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잘 읽었다거나 그냥 좋았다고 하기에는 모자란
너무 너무 훌륭하고 깊이 있는 책입니다
세상에 이런 책이 몇 권이나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한나 아렌트의 노력에 감사드리고
그녀의 사유에 또 한번 감사드립니다.
저 같은 사람은 27번쯤 다시 태어난다 해도 하지 못할 일이고 쓰지 못할 글입니다.
별점을 3천개 줘도 모자랄 정말 정말 훌륭한 책입니다. ^.^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1>
우리의 미래가 이보다 더 예측 불가능한 적은 없었으며, ‘상식과 자기 이익의 규칙을 따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는 정치 세력들에게-다른 세기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순전한 광기처럼 보이는 세력들에게-이보다 더 의존한 적은 결코 없었다. 인류가 마치 인간의 전능을 믿는 사람들(대중을 조직하는 방법을 안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과 무기력이 삶의 주요 경험인 사람들로 양분된 것 같았다. - 33
전체주의 정부가 그 공개적인 범죄 행위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 없이 매우 불안한 점이다. 그러므로 학자나 정치인이 종종 이 사실을 인정하기를 거부해도 그리 놀랍지 않다.
전자는 선전과 세뇌 공작의 마술을 믿는 것이고, 후자는 아데나워가 반복하여 그랬듯이 단순히 이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SS 첩보부가 만든 전시(1939-44년)의 독일 여론에 관한 비밀 보고서가 최근에 출판되었는데, 그것은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주민들이 이른바 모든 기밀 사항-폴란드 유대인 학살, 러시아에 대한 공격 준비 등-을 무척 잘 알고 있었고 또 선전의 희생자들이 어느 정도까지 독립적인 견해를 형성할 수 있는지를 이 보고서는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요점은 그런 기밀 사항들이 히틀러 정권에 대한 일반의 지지를 조금도 약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체주의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무지나 세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 57
항상 의혹은 가졌지만 지금에야 정확하게 알게 된 사실은 정권이 결코 ‘단일’ 조직을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 “겹치고 중복되는 유사한 기능들을 주변에 의식적을 세웠으며” 이 괴상한 무정형 구조는 우리가 나치 독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른바 ‘개인 숭배’와 같은 동일한 지도자 원칙에 의해 통합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 특수한 통치의 집행부는 당이 아니라 경찰이었고, 경찰의 “작전 활동은 당계통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 70
정권이 죽인 수백만의 무고한 사람들, 볼셰비키 용어로 “객관적인 적”은 자신들이 “죄 없는 범죄자”임을 알고 있었다. 정권의 옛 적-정부 관료의 암살자, 방화범과 강도-과는 구분되었던 이 새 범주의 사람들은 나치 희생자들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수동적으로”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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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의 흥미로운 OGPU 보고서는 이 새로운 “완벽한 수동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무작위적인 테러가 산출한 끔찍한 무관심이다.
보고서는 정권의 적들을 체포하던 과거의 방식과 현재의 대량 체포의 차이를 언급하는데, 과거에는 “한 사람을 두 명의 민병대원이 체포하여 데리고 갔다면” 이제는 “한 명의 민병대원이 한 집단의 사람들을 체포해 가지만 이들은 순순히 따라가고 아무도 도망가지 않았다” - 71
토크빌에 따르면 프랑스 폭민은 권력을 상실할 무렵의 귀족을 어느 때보다도 미워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귀족들이 하루아침에 권력을 상실했지만 재산은 그 정도로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귀족계급이 막강한 사법권을 장악하고 있는 한, 그들은 용인될 뿐만 아니라 존경받기까지 했다. 그런데 귀족이 특권, 특히 여러 특권 중 착취와 억압의 특권을 상실했을 때, 폭민은 그들이 국가 통치의 아무런 실질적 기능을 담당하지 못하는 기생충과 같다고 느꼈다. 다시 말해서 억압과 착취 자체가 증오의 주된 원인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어떤 기능을 수반하지 못하는 부는 그것을 묵인해주어야 할 이유를 어느 누구도 납득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참기 힘든 것이었다.
반유대주의 역시 유대인이 공적 기능과 영향력을 잃고 재산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을 때 절정에 달했다. - 87
무력하거나 권력을 상실한 집단을 박해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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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권력이 모종의 기능을 하며 일반적으로 유용하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아는 까닭에 실질적 권력에 복종하거나 견디는 한편 - 88
제1차 세계대전 후에 널리 퍼졌던 농담은 대다수 자유주의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 설명을 가장 잘 예증하는 동시에 가장 잘 반박한다.
어떤 반유대주의자가 전쟁을 유대인이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맞습니다. 유대인과 자전거 타는 사람이 일으켰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자전거 타는 사람은 왜요?”라고 이 사람이 물었다.
“그러면 유대인은 왜요?”라는 물음이 되돌아왔다. - 89
근대의 독재정치가 과거의 다른 모든 전제정치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테러가 예전처럼 정적 제거나 위협의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고 이제 완전히 순종적인 인민 대중을 지배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테러는 아무런 예고 없이 발생하며, 테러범의 관점에서도 희생자는 무고하다. 이는 나치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즉 전면적 테러가 유대인에게, 다시 말해 개별적 행위와 무관하게 공동의 특징을 가진 어떤 사람들에게 가해졌던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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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맥락에서 단지 희생자 선택의 자의성을 다루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희생자가 객관적으로 무고하며 그들이 하거나 하지 않았던 일과는 무관하게 제물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 90
전체주의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테러가 특정 이데올로기의 실행 수단으로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테러를 안전하게 자행할 수 있으려면 이 이데올로기는 반드시 다수를, 심지어 대다수를 지지자로 확보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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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조가 믿어진다는 사실은 그것이 날조라는 정황보다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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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분출은 영원한 문제의 자연스러운 결과이기 때문에 특별한 설명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직업적인 반유대주의자가 이 교리를 선택한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것이 모든 공포에 대한 최선의 알리바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인류가 2000년 넘게 유대인 살해를 주장해온 것이 사실이라면, 유대인 살해는 정상적일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일이며, 논증할 필요 없이 정당화될 수 있다. - 91
어쨌든 이 교리들이 유대인 증오의 이유로 제시했던 설명, 즉 유대인은 무슨 일을 했든 또는 하지 않았든 상관없이, 그리고 그들의 악덕이나 미덕과는 관계없이 미움을 받았다는 설명을 마치 그대로 따르는 것처럼 유대인은 집단학살 수용소에서 살해당했다. 오로지 명령에 복종하고 자신들의 냉정한 효율성에 자뷤을 가졌던 살인자들 - 94
유대인 말살은 여론의 지지를 위한 투쟁에서 반유대주의가 경쟁하던 모든 주의에 승리를 거둠으로써 이미 그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95
유대인이 정치 이데올로기의 초점으로 만들 만큼 충분히 중요한가 하는 질문에도 전혀 구애받지 않고 유대인을 ‘역사를 푸는 열쇠’이며 모든 악의 일차적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지도자 - 96
법 앞에서의 평등에 기초한 정치 체제와 계급 제도의 불평등에 기반을 둔 사회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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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 불가능한 조건의 불평등, 즉 대륙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때까지 계급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이 개인에게 주어졌고 더구나 거의 출생에 의해 보장되었다는 사실은 결코 정치적 평등과 병존할 수 없었다. - 99
반유대주의자들이 항상 그들 탓으로 돌리곤 하는 역할, 즉 정부를 세우거나 엎을 수 있는 비밀스러운 세계 권력이라는 저 날조된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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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주장보다 진리와 거리가 먼 주장은 없을 것이다. 권력에 대한 지식도 관심도 없던 유대인은 자기방어라는 사소한 목적을 위해 가벼운 압력을 가하는 외에 권력을 사용한다는 생각은 결코 해본 적이 없었다. - 117
더욱이 그가 반유대주의적 선동의 유용함을 발견한 계기는 실천적인 또는 이론적인 고려가 아니라 우연이었다. 즉 선동가의 재능을 타고난 그는 반유대주의적 선동이 텅 빈 강당을 채우는 데 극히 유용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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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열광적인 청중들은 중하류층 사람들, 조그만 상점 주인과 상인, 수공업자와 유행에 뒤떨어진 직공들이었다. - 135
이런 최초의 반유대주의 정당은 군소 정당이었지만, 곧 다른 정당과의 차별화에 성공한다. 그들은 자신이 정당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모든 정당을 넘어서는’ 정당이라는 독창적인 주장을 한다. 계급과 정당으로 분열된 국민국가에서 이제까지는 국가와 정부만이 모든 계급과 정당 위에 서 있다고 또 전체 민족을 대표한다고 줒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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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당 위에’ 서겠다는 반유대주의 정당의 주장은, 국가 전체의 대표가 되고 권력을 장악하며 국가 기구를 소유하고 구각를 대신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하게 천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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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국가 체제의 출현할 때는 어떤 집단이 단독으로 독점적 정치 권력을 휘두를 수 없기 때문에 사회적 경제적 요인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는 실질적인 정치 규칙의 역할을 정부가 맡게 된다.
사회 조건의 급진적 변화를 위해 투쟁했던 좌파들의 혁명 운동도 이 최고의 정치권력을 직접 건드리지는 못했다. 그들은 단지 부르주아 계급의 권력과 국가에 대한 영향력에 도전했던 것이고 - 140
종족 민족주의와 정복에 대한 과도한 열정은 국민국가와 그 주권의 좁고 아담한 경계를 폭파할 수 있는 중요한 힘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 144
여론의 지지를 받기 위해 좀더 훌륭한 다른 이데올로기와 경쟁하는 이데올로기적 힘으로서 반유대주의 - 146
주요 정치인과 정치 평론가는 유대인이 해방된 후 어느 때보다도 유대인 문제와 덜 씨름하게 되었고, 반유대주의가 공개적인 정치 무대에서 거의 완전히 사라지는 동안, 유대인은 그 자체 사교계의 상징이 되었고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모든 사람에게는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19세기 동안 반유대주의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던 특수 조건이 없어짐으로써 그 토대를 상실한 반유대주의는 사기꾼과 미친 사람에 의해 다듬어져 반쪽 진리와 야만스러운 미신의 무시무시한 혼합물로 변한다. 그것은 1914년 이후 유럽에서 좌절과 분노로 가득 찬 모든 사람의 이데올로기로 나타났다. - 163
이런 고립과 독립은 종종 그들에게 권력과 자부심의 감정을 주었는데, 18세기 초의 다음 일화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점잖고 학식 많은 의사가 유대인은 군주도 배출하지 못하고 정부에 참여도 못하면서 자부심이 강하다고 부드럽게 나무라자…어떤 유대인이 거만한 태도로 우리는 군주는 아니지만 그들을 통치하고 있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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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민족에게 절대적 군주로 군림하면서 그들은 스스로를 동료들 중의 제1인자로 느꼈던 것이다. 그들은 주인이 내린 작위보다도 ‘모든 유대 민족의 특권계급에 속하는 랍비’라는 데에서 또는 ‘성지의 군주’로서 더 큰 자부심을 느꼈다. 18세기 중반까지 그들은 “다른 어떤 종류의 신하보다 모든 영역에서 가치가 있다”고 말한 네덜란드계 유대인의 의견에 동의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나 그 이후에나 ‘배운 기독교인’의 다음 대답을 어느 누구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소수를 위한 행복입니다. 전체 민족으로 볼 때는 가는 곳마다 쫓겨나고 정부도 없이 이민족의 지배를 받으며, 권력도 없고 위신도 없으며 이방인으로 세계를 유랑하고 있습니다.” - 179
자신을 다른 인간과 구분하려는 디즈레일리의 야망과 귀족 사회에 대한 동경 - 194
어떤 정치적 영예도 특권 계급과의 친밀한 교제가 안겨주는 승리감을 대체할 수 없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분명하다. - 203
유대인에 관한 한, 유대교라는 ‘범죄’가 상류 사회에서 유행하는 유대인 기질이라는 ‘악덕’으로 전환한 것은 극히 위험했다. 유대인은 유대교를 피해 개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 기질로부터는 도피가 불가능했다.
더구나 범죄는 처벌받으면 되지만, 악덕은 박멸의 길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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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식의 반유대주의는 정치적 정황과 이런 사회적 조건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종족 개념은 더 직접적인 정치적 목적과 기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가장 악의적인 측면에서 유대인 문제에 적용되었고 또 성공을 거둔 원인은 여론의 동의를 끌어낸 사회 현상과 확신이었다.
유대인을 사건의 진원지로 몰아넣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힘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정치적이다. 그러나 반유대주의에 대한 사회의 반응과 유대인 문제에 대한 개인의 심리적 반향은 특수한 잔인성, 즉 유대인으로 태어난 모든 개인에게 가해진 조직적이고 계산된 폭행과 연관이 있었다. 잔인성과 폭력성은 드레퓌스 사건의 반유대주의가 이미 보여준 특징이기도 하다. - 219
정치사나 경제사에서 설명하지 못하고 사건의 표면 아래 감추어진 사회적 요소를 역사가가 인식했던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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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반유대주의는 정치적 동기의 사회적 요소의 불융성 혼합물의 형태로 나타난다.
좀더 광범위한 정치적 측면에서 볼 때, 드레퓌스 사건은 20세기에 속하지만, 유대인 대위인 알프레스 드레퓌스가 겪었던 여러 재판은 완전히 19세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당시 사람들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법적 절차를 지켜보았는데, 그것은 모든 소송이 그 세기의 가장 위대한 업적인 법의 완벽한 공정성을 검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오심이 그와 같은 정치적 격론을 유발하고, 싸움질과 주먹질은 물론 끝없이 이어지는 재판과 이의 재심을 부추겼다는 것이 바로 이 시기의 특징이다. - 224
드레퓌스 사건이 정치적 함의를 지니고 생존할 수 있던 것은 이 사건의 두 요소가 지닌 의미가 20세기에 커졌기 때문이다. 첫째 요소는 유대인에 대한 증오였고, 둘째 요소는 공화정 자체, 즉 의회와 국가 기구에 대한 의혹이다. - 227
스스로를 애국자라 불렀던 반유대주의자는 자기 민족은 완전 무결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민족들은 맹렬하게 비난하는 것이 그 본질인 새로운 민족감정을 소개했다. - 237
고위 장교계급은 여전히 혁명 전쟁 동안 망명자로서 연합군 편에서 조국인 프랑스에 대항하여 싸웠던 구 귀족 가문의 자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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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의회의 분파에는 누구나 가입할 수 있지만 구성원의 이동이 심해 충성심이 약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군대는 신분 사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엄격한 배타성에 사로잡혀 있었다. 장교들을 단결시켜 공화제와 모든 민주 세력에 대항하는 반동의 보루를 구축하게 만든 것은, 군인 생활이나 직업에 대한 명예도 아니고 군인정신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신분정신이었다.
국가가 군대를 민주화하고 시민권에 예속시키는 일을 포기함으로써 중대한 결과가 나타났다. 군대는 마치 국가의 외부 집단처럼 되었고, 그 충성이 어느 방향으로 전환될지 아무도 예견할 수 없는 그런 무장 권력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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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분석결과에 따르면 그들의 악명 높은 왕정복고주의도 공화국 내에서 스스로를 하나의 독립적인 이해 집단으로 정립하기 위한, 즉 “공화국과는 상관없이, 공화국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공화국에 대항해서까지”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구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238
많은 사람에게 교회의 엄격한 위계질서는 혼돈으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실제 성직자가 누리고 있던 신망은 어떤 종교적 부흥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교회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는 이른바 ‘지적인’ 가톨릭 교파, 즉 ‘신앙이 없는 가톨릭’의 대표자들이었다. 차후 왕정주의와 극단적 민족주의 운동 전체를 주도해가는 이 가톨릭 교도는 교회의 내세적 토대에 대한 믿음 없이 권위주의적 제도에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할 것을 요구했다. - 241
선동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으며 큰 소리로 또는 교활하게 이야기함으로써 사람을 설득하여 어떤 일이라도 시킬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일반적 오류 - 249
폭민은 일차적으로 각 계급의 낙오자들을 대표하는 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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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모든 혁명에서 진정한 대의제를 위해 투쟁했다면, 폭민은 항상 ‘강한 자’ ‘위대한 지도자’를 소리 높여 외친다. 폭민은 자신을 소외시킨 사회를 증오하며, 자신을 대변해주지 않는 의회 역시 증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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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민이 유대인 가게를 습격하고 거리에서 유대인을 공격했을 때, 상류 사회는 격렬한 폭력을 아이들의 무해한 놀이쯤으로 생각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런 측면에서 당시 문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앙리 기념비’와 거기서 유대인 문제에 대해 제시되었던 다양한 해결책이다. 즉 유대인은 그리스 신화의 마르시아스처럼 갈기갈기 찢어 죽여야 한다, 라이나흐는 끓는 물에 산 채로 집어 넣어야 한다, 유대인은 기름에 튀기거나 바늘로 온몸을 찔러 죽여야 한다, “목까지 할례를 시켜야 한다” 등이었다. 일부 장교들은 이 나라의 10만 유대인을 상대로 신형총을 시험하고 싶어 안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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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한 유대계 역사가는 폭민이 거리를 지배하자 유대인이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서도 이를 “위대한 집단 운동”이라고 은밀한 찬사를 늘어놓았다. 이는 대다수 유대인이 자신을 제거하려는 사회에 얼마나 깊이 뿌리 내리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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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민의 눈에는 유대인이 자신들이 증오하는 모든 것에 대해 구체적 실례였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어쨌든 유대인은 그들이 애호하는 희생물 중 으뜸 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와 정치적 대의제도에서 배제된 폭민은 필연적으로 의회 밖의 행동에 의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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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학자 에밀 뒤클로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따. “전 국민 앞에서 공연되고 언론이 부채질하여 결국 모든 국민이 배역을 맡게 된 이 드라마에서 우리는 서로를 헐뜯는 고대 비극의 합창과 반대 합창을 본다. 무대는 프랑스이고 관객은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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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가톨릭 배경에다 군에서의 앞날도 창창하여 유대인에 대한 ‘적절한’ 적개심을 가졌지만 아직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은 고급 관리가 참모본부의 정보부서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적지 않은 당혹감이 있었따. 이처럼 직접적 야망과 사회적 파벌에서 완전히 초탈해 있던 사람이 바로 피카르였다. 참모본부는 곧 그의 단순하고 조용하며 정치에 무관심한 정신을 충분히 맛보게 된다. 피카르는 영웅이 아닐뿐더러 순교자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공적 문제에 남들만큼의 관심을 가지며 위기의 순간(남보다 먼저 나서지는 않더라도) 평상시 임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조국을 위해 분연히 일어설 수 있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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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진상을 발견한 직후 피카르는 티니스의 위험한 자리로 추방되었다….그의 명예를 더럽히고 그가 ‘매국노’ 드레퓌스의 공범자라고 비난하는 이상한 편지들이 물밑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는 ‘밀고’하겠다고 위협하는 악당 패거리 취급을 받았다. 오 모든 것이 소용없게 되자, 그는 체포되어 군대에서 쫓겨났고 훈장을 박탈당했다. 이 모든 것을 그는 차분하게 견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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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망소의 접근은 어떤 특정한 오심誤審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 자유, 시민의 미덕 같은 ‘추상적’ 이념에 근거했기 때문에 위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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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퓌스가 체포된 후 클레망소의 캠페인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3년 동안 반유대주의가 입지를 확보했다. 또 반유대주의 언론의 발행 부수도 싸구려 신문과 비교할 정도로 증가했지만, 거리는 조용했다. 단지 폭민이 흥분하여 행동하는 경우는 클레망소가 [오로르]에 기고를 시작할 때,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를 발행했을 때…소수파로 알려진 드레퓌스파가 일격을 날리면 뒤이어 다소 폭력적인 거리 소요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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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5명이 재심을 찬성한다고 선언한 이후 렌 대학의 교수실은 난장판이 되었다. 졸라의 첫 기고문이 발표된 후 왕정파 학생들은 [피가로] 사무실 앞에서 데모를 했고, 그 이후 신문은 동일한 유형의 기고문은 포기했다. 친드레쉬스신문 [라바타유]의 발행인은 거리에서 구타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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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라가 한마디라도 의견을 표명하면, 그의 창문으로 돌들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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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레퓌스파 가운데 가장 현대적인 인물은 아마 쥘 게랭일 것이다. 사업에 실패하자 그는 경찰의 끄나풀로 정치 경력을 쌓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항상 암흑가의 특징을 나타내는 규율과 조직에 대한 예리한 감각을 연마한다. 반유대주의 연맹의 창립자이자 우두머리가 되면서, 이것을 그는 나중에 정치적 채널로 전환할 수 있었다. 상류층은 그에게서 최초의 범죄 영웅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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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에 들뜬 파리의 오합지중에게 ‘유대인의 피로 자유의 나무에 물을 주라’고 격려했던 것도 젊은 레지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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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사태에서 새로운 것은 폭민의 활동이 아니었다…그 당시 새롭고 놀라운 요소…는 폭민의 조직, 그 지도자들이 만끽하던 영웅 숭배였다. - 249 - 257
“가장 막강한 군주에게 저항하고 그들에게 허리를 굽히기를 거부할 사람들은 많지만, 군중에게 저항하고 잘못 인도된 대중 앞에 혼자 일어나서, ‘예’가 요구될 때 감히 ‘아니요’라고 말하기 위해 무기도 없이 팔짱을 낀채 달래기 힘든 그들의 격분과 대면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사람이 졸라였다!” - 260
시온운동은 반유대주의에 대항하여 유대인이 발견할 수 있던 유일한 대답이었고, 자신들을 세계적 사건의 중심에 세웠던 적대감을 심각하게 고려한 유일한 이데올로기였다. - 271
국민국가가 정복자로 등장하면 언제나 피정복 민족의 민족의식과 주권에 대한 열망이 고취되었고 제국을 건설하려는 모든 시도는 좌절되고 말았다. 그래서 프랑스는 알제리를 자국의 한 주로 병합했지만 자국법을 아랍 민족에게 적용할 수는 없었다. 프랑스는 오히려 계속 이슬람법을 존중했고 아랍 시민들에게 ‘인격적 신분’을 인정했다. 이는 법적으로 센 지방과 같은 프랑스의 일부로서 명목상 프랑스 영토이지만 주민은 프랑스 시민 아닌 어처구니없는 잡종을 탄생시켰다. - 281
전제정치는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이 민족의 지배에는 성공할지 모르지만, 자국민의 국가 제도를 파괴해야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 283
이는 어떤 인간이 다른 인간보다 우월하다는 의식, ‘열등한 종’에 대해 ‘우월한 종’이 알시적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우월하다는 새로운 제국주의 의식을 엄청나게 강화했다. - 286
금융업자들이 국가 생산이라는 좁은 틀 안에서 무위와 태만의 저주를 받은 잉여 재산에 자본 수출의 물꼬를 터준 후, 부재 주주들은 엄청나게 증가한 이윤에 상응하는 엄청난 위험 부담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곧 분명해진다. 수수료를 챙기는 금융업자도, 심지어 국가가 지원한다 해도 이 주주들에게 위험을 보장해줄 충분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오로지 국가의 물질 권력만이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돈의 수출에 이어 통치권력도 수출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면서…-294
각국 정부는 사업이 점차 정치적 이슈로 전환되고 비교적 소규모 집단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국가적 이해 자체와 동일시되는 경향이 증가하는 현상을 염려의 눈초리로 관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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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된 돈이 권력의 수출을 자극하는 데 성공할 때에만 소유주의 계획을 성사시킬 수 있었따. 무제한적 권력 축적만이 무제한적 자본 축적을 가져올 수 있었다. - 295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라기보다 부르주아 계급이 정치 지배를 실현하는 첫 단계로 이해해야 한다.
유산계급이 통치하려는 포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재산권을 확실하게 보호해줄 것 같은 국가라면 어떤 유형이든 만족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셀제로 국가는 그들에게 잘 조직된 경찰력일 뿐이었다. 이런 그릇된 조심성이 전체 부르주아 계급을 정치 체제의 권외에 머무르게 했다. 왕정 체제의 백성이나 공화국의 시민이기 이전에 그들은 본질적으로 사적 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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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시대에 사업가는 정치가가 되고 정치인으로서 갈채를 받는 반면, 정치인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그들이 성공한 사업가의 언어로 말하고 ‘대륙적으로 사고할’ 때뿐이다. 이 사적인 관행과 책략은 점차 공무의 운영 규칙과 원칙이 된다. - 297
재산의 무한한 축적은 권력의 무한한 축적에 근거한다는 확고한 이론적 전제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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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축적의 무제한적 과정은 증가하는 재산을 부단히 성장하는 권력으로 보호할 수 있는 ‘무제한적 권력’을 가진 정치 구조를 필요로 한다. - 305
부르주아 계급을 탄생시킨 이른바 자본 축적은 재산과 부의 개념 자체를 변화시켰다. 재산과 부는 이제 축적과 획득의 결과가 아니라 시작으로 간주된다.
부르주아 계급을 소유 계급으로 분류하는 것은 단지 피상적으로 정확할 뿐이다. 왜냐하면 삶을 영원히 부유해지는 과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나 돈을 단순히 소비를 위해 유용한 물건이 아니라 어떤 신성한 것으로 간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속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계급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 308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윤을 추구하려는 새로운 욕망 - 317
마르크스주의자의 관점에서 폭민과 자본의 동맹이라는 새로운 현상은 너무나 부자연스럽고 계급 투쟁의 교리와도 명백하게 배치되기 때문에 제국주의적 시도의 실질적 위험-인류를 주인 인종과 노예 인종으로, 고급 종족과 하급 종족으로, 유색 민족과 백인으로 나누는 것, 이 모든 것은 국민을 폭민의 토대 위에서 통합하려는 시도였다-을 완전히 간과 했다 - 317
유산 계급과 통치 계급은 모든 사람에 경제 이익과 소유에 대한 열정이 국가의 심오한 토대라는 사실을 납득시켰기 때문에, 심지어 비제국주의 정치인조차 공동의 경제 이익이 지평에 나타나면 쉽게 설득당하여 양보했다. - 320
자본주의 조직에서 폭민이 발생하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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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현상 자체를 슬픈 심정으로 다루었던 역사가들이 포착하지 못했던 사실은 폭민이 성장하는 산업 노동자와도 또 더욱 분명하게는 국민 전체와도 동일시 될 수 없으며, 실제로 모든 계급의 폐물들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폭민은 이렇게 구성되었기 때문에 폭민과 그 대표자들이 계급 차이를 폐지한 것처럼 보였고, 또 계급 국가 밖에 있는 그들은 왜곡된 형태 또는 희화화된 형태의 국민이라기보다 국민 자체(나치가 말하듯이 국가 공동체)처럼 보였다. 역사적 염세주의자들은 이 새로운 사회 계층의 본질적인 무책임성을 알았고 또 민주주의가 전제정치로, 그 독재자들이 바뀔 가능성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 324
우리가 홉스의 끝없는 권력 축적 과정에 갇혀 있다는 것이 사실로 입증되었다면, 폭민 조직은 불가피하게 국가를 종족으로 전환하는 형태를 취할 것이다. 왜냐하면 권력 축적과 팽창 과정에서 다른 인간과의 자연적 관계를 모두 상실한 개인들을 통합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끈이 축적 사회의 조건에서는 달리 없기 때문이다. - 327
우리 시대의 중 이데올로기들에 내재하는 엄청난 설득력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설득이란 경험이나 욕망 가운데 어느 하나에 호소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 즉각적인 정치적 욕구에 호소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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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숙한 이데올로기는 이론적 교의가 아니라 정치 무기로서 만들어지고 계승되며 개선되어왔다. - 331
이데올로기의 과학적 측면은 부차적인 것으로서 우선 빈틈없는 논증을 제시하려는 욕구에서 생겨난다. 두 번째 이데올로기의 과학적 측면은, 자신의 연구 결과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고 연구실 밖으로 급히 달려나가 삶과 세계에 대한 자신의 새로운 해석을 대중에게 설교하고자 하는 과학자들도 이데올로기의 설득력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오늘날 그 범주 체계 안에 안종사상이 깊이 침투하지 않는 학문이 하나도 없는 것은 과학적 발견 때문이 아니라 이 ‘과학적’ 설교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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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의사학회는 독일 인종의 ‘과도흔 대변량’과 ‘특이 체취’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독일 스파이를 찾는 데 ‘소변 분석’방법을 이용하라고 제안했다. 독일인의 소변은 다른 인종의 소변이 15퍼센트의 질소를 함유하는 데 반해 20퍼센트를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 331
1809년까지 나라의 여러 제후 가운데 가장 큰 땅을 소유한 대지주인 프로이센 왕은 개혁자들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귀족들 가운데 1인자로 머물러 있었다. 그러므로 인종사상은 귀족계급의 밖에서, 독일어권 민족들의 통일을 원하기 때문에 공통의 기원을 주장하던 특정한 민족주의자들의 무기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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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의 기원이 공통의 언어에 의해 규정되는 한 인종사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1814년 이후에야 비로소 이런 공통의 기원이 종종 ‘혈연관계’, 가족의 유대나 종족의 통일이라는 용어 또는 순수한 혈통과 같은 용어로 서술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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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국민의 신분으로 끌어올리는데 실패함으로써, 즉 공통의 역사적 기억이 없고 미래의 공동 운명에 대해 모두가 냉담한 가운데 자연주의적 호소가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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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종은 독립적이고 완전한 전체”라는 유기적 역사론을 고안한 사람들은 정치적 국민의 대체물로서 민족적 단일성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정의를 필요로 했던 사람들이다. - 341
노발리스는 “평범한 것에 고상한 의미를 부여하고 일상적인 것에 신비스러운 모습을 입히며, 잘 알려진 것에 미지의 위엄을 불어넣기를” 원하면서 “세계는 낭만적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낭만화된 대상 가운데 하나가 국민이었다. - 344
독일에서 인종사상은 구 프로이센 군대가 나폴레옹에게 패배하기 전까지는 발달하지 못했다. 이 개념은 귀족과 그들의 대변인보다는 프로이센의 애국자들과 정치적 낭만주의 덕분에 발생했다. 시민전쟁의 무기이자 국민을 분열시킨 프랑스의 인종사상과는 대조적으로 독일의 인종사상은 외국의 지배에 대항하여 국민을 통합하려는 노력에서 고안되었다. 그 고안자는 국경 너머에서 동맹군을 찾지 않았으며 국민들에게 공통의 기원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기를 원했다. - 340
귀족의 기준으로 혈통의 순수성을 고집한 자는 아담 뮐러였고, 권력자가 권력을 빼앗긴 자를 통치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약자는 강자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자연법으로 기술함으로써 사실의 범위를 넘어서 사람은 할러였다. 물론 귀족들은 자신들의 권력 강탈이 합법적일 뿐 아니라 자연법과도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 347
1853년 아르투르 드 고비노 백작은 <인종 불평등론>을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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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노 이전의 어느 누구도 시대와 장소와 상관없이 모든 문명이 흥하고 망하는 단 하나의 이유, 단 하나의 힘을 발견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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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주의나 어떤 다른 진화이론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이 역사가는 역사학을 자연과학의 계열로 진입시켜 모든 사건의 진행을 설명하는 자연 법칙을 발견했고 모든 정신적 발화나 문화적 현상을 정확한 과학의 힘을 빌려 “우리의 눈이 볼 수 있고 우리의 귀가 들을 수 있으며 우리의 손이 만질 수 있는” 어떤 것으로 환원했다고 자랑했다. - 348
고비노가 정치에서 실제로 찾고자 했던 것은 귀족정치를 대체할 수 있는 ‘엘리트’의 규정과 창출이었다. 군주 대신 그는 ‘군주의 종족’인 아리안족을 제안했다. 그는 아리안족이 민주주의를 통해 나타난 열등한 비아리안족에 의해 침몰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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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리안족을 다른 사람들을 지배할 운명을 가진 자연적인 귀족계급의 구성원으로 규정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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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이데올로기 자체의 수용은 한 개인이 ‘좋은 혈통’을 가졌다는 주장, ‘귀족의 피’가 그의 몸에 흐른다는 주장 그리고 기원의 우월성은 권리의 우월성을 함축한다는 주장의 결정적 증거가 될 것이다. 그래서 백작은 하나의 정치적 사건, 즉 귀족을 몰락에서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결론을 끄집어 낸다-인간종의 몰락과 새로운 선천적 귀족의 형성을 - 352
프랑스가 왕국이든 제국이든 아니면 공화국이든 간에 그 통치는 인간의 본질적 평등에 기초한 까닭에, 여전히 훌륭한 ‘조국’이었기 때문에 또 가장 나쁘게도 프랑스는 당시 흑인조차 시민권을 누리는 유일한 국가였기 때문에 고비노가 프랑스 국민에게 헌신하지 않고 영국 국민에게, 1871년 프랑스의 패배 이후 독일 국민에게 헌신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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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가 엘리트 인종으로 자리 잡으면서 공공연하게 독일인을 포함한 모든 민족을 경멸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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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폴리트 텐조자도 ‘독일 민족’의 천재적 우월성을 확고하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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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과 ‘엘리트’의 특수한 혼합물은 국제적 인텔리켄치아에게 역사의 대운동장에서 가지고 놀 수 있는 새롭고 흥미로운 심리학적 장난감을 마련해주었다. 고비니즘의 루이의 자손은 19세기 후반의 낭만적 영웅, 성자, 천재 및 초인과 가까운 인척이다. 낭만주의의 견해에 내재하는 무책임성은 고비니즘의 인종 혼합으로부터 새로운 자극을 받았다. 왜냐하면 이 혼합은 자아의 깊은 심연으로까지 추적할 수 있는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내적 경험들이 이제 역사적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으며 자아가 역사의 전쟁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인종 불평등론>을 읽은 이후 어떤 갈등이 내 존재의 숨겨진 근원을 자극할 때마다, 나는 내 영혼 안에서 격렬한 전투, 즉 백인, 황인종, 셈족 그리고 아리안족 사이에 전투가 일어나고 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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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노의 견해에 따르면 셈족은 흑인과 섞여 질이 떨어진 백인 잡종 인종이다. - 355
사회적 불평등이 영국 사회의 토대를 이루는 까닭에 ‘인간의 권리’가 문제가 되었을 때 영국 보수주의자들의 심기는 무척이나 불편했다. 19세기 토리당원들에게 널리 유포된 견해에 따르면 불평등은 영국의 민족성에 속했다. - 356
혜택받지 못한 집단은 순전히 폭력을 통해 자신보다 더 낮은 계급을 만들어낼 수 있고, 이런 목적을 위해 혁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배 계급 집단과 단결이 필요하며, 이민족이나 뒤떨어진 민족들이 그런 전술에 최고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아프리카 경험의 완전한 충격을 가장 먼저 깨달은 사람은 카를 페터스와 같은 폭민 지도자들이었다. 페터스는 폭민들도 지배 계급에 속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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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그들은 국민이 인종을 변화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았고 이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음으로써 자신의 국민을 지배 인종의 위치에 밀어넣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405
전설은 언제나 역사를 만드는 데 강력한 역할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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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미래의 운명을 풀 비밀 열쇠를 감춘 듯한 과거에 대한 설명과 해석을 요구한다. 전설은 미래의 무한한 공간을 통과할 때 안전하게 인도할 것을 기약하는, 모든 고대 도시와 제국, 민족의 영적인 토대였다. 전설은 한 번도 사실을 확실하게 말하지 않지만 항상 자신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현실 너머의 진리, 기억 저편의 회상을 제공한다.
역사의 전설적 설명은 사실과 실제 사건의 뒤늦은 수정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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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전설의 진리-전설이 섬겼던 도시와 제국과 민족이 먼지로 사라진 지 수세기가 지난 후에도 전설에 매혹적인 현실성을 부여하는 진리-는 과거의 사건을 일반적으로는 인간 조건에, 특수하게는 정치적 야망에 부합하게 만드는 형식에 불과한 것이다. - 407
<최초의 선원>에 관한 작은 이야기가 고대의 건국 신화와 비슷한 까닭은 그것이 영국인을 유일하게 정치적으로 성숙한 민족, 즉 세상을 어떻게 단결시킬지 관심도 보이지 않고 알지도 못하는 야만족들 한가운데에 세계 번영의 책임을 지고 법을 걱정하는 유일한 민족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 409
분명 천한 과대망상증 환자와 희생 정신과 책임감을 지닌 교육받은 인물 사이에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거의 동일한 결과에 도달했고 비밀의 ‘거대한 게임’에 똑같이 책임이 있었다. 이 게임은 인종의 유령 세계 못지않게 제정신이 아니었고 정치에 해로웠다.
로즈의 남아프리카 통치와 크로머의 이집트 지배의 두드러진 유사점은 이 두 사람 모두 그 나라들을 그 자체 바람직한 목적이 아니라 단순히 더 높다고 생각되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무관심하고 냉담한 태도에서 또 국민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었다. - 413
어떤 사람이 개인적 자질이나 결점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가 한번 팽창이라는 끊없는 과정의 큰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들어가면 그는 곧 과거의 그가 더 이상 아니고 과정의 법칙에 복종하게 된다. 또한 그는 전체 과정을 계속 작동시키기 위해 자신이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익명의 힘과 스스로를 동일시하게 된다. 그는 자신을 단순한 기능으로 생각하고, 그런 기능성과 역학적 흐름의 구현이 자신이 이룰 수 있는 최대 업적이라고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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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냉철한 크로머 경이 관료를 “제국주의 정책의 집행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를 지닌 도구”라고 말했을 때, 그가 지적한 것은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단순한 도구나 단순한 기능으로 전락시키는 인간들이라는 동일한 현상이었다. - 419
목적이 없다는 것이 바로 킴의 실존의 매력이다. 그가 이상한 임무를 맡은 것은 영국을 위해서도 인도를 위해서도, 다른 가치가 있거나 가치가 없는 이유를 위해서도 아니다. 팽창을 위한 팽창이나 권력을 위한 권력이라는 제국주의적 개념이 그에게 적합할지 모르지만 그는 그런 공식에 특별히 신경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고 분명 그런 용어를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 이유를 따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동하고 죽기 위해서”라는 자신의 특별한 길로,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발걸음을 내디뎠다. - 423
전체주의 게임은 이윤 같은 배후 동기 없이 진행되며 그래서 그 게임에 자금을 대는 사람들조차 멸망시킬 정도로 살인적인 능률성을 가졌다. - 423
위대한 것은 그 자신이 아니라 그가 적절하게 수행한 그의 역할이었고 그의 위대함은 자신의 산물이 아니라 게임의 결과라는 사실을 완벽하게 인식하고 나서 그는 이런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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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위대함은 그가 현실과 명성으로 이어지는 편한 길과 값싼 타협을 거절할 만큼 열정적이었다는 데에, 또 자신은 단지 기능이었고 하나의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며 따라서 “아라비아에서 했던 일로부터 어떤 식의 이익도 얻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망각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그는 자신이 얻은 모든 예우를 거부했다. 그의 명성으로 인해 제의가 들어온 일자리는 거절해야 했고, 돈을 받고 자기 이름으로 언론에 글을 쓰면서 자신의 성공을 부당하게 이용할 수 없었다.
감동적인 비통함과 위대함으로 가득한 로렌스의 이야기는 단순히 유급 관리나 고용된 스파이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진정한 요원, 관리의 이야기이며, 역사적 필연성의 흐름으로 들어가서-끌려 들어가서 세계를 지배하는 비밀 요원이나 관리가 되었다고 실제로 믿는 사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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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머가 인도를 위해 이집트를 통치하고 로즈가 또 다른 팽창을 위해 남아프리카를 지배한 것처럼 로렌스는 어떤 다른 배후의 예측할 수 없는 목적을 위해 행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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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 흐름에 투신했고, 한 개인으로서 그에게 남아 있던 것은 어떤 불가해한 품위와 “올바른 길로 나아갔다”는 데 대한 자부심뿐이었다. - 427
반유대주의가 전체적인 인생관과 세계관의 중심으로…갑자기 출현하게 된 중요한 이유는 정치적인 사실이나 정황에 있다기보다 종족주의의 성격에 있다. 범민족 운동의 반유대주의가 가지는 진정한 의미는 유대인 증오가 처음으로 유대 민족과 관련된 실질적 경험들,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경험들과 분리되어 오로지 이데올로기의 고유한 논리를 따른다는 것이었다. - 442
구식 관료 지배와 최신식 전체주의 정권 간의 두드러진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전쟁 전 지배자들이 권력의 헛된 광채만으로 만족했고 권력의 외적인 운명을 통제하는 것으로 흡족해했으며 영혼의 내면 생활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는 점이다. 절대권력력의 의미를 좀더 잘 이해한 전체주의 관료제는 사적인 개인과 그의 내면 생활에 마찬가지로 잔인하게 개입했다. 이 극단적인 효율성의 결과, 그 통치 아래에서 국민의 내적 자발성은 소멸하고 그들의 사회적 정치적 활동도 전면 중단된다. - 467
어떤 러시아 작가가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범슬라브주의는 “서구에 대한 무자비한 증오심과 러시아적인 모든 것에 대한 병적인 숭배를 발생시켰다…우주의 구원은 아직 가능하지만 오로지 러시아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곳곳에서 자신들의 이념의 적들을 보았던 범슬라브주의자들은 자신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박해했다. - 470
정당과는 반대로 운동은 단순하게 관료 장치로 변질되지는 않았지만 관료 정권에서 조직 모델의 가능성을 보았다. 범슬라브주의자 포고딘은 제정 러시아의 관료제를 찬양한 나머지 그것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서술했는데, 이런 찬양은 모든 범슬라브주의자도 공유했을 것이다.
“가장 단순한 원칙에 따라 건설되었고 한 사람의 손으로 조종되는 거대한 기계 장치…어떤 방향과 어떤 속도를 그가 선택하든 상관없이 단 하나의 동작으로 언제든지 작동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기계적 동작이 아니다. 그 기계는 유전으로 물려받은 감정들, 지상에 살고 있는 그들의 신, 황제에게 복종하고 헌신하며 그를 무한히 신뢰하는 감정들로 살아 숨쉬는 기계다. 누가 감히 우리를 공격할 것이며 우리가 복종을 강요하지 못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 470
정당 시스템의 발생 이래 정당은 경제적 이해관계든 또는 다른 것이든 특별한 이해관계와 당연히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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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충하는 이해관계에서 발생하기보다 대립적인 이데올로기에 유래하는 대륙 정당들의 투쟁이 빚어내는 독특한 광신주의 - 480
독일에서 공무원의 정신은 공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정당을 초월하라”고 요구했다.
과거 프로이센의 공무원 정신에 대해 나치는 당이 우선한다는 사실을 강력히 주장했다. 나치는 독재를 원했기 때문이다. 괴벨스는 명시적으로 요구했다. “국가 공무원이 되는 모든 당원은 우선 민족 사회주의자로 남아야 함…당의 행정과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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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이래 대륙의 의회와 정당의 평판은 꾸준히 떨어졌다. 대다수 국민에게는 의회와 정당이 비싸고 불필요한 제도처럼 보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어떤 집단이 정당과 계급을 초월한 프로그램을 제시하면서 의회 밖에서 출발한다면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다. 그런 집단들은 더 능력 있고 더 성실하며 공적 사안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는 단지 겉모습뿐이었다. “정당을 초월한 정당”의 진정한 목표는 자신들의 특수한 이해 관계를 관철하여 다른 이해관계들을 모두 파괴하는 것이며, 하나의 특별한 집단이 국가 기구의 지배자가 되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일은 결국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의 파시즘 정권에 일어났다. - 484-485
결국 인권은 정부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양도할 수 없는’것을 정의되어왔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자국 정부가 없어지고 그래서 최소한의 권리에 의지해야만 하는 바로 그 순간, 그들을 보호해줄 권위도 없어지고 그들을 기꺼이 보장해줄 제도도 없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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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태어나면서 속한 정부가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자신들의 기초적 권리가 지켜지리라고 확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 538
국적 없는 민족들은 소수민족들처럼 국민의 권리를 상실하는 것이 인권의 상실이나 마찬가지이고 전자는 필연적으로 후자를 따라다닌다는 것을 확신했다. - 539
인권은 양도할 수 없다고 추정되지만, 주권 국가의 시민이 아닌 사람들이 나타날 때면 항상-심지어 인권에 기초한 헌법을 보유한 국가에서조차-인권은 강요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 540
특별한 권리의 상실이 아니라 어떤 권리이든 기꺼이 보장해주고 보장할 수 있는 공동체의 사실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닥친 재난이었다…정치 조직의 상실이 그를 인류로부터 추방한 것이다. - 547
우리는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상호 간에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우리의 결정에 따라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평등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 생활은 우리가 조직을 통해 평등을 산출할 수 있다는 가정에 근거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공동의 세상 안에서 행위를 하고 동등한 사람들과 함께, 오로지 이들과 함께 공동 세상을 변화시키고 건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 - 553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2>
청중을 꼼짝 못하게 만든 히틀러의 ‘마법의 주문’은 여러 번 지적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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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매력-”히틀러에게서 발산되는 거부할 수 없는 이상한 자력”-은 실제로 “이 사람의 자신에 대한 광적인 믿음”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해 그의 매력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 관한 그의 사이비 권위적인 판단에 근거하고 또 그의 견해들-흡연의 해로운 효과에 관한 것이든, 아니면 나폴레옹의 정책을 다루든 간에- 이 항상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이데올로기와 맞아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사람을 홀리게 하는 매력은 사회적 현상이다. 그리고 주위 환경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히틀러의 매력은 그가 교제하는 특별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사회는 항상 어떤 사람을 그가 자처하는 대로 즉각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천재인 체하는 별난 사람은 항상 그렇게 받아들여질 기회를 가진다. 분별력의 결여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강화되엉서, 의견을 단지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의견들을 흔들림 없는 태도로 제시하는 사람은, 이제까지 그가 얼마나 자주 틀렸다고 하더라도, 여간해서 자신의 특권을 상실하지 않을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직접적인 경험에서 얻은 견해들의 혼돈을 알고 있는 히틀러는 다양한 견해들 사이에서의 무력한 동요와 “모든 것이 허튼소리라는 확신”이 현재의 수많은 견해들 중의 하나를 “매우 일관성 있게” 신봉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와 같은 광신주의에 내재된 끔찍스러운 자의성은 사회에 대단한 매력을 행사한다. 왜냐하면 사회적 결사의 지속을 위해서 그것은 끊임없이 산출되는 견해들의 혼돈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 15
히틀러가 권좌에 오른 것은 다수결의 원칙에 보면 합법적이었다. 만약 그나 스탈린이 대중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면, 그들은 다수의 주민들에 대한 리더십을 유지할 수 없었고, 안팎의 수많은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으며, 냉혹한 당내 투쟁의 수많은 위험과 용감하게 맞설 수 없었을 것이다. - 17
그들의 인기를 무지와 어리석음에 대한 능란한 거짓 선전의 승리 탓을 돌릴 수는 없다. 전체주의 정권에 앞서 일어났고 또 이 정권을 수반한 전체주의 운동의 선전은 허위인 것만큼이나 변함없이 솔직하기 때문이다.
또한 전체주의 통치자가 될 사람들은 통상 그들의 과거 범죄를 뽐내거나 자신들이 저지를 미래 범죄의 윤곽을 조심스럽게 드러냄으로써 출세하기 시작한다. 나치는 “악을 행하는 것이 병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정상적인 도덕 기준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러시아의 안팎에서 단언한 볼셰비키 다원들의 확약은 공산주의 선전의 대들보가 되었다. 악행의 선전 가치와 도덕 기준에 대한 일반적 무시가, 정치에서 가장 강력한 심리학적 요소로 여겨지는 사욕과 무관하다는 것이 경험을 통해 되풀이해 입증되었다.
악과 범죄가 폭민*에게 매력적이라는 사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폭민이 “‘비열할지 모르지만 매우 영리한 일이다’는 찬양의 말로 폭력행위”를 환영하는 것은 항상 사실이었다. 전체주의의 성공에서 방해 요소는 오히려 추종자들의 진정한 무욕이다. - 17
*mob 조직되지 않았지만 종종 폭력적이 되는 대규모 군중을 부정적으로 언급할 때 사용하는 말.
나치 당원과 볼셰비키 당원의 확신이, 운동에 속하지 않거나 심지어 운동에 적대적인 사람들에 대한 범죄 행위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놀라운 점은 그가 괴물 같은 전체주의 운동이 자신의 자식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할 때, 심지어 그 자신이 박해의 희생자가 될 때, 그가 모함을 받거나 유죄를 선고받을 때, 당에서 숙청되어 강제 노동을 하거나 강제 수용소에 보내진다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전체 문명세계가 놀란 것은 그 반대로 그가 만약 운동원으로서의 자신의 지위만 침해되지 않는다면, 기꺼이 자신에 대한 기소를 돕고 자신의 사형선고를 꾸밀 수도 있다는 점이다. 모든 실제 경험보다 더 오래 지속되고 직접적인 사리사욕을 지워버리는 이 확고한 신념을 열렬한 이상주의의 단순한 표현으로 간주하는 것은 순진한 일일 것이다. - 18
이것은 확실히 러시아형 전체주의의 특징이다. 소비에트 연방에서 이루어진 외국 기술자에 대한 초기 재판에서 공산주의적 동조가 이미 자기 고발의 논거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은 흥미롭다. “당국자들은 내가 결코 한 적이 없는 사보타주 활동을 했다고 시인하라고 내내 고집했다. 나는 거부했다. 사람들은 내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소비에트 정부에 호의적이라면, 그것을 행동으로 증명하시오. 정부는 당신의 자백을 필요로 합니다”
이러한 행동에 대한 이론적 정당화를 트로츠키가 제시했다. “우리는 오직 당과 함께, 그리고 당에 의해서만 정당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역사는 졍당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어떤 구체적 개별 상황에서 옳은 것인지 아니면 틀린 것인지가 문제 되면 나의 당이 결정한다고 말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훨씬 더 정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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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친위대의 교육본부가 팸필릿 형태로 발행한 광범한 문헌을 보면 ‘이상주의’라는 낱말을 신중하게 회피했다는 사실이 매우 명백해진다. 나치 친위대 대원들에게 요구된 것은 이상주의가 아니라 “모든 이데올로기 문제에서의 분명한 논리적 일관성과 가차 없는 정치 투쟁 추구였다” - 19
나치 돌격대 대장인 룀이 1920년대 후반 다음과 같은 글을 썼을 때 그는 통용되는 견해를 되풀이했을 뿐이다. “우리와 공산주의자들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가진 확신의 진실성과 자신의 운동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자세를 존경한다. 그리고 이 점이 우리를 그들과 연결시킨다” - 22
스탈린이 나라에 전체주의 정권이 들어설 수 있도록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 이 모든 계급과 민족들은 그의 앞에 있었다. 계급 구조를 가지지 않는 원자화된 대중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는 우선, 국가를 대변하는 최고기관으로서 여전히 특정한 역할을 담당함녀서 당 계급 조직의 절대통치를 막고 있던 소비에트의 잔존 권력을 청산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그는 볼셰비키 세포 조직-중앙위원회의 고위 공직자들은 바로 이 조직원에서 임명되었다-을 도입함으로써 소비에트 국민정부의 토대를 제일 먼저 해체시켰다. 1930년까지 과거의 자치단체 제도는 완전히 사라졌고, 확고하게 중앙 집권화된 당 관료제로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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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가족의 생명이 동료시민들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정부의 변덕에 달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우연히 속해 있던 집단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서 이 변덕과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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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소비에트의 마을 평의회의 90퍼센트와 그 의장들의 75퍼센트는 당원이 아니었다. 나라의 집행위원들은 50퍼센트가 당, 그리고 50퍼센트가 비당원으로 구성되었다. 반면 중앙위원회 의원의 75퍼센트는 당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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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으로서 제거되어야 할 다음 계급은 노동자들이었다…1930년대 초반에 채택된 스타하노프 제도는 첫째로 잔인한 경쟁을 통해, 둘째로는 스타하노프 귀족의 일시적인 결속을 통해 노동자들 사이의 유대와 계급의식을 깨뜨렸다. 스타하노프 귀족과 보통 노동자의 사회적 거리는 물론 노동자와 경영자 사이의 거리보다 훨씬 예리하게 느껴졌다. 37-39
소비에트 사회는 실제적인 집단 제거에 반드시 선행되는 거듭된 숙청을 능숙하게 사용함으로써 대중의 원자화를 이루었다. 모든 사회 유대와 가족 유대를 파괴하기 위하여 숙청은 피고-단순히 지면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친구와 친척에 이르기까지-와 그의 모든 일상적 관계에 똑같은 운명이 닥칠 것이라고 위협하는 방식으로 행해졌다. - 42
‘연좌제’라는 간단하고 교묘한 장치의 필연적 결과는 어떤 사람이 고발되자마자 곧 그의 예전 친구들이 가장 모진 적들로 변한다는 점이다. 자기 목숨을 위하여 그들은 자발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그에게 불리한 터무니없는 증거를 가지고 고발하기 위하여 몰려든다. 이것은 분명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들은 피고인들과의 면식과 친구 관계가 단지 그를 염탐하고 또 그를 파괴자, 트로츠키파, 외국 스파이 또는 파시스트로 폭로하기 위한 구실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공적은 “가까운 동지들에 대한 당신의 고발 회수로 측정된다”. 만약 가능하다면 모든 친밀한 관계를 피하라는 요구가 가장 기본적인 경로라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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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 운동은 원자화되고 고립된 개인들의 대중 조직이다. 다른 모든 당과 운동을 비교할 때 전체주의 운동의 가장 뚜렷한 외적 특징은, 개인 성원에게 총체적이고 무제한적이며 무조건적이고 변치 않는 충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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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충성심은 완전히 고립된 인간에게서만 기대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가족이나 친구, 동료와는 사회적 유대관계도 없고, 심지어 단순히 아는 사람도 없이 단지 운동에 속해 있다는 사실과 당원 자격으로부터 사회적 존재의 의식, 즉 이 세상에 자기 자리가 있다는 의식을 이끌어낸다. - 42
전체주의는 국가와 폭력 장치 같은 외부적 수단을 통해 통치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전체주의는 고유한 이데올로기와 강제 장치에서 이데올로기에 주어진 역할 덕택에 사람들을 내면으로부터 지배하고 또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수단을 발견했다. - 46
만약 지도자가 없다면 대중은 자신들을 대변할 외적인 대리인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무형의 무리로 남게 될 것이다. 만약 대중이 없다면 지도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상호의존성을 충분히 인식한 히틀러는 나치 돌격대에게 행한 연설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여러분의 모든 것은 나의 덕택이고, 나의 모든 것은 여러분의 덕택입니다” - 46
또는 그 시대 어느 대학생의 말을 빌리자면 “중요한 것은 언제나 희생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지 희생의 대상이 아니다” 혹은 어느 젊은 노동자의 말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몇 년 더 살고 못 살고는 문제 되지 않는다. 그 사람은 자신의 삶을 위해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싶은 것이다” - 50
히틀러는 활동 초기, 즉 유럽의 기존 상태의 복구가 폭민의 야망에 가장 심각한 위협이 되던 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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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덴은 히틀러가 운동 초기에는 얼마나 일관성 있게 파국을 원했는지 또 그가 얼마나 독일의 가능한 복구를 두려워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 52
넓은 세계로 도피할 수 없는 무능력과 사회의 덫에 거듭해서 걸려든다는 감정…은 익명과 자기 상실에 대한 옛 열정에다 끊임없는 긴장과 폭력에 대한 갈망을 첨가했다. - 55
전체주의 운동의 단호한 행동주의와 모든 형태의 정치 행동 가운데 테러리즘을 가장 선호하는 전체주의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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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즘이 일종의 철학과 정치 표현주의가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테러리즘은 좌절과 원한과 맹목적 증오를 표현할 수 있는 철학이며,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폭탄을 상용하는 일종의 정치 표현주의였다. 또한 그것은 반향이 큰 행위를 좋아하는 공중을 기쁘게 바라보고 또 사회의 평범한 계층에게 자기 존재의 인정을 강요하기 위해 생명마저 희생할 준비가 된 정치 표현주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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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민이 원하고 또 괴벨스가 상당히 정확하게 표현한 것은 파괴의 희생을 치러서라도 역사에 진인하는 것이다. - 56
엘리트의 마음에 든 것은 급진주의 자체였다. 국가는 쇠퇴하여 사라지고 계급 없는 사회가 나타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희망적인 예언들은 더이상 급진적이지 않았으며, 더이상 메시아적이지도 않았다…나치와 지적인 공산주의 동조자들은 러시아에서 “혁명은 하나의 종교이고 철학이지, 단순히 삶의 사회적, 정치적 측면과 관련된 갈등이 아니기” 때문에 똑같이 소비에트 러시아에 끌렸던 것이다.
계급이 대중으로 변하고, 정치 제도의 권위와 특권이 와해되면서 서구 국가들 내에 러시아의 조건과 유사한 조건들이 생겨났다. 그래서 유럽의 혁명가들은 사회, 정치 조건의 변화가 아니라 기존의 모든 신조, 가치 및 제도의 철저한 파괴를 고대하는, 전형적인 러시아적인 혁명의 광신주의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 64
지적이고 영적이며 예술적인 창의성은 폭민의 폭력적 창의성만큼이나 전체주의를 위협하는 요소이며, 이 둘 모두 단순한 정치적 반대파보다 더 위험하다. 새로운 대중 지도자들이 고차원적 형태의 지적 활동이라면 모두 일관되게 박해하는 데에는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한 자연스러운 적대감 이상이 작용한다.
총체적 지배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유로운 창의성,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는 모든 활동을 허용하지 않는다. 권좌에 앉은 전체주의는 반드시 모든 일류 재능을, 정권에 대한 그들의 호감과는 상관없이, 미치광이들과 바보천치들로 대체한다. 그들에게 지적 능력과 창조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들의 충성심을 가장 잘 보증하기 때문이다. - 67
전체주의는 사람들을 위협하기 위해서 폭력을 사용한다기보다(이것은 정치 저항이 여전히 존립하는 초기 단계에서만 이루어진다) 오히려 이데올로기 교의와 실천적 거짓말을 끊임없이 실현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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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점령 지역에서 나치는 사람들을 더 확고하게 통제하기 위해 처음에는 주로 반유대주의적 선전을 사용했다. 그들이 상당수 폴란드 지식인을 제거한 것은 이들이 저항했기 때문이 아니라 폴란드 사람은 지성이 없다는 교의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위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게르만의 피”를 구원하고자 파란 눈에 금발의 아이들을 유괴할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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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하이 작전’은 1942년2월16일자 법령으로 시작되었다. 힘러가 지시한 이 법령은 “폴란드 내외 독일 혈통(개인들)과 관련된” 것이며, 그들의 아이들은 “그들속에 흐르는 좋은 피에 대한 사랑에서 그들을 무조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가정에 보내져야 한다고 명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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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6월 제9군단은 4-5만 명에 이르는 아이들을 실제로 유괴해서 독일로 이송한 것처럼 보인다. - 72
나치는…사회주의 정당의 하급 간부들이나 반대당의 영향력 있는 구성원들을 살해함으로써 단순한 회원 자격도 위험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입증하려고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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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테러는 어느 나치 홍보 담당자가 적절하게 명명했던 “권력 선전”으로서 가치가 있었다. 그것은 나치의 권력이 당국의 권력보다 훨씬 더 크며, 나치의 준군사 조직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 충실한 공화주의자가 되는 것보다 더 안전하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 76
사상을 서술하는 확실한 예언 형식이 그 내용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되었다. 영원한 오류 불가능성이 대중 지도자의 주요 자격이 되었다. 그는 결코 오류를 허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오류 블가능성의 가설은 우월한 지성에 토대를 두고 있다기보다는 역사 및 자연 내에 존재하는 본질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힘에 대한 정확한 해석에 토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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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정당보다 이데올로기적 운동이 우월한 근거가 이데올로기(세계관)는 항상 “오류 불가능성을 증명한다”는 사실에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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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잡은 대중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예언을 실현시키기 위해 모든 공리주의적 고려들을 파기하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 전쟁 말기에 나치는, 패배할 경우 독일 민족이 파멸할 것이라는 예언을 사실을 만들기 위해 아직 온전한 조직을 이용하여 가능한 한 독일을 완전히 파괴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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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사회주의 독일 노동당의 조직서>에 열거된 ‘당원 서약’의 제1항은 “지도자는 항상 옳다”이다….<민족 사회주의 독일노동당의 정치 조직을 위한 복무 규정>은 이것을 다음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히틀러의 결정은 궁극적이다!” 표현의 현저한 차이를 주목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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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불가능성이 지닌 선전 효과, 그리고 예측 가능한 힘을 단순히 해석하는 대리인의 포즈를 취하면서 거둔 인상적인 성공은 자신의 정치 의도를 예언의 형식으로 알리는 전체주의 지도자들의 습관을 강화시켰다.
가장 유명한 예는 1939년 1월 독일 제국의회에서 행한 히틀러의 성명이다. “나는 오늘 다시 한번 예언을 하고자 합니다. 유대인 금융업자들이…사람들을 세계 대전으로 내모는 데 성공할 경우, 그 결과는 유럽에서 유대인 인종의 전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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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유사하게 스탈린은 1930년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당내의 우익과 좌익 일탈자들을 물리적으로 제거할 준비를 했는데, 이때 행한 연설에서 이들을 “사라져가는 계급들”의 대표로 묘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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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들의 처형이 실행되자마자 ‘예언’은 곧 소급력을 가진 알리바이가 된다. 82-85
오류가 없는 예언이라는 방법은 다른 어떤 전체주의 선전 장치보다 더 전체주의의 궁극적 목표가 세계 정복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자신이 완전히 통제하고 있는 세계에서만 전체주의 통치자는 자신의 모든 거짓말을 실현할 수 있고 예언을 현실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 85
대중은 집단 이익 때문에 하나로 묶여 있는 것은 아니다.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운동 또는 성공할 수도 있는 특수한 사업보다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운동이나 어떤 사업이든 상관없이 성공 자체이다. - 86
신비로움 자체가 주제 선택의 첫번째 기준이 되었다. 신비의 원천은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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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가 대중 선전을 위해 그런 주제를 선택하는 데 탁월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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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중반부터 볼셰비키 선전에서는 비밀스러운 세계 음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했다. 그것은 트로츠키 당원들의 모의로부터 시작하여, 300가족의 통치를 거쳐, 영국이나 미국 첩보기관의 사악한 제국주의적 (다시 말해 세계적) 책략으로 이어졌다..
이런 종류의 선전 효과는 현대 대중의 주요 특징 중 하나를 보여준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명백한 것을 믿지 않으며, 그들 자신이 경험한 현실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상을 제외하고는 자신들의 눈과 귀조차 신뢰하지 않는다. 86-87
나치 선전의 가장 효과적인 허구는 유대인의 세계 음모 이야기였다. - 91
반유대주의가 더이상 다수와 구별되는 소수에 관한 의견의 문제나 국가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개인의 사적인 실존과 관련된 일신상의 용무라는 의미에서 나치는 유대인 문제를 선전의 핵심으로 설정했다. “가계도家系圖”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당원이 될 수 없었으며, 나치 위계 질서에서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가계도는 더 멀리까지 추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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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셰비키의 엘리트와 경찰 조직-NKVD-역시 구성원으로부터 혈통 증명서를 요구했다는 사실은 두 체제의 친화성과 관련하여 특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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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선전은 원자화되고 정의할 수 없으며 불안정하고 무익한 개인들로 이루어진 대중에게 자기 정의와 자기 확인의 수단을 제공했다. 이런 수단은 대중이 과거에 자신들이 사회에서 행한 기능을 통해 얻은 자기 존중을 어느 정도 회복시켰을 뿐만 아니라 일종의 가상적 안정성을 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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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 원자화된 사회의 고립된 개인들에게 제공한 히스테리성 안정성과 본질적으로 쓸모없는 자만심을 합리화할 수 있었다. - 94
대중 회합은 가장 강력한 형식의 선전이다…(왜냐하면) 각 개인은 대중의 통일성 속에서 훨씬 더 강하고 자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순간의 열광은 조직과 체계적 훈련 및 규율을 통해 원칙이 되고 정신적 태도가 된다. - 96
전체주의 선전이 다른 당과 운동의 선전보다 우월한 근본 이유는 그 내용이 더이상-적어도 운동의 구성원들에게는-사람들이 의견을 가질 수 있는 객관적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이미 산술 법칙처럼 비판할 수 없는 현실 요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삶의 전체 직물을 이데올로기에 따라 조직하는 일은 오직 전체주의 정권하에서만 완전하게 실행될 수 있다.
나치 독일에서 오직 인종의 기원이 문제될 때, 출세가 ‘아리아인’의 골상학에 달려 있을 때(힘러는 나치 친위대를 위한 지원자를 사진을 보고 선발하곤 했다). 그리고 식량의 양이 어떤 사람의 유대인 조부모 수에 달려 있을 때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의 타당성은 문제삼는 것은 세계의 실존을 문제삼는 것과 같았다. - 105
전체주의 목적을 위해서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교육이나 설득을 통해 성전한다는 것은 오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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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레이의 말로 표현하면, 그것은 “가르쳐질” 수도 없고 “학습될” 수도 없다. 오직 “실행되고” “실천될” 수 있을 뿐이다. - 105
나치의 언어…로 결코 멈추지 않는 역동적인 “지도자의 의지”가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최상위 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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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의지가 최고의 법이다”는 표현은 당과 나치 친위대의 운용을 좌우하는 공식적인 규칙과 규정에서 발견된다. - 108
전투 집단의 구성원은 전적으로 스스로를 운동과 동일시한다. 그에게는 운동과 무관한 직업도 없고 사생활도 없다. - 112
전체주의적 근본 교의들-즉 세계는 서로 적대적인 두 개의 거대한 진영으로 나뉘어 있으며, 그 중 하나는 운동이고, 운동은 전체 세계와 싸울 수 있고 싸워야만 한다는 교의들 - 112
나치와 파시즘의 엘리트 집단이 준군사적 형태를 가진 것은 그것들이 제1차 세계대전 후 널리 퍼져 있던 평화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운동의 이데올로기적 투쟁” 도구로 설립되었기 때문이다. 전체주의 목적을 위해서는 잘 훈련된 군인들로 구성된 군대를 가지는 것보다 “호전적 태도의 표현”으로서 가짜 군대, 즉 평화주의자들의…사이비 군대와 되도록 유사한 군대를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다.
나치 돌격대와 나치 친위대는 분명 자의적인 폭력과 살인을 위한 시범 조직이었다. 그들은 검은 제복의 독일 제국 군인만큼 잘 훈련된 집단이 아니었고, 정규군을 상대로 한 전투 장비를 갖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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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 군복이 살인자들이 느낄 수 있는 양심의 가책을 상당히 덜어주었고, 그래서 의심하지 않고 복종하게 하여 이론의 여지 없이 확고한 권위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 116
반유대주의는 100여 년 동안 점진적으로 거의 모든 유럽 국가의 거의 모든 사회 계층으로 퍼져갔고 결국 다른 문제에서는 절망적으로 분열되어 있던 여론을 하룻밤 사이에 일치시킬 수 있는 이슈로 갑자기 부상했던 것이다. - 119
유대인에 대한 반감은 주요한 정치적 이유와 결합할 경우 또는 유대인 집단의 이해관계가 사회의 주요 계급의 이해관계와 공공연한 갈등 관계에 빠질 경우에 정치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사실은 종종 잊히긴 하지만 명백한 규칙이다. - 124
모든 것을 실제의 모습과 다르게 보이도록 만드는 은밀한 허구적 가정
…
비밀결사체와 함께 전체주의 운동은 세상을 “피로 맹세한 형제들”과 불구 대천의 원수들로 이루어진 윤곽이 희미하고 불명료한 집단을 편을 가른다. 주변 세계에 대한 절대적인 적의에 기초한 이런 구분은 보통의 정당들이 당원과 비당원으로 사람들을 나누는 경향과는 매우 다르다. 정당과 개방적인 단체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을 분명하게 반대하는 사람들만 적으로 간주하는 반면, ‘명백하게 포함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다 배제된다’는 것이 비밀결사체의 원칙이다.
…
‘결의 형제’ ‘결의 동지’ ‘결의 공동체’ 등의 용어들은 나치 문헌 곳곳에서 지겹도록 반복된다. 이는 부분적으로 이 단어들이 독일의 청년 운동에 대한 만연한 소년기적 낭만주의에 호소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용어를 좀더 한정된 의미에서 사용한 사람은 주로 힘러였는데, 그는 그 용어들을 나치 친위대의 ‘핵심 구호’로 도입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북구인의 국가 사회주의 결사로서 그리고 그 종족의 결의 공동체로서 변함없는 법칙에 따라 한 대열에 서서 먼 미래를 향해 향진한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절대적인 적의’라는 명확한 의미를 이 용어에 부여한다.
“10억에서 15억이나 되는 인간 집단이 결속하여 우리에게 대항한다면, 독일 국민은…” - 126
비밀결사체와 함께 전체주의 운동은 세상을 “피로 맹세한 형제들”과 불구 대천의 원수들로 이루어진 윤곽이 희미하고 불명료한 집단으로 편을 가른다. 주변 세계에 대한 절대적인 적의에 기초한 이런 구분은 보통의 정당들이 당원과 비당원으로 사람들을 나누는 경향과는 매우 다르다. 정당과 개방적인 단체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을 분명하게 반대하는 사람들만 적으로 간주하는 반면, “명백하게 포함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다 배제된다”는 것이 비밀결사체의 원칙이다.
…
나치는 적어도 비밀결사체의 입회 의식에 상당하는 심리적인 자격증을 구성원들에게 제공했다.
즉 단순하게 유대인을 구성원에서 축출하는 대신 그들은 구성원들에게 비유대인 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요구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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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를 마쳤을 때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상상의 부적격자 대중과 대치하고 있는 내부자 집단에 속한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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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의 형제’ ‘결의 동지’ 결의 공동체’ 등의 용어들은 나치 문헌 곳곳에서 지겹도록 반복된다. 이는 부분적으로 이 단어들이 독일의 청년 운동에 만연한 소년기적 낭만주의에 호소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126
비밀결사체와 전체주의 운동 사이에 가장 눈에 띄는 유사점은 아마 의식의 역할에 있을 것이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주변을 행진하는 행사는 뉘른베르크 당대회의 으리의리한 의전 행사만큼이나 특징적이다. 나치 의례의 중심에는 이른바 ‘피의 깃발’이 있고, 볼셰비키 의례의 중심에는 미라로 보존된 레닌의 시신이 있다. 이 둘 모두 강한 우상 숭배의 요소를 예식에 도입한다. - 128
기존 세계의 다양성과 차이를 개의치 않고 기존 세계에 저항하는 대중의 맹목적인 적의
….
조직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누구든 배제되며 나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 나를 반대한다는 원칙에 따라 운용되는 조직의 관점에서 보면 세계는 모든 뉘앙스의 차이, 다원적인 측면을 상실한다.
차이와 다원성은 그 세계 안에서 자리와 방향 감각을 상실한 대중에게는 단지 혼란스럽고 심지어 차기 힘든 것으로 느껴진다. 비밀결사체의 구성원들이 가진 것 같은 확고한 충성심을 이 대중에게 불어넣은 것은 비밀이라기보다 우리와 모든 다른 사람들을 이분하는 편가르기였다. - 132
전체주의 운동은 비밀 음모 결사체의 특권이었던 생사를 건 절대적인 충성을 자신도 마찬가지로 명령할 수 있다는 것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입증하였다. 나치 돌격대처럼 철저한 훈련을 받은 무장 부대가 존경하던 지도자(룀)와 수백 명의 가까운 동지들이 살해당하는 상황에 처해서도 전혀 저항하지 않은 것은 기이한 광경이었다.
…
모스크바의 재판이 있기 오래전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도 이 판결을 차분하게 받아들였는데, 이런 태도는 “특히 체카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이었다”
…
그는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한 사람의 지휘자를 설정하여, 그때부터 어떤 비판도 제한도 없이 그에게 복종하는 비밀 범죄 조직들을 열거하고 있다.
…
그는 1920년대 사형선고를 받은 레닌그라드 GPU 감옥의 보통 죄수들도 “한 마디 말도 없이 그들을 사형시키는 정부에 대한 어떤 반항의 외침도 없이” 형장에 끌려가는 광경을 서술한다. - 133
이 조직망 안의 사람들은 설령 유죄 판결을 받을지라도 입문하지 못한 사람들의 세상에 대해 여전히 우월감을 느낀다. - 134
요점은 일선 조직의 동조자들은 입문하지 않았다고 해서 일반 시민들을 경멸하고, 당원들은 동조자들이 쉽게 믿고 급진성이 부족하다며 경멸하며, 엘리트 조직은 비슷한 이유에서 당원들을 경멸하고, 엘리트 조직 내에서도 비슷한 경멸의 위계 질서가 새 조직이 창설되어 발전할 때마다 등장한다는 것 - 137
그러나 그 대신 소련과 나치 독일에서는 내부의 정적들이 줄어드는 만큼 공포정치가 증가했다. 그렇게 하여 마치 정치적 반대파는 공포정치의 구실이 아니라 (정권을 반대하는 자유주의자들이 항상 단언했던 것처럼) 공포정치를 완벽하게 실행하는 데 마지막 장애물인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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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사회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은 나라가 평온해지는 것과 비례하여 더욱더 혹독해졌다”는 것은 일반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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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공포정치는 독일이 실제로 “통일을” 이룬 전쟁 동안 절정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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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하리코프에서 나치 친위대 지도자들 앞에서 행한 힘러의 연설은 저항과는 무관한 이런 탄압 태도의 특징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과제는 가차없이 인종적 투쟁을 지속하는 것이다…하리코프 전투에서 우리를 앞장섰던 공포와 악명이라는 탁월한 무기의 날을 무디게 하지 않고 항상 그것을 위한 새로운 계기를 만들 것이다” - 152
판사인 로버트 잭슨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의 개회사에서 일관되게 “두 정부-진정한 정부와 허울뿐인 정부의 공존”을 논거로 하여 나치 독일의 정치적 구조를 서술했다. “독일 공화국의 형태는 당분간 그대로 유지되었고 그것은 외면상 가시적인 정부였다. 그러나 국가의 진정한 권위는 법의 밖에 그리고 그 위에 존재했고 나치당의 수뇌부에 자리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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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국가가 단지 표면상의 권위만을 가졌다는 데 합의한다. - 155
내무부 장관 프릭은 나치 친위대 지도자인 힘러가 더 큰 권력을 가졌다는 사실에 분개 - 156
표면상의 정부와 진정한 정부의 공존 - 158
왜냐하면 엘리트 집단은 단순히 지도자의 명령에 복종해야 할 뿐만 아니라(이는 모든 조직의 강제적 의무 사항이었다) “지도부의 의지를 집행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 161
1944년3월 포젠에서 열린 시장 회의에서 행한 힘러의 연설…”우리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는 유일무이한 분이시다…그는 2000년 만에 위대한 지도자로서 독일 민족에게 오신 분이다…” - 173
나치 통치의 말기 몇 년간과 이들의 ‘5개년 계획안’을 고찰하면-이 계획안은 시간이 없어 실행하지는 못했지만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어느 한 계획에서 언급된 것처럼)과 1억7000만 러시아인의 말살, 네덜란드인과 알자스-로렌의 주민들 같은 서유럽 지식인층의 말살 그리고 입법 예고된 제국 건강 법안이나 “공동체외국인법”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모든 독일인의 말살을 목표로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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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는 천박한 우생학적 구호가 난무하고, 다른 쪽에서는 고상한 경제적 경구들이 등장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거대한 광기, 모든 논리적 규칙과 경제 원칙이 뒤집히는 거대한 광기”의 전조였던 것이다. - 177
다른 ‘인종’들을 절멸시킴으로써 하나의 인종을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과시하는 것이 제한된 목표의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운동을 위해서는 더 중요했다. 외부의 관찰자들에겐 ‘정신병원의 일부’처럼 보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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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손에 절대 전능한 권력이 주어진 전체주의 통치의 정교한 방식이 과거에 실현되지 않았던 이유는 어떤 평범한 폭군도 무한히 먼 미래에나 존재할 순전히 허구적인 현실을 위해 제한적이고 지역적인 모든 이해관계를-경제적인, 국가적인, 인간적인, 군사적인- 포기할만큼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179
전체주의 정권의 문제점은 그것이 유난히 무자비한 방식으로 권력 정치의 게임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미증유의 권력 개념이 그들의 정치 배우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그들의 현실 정치 뒤에 과거에는 전혀 없었던 새로운 현실 개념이 버티고 있는 것과 같다.
무자비함이 문제가 된다기보다 직접적인 결과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 더 문제가 되며, 민족주의보다 민족 이익을 무시하는 태도와 어는 한곳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 더 문제가 된다.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태도보다 실용주의 동기를 경멸하는 태도가, 또 권력욕보다 ‘이상주의’, 다시 말하면 이데올로기 허구세계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더 문제점이 많다.
이 모든 것은 단순한 공격성이나 권력욕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심각하고 우려가 되는 새로운 요소를 국제 정치에 들여왔던 것이다. - 187
나치 운동의 엘리트 집단과 볼셰비키 운동의 ‘간부들’은 권력을 가진 정권의 안전보다는 전체주의 지배의 목표를 위해 종사한다. - 195
나치 독일에서 유대인이나 소련에서 과거 지배 계급의 후손들이 적대 행위를 한다는 혐의를 받지는 않았다. 그들은 정권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객관적인’ 적으로 천명되었던 것이다.
전제 국가의 비밀경찰과 전체주의 비밀경찰의 주요 차이점은 ‘용의자’와 ‘객관적인 적’의 차이에 있다. 후자는 정부 정책으로 정해지는 것이지 이들이 국가 전복을 원했다고 해서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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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단순히 유대인이나 부르주아 계급을 증오하는 문제였다면, 전체주의 정권은 한번 거대한 범죄를 저지르고 난 후에는 원래의 일상생활의 규칙과 통치 방식으로 돌아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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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인 적이라는 범주는 운동이 가장 먼저 이데올로기를 통해 규정한 적 개념보다 더 오래 생존했다. 새로운 객관적인 적들이 상황의 변화에 따라 다시 발견되곤 했다. 나치는 유대인 말살이 완성되리라 예상하면서 벌써 폴란드인을 제거하기 위해 필요한 예비 조치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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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으로’ 확인된 적들에게서 주관적인 유죄 자백을 얻어내기 위해 이루어진 쇼와 같은 재판들은 모두 이런 목적을 위해서 기획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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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인 적’ 개념-이 적의 정체는 일반적인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한 범주가 청산되자마자 다른 범주와의 전쟁이 선포된다-은 전체주의 통치자들이 되풀이하여 말했던 사실 상황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다시말해 그들의 정권은 전통적 의미의 정부가 아니라 운동이며, 운동의 앞길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장애물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196-199
용의자가 객관적인 적으로 전환되는 상황은 전체주의 국가 안에서 비밀경찰의 지위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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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비밀 정보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부서에게 관청의 모든 다른 부서들보다 결정적인 우월성을 부여했고 정부의 구성원들에게 공공연한 위협이 될 수 있었다. - 199
저자들은 소련에서 체포를 불러오는 ‘객관적인 성격’에 관해 말하고 있다…비밀경찰의 전 요원들이 체포와 자백의 객관적 필연성을 주관적으로 가장 잘 인식하고 있었다. 전 NKVD 요원의 말에 따르면 “내 상관은 나와 나의 일을 충분히 잘 알고 있었고, 당과 NKVD가 지금 나에게 그런 일을 자백하라고 요구한다면, 그들은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충실한 소련 시민으로서 나의 의무는 내게 요구된 자백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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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사례는 프랑스의 상황인데, 여기서 장관들은 경찰의 비밀 ‘서류들’을 항상 두려워하면서 살아갔다. - 199
비밀경찰은 전통적으로, 즉 푸셰 이해 희생자들로부터 돈을 뜯어왔으며 도박이나 매춘같이 자신들이 막아야 할 활동에서 오히려 동업자 행세를 함으로써 비합법적인 출처로부터 국가가 공인한 공식적인 예산을 조달해왔다. 뇌물 수수에서부터 공공연한 갈취에 이르기까지 자금을 자체 조달하는 비합법적 방법들은 비밀 부서가 공적 당국으로부터 독립하는 중요한 요소였으며 구가 내의 국가로서의 그들의 위치를 강화했다. - 203
전체주의 정권의 권력 장치 안에서 “조직력과 능률에서 가장 뛰어난” 정부 부서였던 비밀경찰의 정치 기능은 의심스러운 것도 아니고 불필요한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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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미에서 비밀경찰 요원들은 전체주의 국가에서 유일하게 공공연한 지배계급이며, 그들의 가치 기준과 척도가 전체주의 사회의 전체 구조 안으로 침투될 수 있었다. - 206
용의자라는 범주는 전체주의 조건에서는 전 주민을 포함한다. 공식적으로 정해졌지만 수시로 변하는 노선에서 일탈한 사상은, 어떤 활동 영역에서 일어나든 모두 이미 혐의의 대상이 된다. 인간은 생각할 능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용의자가 되며, 모범적인 행동을 한다해도 이 혐의를 돌릴 수 없다. 왜냐하면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동시에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확실하게 안다는 것은 불가능 -207
거의 모든 고위 관료가 그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상급자를 제거한 숙청 덕분이며, 삶의 모든 경로마다 승진은 이런 방식으로 앞당겨진다. - 208
경찰의 희생자가 반대파 혐의를 받는 사람이었던 때는 단지 권력 투쟁이 아직 진행중이던 초기단계에서뿐이었다. 비밀경찰은 객관적인 적을 박해하면서 전체주의의 경력을 시작한다. 이 객관적인 적은 유대인이거나 폴란드인일 수도 있꼬 (나치의 경우에서처럼) 또는 이른바 ‘반혁명가들’-”소련에서는 (고발된 사람)의 행동에 대한 어떤 의문이 생기기도 전에…이미 그 죄과가 확실하게 입증되어 있었는데”-일 수도 있었다. - 210
이처럼 철저한 자의성과 독단성은 어떤 압제정치가 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인간의 자유를 부정한다. 압제정치의 처벌을 받으려면 적어도 압제정치의 적이 되어야 한다. 의견의 자유는 자기 목숨을 걸 만큼 용감한 자들에게는 폐지될 수 없었다. 이론적으로 전체주의 정권에서도 반대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자발적인 행위가 단지 그밖의 모든 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견뎌야 하는 그런 ‘형벌’만을 초래한다면 그런 자유는 무효가 된다. 이 체제에서 자유란 자유의 파괴할 수 없는 마지막 담보물, 즉 자살의 가능성으로 축쇠되었을 뿐 아니라 그 뚜렷한 특징도 상실했다. 자유를 실행한 결과를 완전히 무고한 사람들도 공유하기 때문이다. - 211
전체주의 통치에 너무나 위험한 기억의 능력에 관한 한…소련의 심리학은 망각을 가능하게 만든 것 같다. - 213
이와 유사하게 소련의 경찰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 체제에 길들여져 있어서, 점령 폴란드에서 체포된 친구나 친척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절망적으로 알려고 하는 사람들을 놀랍다는 듯이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 213
전체주의 정권의 강제 수용소나 집단학살 수용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전체주의의 기본 신앙이 실증될 수 있는 실험실 기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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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지배는 무한히 많고 다양한 인간들을 마치 모든 인간이 하나의 개인인 것처럼 조직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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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소는 사람들을 말살하고 인간의 품위를 떨어뜨릴 목적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과학적으로 통제된 조건에서 인간 행동의 표현인 자발성 자체를 제거하고 인격을 단순한 사물, 동물조차 아닌-잘 알다시피 배가 고플 때가 아니라 벨이 울릴 때 먹이를 먹도록 훈련받은 파블로프의 개는 변태 동물이지만 동물이었기 때문이다-그런 사물로 만드는 무서운 실험실이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자발성은, 그것이 인간의 자유뿐만 아니라 삶 자체, 즉 단순히 살아 있다는 의미에서 삶 자체와 연결되어 있는 한 완벽하게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실험이 가능한 곳은 유일하게 강제 수용소이고, 그래서 그곳은 “다시 실현된 가장 전체주의적인 사회”(다비드 루세)일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총체적 지배의 지침이 되는 사회적 이상이다. -218
우리는 강제 수용소의 피수용자와 나치 친위대 대원의 행동을 심리학적으로 이해하려 하지만, 여기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육체를 가진 인간이 파괴되지 않았는데도 영혼은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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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우이든 최종 결과는 생명이 없는 인간이다. 다시 말하면 심리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며, 그가 심리학적으로 또는 다른 방식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인간 세계로 복귀하는 것은 예수가 죽음에서 살린 나사로의 부활과 거의 유사하다. - 223
전체주의 공포정치는 도덕적인 인간에게 이런 개인주의적 도피의 길을 차단하고 양심의 결정을 의심스럽고 애매모호한 것으로 만들면서 가장 무서운 승리를 쟁취했다.
어떤 사람이 그가 책임져야 할 아내나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거나 아니면 친구를 속여 살해해야 하는 것 가운데 양자 택일해야 할 상황에 직면한다면, 자살마저도 자기 가족의 죽음을 의미한다면-그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양자택일은 선과 악 사이에서가 아니라 살인과 살인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세 자기 가운데 어느 아이를 죽일지 나치로부터 선택을 강요당한 그리스인 엄마의 도덕적 딜레마를 누가 해결할 수 있는가?
양심이 부적절해지는 조건, 선을 행하는 것이 전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을 만듦으로써 전체주의 정권의 범죄에 모든 사람이 의식적으로 조직적으로 가담을 하게 되고, 이 공모 관계는 희생자에게까지 확대되며 그렇게 하여 진정한 의미에서 전체주의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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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 지배 아래 살았던 많은 사람들은 권리도 양심도 없는 인격의 절대적인 고립 속으로 도패했고 매일 매일 도피하고 있다. - 241
나치의 초기 수용소와 게슈타포의 지하실에서는 이런 합리적인 고문에 비합리적이며 가학적인 다른 형태의 고문이 더해졌다. 대개 나치 돌격대가 맡아서 했던 초기의 고문은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체계적이지도 않았으며, 주로 나치 돌격대 내의 다소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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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유형의 고문은 계획적인 정치 제도라기보다 정권이 범죄적인 이상 성향의 구성원들에게 특별히 허락한 권한이라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즉 이들은 자신들의 봉사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이다. - 243
나치 돌격대의 맹목적인 야만성의 배후에는 사회적으로나 지적으로 또는 육체적으로 더 나은 사람들, 그러나 이제 자신들의 야만적인 꿈이 이루어진 것처럼 자신들의 손아귀에 들어온 사람들에 대한 깊은 증오와 적개심이 자리잡고 있었다. - 243
그는 어떤 나치 친위대 대원이 병사가 교수에게 다음과 같은 장광설을 늘어놓았다고 적고 있다.
“너는 예전에는 교수였을지 모르지만 이제 교수가 아니야. 너는 이제 더이상 명사가 아니야. 너는 조그만 꼬마에 불과해. 네가 아무리 해봐도 조그만 꼬마일 뿐이야. 내가 이제 대단한 사람이야” - 243
그는 또한 나치 돌격대가 관리했던 초기의 수용소와 나치 친위대의 지배하에 있던 나중 수용소의 차이에 대해 훌륭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곳에서 처음 몇 년을 지내고 생존한 소수의 수감자들의 설명은 나치 돌격대가 실시해보지 않은 형태의 가학적 도착 행위는 없을 정도라는 데 일치했다. 그러나 모두 개인적인 야수성에서 나온 행위였지, 다수의 사람들을 포함하는 조직화된 냉혹한 체계는 아니었다…이 체계는 나치 친위대가 이룩한 업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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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으로 평상시 정상적인 사람들에게서 인위적으로 도착 행위를 유도했다. 루세는 나치 친위대 감시병에 관한 다음의 일화를 전한다.
“보통 나는 사정할 때까지 계속해서 때린다. 내게는 브레슬라우에 아내와 세 아이가 있다. 과거에 나는 극히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이제 그들이 여기서 내보낸다 해도 나는 집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내 아내의 얼굴을 쳐다볼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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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친위대가 자행한 대량학살에 관한 증언에서 어떤 목격자는 ‘술의 도움 없이 전체 말살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이상적’이었던 이 부대를 높이 칭송하고 있다. - 244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큰 것은 그렇게 개인적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이 사형 집행인을 데리고 가스실로 들어가려고 시도한 경우는 극히 드물며 어떤 심각한 반항도 없었고 해방의 순간에조차 나치 친위대 대원들을 자발적으로 학살하려는 시도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개성을 파괴하는 것은 자발성을 파괴하는 것이며 스스로 새로운 일, 즉 환경과 사건에 대한 단순한 반응의 토대 위에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남는 것은 인간의 얼굴을 한 무시무시한 꼭두각시 인형들이다. 모두가 파블로프의 개들처럼 행동하고 반응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런 인형들이다. 이것이 시스템의 진정한 승리이다.
“나치 친위대의 승리는 고통받는 희생자가 저항 없이 스스로 올가미로 걸려들 것은 요구하고 자신의 정체성 주장을 중단할 정도로 자신을 포기하고 단념할 것은 요구한다. 거기에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치 친위대 대원들이 그의 패배를 원하는 것은 순전한 사디즘 때문에라도 전혀 보상이 없는 것이 아니다. 희생자가 단두대에 올라가기 전에 이미 그를 파괴하는 데 성공한 시스템이 바로 전 국민을 노예로 묶어두는 최상의 방법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복종하면서, 꼭두각시 인형들처럼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인간들의 행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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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 내에서 놀라울 정도로 자살이 드물었다는 사실은 이 맥락에 속한다. 자살은 수용소 내에서보다 감금이나 수송 전에 훨신 더 많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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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에 확립된 죽어가는 자들의 사회가 인간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유일한 형태의 사회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전체주의 지배를 동경하는 사람들은 모든 자발성, 즉 개성이 존재할 때 항상 나타나는 자발성을 없애야 하고, 아무리 비정치적이고 무해한 것이라 하더라도 가장 사적인 형태의 자발성도 추적해 찾아내야 한다.
전체주의 국가의 모범적인 ‘시민’은 파블로프의 개이고 가장 기초적인 반작용으로 축소된 인간 표본이며 언제나 폐지되어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는 반응의 묶음,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반응의 묶음이다. - 245-246
반대파의 문제는 국제 문제나 국내 문제에서 모두 중요하지 않다. 중립적 입장, 즉 자연스럽게 생긴 우정은 전체주의 지배의 관점에서는 공개적인 적의보다 더 위험하다. 자발성 자체가 예측하기 힘들어서 인간에 대한 총체적 지배에 가장 큰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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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단순한 동물적 반응과 기능의 수행 이상이 된다면, 그들은 전체주의 정권에 전혀 소용없는 존재가 된다. 전체주의는 인간에 대한 전제적 지배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는 시스템을 갖고자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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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분하는 개성은 그대로 두어서는 결코 안 된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쓸데없는 것이 되지 않는 한-이는 강제 수용소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전체주의 지배의 이상은 아직 달성되지 않았다. - 247-248
무제한적 권력을 요구하는 것은 전체주의 정권의 본성이다. 이런 권력은, 말 그대로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든 사람이 그들 삶의 모든 측면에서 확실하게 지배당할 때에만 확보될 수 있다. - 247
그러므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목표는 외부 세계의 변형이나 사회의 혁명적 변화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강제 수용소는 인간 본성의 변화를 시험하는 실험실 - 251
이데올로기-지지자들이 만족할 정도로 모든 것과 모든 사건을 단 하나의 전제로부터 추론하여 설명할 수 있는 ‘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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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는 과학적 성격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데올로기는 과학적 접근과 철학과 관련된 결과들을 결합시켜 과학 철학인 것처럼 행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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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경과가 마치 그 ‘이념’의 논리적 전개와 동일한 ‘법칙’을 따르는 것처럼 이데올로기는 사건의 경과를 다룬다. 이데올로기는 역사 과정 전체의 신비-과거의 비밀들, 얽히고설킨 복잡한 현대의 사물들, 미래의 불확정성-를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가장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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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이라는 단어는 과학 탐구의 영역으로서 인종에 대한 진정한 호기심을 표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념’이며, 이 이념으로 역사 운동을 하나의 일관된 과정으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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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의 ‘이념’은 플라톤이 말한, 정신의 눈으로 포착된 영원한 본질도 아니고…이데올로기의 이념은 설명의 도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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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운동과 이런 관념의 논리적 과정은 서로 일치한다고 간주된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하나의 ‘이념’의 논리에 따라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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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는 발전하고 있는 모든 것을 전제로부터 설명하기 위해 하나의 이념이면 충분하다고 항상 가정했으며, 논리적 연역의 일관된 과정 속에서 모든 것이 이해되기 때문에 경험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철학적 사유의 필연적 불확실성을 이데올로기와 그 세계관의 총체적인 설명으로 교체하는 데 따르는 위험은 보통 통속적이고 항상 무비판적인 가정에 속아넘어갈 위험이라기보다 인간의 사유 능력에 들어 있는 자유를 논리의 구속, 즉 억지로 강요하는 외부의 힘과 마찬가지로 강하게 인간이 스스로에게 강요하는 구속으로 교체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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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 모든 이데올로기는 전체주의 요소를 함축하고 있지만, 이 요소들이 만개한 것은 유일하게 전체주의 운동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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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 논증의 사유 운동이 경험에서 유래하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
…
이데올로기 논증은 경험한 현실로부터 끌어내어 수용한 유일한 요소를 자명한 전제로 전환시키며, 그때부터 이어지는 다음의 논증 과정을 어떤 경험과도 완전히 무관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 논증이 한번 전제나 출발점을 확립하면, 경험은 더이상 이데올로기 사유에 영향을 미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실의 가르침을 받을 수도 없다. - 267-272
테러가 절대적인 지배를 행사할 수 있는 대상은 서로 고립되어 살고 있는 사람들뿐이며, 그래서 모든 압제 정부의 제1관심사가 개개인을 고립시키는 데 있다는 점은 종종 관찰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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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인간은 정의 그대로 무력하다.
…
고립과 무기력, 즉 근본적으로 행동할 수 없는 무능력은 항상 압제의 특성이었다. 사람들 사이의 정치 접촉은 압제 정부에서 차단다괴, 행동하고 권력을 추구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파괴된다. - 276
고립은, 인간들이 공동의 관심사를 추구하면서 함께 행동하는 삶의 정치 영역이 파괴되었을 때, 그들이 내몰린 막다른 골목을 말한다. - 277
전체주의 운동의 유명한 극단주의는 진정한 급진주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바로 이 ‘최악만 생각하는’ 경향, 언제나 가능한 가장 나쁜 결론에 도달하는 추론 과정이 바로 그 특징이다. - 282
'지배.착취.폭력 > 지배.착취.폭력-책과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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