격군심지비(格君心之非:군주의 마음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음) 등의 관점을 버리고, 현실제도를 세우는 방식을 통하여 군주를 바로잡는 것을 보장받기를 희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545
그들의 심성이나 철리는 현실적인 일들과는 거의 유리되어 있는 것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하는 어떠한 실천도 할 수 없었다. - 547
중국 철학에서 악惡이 중요한 근본적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죄와 고통도 마찬가지로 그러하다. 중국 철학에서 천도 자체는 ‘낳고 낳는(生生) 것으로 선과 악은 다만 그것을 벗어난 것이다. 따라서 악은 파생적이고 종속적인 것이다. 인간의 현실적 생존과 현실세계 속에서의 생활은 선이지 결코 악이나 죄가 아니다. 도가 어느 곳에도 있지 않음이 없다(심지어 도는 똥, 오줌에도 있다)는 것은 죄나 악이 의탁할 곳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 철학의 음양은 광명과 암흑, 선과 악, 하나님과 마귀라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 사이의 투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간의 의존, 침투, 보완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591
공자는 ‘삶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라고 하여 죽음의 의미는 바로 삶 속에 있고 오직 삶의 가치를 알아야만 비로소 죽음의 의미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삶과 죽음’의 문제는 모두 인간관계 속에 있으며, 너와 나,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 있다. 이 관계 자체가 바로 본체이고 실재이며 진리이다. ‘새나 짐승과는 함께 무리지어 살 수 없다. 이 사람들이 아니라면 내가 누구와 함께 살겠는가?’라고 함은 자기가 인간이라는 중족에 속함을 자각적으로 인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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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초월적인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존재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초월적 본체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마치 캉유웨이가 세운 공자교를 장타이옌이 공격하면서 말한 ‘국민들이 보통 가지고 있는 성격으로 볼 때 그들이 관심을 기울여 관찰하려는 것은 정치적인 일과 일상생활에 있으며, 힘쓰는 곳은 공업, 상업, 농사일이며, 지금 살아 있는 것들에 극진하게 하는 데 뜻을 두어야 하고 경험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같으며 또한 체體와 용用은 둘이 아니다는 의미의 체용불이와 같다. - 592
중국 철학은 유가, 묵가, 노장뿐만 아니라 불교의 선종까지도 모두 감성적인 심리와 자연적 생명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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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은 ‘물을 긷고 장작을 패는’ 것을 말하며, 민간의 속담에 ‘푸른 산이 남아 있는 한 땔감이 없음을 걱정하지 않는다’ 등등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생명, 생활, 인생, 감성, 세계에 대한 긍정과 집착을 보여준다.
…
이 때문에 욕망에 따라 제멋대로 방종하는 것에 반대하고 욕망을 소멸시키려는 것에도 반대하며, 현실적인 세속생활 안에서 정신적인 평정과 행복, 곧 ‘중용’을 얻으려는 것이 기본요점이 된다. 여기에는 파우스트 식의 무한추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유한에서 뮤한을 찾으려고 한다. 또 여기에는 도스토예프스키 식의 고통스런 초월도 없고, 인생의 쾌락에서 초월을 구하려고 한다.
…
종교가 아닌 심미적 경계가 중국 철학의 최고 목표가 되었으며, 심미는 이성을 축적하고 있는 감서응로 이것이 바로 중국 철학의 특징이다. - 593
앞서 이미 여러 번 말한 것처럼 이런 지혜는 사유방식과 지적 구조에서 표현되며, 전체적이고 모호한 직관적 파악, 깨달음, 체험을 더욱더 중요시하고 분석적인 지적 논리의 명석판명함을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말하면 이런 지혜는 심미형審美形에 속한다. - 595
<논어> 첫 구절은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로 시작한다. 공자는 ‘발분하여 밥 먹는 것도 잊고, 즐거워하여 근심을 잊어 늙음이 장차 오려 함도 알지 못할 따름이다’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베개를 하고 누워 있으면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다’고 재차 반복하여 강조한다.
이런 정신은 유가의 교의일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이미 중국인의 보편의식 또는 잠재의식을 이루어 일종의 문화심리 구조 또는 민족성격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중국인은 철저한 비관주의자가 되기가 정말 힘들다. 그들은 항상 낙관적으로 미래를 바라보기를 원한다’
이 때문에 즐거움樂은 중국 철학 안에서 실질적으로 본체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 596
루쉰을 비롯한 사람들이 도스토예프스키를 끝내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
줄기차게 전통을 비판한 그는 중국 민족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데 필요한 낙관정신을 대표하는 듯하다. 즉 ‘날로 새로운 것을 일러 성덕이라고 한다’ ‘나날이 새로워지고 또 날로 새로워진다’이다.
지금의 문제는 이른바 낙관과 개척을 천박한 진화론이나 결정론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루쉰처럼 그렇게 왜래문화의 영향을 흡수하는 속에서 생장하여 지닐 수밖에 없는 깊은 역사적 비애감, 인류의 운명에 대해 느끼는 감정 같은 것이어야 비로소 진정으로 현대적 형태의, 거대하고 깊이 있으면서 저항하기 힘든 낙관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 - 597
'사랑.평화.함께 살기 > 삶.사랑.평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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