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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마사오,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을 읽고

순돌이 아빠^.^ 2023. 4. 20. 08:49

정말 정말 좋은 책이었습니다.
어느 꼭지 하나 놓치기 아까울 정도였습니다.
생각도 명확한데다 글도 깔끔해서 훌륭한 글을 편안하게 읽었습니다.
또 그런만큼 많이 배웠습니다

정치라는 거, 지배라는 거
그리고 인간의 정신과 행동이라는 것들에 대해서요.

세월이 지나고
제가 살면서 읽었던 책 가운데 좋았던 것들을 꼽아보라며
그 가운데 하나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

마루야마 마사오,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한길사, 2007

일본 국민을 오랫동안 예종적인 상황에 몰아넣었으며, 또 전 세계에 대해서 제2차세계대전으로 몰고갔던 이데올로기적 요인…사상구조 내지 심리적 기반.

이데올로기…그것은 오늘날까지 일본 국민 위에 열 겹 스무 겹의 보이지 않는 그물을 펼쳐 놓고 있었으며, 심지어 지금도 국민들이 그런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정치의식이 오늘날 볼 수 있듯이 낮은 것은 결코 단순한 외부적인 권력조직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기구에 침투하여 국민의 심적인 경향이나 행동을 일정한 구덩이로 흘러가게 하는 심리적인 강제력이 문제인 것이다. - 45

근대국가는 국민국가nation state로 불리고 있듯이, 내셔널리즘nationalism은 오히려 그 본질적 속성이었다.

(역주1) 내셔널리즘은 한국에서는 주로 ‘민족주의’로 번역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갖는 의미는 국민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될 수 있으며, 실제로 마루야마는 <일본정치사상사연구>에서 ‘국민주의’라는 표현을 택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지은이의 표현대로 내셔널리즘으로 표기하기로 했다. - 47

주체적 자유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제일 먼저 대결해야 할 ‘충’과 효 관념

제1회 제국의회의 소집을 눈앞에 두고서 <교육칙어>가 발포되었다는 것은 일본국가가 윤리적 실체로서 가치 내용의 독점적 결정자라는 것을 공공연하게 선언한 것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국가질서의 형식적 성격이 자각되지 않는 경우, 일반적으로 국가질서에 의해서 포착되지 않는 사적인 영역이라는 것은 본래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된다. 일본에서는 사적인 것이 단적으로 사적인 것으로 승인된 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서 <신민의 도>의 저자는 “일상적으로 우리가 사생활이라 부르는 것도 필경 신민의 도를 실천하는 것이며, 천업을 떠받드는 신민이 해야 할 일로서 공적인 의의를 갖는 것이다…그리하여 우리는 사생활에서도 천황에게 귀일하여 국가에 봉사한다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는데, 그런 이데올로기는 어느 것도 전체주의의 유행과 더불어 나타난 것이 아니며 일본의 국가구조 그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

따라서 사적인 것은 곧 악이거나 악에 가까운 것으로서, 어느 정도의 꺼림칙함을 끊임없이 수반하고 있었다.영리라든지 연애와 같은 경우, 특히 그러하다.
그리고 사적인 일의 사적인 성격이 단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결과는 거기에 국가적 의의를 어떻게 해서든 연결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꺼림칙함의 느낌으로부터 구원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 49 

국가주권이 정신적 권위와 정치적 권력을 일원적으로 점유한 결과…

그런데 일본의 국가주권은 앞에서 말한 그대로 결코 그와 같은 형식적 타당성에 만족하려고 하지 않았다. 

“대의를 세계에 편다”고 할 경우, 대의는 일본국가의 활동 앞에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며, 그후에 정해지는 것도 아니다. 대의와 국가활동은 언제나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지만, 그것과 더불어 행동하는 것이 곧 정의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긴 쪽이 좋다’는 이데올로기가 ‘정의는 이긴다’는 이데올로기와 미묘하게 교착되어 있는 점에 일본의 국가주의 논리의 특질이 드러나고 있다. 자체가 ‘진선미의 극치’인 일본제국은 본질적으로 악을 행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떠한 포악한 행동도 어떠한 배신적인 행동도 허용되는 것이다. - 52

군대에서의 내무반 생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이같은 사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서의 권력적 지배는 심리적으로 강한 자아의식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권력과의 합일화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권위에 대한 의존성에서 벗어나서, 한 사람의 개인으로 돌아왔을 때의 그들은 그야말로 약하고 애처로운 존재인 것이다. - 55

일본의 경우는 어디까지나 우월적 지위의 문제, 즉 궁극적 가치인 천황에게 상대적으로 가깝다는 의식

관료들이나 군인들의 행위를 제약하고 있는 것은 적어도 일차적으로는 합법성의 의식이 아니라 더 우월한 지위에 있다는 것, 즉 절대적 가치체에 더 가까운 존재라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비천한’ 인민과는 떨어져 있다는 의식이 그만큼 최고가치인 천황에 가깝다는 의식에 의해서 한층 더 강화되어 있었던 것

‘황실의 울타리’라는 것이 귀족들의 긍지

그리고 지배층의 일상적 모럴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추상적인 법 의식도. 내면적인 죄 의식도, 민중의 공복 관념도 아니다. 그와 같은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천황에 대한 친근감의 결과,  거기에 자신의 이익을 천황의 그것과 동일화시키고, 자신의 반대자를 곧바로 천황에 대한 침해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자연히 배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56

직무에 대한 긍지가 횡적인 사회적 분업의식보도 오히려 종적인 궁극적 가치에 대한 직속성 의식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
….
군인의 ‘민간’인(!)에 대한 우월의식은 어김없이 그 황군 관념에 기초하고 있다. 게다가 천황에 직속되어 있다는 것으로부터 단순히 지위적 우월이 아니라 모든 가치적 우월이 생기는 것이다.

군대교육을 꿰뚫고 있는 하나의 심적인 경향성…부대는 다른 부대에 대한, 중대는 다른 중대에 대한, 내무반은 다른 내무반에 대한 우월의식을 부채질당함과 동시에, 또 하사관은 ‘졸병근성’으로부터의 이탈이, 장교에게는 ‘하사관 기질’의 초월이 요구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국가질서가 절대적 가치체인 천황을 중심으로 하여 연쇄적으로 구성되고, 위로부터 아래로의 지배의 근거가 천황으로부터의 거리에 비례하는, 가치가 점차적으로 희박화되는 곳에서 독재 관념은 오히려 생겨나기 어렵다. 
왜냐하면 본재의 독재 관념은 자유로운 주체의식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대체적으로 그같은 규정되지 않은 개인이라는 것이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 내지 사회집단은 끊임없이 한쪽에서 규정되고 있으면서 다른 쪽을 규정한다는 관계 위에 서 있다. 
전시하의 군부 관료의 독재라든지 전횡이라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고 있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사실 혹은 사회적 결과로서의 독재와 의식으로서의 독재를 혼동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의식으로서의 독재는 반드시 책임의 자각과 결부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같은 자각은 군부에도 관료에도 결여되어 있었다. -59

그런 자유로운 주체의식이 존재하지 않으며 각자가 행동의 제약을 자신의 양심 속에 지니지 않고 보다 상급자(궁극적 가치에 가까운 사람)의 존재에 의해 규정됨으로써 독재 관념 대신에 억압의 이양에 의한 정신적 균형의 유지하고 할 수 있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위로부터의 억압감을 아래로 자의적으로 발휘하여 순차적으로 이양되어감으로써 전체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는 체계인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근대 일본이 붕건사회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큰 ‘유산’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후쿠자와 유키찌…

위 아래의 명분이 분명하고 그 명분과 더불어 권리와 의무를 달리하고 있어서, 무리함을 당하는 사람도 한 사람도 없고, 또 무리를 행하는 사람도 한 사람도 없다. 무리하게 억압하거나 또 무리하게 억압당하여, 이쪽을 향하여 굽히면 저쪽을 향하여 어깨를 펼 수가 있다….앞에서의 치욕은 뒤쪽의 유쾌함에 의해 보상받기 때문에 불만족을 평균하여…마치 서쪽 이웃에서 빌린 돈을 동쪽 이웃에게 독촉하는 것과도 같다.

여기서도 사람들은 곧바로 군대생활을 연상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의 국가질서 구석구석에까지 내재되어 있는 운동법칙이 사실상 군대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되었을 따름이다. 

그리고 일본이 세계의 무대에 등장함과 더불어 그 ‘억압의 이양’ 원리는 다시 국제적으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제2차세계대전에서 중국이나 필리핀에서의 일본군의 포악한 행동거지에 대해서도, 그 책임의 소재는 어떻든 간에 직접적인 하수인인 일반 사병이었다는 뼈아픈 사실에서 눈길을 돌려서는 안될 것이다. 
국내에서는 ‘비루한’ 인민이며 영내에서는 이등병이지만, 일단 바깥에 나가게 되면 황군으로서의 궁극적 가치와 이어짐으로써 무한한 우월적 지위에 서게 된다. 
시민생활에서, 그리고 군대생활에서 압박을 이양해야 할 곳을 갖지 못한 대중들이 일단 우월적 지위에 서게 될 때, 자신에게 가해지고 있던 모든 중압으로부터 일거에 해방되려고 하는 폭발적인 충동에 쫓기게 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 61

그들이 내걸고 있는 강령에도 순봉건적 성격이 농후한데, 예를 들면 대일본국수회는 “이 회는 의기로써 일어나며 인협을 본령으로 하는 집단이다”고 했으며, 대일본정의단은 “오야분(우두머리)은 어버이와 같고 코분(부하)은 자식과도 같으며, 코분끼리는 한 집단의 형제이다. 오야분이 명하는 것은 물불을 가리지 않으며, 형제는 서로 친하게 지내며 서로 돕고 또 서로 예의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69


일본의 파시즘 이데올로기에서 특히 강조되고 있는 점

첫째로 가족주의적 경향…구체적으로는 가장으로서의, 국민의 총본가로서의 황실과 그 적자에 의해 구성된 가족국가로 표상된다는 것.

단순히 이데아로서 추상적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현실에 역사적 사실로서 일본국가가 고대의 혈족사회의 구성을 그대로 보존. 유지하고 있다는 식으로 주장되고 있다는 것.

그것으로부터 생기는 충효 일치의 사상

정치운동의 슬로건으로서의 ‘국체國體)’를 강조하는 파시즘 운동에서, 그 이데올로기가 일관되면서 강하게 전면에 나서고 있다는 것은 뭐라고 해도 독일, 이탈리아 등의 파시즘에서 볼 수 없는 특질

일본촌치파동맹의 서기장 쯔다 코오조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가족주의에는 사회의 기조가 서양 근대의 문명국가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개인의 권리 주장에 놓여 있지 않고, 실로 가족이라는 전체에 대한 봉사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가족은 사회에서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 혹은 생활체로서 그 자신 하나의 완전 세포이다. 개인은 그 완전 세포의 일부분 혹은 한 요소에 다름 아니다…이런 가족주의의 연장, 확대가 곧 우리들의 국가주의가 아니면 안된다. 무릇 우리들의 국가주의는 이런 가족의 민족적 결합체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민족결합체로서의 국가의 원수, 그 가장, 그 중심, 그 총대표는 곧 천황이다- 78

일본의 파시즘이 군부 및 관료라는 기존의 국가기구 내부의 정치세력을 주요한 추진력으로 하여 진행되었다는 것, 이른바 민간의 우익세력은 그것 자체의 힘으로 신장되어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앞에서 말한 제2기에 이르러 군부 내지 관료세력과 연결되면서 비로소 일본정치의 유력한 인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이탈리아의 파쇼나 독일의 나치스가 물론, 각기 그 국가의 군부의 지원은 받았지만 어쨌든 간에 국가기구의 바같으로부터, 주로 민간적인 힘의 동원에 의해서 국가기구를 점거했던 것과 현저하게 다릅니다. - 96

도대체 구체적으로 어떠한 개조를 할 것인지는 콘도오 세이쿄오를 브레인으로 한다는 것 외에는 전혀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 점 코가 중위의 법정 진술에서는

우리는 먼저 파괴를 생각했다. 우리는 건설을 역할을 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파괴하면 누군가가 건설의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전망은 있었다. - 99

그리고 “건설없는 파괴란 무모하지 않은가”하는 질문에 대해서 “무엇을 건설이라 하고 또 무엇을 파괴라하는가…삿된 것을 깨부수는 것破私은 곧 바른 것을 드러내는 것顯正이니, 삿된 것을 깨부수는 것과 바른 것을 드러내는 것은 언제나 둘이 아니며 한 덩어리로서 사물의 안과 밖이니, 간악한 자들을 토별하는 것과 유신이 어찌 다른 것이겠는가”라고 하여…-101

전반적으로 황도파 계통의 움직임은, 현실의 행동으로 발휘된 부분을 보게 되면 병력을 동원하여 폭동을 일으키듯이 대단히 급진적이지만, 그 내실의 이데올로기는 천황절대주의-명령을 받들어 힘써 행하는 주의로서 다분히 관념적입니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폭동을 일으키기까지는 계획적이지만 그 후의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실은 이런 천황절대주의가 근저에 있어서…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든 군주 측근의 간신들을 제거해-천황을 뒤덮고 있는 검은 구름을 걷어치우게 되면 그 후에는 자연히 태양이 빛나게 된다는 식의 신화적인 낙관주의로 됩니다. - 115

이런 전근대성은 우익단체만이 아니라 그와 결탁하여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혁신장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들의 모든 근거지는 거의 대부분 언제나 기생집이나 요리집이었습니다.
그들이 술잔을 기울이면서 비분강개할 때 그들의 가슴 속에는 “취하면 누워서 베개로 삼는 미인의 무릎, 깨어나면 손 안에 쥐게 되는 천하의 대권”이라 노래했던 바쿠후 말기 지사志士들의 영상이 남몰래 자리잡고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 125

열광주의와 과대망상증에 걸려서 쓸데없는 것에 미친 광인들이 선택한 것은 외교라든가 전략이라든가 하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정신병리학의 문제로 보는 쪽이 더 설명하기 쉬울 것이다.

아메리카의 국제정치학의 제1인자로 알려져 있는 슈만 교수는 최근의 저서에서 진주만 공격 전후의 국제정세를 분석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토요쿄오 재판에서 상세하게 밝혀진 태평양전쟁 발발에 이르는 정치적 동향은, 개전의 결단이 얼마나 합리적인 이해를 넘어서 있는 상황 하에서 내려져는가 하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는 세계정세와 생산력 기타 국내적 조건의 치밀한 분석과 고려에서 나온 결론이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뮌헨협정에 관한 것도 강제수용소에 문제도 모르고 있었다는 놀랄 만한 정도로 국제지식이 결여된 권력자들에 의해서 “인간은 때때로 맑은 물이 솟아나는 무대로부터 눈을 감고 뛰어내리는 일도 필요하다”는 토오죠오의 말에 단적으로 나타나 있는 절망적인 심경 하에서 결행된 것이었다. - 131

우리는 만주사변을 거쳐 태평양전쟁에 이르는 역사과정의 필연성을 논증하는 데 급한 나머지, 이같은 비합리적인 현실을 너무 합목적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확실히 일본제국주의가 걷게 된 결말은, 거시적으로는 일관된 역사적 필연성이 있었다. 그러나 미시적인 관찰을 하면 할수록 그것은 비합리적 결단의 방대한 퇴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문제는 그런 일본 정치의 비합리성이나 맹목성을 경시하거나 말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디까지나 계속 살리면서 어떻게 해서 거시적인 이른바 역사적 이성의 시각과 연결시키는가 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토오쿄오 재판에서는…대동아공영권을 확립하여 팔굉일우의 새로운 질서를 건설하여, 황도를 세계에 선포한다는 것은 의심할 것 없이 피고들의 공통된 바람이었다. 그들 중 누구 한 사람 그것이 돈키호테의 꿈이라는 것을 지적한 사람은 없었다. - 134

프로이트 학파를 기다릴 것까지도 없이 파시즘은 어디서나 이상 정신상황과 결부되어 있으며, 많건 적건 간에 히스테리적 증상을 수반하는 것이다 - 137

정상적인 사회의식으로부터 배척당하기는커녕 그들의 대부분은 젊었을 때부터 장래에 대신, 대장을 약속받거나 혹은 어려서부터 화려한 선조의 후광을 입어 주위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팽배해 있던 나치즘에 감염되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서 본래적인 것은 나치즘 그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감염되기 쉬운 소지인 것이다. -138

전 상해 파견군 총사령관 마쯔이 이와네

원래 일본과 중국 두 나라의 투쟁은 이른바 ‘아시아의 일가’ 내에서의 형제 싸움으로서…마치 같은 집안의 형이 참고 또 참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난폭한 행동을 그만두지 않는 동생을 때린 것과 마찬가지로, 그를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는 나머지 반성을 촉구하는 수단이라는 것은 제 오랫동안의 신념으로서… - 141

사랑한 나머지 때린 결과는 주지하듯이 눈 가리고 아옹 하는 식의 남경 사건으로 나타났다. 지배 권력은 그런 도덕화에 의해서 국민을 기만하고 세계를 기만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기자신을 기만했던 것이다.

그루 전 주일대사…”그와 같은 심리 상태는 아무리 뻔뻔스러워도 자신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다루기 어렵다. 즉 그것은 자기 행동의 의미와 결과를 어디까지나 자각하면서 수행하는 나치지도자와 자신의 현실의 행동이 끊임없이 주관적 의도를 배반해가는 일본의 군국지도자의 대비에 다름아니다. 
어느쪽이든 죄의식은 없다. 그러나 한쪽은 죄의 의식에 정면으로 도전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하려고 하는 데 대해서, 다른 쪽은 자신의 행동에 끊임없이 윤리적인 분위기를 고취시킴으로써 그것을 회피하려고 한다. - 142  

그러므로 같은 히스테릭한 증상을 드러내고, 절망적인 행동으로 나갈 경우에도 일본의 경우에는 이른바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것 같아서 열등감이 언제나 그 기조를 이루고 있다. “현저한 열등감에서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저한 우월감의 옷을 걸치는 일본인의 초민감성은, 허장성세와 맹목적 애국심과 외국인 혐오증과 조직된 국가적 선선을 수반하며, 어떤 분쟁을 처리하는 수단과 방법을 분쟁 그 자체와 비교해보면 그것은 마치 균형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터무니없이 의미깊고 중대한 것으로 여긴다”는 것은 역시 그루의 관찰이다.
그리하여 명확한 목적의식에 의해 수단을 통제할 수 없게 되며, 수단으로서의 무력행사가 무심결에 확대되어 자기목적화해간 데에 앞에서 말한 그런 무계획성과 지도력의 결여가 현저하게 드러난 까닭이 있다. - 143 

일본에서는 지도적인 정치세력 자체가 표면의 위용 이면에서 과민하고 섬약한 신경을 끊임없이 곤두세우고 있었던 것 - 144

지도자로서 이같은 ‘허약한 정신’ - 144

일본 지배층을 특징짓는 이같은 왜소함을 가장 노골적으로 세계에 보여준 것은 전범자들의 한결같은 전쟁책임 부인이었다.

전직 수상, 각료, 고위의 외교관, 선전가, 육군의 장군, 원수, 해군 제독 및 궁내대신들로 구성된 현재 25명의 피고 전원으로부터 우리는 하나의 공통된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곧 그들 중의 누구 한 사람도 이 전쟁을 일으키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그들은 달리 선택할 길이 없었노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주장합니다.

이것만큼 동서의 전범자들이 법정에서 취하는 태도의 차이가 선명하게 나타난 적은 없었다. 예를 들어 괴링은 오스트리아 병합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백 퍼센트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된다…나는 총통의 반대까지 기각시키고 모든 것을 최후의 발전단계로까지 이끌었다.” - 146

일본 파시즘의 왜소성

이미 현실이 형성되었다는 것이 그것을 결국에는 시인하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피고들의 답변에 공통되고 있는 것은, 이미 결정된 정책에는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혹은 이미 시작된 전쟁은 지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150

토오쿄오 재판의 전범자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자신의 무책임을 주장

가야나 호시노 같은 관료 중의 관료가 “단순히 행정관이었다는 사실” “일생 동안 한 사람의 관리”라는 것을 근거로 삼았던 것은 물론이고

무토오(전 해군성 군무국장)에 대해서도 “그는 군인으로서의 경력의 대부분을 통해서 종속적 지위에 있었다는 것이 분명하게 입증되고 있습니다…즉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그의 상관이며, 그의 임무는 세계의 어떤 곳에서도 승인되고 있는 군의 개념이 보여주듯이 상관의 명령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 160

이들 피고들의 태도도 결코 단순히 그 자리에서 생각해낸 책임회피는 아니다…그러므로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되면 언제라도 법규에 규정되어 있는 엄밀한 직무권한에 따라서 행동하는 전문관리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의 일은 정치적 사무이기 때문에 정치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정치적 사무이기 때문에 정치적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책임주체가 공중에 붕 뜨고 마는 것 - 164

막스 베버는 관료제의 정치적 기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절대군주조차도,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그야말로 절대군주야말로 관료의 우얼한 전문지식에 대해서 가장 무력한 것이다.

제정 러시아의 황제(차르)는 자신의 관료가 찬성하지 않는 것, 관료의 권력이해와 충돌하는 것을 거의 실현할 수 없었다. 절대지배자인 차르에 직속되어 있는 대신들은….서로 모든 개인적 음모의 그물을 펼쳐 암투하고 있었으며, 특히 산더미 같은 ‘상소’를 차례차례 올려 서로 공격했는데, 그것에 대해서 문외한인 황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근대의 군주제는 표면상의 장엄한 통일 이면에 무책임한 익명의 힘의 난무를 허용해주는 이른바 내재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는 것

관료제의 무제한적 지배

절대주의국가로서의 일본제국의 행로 역시 그와 같은 법칙에 규정되어 있었던 것이다….’관리님’들의 지배와 그 내부적 부패, 문무관료의 암투, 군부의 책동에 의한 내각의 파괴 등등은 결코 쇼오와 시대에 홀연히 나타난 현상은 아니었다.

절대군주와 입헌군주라는 야뉴스적인 두 얼굴을 가진 천황은 왜소화와 병행하여 신격화되어갔기 때문에 점점 더 그 밑에는 소심하기 짝이 없는 ‘신하’ 의식이 만연했다. - 169

일본 파시즘 지배의 방대한 무책임의 원칙…그 안에서 활약했던 정치적 인간상

첫째는 ‘신을 모시는 가마’이며, 둘째는 ‘관리’이며, 셋째는 ‘무법자’(혹은 낭인)이다. 신을 모시는 가마는 ‘권위’를, 관리는 ‘권력’을, 낭인은 ‘폭력’을 각각 대표한다. 

그러므로 일찍이 무법자였던 사람도 ‘출세하게 되면 보다 소小관리적으로, 따라서 보다 ‘온건’하게 되고, 거기서 더 출세하면 신을 모시는 가마와 같은 존재로서 거꾸로 떠받들어지게 된다. 게다가 어떤 인간은 윗사람에 대해서는 무법자로 행동하지만 아랫사람에 대해서는 ‘관리’로서 군림하며, 또 다른 인간은 아랫사람들로부터는 ‘신을 모시는 가마’로 떠받들어지지만 윗사람에 대해서는 역시 충실하고 소심한 관리로서 섬긴다는 식으로…전체의 계서제를 구성하고 있다. - 173

먼저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무릇 우리가 사회라든가 정치라든가 하는 문제를 논하는 경우에는 추상적인 이데올로기나 도식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듯이 현실을 고찰해가는 것이 가진 위험성일세.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그런 이데올로기-예를 들면 자유주의라든가 공산주의라든가 사회민주주의라든가 하는-는 사상으로서는 어느 것이나 수입된 것이며, 일본인이 스스로 생활체험 속에서 만들어간 것은 아니지.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현실의 사회문제는 언제나 구체적인 인간과 인간의 관계이며, 그 구체적인 인간을 현실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행동원리는 그 인간의 모든 생활환경-가정, 직장, 회의, 여행지, 오락장 등등-에서의 모든 행동양식에 대한 경험적 고찰에 의해서 찾아내야 할 것이지 반드시 그가 의식적으로 준봉하고 있는 주의主義에서 연역된 것은 아니네. - 181

일본의 압도적으로 강대한 전근대적 인간관계 속에서는 상위자의 권위의 무언의 압력, ‘니라미(노려보는 것, 위압, 위엄의 뜻임-옮긴이)의 실질적인 폭력성이 은폐되고, 그것에 대한 내면적인 공포로부터의 복종이 쉽사리 근대적인 동의인 것처럼 꾸밀 수 있다는 의미에서이라네. 
내가 언제나 일본사회의 민주화에서는 누가 보더라도 현저한 독재자형의 지도자보다도 보스형의 그것에 보다 많은 경계의 눈을 번득여야 할 필요성을 떠들어대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세. 독재자는 민주주의를 이른바 바깥으로부터 공공연하게 파괴하지만, 보스는 그것을 안에서부터 조용히 부식시키지. 

또 보스적 지배는 사회의 일상적, 전통적인 가치의식이나 습관적인 사고방식에 의해 떠받쳐지고 있으므로, 특히 ‘선전’이나 ‘선동’을 할 필요가 없어. 부하나 피지배자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경우, 독재자는 가차없이 직접적 억압을 가하지만, 보스는 조금씩 괴롭히거나 혹은 때때로 ‘에도의 원수를 나가사키에서 갚는 식이지’ 그럴 경우 억압은 시간적으로 연장됨으로써 당연히 집약성이 줄어들기 때문에 즉시의 직접적인 억압 경우처럼, 하위자는 급격한 반감을 일으키지 않지.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면 보스적인 지배가 인민의 자유로운 비판력의 성장을 강인하게 저지하고 있으면서도 그 부식성이 얼마나 간과하기 쉬우며, 또 권력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통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지. - 187

시니컬하게 들릴는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유럽이나 미국은 어떨지 모르지만 일본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보다도 외려 훨씬 더 많이 피억압자가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체념하고 울면서 잠이 든 그런 역사일세…단적으로 말해서 일본은 예로부터 무武를 숭상하는 국가로서 전쟁을 빈번하게 치렀지만, 그야말로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아직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어.-189

그런 한에서 가족주의에 기초한 화和의 정신이 일본적 통치의 아름다운 전통이라는 식의 국체역사관도 역사적 현실의 어떤 측면을 반영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네. 다만 그런 ‘화’라는 것이 평등한 자들 사이에 ‘우애’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종적인 권위관계를 움직일 수 없는 전제로 한 ‘화’이며, 따라서 정말 그 권위에 과감하게 도전하거나 혹은 도전의 위험이 있다고 권위자에 의해 인정된 자에 대해서는 곧바로 ‘은혜를 모른다’고 하여 가공할만한 박해로 전화된다는 동전의 뒷면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빠트리고 있는 점에 바로 그 사관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있는 것일세. -189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관청이나 경영단체의 노동조합이 강고한 곳일수록 그곳의 직원이나 고용인의 태도나 표정이 보다 명랑 쾌활하며 활발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며, 그것이 약한 곳일수록 그리고 약해지면 질수록 그 특유의 비굴한 표정과 질투, 에고이즘 등이 짙어진다는 것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어- 193

그러나 어둡게 정체된 사회적 저변에서 헐떡이고 있던 서민 대중-후쿠자와 유키찌에게 “전 인민의 뇌리 속에 국가의 사상을 불어넣는 것”을 일생의 과제로 삼으려는 결의를 하게 만들 정도로 ‘국가 관념’과 인연이 없던 대중-은 그야말로 그런 ‘의무’ 국체 교육에 의해서 국가적 충성의 정신과 최소한도로 필요한 산업, 군사기술적 지식을, 헐스의 이른바 ‘마술적인 실천과 과학적 실천’을 아울러 갖춘 제국 신민으로까지 성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능률적으로 창출된 국가의식은 연이은 외국과의 전쟁에서의 승리와 제국적 팽창에 의해 점점 더 강화되었다. 자아의 감정적 투사로서의 제국의 팽창은 그대로 자아의 확대로서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시민적 자유의 협애함과 경제생활의 궁핍함에서 비롯되는 실의는 국가의 대외적 발전 속에서 심리적 보상을 찾아냈다. -208

무엇보다도 국가의식이 전통적 사회의식의 극복이 아니라, 그 조지적 동원에 의해 주입된 결과는 흔히 지적되는 것처럼 정치적 책임의 주체적인 담당자로서의 근대적 공민(公民 citoyen) 대신에 모든 것을 ‘위쪽’에 맡겨서 선택의 방향을 오로지 권위의 결단에 기대는, 충실하지만 비열한 종복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결과가 되었다. - 208

무릇 발전적 내셔널리즘은 반드시 일정한 국민적 사명감을 수반하고 있다. 황도 선포라든가 대의를 천하에 편다는가 팔굉일우라든가 하는 것은 그런 사명감의 표현이다. 그것이 지식인들에게는 아무리 황당한 것으로 들릴지라도, 그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비논리적 논리는 과거의 일본에서 강인한 신비적 지배력을 국민대중들 사이에 행사해왔다. - 210

요컨대 그것은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국내의 계서제 구조의 관념을 가로로 국제관계에 연장한 것

그런데 그런 황국 관념이 중국의 중화의식의 세계상과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후자가 문화적 우월감을 중심관념으로 하고 있는 데 대해서 전자는 어디까지나 무력적 우월을, 뒤에서 보듯이 우월하지는 않지만 빼놓을 수 없는 계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211

예를 들면 전쟁 직후의 사회적. 경제적 혼란 속에서 이르는 곳마다 ‘한 밑천 잡으려는 사람이나 불법상인 집단이 생겨나고, 또 지방에는 무슨무슨 패거리組, 무슨무슨 일가 등의 반폭력단체가 광범하게 배출 혹은 부활되어, 그들이 신쥬쿠의 오즈구미나 신바시의 마쯔다구미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지역적으로 경찰 기능을 대행하는 그런 현상을 드러냈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은데, 그런 집단에는 많은 제대군인들이 흡수되어갔다. 그런 이른바 ‘반사회집단’은 대체적으로 오야분(우두머리)-코분(부하)의 충성관계와 군대와 비슷한 조직적 훈련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만큼 중심적인 상징의 붕괴로 생겨난 대중의 심리적 공백을 메우는 데 아주 적합하며, 그 계층적 질서와 집단적 통제에 복종함으로써 사회적 혼란으로부터 오는 고립감과 무력감을 치유할 수 있었다. - 212



일본의 구내셔널리즘의 가장 눈부신 역할은 앞에서 말했듯이 모든 사회적 대립을 은폐 혹은 억압하고, 대중의 자주적 조직의 성장을 멈추게 하며, 그 불만을 일정한 국내외의 속죄양에 대한 증오로 전환시키는 데 있었다. 
만약 앞으로 국민의 애국심이 다시 그런 바깥으로부터의 정치목적을 위해 동원된다면, 그것은 국민적 독립이라는 무릇 모든 내셔널리즘에서의 지상 명제를 포기하고, 반혁명과의 결합이라는 과거의 가장 추악한 유산만을 계승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215

이렇게 생각해보게 되면 자연히 우리 일본국민의 ‘현실’관을 형성하는 세번째 계기에 이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그때그때의 지배권력이 선택하는 방향은 훌륭하고 ‘현실적’이라 생각되며, 그것에 대한 반대파가 선택하는 방향은 쉽게 ‘관념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기 십상이라는 것입니다….우리 사이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사대주의와 권위주의가 여기에 유감없이 드너라고 있습니다. - 221

여기서 현대 세계의 우익적인 국가주의에 거의 공통되고 있는 이데올로기 혹은 정신적 경향으로서 어떤 것을 들 수 있을까.
1.다른 모든 충성에 대한 국가적 충성의 우선
2.평등과 국제적인 연대를 강조하는 사상이나 종교에 대한 증오
3.반전평화운동에 대한 반감과 ‘무력’에 대한 찬미
4.국가적 ‘사명’의 제창
5.국민적 전통, 문화를 외부의 사악한 영향으로부터 지켜내자는 호소
6.일반적으로 권리보다 의무, 자유보다도 질서의 강조
7.사회적 결합의 기본적 유대로서의 가족과 향토의 중시
8.모든 인간관계를 권위주의적으로 편성하려는 경향
9.’정통적’인 국민종교 또는 도덕의 확립
10.지식인 혹은 자유직업인에 대해서, 그들의 파멸적인 사상 경향의 보급자가 되기 쉽다는 이유로 인해 경계와 시의의 생각을 품는 경향 - 237

우익의 공격에 대해서 크리스천도 자유주의자도 민주주의자도 우선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사상과 행동이 결코 국체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변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므로 - 238

그런 반면 그것은 또 격렬한 시험을 거쳐 제국대학이나 육군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적 계서제를 순조롭게 올라가는 ‘수재’ 혹은 ‘유능한 친구’와 그와 같은 입신출세 코스에서 좌절당하거나 처음부터 단념한 ‘둔재’ 혹은 ‘무능한 친구’ 사이의 현저한 대조가 지방의 도처에서 나타나게 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후자의 대부분은 자신의 운명을 체념하고 정체적인 지방생활의 평범한 일상성에 파묻혀갔지만, 보다 행동적이고 야심적인 몇몇은 그대로 순종적인 제국신민으로서의 생애를 보내는 데 만족하지 못하고, 각각의 지방공동체에서 ‘전원의 협객’인 체하거나 아니면 경천동지할 만한 모험을 찾아서 ‘대륙낭인’으로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어느 쪽이건 간에 그들의 반역적인 정신은 점차로 그들을 일종의 무법자로 만들어갔으며, 그런 사람들이 또 일본의 국가주의운동의 두번째 모체가 되었다. 
즉 여기서는 ‘중앙’과 ‘관료제’에 대한 반감은 거기에 모여든 ‘수재’에 대한 ‘둔재’의 콤플렉스와 겹쳐져 있으며, 그것이 우익운동에 과격한 경향을 띠게 한 하나의 계기를 이루고 있다. - 242

나는 이 책을 읽고 뜻밖에도 앙드레 지드의 코뮤니즘관을 떠올리게 되었다. 지드로 하여금 코뮤니즘으로 기울어지게 한 것은, 역시 코뮤니즘에 내재하는 에토스였다. 그리고 그 매개를 이루어준 것은 다름아닌 기독교였던 것이다. 
지드는 1933년 6월 일기에서 “나를 코뮤니즘으로 이끌어준 것은 마르크스가 아니라 복음서였다”고 썼다. 또 1937년 여름-그때 이미 그는 소비에트 기행을 쓰고 있었지만-의 일기에는, “여러분들의 주장에 의하면 가치있는 유일한 코뮤니즘은 오직 이론에 의해서밖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확실히 이론은 유익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열정도 사랑도 없는 이론은, 이론이 구원하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을 해치고 말 것이다…사랑에 의해서, 사랑의 거대한 요구에 의해서 코뮤니즘을 해온 사람들만을 나는 형제로 느끼고 있다”고 적고 있다. -267

볼셰비키라는 인간 유형의 심리적 구조…청교도와 볼셰비키의 구조의 공통성

1.선발된 자로서의 의식, 인간성의 일상적 습관에 대한 멸시, 역사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승리에 대한 확신, 그것을 위해서 지상의 모든 박해를 견뎌내는 저항렬
2.자신의 중심적 진리를 부정하는 자는 모두 악마의 업業이며, 가급적 빨리 절멸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확신
3.볼셰비키의 부르주아적 교양의 멸시와 퓨리턴의 세속적 학문에 대한 의혹
4.볼셰비키가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의 텍스트를 만능시하는 방식과 퓨리턴이 성서의 인용에 의지하는 태도
5.개인적 위험의 멸시와 순교에 대한 자긍심…양자 모두 복음에 충실한 사람은 반드시 구원받는다는 확신을 지니고 있다.
6….종국적 진리의 소유를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강제적으로 부과하는 것을 오히려 의무로 느낀다. 유일한 죄는 약함weakness이다. 이설異說에 대한 관용은 행동의 혼란을 가져다줄 뿐이라 생각한다.
7.’중용’의 주장자에 대한 초조한 경멸감, 거기에 있는 것은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없다’는 의식이며, 공공연한 적보다도 중도파나 어설픈 아군을 한층 더 용서하지 않은 경향이 있다.
8.구원으로부터 제외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아부하며 위선을 떠는 무리를 낳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래스키…<코뮤니즘>...거기서는 코민테른 조직을 로마 카톨릭교회에 비견하여, 그 명령을 받들어 전세계로 흩어져가는 볼셰비키는 마치 제수이트 선교사와 같은 역할을 부여받고 잇었다.

“공산주의는 리얼리즘realism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이디얼리즘idealism에 의해서, 유물적 전망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신적 약속에 의해서 진전되었다”

“러시아혁명의 사상이 뿌리를 내리는 곳, 그 주창자들이 이르는 곳마다 정신적 구언에 대한 갈망을 길러주었다” - 283

그리하여 래스키는 현대문명의 그 끝간 데를 알 수 없는 데카당스와 부패, 그 밑에서의 민중의 실의와 절망과 고독감을 근저에서부터 일소하여 ‘인간정신의 갱생’ ‘정신적 고양’을 가져다주는 역사적 역할을 볼셰비즘에 강력하게 기대하게 된 것이다. - 286

“권력은 그 본성상 그 행사자에게 위험한 것이다. 권력 신장의 필요한 근거가 무엇이건 간에 그것은 동시에, 권력 남용에 대한 보장을 만들어내야 할 필요가 근거이기도 한 것이다”
“사회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자는 그 누구든 간에 권력을 남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1937년에 소련의 지도자가 “자신이 가진 힘의 볼륨volume에 중독되어, 준엄한 통제의 필요성이 사라진 후에도 절대권력을 붙들고 늘어질” 위험성에 대해서 말한 경고는 1943년의 <현대혁명론>에서 “자기 이외의 의견을 고려할 필요로부터 면역이 된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그로부터 반드시 중대한 오류가 발생한다. 그것은 무오류성이라는 치명적인 환상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그런 무오류성이라는 신화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그런 환상에 사로잡히게 되면 자신들을 평범한 인간으로 보지 않게 되고, 더욱 나쁜 것은 자신들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을 목적으로 보지 않고서 도구로 간주하게 된다”고 하듯이 엄연히 견지되고 있는 것이다. -292

파시즘은 20세기에서 반혁명counter-revolution의 가장 첨예한 그리고 가장 전투적인 형태이다.

따라서 반혁명의 집중적인 표현으로서의 파시즘은 혁명적 상황에 대응하는 것이며 반드시 공산주의에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파시즘에서 공산주의와 공산당이 무엇보다 제1의 적이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각국의 역사가 보여주는 한, 무릇 공산당이 혁명적 상황의 가장 정력적이며 가장 전투적인 조직자-반드시 현실적인 조직자가 아니더라도 가능한 조직자-로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만약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일정한 상황 하에서 사회혁명의 최전위가 된다면, 지체없이 파시즘의 공격은 거기에 집중될 것이다.

사회민주주의나 자유주의가 ‘혁명의 온상’으로 판단되는 한에서 그것은 배제되거나 통제되며, 그것이 거꾸로 혁명의 방파제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한에서는 방임되거나 심지어 지지를 받기도 한다. 

혁명의 구체적인 상황의 양태에 따라서 파시즘의 구체적인 발현 형태도 변화하는 것이다. -299

파시즘의 지배가 근대 헌법이나 의회제도의 공식적인 정지 내지 폐지를 수반하는가, 아니면 그런 입헌적 형태를 유지하면서 진행되는가 하는 것도,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역시 원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런 제도의 한계 효용의 문제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의회제가 혁명의 교두보가 된다면 그것은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경우처럼 폐기될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의회제(좁은 의미의 의회내각제만이 아니라 대통령제를 포함하여)가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인 이유로 그런 위험에서 벗어나 있고 의회에서 반혁명세력이 압도적인 다수를 점하고, 그런 상황이 당분간 변화하지 않을 전망이 있다면, 의회제가 각별히 파시즘의 진전에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치스가 바이마르체제 하에서 합법적으로 권력을 확립했다는 전설을 아직도 믿는 사람들이 간혹 있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 한 마디 해두고자 한다. 바이마르체제 하의 관료(특히 사법부)가 얼마나 공공연하게 그리고 은근 슬쩍 그 정치적 중립성의 원칙을 파기하고, 반동단체를 원조하여 ‘법의 지배’를 내부로부터 공허하게 만들었는가.

나치스 독재에 최초의 그리고 결정적인 법적 근거를 부여해준 다름아닌 수권법의 성립과 그후의 경과를 보면, 그 전설이 완전히 근거가 없다는 것은 금세 드러나게 된다. 확실히 그 법은 바이마르 헌법 제76조의 규정에 따라서 출석의원 3분의2라는 다수로 라이히 의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그 전에 이미 공산당의 국회방화사건의 조작에 이ㅡ해서 실질적으로 비합법화되었으며, 1933년 3월의 의회 개원식에 앞서 모든 공산당 의원(81명)과 일부의 사회민주당 의원들은 미리 체포되어 있었다. - 300

일반적으로 생활양식이나 이데올로기의 동질성이 다양한 사회적, 역사적 조건에 의해서 비교적 고도로 유지되고 있던 곳일수록 ‘이질적’인 요소의 감염이나 침윤에 대해서 과민하게 반응한다. - 303

“우리 시대의 유혹은, 본래 참기 어려운 것을, 다만 보다 더 나쁜 것의 도래를 두려워하는 나머지 받아들이는 것이다(h. rauschning)
공포에 사로잡힌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에 시달린다. 역사는 환상이 현실을 탄생시키는 수많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파시즘이야말로 틀림없는 공포의 아들이며, 또한 그것을 낳은 어머니이기도 한 것이다. - 304

1949년 여름의 픽스킬 사건-유명한 흑인가수이자 평화운동의 유력한 추진자 폴 로브슨의 콘서트에 대한 조직적인 폭력 사건-을 그 와중에서 상세하게 목격했던 작가 하워드 패스트의 리포트에 의하면, “이곳의 젊은이들은 일도 없으며 장래도 없다는 이곳의 강변 마을에서 성장한다-말하자면 말하자면 타락하여 사악한 길에 빠진 프티부르주아적인 외형을 가진 사람이 된다. 

그들은 세상의 고난으로 뒤틀려져 있지만, 그런 고난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으며, 그것을 어디로 어떻게 이끌어가는 것이 좋은가 하는 것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오로지 증오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들 폭도들은 보안관이나 주 경찰의 공공연한, 그리고 은근한 비호를 받으면서 한 잔 마신 기분으로 손에 피스톨, 곤봉, 돌을 들고서 “히틀러 만세, 너 이 자식, 깜둥이 잘못 태어난 놈”이라든가 “우리는 미국의 빨갱이 놈들을 모두 죽여버릴거야” 같은 말을 내뱉으면서, 많은 부녀자를 포함한 콘서트의 청중들을 덮쳤으며, 게다가 점잖게 나치스의 악명을 세계에 드날렸던 뉘른베르크의 분서까지 재연했던 것이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조직화의 대상으로 노렸던 사회계층, 그 생활환경이나 의식형태는 그야말로 친위부대(S.S.)나 돌격대(S.A.) 멤버의 그것과 너무나도 닮았다.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사회신분상으로 상승할 수 있는 통로가 폐쇄 또는 감퇴된 데서 오는 실의와 초조감이며, 생활의 적극적 목표를 상실한 데서 오는 불안과 절망이며, 또한 사회적 연대가 결여된 데서 싹트게 된 고립감이다. 거기서 쉽게 생겨나는 “무언가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증오와 공포를 도액대로 삼아 파시즘은 성장한다. - 309

SS나 SA는 당 수뇌도 꼼짝 못하게 하는 ‘급진성’을 발휘했는데, 잽싸게 모든 반대파를 때려눕히는 데는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보배였다. 노동자 계급을 비롯해 민중의 모든 자주적 조직을 분쇄하여 그것을 모래와 같이 하나하나 따로노는 ‘대중’으로 해체하지 않으면, 안으로 계급투쟁을 ‘절멸’시키고 밖으로 제국주의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사회적 시멘트화는 불가능하다. - 313

일찍이 나치스가 정권을 획득하고 1년 반 후에 로이드 조지는 하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극히 가까운 장래, 아마도 1, 2년도 채 안되어서 우리나라의 보수준자들은 독일을 유럽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방벽으로 기대하게될 것이다…우리는 섣불리 독일을 비난하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우리는 마침내 독일을 친구로 환영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슈먼이 말하고 있듯이, 서구 국가들의 수도에서 정책을 작성하는 데 가장 영향력이 큰 유산계급 엘리트 중 많은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그리고 은근하게 파시즘을 코뮤니즘에 대한 보험으로 찬미했다는 사실에 진정한 근원이 있었다.” - 315

내셔널리즘은 역사적 상황에 따라 혹은 동경 내지 고무의 감정을, 혹은 증오 내지 혐오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같은 개념 하에 한편에서는 자유와 독립이, 다른 한편에서는 억압과 침략을 의미하고 있다.

우선 정의를 내려본다면, 내셔널리즘은 어떤 네이션nation의 통일, 독립, 발전을 지향하여 밀고나가는 이데올로기 및 운동이다. 따라서 내셔널리즘 개념의 다양성은 네이션이라는 범주의 다양성 내지 애매함과 서로 얽혀져 있다. 그러나 내셔널리즘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은 네이션의 주체적 계기라고도 불리고 있는 민족의식에 다름 아니다. 
내셔널리즘은 이렇게 민족의식이 일정한 역사적 조건 하에 단순한 문화적 단계로부터 정치적인-따라서 ‘적’을 예상하는 의식과 행동으로까지 고양될 때 비로소 출발하게 된다. 내셔널리즘의 최초의 목표가 어디서나 네이션 내부의 ‘정치적’ 통일(공통의 정부 수립) 및 타국에 대한 ‘정치적’ 독립(국제사회에서의 주권의 획득)으로 표현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 323

프랑스혁명에 대한 간섭전쟁의 과정은 우선 프랑스 시민들에게 애국심과 인민주권의 원리의 결합을 가져다주었으며, 이어서 나폴레옹의 침략은 한편으로는 중남부 유럽 국가들의 구체제를 파괴함과 더불어, 다른 한편으로 제 민족의 광범한 저항운동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을 계기로 1.대내적으로는 정치적 지도권을 일부 소수의 특권 귀족층의 독점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그것을 ‘국민적’ 기반으로 확대하는 이상理想
2.대외적으로는 오랫동안 국제사회의 조직원리로 통용되어온 왕조주의를 타파하고 네이션을 기초로 하는 독립국가를 형성하려는 지향이라는 두 측면의 동향이, 바야흐로 국민적 자기결정이라는 통일적인-그러나 내실이 반드시 명료하지 않는-관념으로 합류해갔던 것이다. - 324

내셔널리즘의 이데올로기
1.국민적 전통national tradition
2.국민적 이익national interest
3.국민적 사명national mission이 그것이다. 전통을 네이션을 과거와 이어주며, 이익은 그것을 현재에, 사명은 그것을 미래와 이어준다. 이같은 세 가지가 합성되어 거기에 국민적 개성 관념national character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영국의 젠틀맨gentleman)이라든가 일본의 ‘옛 무사라든가 미국의 보통사람comman man과 같은 인격유형은 그런 국민적 개성 관념의 인격화에 다름 아니다. 

내셔널리즘은 그런 전통의 미화를 매개로 하여 로맨티시즘에 가까이간다…역사적으로는 보수 내지 반동세력이 내셔널리즘을 담당할 때…전통이 민족의 신화적 기원에까지 소급하는 경우(건국신화의 강조 등)는 특히 그러하며, 그럴 경우에는 사명 관념과 결부되어 울트라 내셔널리즘의 양상을 띠게 된다. -331

내셔널리즘 운동은 애국심의 정신구조로부터 엿볼수 있듯이 자애주의(自愛主義, 자아의 국가로의 확대와 투사)와 애타주의(愛他主義, 조국에 대한 헌신과 희생)의 감정을 함께 비교적 무리없이 동원할 수 있다는 점

점화된 대중의 격정은 흔히 맹목적인 에너지로 폭발해서, 지도자 자신이 그것을 제어할 수 없게 되는 위험성이 있다. - 333

군국주의軍國主義militarism…”한 국가나 한 사회의 전쟁 또는 전쟁 준비를 위한 비려와 제도가 반영구적으로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고,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국민생활의 다른 모든 영역을 군사적 가치에 종속시키는 그런 사상 내지 행동양식”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334

군국주의는 이미 오만하게 대중을 깔보아서는 안되며, 오히려 모든 힘을 다해서 대중에게 자신을 선전하고, 여론의 지지를 얻지 않으면 안된다.

말쑥한 군복, 눈부시게 아름다운 계급장이나 훈장, 화려한 군악대-이들은 전투의 실용적인 목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대중의 허영심을 부채질하여 ‘우리의 군대’에 대한 자부심과 선망을 고취시킬 필요에서 만든 것이다. 
군대적인 조직-그 엄중한 위계질서, 권위주의, 명령에 대한 민첩하고 무조건적인 보종-이 가장 모범적이며 또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로 간주되고, 다른 모든 사회관계(예를 들면 노동자와 자본가 관계)는 그것을 모형으로 삼아 형성된다. 군인교육이 교육 일반의 이념으로 된다(문약(文弱)!의 배격)

파시즘이라는 전체주의에서 우리는 근대 군국주의가 도달한 최고의 형태를 볼 수가 있다. 그것은 양자가 정치적 군사적 수단의 물신숭배fetishism라는 점에서 내면적 연관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 337

군국주의 침투에는 또한 대중 측에서 정신적 물질적으로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조건이다. 군대라는 폐쇄적 특권적인 카스트는 사회적 승진의 길이 막힌 하층민에게는 흔히 영예와 권력의 사닥다리를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장치이다.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하에서 ‘도시’로 상징되는 기계문명의 은혜를 입지 못하고 그것에 대한 질투와 선망을 느끼고 있던 농민들은 기계화된 군대에 들어감으로써 그 좌절감을 치유하게 되고, 거꾸로 도시의 소시민으로 기계적인 생활의 무미건조함을 견디지 못하고 그런 단조로움으로부터의 구원을 추구하는 사람들 역시 군대생활이나 국민생활의 군사체제화 속에서 자극과 변화를 찾아내게 된다.
일반적으로는 군국주의 하의 최대의 피해자인 노동자계급조차도 공장폐쇄나 대량정리의 위협이 만성화되면 기업의 전면적인 군사적 편성에 ‘안정’에 대한 필사적인 희망을 거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따라서 군국주의 자체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라 하더라도 그 해독을 위해서는 단순한 반군국주의나 평화주의의 이데올로기의 고취만으로는 족하지 않게 된다. - 339

파시즘의 강제적 동일화와 시멘트화…이른바 내면으로부터의 획일화를 밀고 나간다는 점에 큰 특색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대중의 불만을 한편으로는 특정한 속죄양(공산주의자, 유태인, 흑인, 가상적국)에 집중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만을 스포츠, 영화, 오락, 집단여행 등에 의해 무산시킨다. - 348

파시즘에 대한 저항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폭력과 잔학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강제적 시멘트화를 그야말로 비이성적인 격정을 동원하여 민주적인 외형 하에서 수행하고, ‘합의에 의한 지배’라는 근대적 원리를 어느 틈인가 ‘획일성에 의한 지배’로 슬쩍 대체한 점에 있는 것이다. - 348

파시즘의 모든 이데올로기는 반혁명과 전쟁에 대한 동원, 그 전제로서의 국민의 강제적 동질화라는 목적에 ‘계통적’으로 봉사하고 있는 것 - 349

대중국가를 기반으로 한 파시즘은 거의 반드시 민주주의 에너지로부터 ‘대중참여’라는 계기를 훔쳐서, 그 집단적 압력으로 개인의 고유한 권리로서의 기본적 인권을 압살해나간다.
대중이 자신의 자유와 권리 상실을 환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단순한 낙관주의는 파시즘에 의한 ‘대중(mass)의 제도화’라는 마술 앞에는 맥없이 붕괴된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최근의 역사로부터 배운 최대의 교훈이라 할 수 있을 것 - 354

거기서 스탈린 이론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적 단결의 상징으로서 기능하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진영 내에서의 ‘이론’에 대한 어떠한 의혹도 단결에 찬물을 끼얹는 것으로 다루어졌던 것이다. 당의 노선으로부터 편향되지는 않을까 하는 공포와 경계가 있는 곳에서는 사상과 언론의 상부에 대한 동조화 경향은 끊임없이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각국 당원의 당간부에 대한 동조화는 당 간부의 사회주의 조국 소련에 대한 동조화로, 그것은 다시 소련공산당의 최고권위에 대한 동조화로까지 상승해가지 않을 수 없다. 시드니 웹의 이른바 ‘정통병(disease of orthodoxy)이 이렇게 해서 만연된다. - 368

그리고 위와 같은 ‘이구동성화’의 이면에는 “사회주의 국가들에서의 중대한 부정을 말하는 그런 정보는 무엇이든 믿기를 거부하고, 그와 같은 정보는 중상이라 생각”(데니스, 앞의 논문)는 식인데, 이 또한 공통된 경향 -369

생생한 문제에 대한 다양한 견해의 제출이나 이론 해석의 다의성이 단결을 이완시키거나 혹은 이적 행위가 된다-그 가능성은 다소라도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경계심이 일방적으로 높아지게 되면, 선천적으로는 권위주의자가 아닌 코뮤니스트도 점차로 동조화가 습성으로 변하게 되어 점점 더 권위주의로 변해간다. - 370

이미 “사회주의사회에서는 국가가 근로자의 이익, 사회의 보다 나은 발전과 번영의 이익을 구현하고 있는 이상 국가 자체가 최고의 도덕원리를 반영하고 았다”고 한 체제에 대한 ‘천진난만한’ 낙관주의는 허용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사회주의에서 치욕이 아니라 오히려 커다란 전진인 것이다. 인간에게서도 제도에서도, 언제나 예리하게 의식하고 있는 위험보다도, 의식하지 않는 혹은 충분히 의식하지 않을 위험 쪽이 실은 보다 더 위험하다. - 385

마르크스주의의 기존 이론에서 도덕이 차지하고 있는 지위

혁명의 진전이 혁명세력도 끌어들이고, 혁명가 자신이 그 과정에서 혁명되어가는 것이 ‘세계’ 혁명의 성격이며, 또 그것이야말로 현대에서 정말로 진보progress라는 이름에 값할 만한 혁명인 것이다. - 388

정치를 정면으로 문제삼아온 사상가들은 예로부터 반드시 인간론을 다루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홉스, 벤담, 루소, 마르크스, 니체-이들은 모두 인간 또는 인간성의 문제를 정치적 고찰의 전제로 삼았다. 그리고 거기에는 깊은 이유가 있다.
정치의 본질적인 계기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통제를 조직화하는 것이다. 통제든 조직화든 어느 것이나 인간을 현실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며, 인간이 외부적으로 실현시킨 행위를 매개로 하여 비로소 정치가 성립하게 된다. 따라서 정치는 어떻든 간에 인간 존재의 매커니즘을 전체적으로 알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예를 들면 도덕이나 종교는 오로지 인간의 내면에서만 작용한다.

그러나 정치에서의 작동은 반드시 현실적으로 대상이 되는 인간이 정치 주체의 목적 그대로 움직이는가 하는 것이 생명이다. 

현실적으로 인간을 움직이고 거기에 따라 기존의 인간관계 또는 사회관계를 바라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정치 운동의 키 포인트이다. -411

정치가 인간의 조직화 행위인 한, 정치가 대상으로 하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 인간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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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도나 지배에서 필요로 하는 정치권력의 강도는 말할 것도 없이 그 대상이 되는 집단의 자발적, 능동적 복종의 정도와 반비례한다.

그런데 여기에 많은 경우 상호작용이 일어나 구성원에 대한 조직화 작용이 강제력에 의존하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구성원의 자발적, 능동적 계기는 옅어지고 원심적 경향이 강해진다. - 417

위에서 본 것과는 거꾸로 정치단체 내부의 조직화에서 구성원의 자발적 협력의 요소가 극대화되면 권력의 행사는 완전히 사용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그것이 행사되지 않는 상태가 항구화되면, 마침내 퇴하의 법칙에 의해 권력 그 자체가 쇠멸해버리고 만다. 무정부주의나 사회주의가 최종적으로 바라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상태인 것이다. - 418

미국의 정치학자 메리엄은 피지배자의 심성에 대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수단을 미란다로 부르고 있다. 미란다란 일반적으로 피지배자에게 지배자 혹은 지도자에 대한 숭배,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즉 군주가 신으로부터 유래한다든가 가뭄 때 하늘에 기도하여 비를 오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든가 하는 신화 혹은 군주의 권위를 치장하기 위한 다양한 의식 같은 것은 모두 미란다이다. - 419

바야흐로 개인의 외부적 물질적인 생활만이 아니라 내면적 정신적 영역의 구석구석까지 정치가 스며들게 되었다. 라디오를 틀게 되면 라디오에 하나의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들어 있다. 신문을 보면 신문 역시 그런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따라 기사를 쓰고 있다. - 421

특히 서유럽에서 종교와 정치라는 문제가 현재 모든 내면생활을 포함시키려고 하는 ‘정치화로의 경향’의 집중적인 표현으로서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카톨릭 사상가 도슨은 <종교와 근대국가>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가 만나지 않을 수 없는 큰 위기는 폭력에 의한 박해가 아니라 오히려 국가에 의해 고취된 공론의 중압 때문에…이같은 사태는 일찍이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는 한 번도 사회생활의 모든 부문을 통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도슨은 현대 정치가그 본래 영역으로 생각되는 것을 넘어서, 개인적 내면성을 침해해왔다는 것을 격렬하게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향이 그 절정에 달한 것이 바로 공산주의다.

사회주의를 선善에의 강제적 조직화라는 의미에서 카톨릭주의의 직계로 본 도스토예프스키 - 422

이처럼 무의식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심리적 경향을 이용하는 선전으로부터 우리의 자주적 판단을 지켜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 424

어떠한 정치권력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정치권력인 한 인간의 양심의 자유로운 판단을 짓밟고 가치의 다원성을 평준화시키고, 게다가 강제적인 편성을 들이댈 위험성으로부터 완전히 면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권력이 구사하는 기술적 수단이 크면 클수록 그것이 인격적 통일성을 해체해서 그것을 단순히 매커니즘의 기능화로 만들어버릴 위험성 역시 커진다. 권력에 대한 낙관주의는 인간에 대한 그것보다도 몇 배나 위험하다.- 424

오늘날은 내면성에 의거하는 입장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은 정치적 조직화에 대항하여 자주성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또 자신을 정치적으로 조직화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패러독스에 직면해 있다. 그때 정치적인 것의 전형적인 틀-효과 본위라든가 대립의 단순화(적과 친구의 이분법)라든가 하는-에 어느 정도까지는 어떻게든 내 몸을 끼워넣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런 연옥을 두려워하여 모든 정치적 동향으로부터 무차별적으로 도망가려고 하면, 도리어 최악의 정치적 지배를 자신의 머리 위에 불러오는 결과가 될 것이다. - 425

그렇다고 해서 물질적인 조건이 갖추어지면 자동적으로 우리의 생활이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근처에 실제 사례들이 얼마든지 널려 있어. 생활 속에서 시詩를 만들어가기 위한 정신의 주체적인 작용이 없다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마찬가지일걸세. 
흔히 일본인들은 사교를 모른다는 식으로 외국인들이 비평을 하곤 하는데, 사교적 정신이라는 것은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춤을 추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상호간의 대화conversataion를 가능한 보편성이 있고 나아가 풍요로운 것으로 만들기 위한 마음가짐을 각자가 끊임없이 지니고 있는 것이 생각해. - 430

근대사회의 형성이라는 것은 당연히 중세적인 질서를 무너뜨려가는 측면과, 그 폐허 속에서 새로운 시민사회를 건설해가는 측면, 두 측면을 가지고 있지. 그런데 그 양면이라는 것은 그것이 수행되기 위한 사상적 전제로서, 무릇 사회의 질서나 제도 그리고 관습, 요컨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환경이 모두 인간의 산물이며, 인간의 지성의 힘으로 바꾸어갈 수 있는 것이라는 자각이 생겨나는 것이 제일 먼저겠지.

중세처럼 인간이 출생이나 신분에 의해서 위계적으로 위치지어져서 사회관계가 고정되어 있는 곳에서는, 그런 인간의 사회적 환경이 마치 신이나 해나 별이나 달과 같은 자연적 실재성을 띠고서 인간을 둘러싸고 있었지. - 436

어쨌거나 중세나 동양의 옛날 사상에도 있는 (군주와 백성 사이의) 군민 계약설 같은 것으로부터, 근세의 사회계약설이 결정적으로 구별되는 점은, 개인을 유일한 자연적 실재로 보고, 사회관계를 모두 개인의 목적의식적인 산물로서 이해해간 것이지. 
원자론적인 사유방법은 비역사적이라든가 기계적이라든가 하여 후세에 자못 평판이 좋지 않지만, 거기서 철저하게 인간을 환경으로부터 분리시켜서 생각했기 때문에, 뿌리깊게 얽혀 있던 인습이나 역사적 관행을 단절하는 주체적인 에너지도 생겨났던 것이지. 물론 거꾸로 그런 생각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봉건적인 사회관계의 해체의 징표이며, 자연과학적 방법의 영향이나 다양한 계기를 같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겠지만 말이야. - 437

그 결과 영국과 미국에서는 국가권력은 국내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결코 무제한이 아니라 그것이 일정한 법적 제한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그 법의 구속력은 궁극적으로 보편적인 윤리적 종교적 가치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그런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으로 되었다. 이에 비해 독일에서는 국가는 최고의 가치이며, 그 존립의 필요를 위해서는 국제법이나 개인도덕적 규준도 그것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사상이 헤겔로부터 비스마르크, 트라이치케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흔히 독일이 악명높은 군국주의적, 권력국가적 전통의 사상적 반영으로 지적되는 까닭이 바로 그것이다. - 459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이해대립에 기초한 긴장관계가 모든 지배 형태의 결정적인 계기

지배관계에서는 그 사회에서의 물질적 정신적 가치를 지배자가 점유하고, 피지배자의 그것에 대한 참여를 가능한 한 배제한다는 요소가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그 배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배자는 물리적 강제수단(군대, 경찰)을 조직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지배자는 그런 가치로부터 피지배자를 격리시키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발명해왔다. 피지배자와의 사이에 문자 그대로 공간적 거리(양자의 거주지의 격리로부터 시작하여 식탁의 구별-식탁에서 계급이 나누어진다는 속담이 독일에는 있다-에까지 이르고 있다)를 설정하고, 서로 다른 신분 사이의 교통을 금지하는 것은 가장 흔히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양자의 ‘교통’을 차단시키기 위하여 신앙, 의례를 구별하고 도덕, 명예 관념을 지배자가 독점하여(“사무라이는 의에 따르며, 농민 직공 상인은 이익을 따른다”-야마가 소코오), 심한 데에 이르게 되면 언어를 완전히 다르게 만든다. 
그런 격리에 기초하여 지배의 폐쇄성을 유지하는 가장 전형적인 예는 주지하듯이 인도의 카스트제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 471

지배형태는 실로 이처럼 “피지배자를 중대한 시점에서 지배 신분의 정신적 세계로부터 배제한다)는 점에 그 본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것 때문에 현실의 정치적 지배는 순수한 지배관계(위에서 말한 주인-노예관계)만으로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귀결을 낳게 된다.
노예의 주인에 대한 복종에서는, 복종의 자발성이 제로 혹은 제로에 가까운 정도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거기에는 본래 복종행위가 있다기보다도 복종이라는 사실상태가 있는 데 그칠 뿐이다. 주인의 채찍이 둔해지거나 혹은 쇠사슬이 풀리는 정도에 따라서, 노예의 사보타주 정도는 이른바 물리적 필연으로 커지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의 생산성이라는 점에서는 노예 노동만큼 비능률적인 것은 없다. 생산력의 발전이 어느 단계에 이르게 되면, 대부분의 경우 노예제가 그 사회의 지배적인 생산양식이 되지 못하고 부역지대의 형태로 하거나 현물지대의 형태로 하건, 어쨌든 필요노동 부분과 잉여노동 부분의 귀속관계가 보다 객관화되는 그런 형태로 이행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하물며 정치적 사회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 그와 같은 긴장관계밖에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피지배자를 억압하기 위해서 지배자가 유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권력기구는 쓸데없이 거대하기만 할뿐 아니라 대내관계와 더불어 모든 정치적 사회의 존재근거인 대외적 방어라는 면에서 현져한 취약성과 위험성을 배태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모든 통치관계는 한편으로는 권력, 부, 명예, 지식, 기술 등의 가치를 다양한 정도와 양식으로 피지배자들에게 분배해줌으로써 본래의 지배관계를 중화시키도록 하는 물적 기구와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통치를 피지배자의 심정 속에 내면화함으로써 복종의 자발성을 불러일으키려는 정신적인 장치도 발전시켜온 것이다. -472

정치적 사회의 중핵을 이루는 지배관계를 중화시키고, 피지배자의 자발적 복종을 불러일으키는 물적, 정신적 장치는 반드시 이런 것이라는 식으로 이성적으로 자각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현실에서는 압도적으로 비합리적인 ‘심층의식’(subconscious)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더구나 피지배자에서와 마찬가지로 지배자에서도 그러했다. 
현실의 역사는 그야말로 이런 비합리적인 ‘데모크라시’가 지배자와 피지배자 쌍방의 입장에서, 점차로 이성적으로 자각되고 의식적으로 형성되어간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474

초인격화 방향과 비인격화 방향…초인격화라는 것은 인간의 지배를 선의 지배라는 위쪽으로 이양하든가 아니면 인민의 지배라는 아래쪽으로 이양하는 픽션이다. 특히 현대에서 모든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즐겨 쓰는 것은 집합개념으로서의 ‘인민’에게 지배의 주체를 이양함으로써 소수의 다수에 대한 지배라는 모든 지배에 공통된 본질을 은폐시키는 방식이다. 지배의 비인격화 이데올로기의 가장 큰 그것은 ‘법의 지배’라는 것이다.

그 이념은 현실적으로 법을 해석, 적용하는 것이 언제나 인간이며 추상적인 법규범으로부터 자동적으로 일정한 구체적 판결이 나올 리도 없다는 자명한 이치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간과했으며, 국가권력의 현실의 행사가 지배관계의 기초를, 그것에 대한 도전으로부터 방위한다는 지상목표에 의해서 제약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및 법의 중립적 성격을 참칭함으로써 흔히 반동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 - 476
권력을 인간 또는 인간집단이 ‘소유’하는 것(사물)으로 보는 입장, 즉 구체적인 권력행사의 제 양태 배후에 이른바 일정불변의 권력 그 자체라는 실체가 있다는 사고방식을 실체개념으로서의 권력이라 부른다면,
그것에 대해서 권력을 구체적인 상황에서의 인간(혹은 집단)의 상호작용 관계에서 파악하는 사고방식을 관계 개념 혹은 함수 개념으로서의 권력이라 부를 수 있다. -481

즉 권력은 상대(복종자 혹은 다른 권력주체)가 지니고 있는 가치의 스케일과 상관성이 있으며, 후자의 변동과 더불어 전자도 변동하게 된다. -483

권력 자체도 역시 가치이며, 게다가 그것은 타인(집단)의 제 가치의 박탈을 포함하는 인간관계의 통제이므로, 권력은 다른 어떠한 가치를 추구하는 기반으로서도 유효도가 높다. - 490

홉스가 이미 예리하게 통찰했던 것처럼 “꼭 알맞은 권력에 인간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보다 많은 권력을 얻지 않으면 현재 가지고 있는 권력도 확보할 수 없다”는 권력 특유의 다이내미즘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본래 다른 가치의 추구를 위해서 생겨난 권력관계가 자기목적으로 전화되어간다. -490

정치과정이라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는 그런 정책 일반이, 좁은 의미에서는 정치 정책이, 권력과정-가치박탈을 수단으로 하는 인간관계의 통제-을 통해서 형성되고 실현되는 과정에 다름아니다.

그런데 말할 것도 없이 국가는 오늘날 여전히 최고의 조직된 권력기관이며, 일정한 영역에서 정통적 합법적 폭력을 독점하며, 그 행사에 의한 가치박탈을 최후수단으로서 부차적인 권력관계를 통제하고 있다. 
그래서 국가권력의 제어에 성공하면 할수록 그 영토 내에서의 가치배분의 결정에 가장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현대에서의 국제적 국내적인 정치투쟁이 결국은 국가권력의 획득, 유지, 배분, 변혁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까닭이다. - 492

아니, 정신구조나 행동양식을 다루더라도 그속에 몇 겹의 층이 있으며, 그 가장 깊은 곳은 거의 완전히 심층의식의 영역에 속해서 사람들이 ‘세계’에 대해서 품는 표상, 인식, 평가와 그것에 기초한 행동에 의해서 이른바 선험적인 좌표축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거기에는 가장 강인한 역사적 타성이 작용하며, 환경이나 제도의 변혁의 충격이 거기에 이르는 것은 매우 느리다.(소련에서의 개인숭배 문제도 일면으로는 그것과 관련되어 있다)
거기에 비해서 보다 표면의 정치의식은 변화하는 정치적 상황을 비교적 민감하게 반영하며, 그것에 적응해가면서 변용해간다. 따라서 전후 일본의 의식이나 행동양식이 변했는가 아닌가는 논하는 부분에서 어느 차원의, 어느 성층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빼놓고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589

어쨌거나 일본인의 사고나 행동양식을 가장 깊은 층에서 포착하려는 그의 방향에는, 일본정치의 진짜 동기를 알려고 하는 사람에게도 그냥 그대로 지나칠 수 없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와 같은 심층으로부터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정치의식의 상층까지를 시야에 넣어, 성층 간의 상호작용을 찾아볼 때 비로소 오늘의 시점에서의 일본정치의 정신상황은 전면적, 입체적으로 해명될 수 있을 것이다. - 590

래스키가 만년에 힘주어 말한 ‘동의에 의한 혁명revolution by consent)

종래의 사회민주주의가 현실에서 걸었던 ‘동의에 의한 개량’에 머물지 않고서, 그렇다고 해서 ‘폭력에 의한 혁명’이라는 길을 택하지 않고서, 혁명이라는 사회의 거대한 질적 전환을 민주주의적인 방식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 598

마르크스주의자의 분석은 보편적 현상으로 파시즘을 파악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정치사상事象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실체론적 파악-독점자본이나 지배기구와 같은-이 중심이 되어 있으므로, 파시즘의 조직화 방법이나 단계, 혹은 전前파시즘적인 것에서 파시즘으로 이행하는 역학의 규명 등이 반드시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단순히 역사적으로 명확한 형태를 취하며 나타난 파시즘에 대해서 정확한 서술이나 정의를 내리는 것만이 아니라, 혼돈된 무정형적인 상황으로 인해 파시즘이 응고되어가는 과정을 가능한 한 법칙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 604

(사실 예전에는 파시즘을 하나의 역사적 체제로 보고, 부르주아민주주의->파시즘이라는 이행은 역사적으로 보다 고도의 단계로의 이행이며, 따라서 그 후에 오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혁명 이외에는 없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존재했다.)
현실적으로는 파쇼화도 군국주의화도 자본주의체제의 기반 위에서 충분히 가역적일 수 있다는 것은 역사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 605

결국 그런 개념 규정에 대해서도 단순한 교조주의와 단순한 경험주의를 피하고, 이러이러한 시각에서 조명을 하게 되면 대상의 이러이러한 측면이 혹은 이러이러한 역사적 동향이 조명을 받게 되는, 범주 사용과 대상의 구체적인 연관성을 언제나 문제삼아가는 수밖에 없다. - 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