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도 그렇고 스탈린도 그렇고
박정희도 그렇고 전두환도 그렇고
그들의 악행을 일일이 다 설명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나의 이유는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해서일 거고
다른 하나는 도대체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느냐일 겁니다
그런 인간들은 왜 그런 인간으로 살다 죽었을까요
온갖 패악질을 다 부렸지만
결국 말년이나 죽음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데도 말입니다
수백만의 사람을 죽일 수는 있지만
삶에서 평안과 행복을 얻지 못했지요.
무엇이 그들을 그런 인간으로 만들었을까요
이 한권의 책으로 스탈린이 어떤 인물인지 알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래도 이 한권의 책으로 그 잔인하고 끔찍했던 시대에 대해 어느만큼은 알 수 있겠지요
<속삭이는 사회>가 패악질을 당하는 보통 사람의 이야기라면
<스탈린 강철권력>은 패악질을 부리는 놈이 인생과 정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 묻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패악질을 멈추게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스탈린과 같은 인간이 되지 않고
보다 따뜻하고 지혜롭고 사랑이 많은 인간이 될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가 어린 시절이 드러나는 것을 꺼린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먼저 행복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가족이 자기에게 입힌 상처를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게 싫었다. 그는 아버지가 조금도 자랑스럽지 않았다. - 40
남자들은 당연히 집안을 다스리고 아내는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베사리온은 성질이 나쁘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43
그는 아들에게 어떤 온정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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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사리온은 느닷없이 화를 버럭 내며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성질 나쁜 남편이었다. 그는 장사를 해 큰돈을 벌고 싶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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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적인 장인으로서 성공하지 못하고 지역에서 존경을 잃자 화산이 폭발하듯 느닷없이 화를 내는 성질이 더욱 고약해졌을 것이다. 그의 음주는 통제 불가능해졌다. - 45
스탈린은 학대받았다는 사실을 강력히 부인했다. “아니, 그렇지 않았다. 우리 부모는 교육을 받지는 못했어도 절대 내게 함부로 하지 않았다”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그의 다른 회고록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는 딸 스테틀라나에게 한번은 어머니가 또 두들겨 맞기에 자기가 아버지에게 대들며 칼을 던졌다고 했다. 칼은 빗나갔고, 잔뜩 화가 난 베사리온이 이오시프에게 달려들었으나 동작이 느려 그를 잡지 못했다. 이오시프는 그 길로 달아나 아버지의 화가 제풀에 풀릴 때까지 이웃에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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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케도 그를 마구 때리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주가시빌리 집안은 폭력이 난무했을 것이고, 어린 이오시프는 그게 당연한 듯 여기며 자랐을 것이다. - 49
어려서 괴롭힘을 당한 많은 사람처럼 그도 자라면서 자신이 괴롭힐 사람을 찾았다. 물론 부모에게 맞고 자란다고 해서 모두 성격이 잔인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부는 그러며, 부모에게 맞고 자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폭력적인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의 폭력은 보상도 없고 예측할 수도 없어 이오시프의 성장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 그가 자라면서 강한 분노와 복수심을 지니게 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 50
케케 주가시빌리는 이오시프에게 엄격했을 뿐만 아니라 애정과 관심으로 아들을 숨막히게 했다. 스탈린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군 사령관 게오르기 주코프와 이야기하다 무심결에 자기 어머니는 자기가 여섯 살 때까지 어머니의 눈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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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케는 남편에게 실망하고 대신 아들 이오시프에게 높은 기대를 걸었다. 그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식이라는 사실도 이오시프에게 더욱 집착하게 했다. - 50
이오시프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고, 다른 소년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러나 거리로 나가자마자 그는 다른 도전에 맞서야 했다. 고리의 사내아이들은 작은 구역마다 패거리를 이루고 있었다. 치고받고 싸우는 일이 많았다…어른들의 눈을 피해 벌인 격투 시합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녀석들은 존경을 받았다. 주먹 싸움도 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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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동년배였던 코테 차르크비아니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하루도 누군가에게 맞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러면 그는 울며 집으로 돌아가거나 누군가에게 난폭하게 굴고는 했다”라고 썼다. - 51
모든 일차적인 자료는 하나같이 그가 경쟁자들에게 호전적이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그는 신앙심도 깊고 공부도 열심히 했으며, 성공하기로 마음먹었고, 그가 가는 길은 집안의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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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으나 학교 밖에서는 강인한 남자로 숭배받고 싶어했다. - 52
그가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의지를 꺾을 수 없었고, 아버지의 반복되는 폭력은 그에게 앞으로 되고 싶은 사람의 강력한 모델을 제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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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버지에게 공정함을 배우지 못했고 따라서 자신의 길을 가로막는 동시대인들에게도 전혀 공정함을 보이지 않았따. 그는 자기 구역에서 가장 강한 싸움꾼은 아니었지만, 다른 아이들은 꺼리는 방법으로 부족한 점을 메웠다. 그는 늘 최고의 자리에 올라 그곳에 머물고 싶었고 - 54
학교 친구였던 이오시프 이레마시빌리는 어린 주가시빌리가 싸움 시합에서 이기려고 계속 야비한 방법을 썼다고 기억했다. 우두머리가 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 60
어린 주가시빌리는 심술궂고 변덕스럽고 야심만만했지만 좌절도 했다. 그는 아무리 해도 패거리에서 다비드 마차바리아니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오시프가 그런 상황을 받아들인 것 같지는 않다. 그는 그런 상황이 싫고 화가 났다. 그는 재능이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주기를 바랐다…다른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자기를 존경해야 했다. - 61
러시아 제국은 완강하게 저항하는 예속민들을 가차없이 처벌했다. 고리 사람들은 분개했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오시프나 그의 친구들이나 그때 받은 인상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 권력이 사회의 삶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이며 사회에 어떤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려면 반드시 현상을 타개할 힘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또 정권을 안정시키려면 가차없는 처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 66
바투미의 동지들은 ‘그의 변덕과 독재자처럼 행동하는 성향’도 참을 수 없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들이 정책보다 태도와 행동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심술궂은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다. 야망이 큰 것도 그의 특징이었다. 그는 자기가 바라는 조건으로 유명한 혁명가가 되고 싶었고, 다른 사람이 시비를 걸면 그들이 틀렸고 어리석다고 말했다. - 98
주가시빌리가 대부분의 혁명가들보다 더 기꺼이 동지들의 목숨을 놓고 위험을 무릅썼을 가능성도 있다. 그는 자기중심적이고 타산저깅라 늘 자기 관심을 중시으로 상황을 판단했다. 그에게 사람들은 이념을 위해 써먹을 수 있을 때나 자신의 정치적 출세 또는 개인적 안락을 위해 써먹을 수 있을 때만 중요했다. - 141
그는 자신의 경향에 맞는 이념도 발견했다. 투쟁, 억압,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 당내 경쟁, 지도부와 근대성 등 볼셰비즘을 둘러싼 모든 것이 그의 목적에 잘 맞았고, 그는 이미 자신이 ‘프롤레타리아 대중’을 멋진 신세계로 이끌려는 당의 진정한 지도자라고 보았다. - 174
스탈린은 감정이 빈곤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가 함부로 하는 말이나 일상 생활에서 무심코 하는 행동 또는 그의 이기주의에 주변 사람들이 상처를 받기 쉬웠다. - 204
그래도 스탈린은 정치를 더 사랑했다. 그는 자기 내면 가장 깊숙이 있는 열망이 권력과 명성으로 충족되는 것을 발견했다. - 246
스탈린은 자신의 사임 요청이 거부된 후에야 평정을 되찾았다. 이로써 문제는 끝난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면 얼마나 분노하는 지 아무도 몰랐다. - 260
아직 시민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남자는 이렇게 자기 이름이 만천하에 공표되자 무척 기뻤다. - 272
스탈린은 볼셰비키 안에서는 보기 드물게 민족 문제에서 온건한 태도를 보였지만, 국가 폭력과 독재는 늘 지나칠 정도로 강력하게 옹호했다. 그는 인민위원회의의 적에게는 아주 가혹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284
향기로운 꽃에 끌리는 벌처럼 그는 테러에 끌렸다…얼마 안 가 그가 제멋대로 국가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게 분명해졌다. 에스토니아의 볼셰비키가 전보를 보내 ‘반혁명분자와 반역자’를 뿌리 뽑는 일을 상의했을 때, 그는 두말 할 나위 없이 찬성하는 답변을 보냈다. “강제수용소는 아주 훌륭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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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그의 거친 성격과 어울렸다. - 286
그에게는 힘이 곧 정의였고,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그는 마을에 불을 놓아 이웃 마을들이 겁에 질려 붉은 군대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만들었다. 공식적인 선전에서 소비에트 국가를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 가운데 하나라고 묘사되던 바로 그 농민들에게 이런 공포가 가해졌다. - 305
절대 복종만이 붉은 군대의 잔인한 공격에서 마을을 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했다. - 306
스탈린은 자신이 사령관이라는 것을 미치도록 증명하고 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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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은 자신이 지도자가 아니면 팀으로 일하기 싫어했다. - 311
그는 지나치게 자부심이 강하고 예민했다. 그는 트로츠키를 싫어했고, 제국군에 있었던 장교 엘리트들도 모조리 싫어했다. 그는 거의 애처로울 정도로 자신을 인정해주길 요구했고, 붉은 군대에서 그의 오만한 콧대를 꺾으려 하자 사임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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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존경을 표하지 않는 사람을 인민의 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트로츠키보다 강했다. - 311
그는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고…그는 자신이 받았다고 생각하는 멸시도 결코 잊지 않았다. - 329
선전 선동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만 강요하는 국가를 통치하는 정당에게는 지극히 중요한 정치 활동 - 339
1924년 1월21일, 레닌이 심장마비로 사망…정치국은 시신을 아주 특별하게 다루기로 했다. 미라로 만들어 붉은 광장에 세울 영묘에 영원히 전시하기로 한 것이다. 크루프스카야가 그런 유사종교적인 행위는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스탈린은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볼셰비즘의 창시자를 영묘에 모시기로 했다. - 391
스탈린과 크루프스카야는 레닌 숭배의 최고 사제를 자임하고 나섰다. 레닌 동상이 곳곳에 모습을 나타냈다. - 394
스탈린은 조직국에서 경쟁자들이 자기와 손을 잡지 않으면 마음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으로 그들을 대체했다. 스탈린의 지휘 아래 스탈린 그룹이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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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은 중앙위원회에도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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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은 자기 집단 성원들에게 충선뿐 아니라 능력도 요구했다. 그가 그들을 선택한 것은 그들의 개인적인 자질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기 곁에 있는 사람이 자기보다 지적으로 우월한 것은 바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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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음모와 동지애, 남자들의 거친 농담이 뒤섞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자기를 위해 일하면 그들의 이익을 돌봐주었다. 그들의 건강도 챙겼다. 일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 단점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들은 그의 말을 법으로 알았다. - 403
스탈린은 볼셰비즘을 위해 살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경쟁자들을 향한 결코 순수하지 않은 감정, 즉 질투와 원한, 복수심도 함께 있었다. - 450
스탈린은 싸움에서 이겨야겠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적을 짓밟아 뭉개버렸다. - 462
정치적으로 마녀 사냥을 하는 분위기가 갈수록 짙어졌다. 니콜라이 바우만은 과거에 통합 반대파였던 사람들을 부드럽게 달래려 한다는 이유로 중앙위원회에서 쫓겨났다. 스탈린과 몰로토프, 카가노비치는 초조했다. 그들의 정책은 거대한 도박을 품고 있었다. 정권을 강화하고 혁명을 심화하려고 그들은 정치, 경제, 사회에 포진한 수많은 적들을 공격했다. 그러려면 당과 군대, 오게페우를 적극적으로 배치할 필요가 있었다. 이들 기관의 지도자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그러나 국가 권력이 커지면서 이 기관들의 지도자들의 정치국을 넘볼 수 있는 위험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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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큰 나무들을 베어 쓰러뜨릴 때마다 오랜 세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조롱당하면서 상처받은 자아가 만족을 얻었다. 그의 기억력은 비범했고, 그가 앞으로 혼내줄 희생자들의 명단은 길었다. 그는 이제 자기편과 부하들까지 믿지 않았다. - 496
그는 그들의 아첨과 복종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 498
국가가 경제의 사적 부문을 국가 소유로 바꾸고 전체 경제의 덩치가 커지면서 지역 당 관리들은 막대한 권력을 얻었다. - 499
스탈린은 자신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소련의 일상 생활에서 더욱 고립되었다. 그는 이제 서기국의 사무실을 늘 열어놓지 않았다. 집단 농장도 방문하지 않았다. 503
스탈린이 모습을 감춘 것은 안전을 우려한 탓만은 아니었다. 사실은 이제 그가 직접 나서서 돌아다닐 필요가 없는 정치 구조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 503
크렘린은 상과 메달도 주었다. 학자뿐 아니라 비행기 조종사와 축구선수, 오페라 가수, 심지어는 서커스의 어릿광대까지 상을 주고 싶어했다. 해마다 수여하는 스탈린 상에는 특권과 상당한 액수의 수표가 따라왔다. 바로 스탈린이 이런 통제와 보상 체계를 만든 장본인이었다. - 538
그는 자신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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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나치게 화를 잘 내고 복수심이 강했다.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되면 몇 년씩 그것을 곱씹었다. 자신이 초래한 폭력의 결과는 개의치 않았다. 1918-1920년과 1920년대 말부터는 그가 주로 10월혁명을 적대하는 사회 집단에 있는 사람들에게 테러를 가했지만, 1930년대 중반부터는 그런 집단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까지 희생자로 삼기 시작했고,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당에서 함께 일한 동지들이었다. 그가 친구와 부하들에게 느닷없이 분노를 터뜨리고 그들을 고문하고 강제노동수용소에 보내고 처형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심각한 인격 장애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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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스탈린은 그의 사교성에서도 불구하고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가 사귄 친구들은 결국 충성심이 모자랐거나 아니면 죽었다. 그에게는 이제 가정의 안락도 지속적인 감정적 지지도 없었다. 첫 번째 아내는 젊어서 죽었고…그의 두 번째 아내는 자살했고, 권력의 자리에 오른 절친한 친구 가운데 키로프는 암살당했고, 오르조니키제는 결국 그의 전략에 반대했다. 다시 혼자가 된 그는 마음의 평화가 없었다. 그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인간 폭탄이었다 -592
예조프는 이제 이런 일에 능숙해져 열심히 열과 성을 다해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살인 기계 엔카베데가 스탈린 대신 소름 끼치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대량 학살은 1938년 봄, 여름, 가을까지 계속 되었다. 스탈린은 예조프에게 기계의 조종 장치를 맡기고 시동을 걸라고 명령한 뒤 만족스러울 때까지 계속 기계가 돌아가게 할 수 있었다.
스탈린은 한 번도 루반카의 지하 감방을 보지 않았다. 심지어 작전을 수행한 살인 기계도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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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록이 세부에서는 달라도 한 가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1937-1938년에 약 150만 명이 엔카베데에 체포된 것 같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결국 풀려난 사람은 22,000명 정도밖에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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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약75만 명이 총탄 세례를 받고 사라졌다. 공포 정치는 무시무시한 자신의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 610
숭배는 분명히 성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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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소한 일화는 많은 시민이, 그중에서도 특히 당국에 고마움을 느낀 사람들이 얼마나 스탈린을 찬양하고 싶어했는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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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찬양하고 싶은 내적 욕구는 순진한 시민들만이 아니라 많은 정치가와 지식인들도 경험했다. 그들은 그를 잠시 만나거나 흘끗 보았을 뿐이어도 자신이 은총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 622
그러나 분명히 섬유 노동자였던 할머니처럼 지도자를 정말 좋아하고 사랑한 소련 시민도 많았다. 1930년대에 모든 사람들의 상황이 나쁘지는 않았다. 승진한 사람들은 훨씬 많은 봉급과 집, 소비재를 제공해주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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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은 조잡했으나 승진한 사람들의 이기심과 잘 맞아떨어졌다. 그들은 세상에서 성공하고 싶은 야심만만하고 순종적인 젊은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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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가운데 일부는 정말 그를 찬양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새 행정 계급의 구성원들은 그에게 끝까지 충성을 바치려고 했다. 그가 그들에게 양지에 있는 자리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를 개혁하고 군사력을 키웠다. 그는 지도자, 우두머리, 대장이었다. 스탈린의 국가 질서에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스탈린의 이름은 위대했다. -625
공포 정치가 끝난 뒤에도 그는 승진한 사람들을 계속 자기편에 두려고 했다. 그리하여 직급에 따라 특권과 혜택에 차등을 두는 제도가 유지되었다. 사다리를 높이 올라갈수록 보상도 커졌다. 스탈린은 그들에게 뇌물을 주어 살인의 공범자로 만들었다. 숙청의 수혜자가 된 정부 관리들은 일정한 고소득과 함께 다른 사람들에게는 금지된 재화와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었다….승진한 관료들은 특권 엘리트층에 속했다. - 634
1930년대 내내 스탈린은 정치국을 비롯한 소련 정치 지도부 전체를 지배했지만, 공포 정치는 그를 다른 지도자들보다 유례 없이 높은 자리에 올려놓았다.
…
사적인 대화에서도 감히 그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 638
스탈린은 자신이 세운 것에 대한 어떤 기본적인 수정도 고려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강력했고 확신이 있었다. - 639
지도자 스탈린은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심리적으로 강박 관념에 시달린 대량 학살자였다. - 643
1932년 7월에 스탈린이 코민테른 집행위원회를 통해 독일 공산당에 제국의회 선출을 위한 선거 운동을 벌일 때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일명 나치당)이 아닌 사회민주당을 주적으로 삼으라고 명령하는 일이 일어났다. 나치츰에 맞선 투쟁보다 정치적 좌파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일에 우선 순위를 두라는 것이었다.
…
독일 공산당 지도자들은 스탈린의 지침에 깜짝 놀라 곧바로 모스크바에 대표단을 파견했다. 그들이 가장 시급히 대처해야 할 위협은 나치라고 항변하자, 스탈린은 그것도 고려했다고 대꾸했다. - 651
여러 관료가 소련 서부 지역에서 사회 경제적 양보를 통해 저항을 무력화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듣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꿈을 실현하는 데 침공의 목적이 있었다. 독일군과 나치 친위대, 미간 행정가들은 열등한 슬라브 민족을 죽을 때까지 착취할 수 있는 인력 자원으로 취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 715
소련의 많은 시민들은 현명한 가부장이 국가의 정치, 군사 기구들을 지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
만일 사람들이 그를 더 자주 보았다면, 그가 선량하고 현명하다는 환상이 깨졌을 것이다. 그가 모습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은 자기가 바라는 모습의 스탈린을 신봉할 수 있었다. - 765
다음날 크렘린에서 개선 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베푼 환영회에서 스탈린은 의기양양했다.
저 순박하고 평범하며 겸손한 사람들, 과학과 경제, 군사의 모든 분야에서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를 움직이는 ‘작은 톱니바퀴’ 같은 사람들을 위해 건배합시다. 그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들을 다수라 부르는 것은 그들이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인민’은 사회, 문화, 심리적 욕구와 열망이 있는, 피와 살을 가진 개인과 집단이 아니라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를 움직이는 작은 톱니바퀴에 지나지 않았다. 국가가 사회보다 우월했다. - 814
스탈린은 자신이 정당하게 기대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널리 사랑을 받았다. 그는 기분이 느긋해지면 자신을 동맹국 지도자들과 비교하기 좋아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지성과 분석력, 치밀한 계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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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이 자기가 천재라고 확신하게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실현하기 시작한 초강대국 지배자였다. 그의 이름이 공산당과 붉은 군대가 찬양하는 승리만큼이나 찬란하게 빛났다. 고리에서 온 구둣방 아들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이다. - 822
스탈린의 마음은 멈춰버린 시계 같았다. 1945년에 그가 개혁을 바라는 인민의 열망을 충족시킬 가망은 없었다. 그가 정책을 세우면서 전제한 것들은 딱딱하게 굳은 종유석처럼 변할 줄 몰랐다.
…
스탈린은 자신의 세계관 안에서만 생각하고 현재 작동 중인 기본 전제에서는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독재에 익숙해지면서 인간의 고통에 무감각해졌다. - 827
스탈린은 딸에게 무척 화가 났다. 그가 자신의 감정 세계에 들어오길 바라는 사람은 그의 기대에 따라야 했고, 그러지 않으면 그의 애정을 받을 수 없었다.
스탈린은 여전히 누군가 필요했고, 고독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별장에 있는 경호원들과 농담을 하며 외로움을 달랬다.
…
그러나 이런 어울림도 스탈린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고, 그의 마음은 자꾸 과거로 달려갔다. - 878
전쟁이 끝나고 얼마 안 되어 좌천시킨 지도자는 뱌체슬라프 몰로토프였다.
…
어쩌면 그는 몰로토프가 전시에 얻은 명성뿐 아니라 순종 러시아인으로서의 누리는 인기가 못마땅했을지도 모른다. 영국 언론이 몰로토프가 권력을 잡으려고 힘을 과시하는 것 같다는 추측 보도를 한 것도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을 것이다. - 895
레닌그라드 사건은 1938년 이후 처음으로 공산당 정치 엘리트가 무자비하게 숙청당한 사건이었다.
…
아마 전시에 보즈네센트키가 자기에게 함부로 대들어서 화가 났을 것이다. 게다가 보즈네센스키는 전후에 베스트셀러를 쓴 유일한 정치국원이기도 했다. 따라서 사령관 주코프가 눈엣가시였듯이 정치가로서 보즈네센스키의 위치가 올라가는 것도 불안했을 것이다. - 901
12월21일 당일에는 크렘린 위로 거대한 기구를 띄우고, 거기에 코밑수염을 기른 스탈린의 얼굴을 투사했다. 소련 전역에서 그의 생일을 축하하며 경의를 표하는 행진을 벌였다.
…
이때 스탈린이 보기 드물게 모습을 나타냈고, 그를 본 사람들은 그의 초췌한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들은 늘 그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사진만 보아 진짜 인간의 모습을 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쭈글쭈글한 노인네가 정말 위대한 스탈린이란 말인가! - 920
게다가 의심도 과도해 누가 자기 정책을 무산시키려 들지 않는지, 누가 지도자인 자기 자리를 노리지 않는지 늘 살피고 감시하느라 바빴다. - 955
스탈린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지냈다. 건물은 전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가 그곳에 있을 때면 늘 경호원 1,500명이 그의 사생활과 안전을 지켰다. 그는 별장의 숙소에서 혼자 잤고, 암살당할까 두려워 늘 마지막 순간까지 어느 침대에서 잘지 결정하지 않았다. - 957
나이가 들어도 그의 성질은 부드러워지지 않았다. - 958
스탈린은 1930년대 중반부터 허물없이 친하게 지낸 사람들을 점차 자기 곁에서 떼어냈다.
…
1951-1952년 겨울에 밍그렐의 주요 인물들이 체포되면서 베리아는 자기도 곧 그들 가운데 하나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스탈린이 1952년 봄에 숙청을 멈추었지만, 베리아는 그가 평소에 친근하게 대하지 않고 예의 바르게 구는 것에 주목했다. 기분 나쁜 징조였다. - 963
그는 늘 부하들 사이의 유대를 끊으려고 했다. - 965
스탈린의 지도 아래 수백만을 굴라크에 처넣어 죽음에 이르게 했던 사람들이 의식을 잃고 마비된 채 서서히 죽어가는 늙은이를 보고 벌벌 떨었다. - 976
스탈린의 자리를 둘러싼 권력 투쟁이 시작되었다. - 978
스탈린의 시체가 채 식기도 전에 그와 함께 범죄를 저질렀던 지도자들이 다시 통치 집단으로 등장한 것이다. - 984
스탈린의 억압을 증오했지만 그를 존경하고 숭배하는 사람도 많았다. 독재자는 죽어서도 마술을 부리고 있었다. - 990
하지만 사회에서 그는 잊혀지지 않았다. 그의 독재가 재평가되었지만 스탈린과 그가 통치하던 시절에 대한 향수는 여전히 존재했다. 2000년에 실시된 여론 조사는 이것을 확인해주었다. 20세기 역사에서 가장 찬사를 보낼 만한 시기를 묻자, 응답자 대부분이 브레즈네프 시대를 꼽았다. 흐루시초프 시대를 꼽은 응답자는 30퍼센트였다…그러나 스탈린 독재 시대도 26퍼센트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올렸다. - 997
스탈린의 경우에 그를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은-적어도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은- 1953년 전에 자신이나 자기 부모가 이룩한 것에 보이는 경멸에 반발하고 있다. 푸틴처럼 그들은 가족의 이름을 더럽히는 얼룩을 제거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은 러시아에서 공산주의가 무너진 뒤 그들이 놓인 불쾌한 상황에도 반발하고 있다.
그들은 스탈린이 그들에게 자부심과 질서, 예측 가능성을 주었다고 생각하고, 그의 통치가 체계적인 억압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그의 시대는 현재의 삶을 위해 신화를 찾는 개인과 집단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는 허구가 되었다. - 999
그래도 그가 그렇게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기꺼이 따르는 핵심 집단을 중앙에 형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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