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년까지 나라의 여러 제후 가운데 가장 큰 땅을 소유한 대지주인 프로이센 왕은 개혁자들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귀족들 가운데 1인자로 머물러 있었다. 그러므로 인종사상은 귀족계급의 밖에서, 독일어권 민족들의 통일을 원하기 때문에 공통의 기원을 주장하던 특정한 민족주의자들의 무기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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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의 기원이 공통의 언어에 의해 규정되는 한 인종사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1814년 이후에야 비로소 이런 공통의 기원이 종종 ‘혈연관계’, 가족의 유대나 종족의 통일이라는 용어 또는 순수한 혈통과 같은 용어로 서술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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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국민의 신분으로 끌어올리는데 실패함으로써, 즉 공통의 역사적 기억이 없고 미래의 공동 운명에 대해 모두가 냉담한 가운데 자연주의적 호소가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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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종은 독립적이고 완전한 전체”라는 유기적 역사론을 고안한 사람들은 정치적 국민의 대체물로서 민족적 단일성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정의를 필요로 했던 사람들이다. - 341
노발리스는 “평범한 것에 고상한 의미를 부여하고 일상적인 것에 신비스러운 모습을 입히며, 잘 알려진 것에 미지의 위엄을 불어넣기를” 원하면서 “세계는 낭만적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낭만화된 대상 가운데 하나가 국민이었다. - 344
-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1>, 한길사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에 보면 조선시대 국가와 관료들이 농민들을 어떻게 수탈하고 괴롭혔는지가 잘 나옵니다.
그 조선의 양반이나 관료들이 농민이나 노비들을 보면서 '우리는 같은 민족' '우리는 같은 국민'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요
'우리'라는 말 자체를 어이 없어 하진 않았을까요.
'우리'가 아니라 너와 나이며, 너와 나는 근본이 다르다고 여기지 않았을까요.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라는 영화가 있지요.
거기에 보면 왕과 광대가 함께 나옵니다.
정말 그들은 '우리'가 될 수 있을까요
양반은 양반의 역사를, 노비는 노비의 역사를 지니고 있었고
그들은 스스로 각자 다른 질서와 운명의 세계에 산다고 생각하진 않았을까요.
같은 민족이나 같은 인종, 같은 국민이라는 의식이나 사상은
실제로 그런 면이 있기도 하고
또한 과장되거나 있지도 않은 것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요.
누구는 진흙탕을 뒹굴며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죽여야 하는 전쟁 속에 있는데
누구는 근사한 차를 타고 놀러나 다니고 따뜻한 집에서 평온한 인생을 즐기고 있다면
그들은 과연 같은 민족이고 같은 인종인 걸까요
천황 폐하 만세와 일본의 승리를 외치며
비행기를 몰아 미국 군함에 들이받으며 죽어간 일본 군인들이 있지요
그들이 만세를 외쳤던 천황은 무사히 잘 살아남았고
종족 번식에도 성공해서 대대손손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구요
흑인에 비해 '우월'한 인종이라고 했는데
왜 같은 백인인 트럼프와 <모던 타임즈> 속 노동자는
이렇게도 다른 삶을 사는 걸까요
흑인에 비해 우월하지만
가난한 백인 노동자의 역사와 운명은
트럼프와 같은 인간과는 전혀 딴판인 건 아닐까요
같은 인종 같은 백인이라고 하는데
백인 남성에게 살해당하는
백인 여성은 왜 이렇게 많은 걸까요
가난한 이들은 하루 하루 생활이 힘겨워
오랜 시간을 고통 속에 보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
지배자들은 하루 하루 거창한 술판을 벌이며
흥에 겨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데도
이들은 같은 민족 같은 국민일까요
이들은 정말 같은 역사와
같은 운명을 갖고 있는 걸까요
민족이나 인종, 국민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거나 아니거나
그것이 어떤 것이고 어떤 의미인지는
구체적인 한 인간 생명으로 살아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바라보면 되는 것
한 사람 한 사람이 고통스럽고 비참하다면
인종의 승리나 민족의 영광이나 국민의 발전은
그저 머리 속에서만 존재하는 헛된 환상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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