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릴 때는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은 tv에 나오는 ‘토요명화’ ‘명화극장’ 등의 시간뿐이었습니다. 극장은 가 본 적도 없고, 컴퓨터나 인터넷도 없었으니까요.
주말이 되면 영화 하는 시간을 기다렸다 보는데, 그때 많이 봤던 영화의 내용이 2차세계대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주로 미군이 착한 편, 독일군이 나쁜 편이었지요.
독일군은 그냥 나쁜 놈이었습니다. 왜 독일군이 나쁜 놈인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일본놈이 나쁜 놈이듯 독일놈도 그냥 나쁜 놈이었지요.
히틀러가 뭔지, 유대인이 뭔지도 몰랐어요.
세월이 흐르고, 세상 돌아가는 일이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조금씩 알게 됐어요. 아주 조금 알게 된 것 같은데도 너무 놀랍더라구요.
어떻게 이런 일이…
첫 ‘어떻게 이런 일이’는 유대인 학살이었어요. 도대체 인간이 어떻게 다른 인간을 이렇게 할 수 있나 싶더라구요.
너무 충격이어서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회의감까지 들더라구요.
게다가, 그동안 너무 당연히 잘 안다고 느꼈던 것이 아닐 수 있구나 싶었어요.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면서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을까, 내가 막연히 안다고 생각했지만 잘 모르고 있겠구나 싶더라구요.
두번째는 ‘어떻게 이런 일이’는 전쟁이었어요. 어릴 때 봤던 영화는 그야말로 영웅이 악당을 물치리는 거였어요.
그런데 영웅과 악당의 이야기라고만 하기에는 너무 많이 일이 있었더라구요.
1979에 나온 <서부전선 이상없다>와 같은 영화는 정말 충격이었어요.
세번째 ‘어떻게 이런 일이’는 히틀러와 나치, 독일인들에 관한 것이었어요. 도대체 어떻게 저런 인간이…싶었던 거지요.
어떤 일/사건이 있었는지를 알아보다 그럼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해 봤지요. 그러다보니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히틀러와 독일인들, 처음에는 그냥 미친놈들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작게나마 자료를 찾아보니…아…
그냥 미친놈들이라고만 하기에는…
<히틀러-파시즘의 진화>는 히틀러가 어떻게 살고, 정치를 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죽고 등의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에요.
히틀러가 활동하던 그 당시의 히틀러와 독일인들의 모습을 보여줘요. 히틀러의 연설과 독일인들의 행진 등.
제가 계속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답을 찾고 있는 부분이기도 해요
왜 히틀러는 히틀러로 생각을 하고 행동을 했을까.
왜 저 많은 독일인들은 저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행동을 했을까.
잠깐 곁가지 얘기를 하자면, 여성 연쇄 살인범의 심리와 행동에 관한 <마인드헌터>의 물음과도 비슷해요
도대체 왜 저 인간들은 저렇게 사람을 죽였을까 싶어 그 원인이나 과정을 찾아가는 거지요.
<히틀러-파시즘의 진화>에 보면 히틀러는 뇌물을 받지 않았다는 말이 나와요.
인간 행동의 동기를 이익의 관점에서 보려는 시도가 많아요.
하지만 히틀러나 연쇄살인범의 경우는 경제적 이익과는 관계 없는 행동이었어요.
그러면 그들은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그렇게 죽어간 여성들이 살인범들에게 욕을 한 것도 아니고 때린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살인범들은 여성들을 미워하고 납치하고 고문했어요.
그렇게 죽어간 유대인들이 다른 독일인들에게 욕을 한 것도 아니고 때린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독일인들은 유대인들을 때리고 가두고 죽였어요.
내가 너에게 당한 것이 있으니 복수를 하겠다는 것도 아닌 거지요.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낯설고 이상한 외계인도 아니었구요.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보여줘요. 독일인들의 표정이나 몸짓, 목소리를 들으면 마치 딴 세상 같기도 해요.
그러다가 또 한편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하지요. 독일인들의 저런 모습이 그들만의 모습은 아닐 수 있겠구나 싶은 거지요.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라는 책이 있어요. 2차세계대전에서 일본군으로 참전했던 일본인들의 읽기가 담겨 있어요.
그들은 미국의 군함을 향해 비행기를 몰아 자폭을 하는 카미카제였지요.
도대체 어떻게 자기가 죽으면서까지 그런 일을 벌였을까요? 어쩌면 명령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을지도 몰라요.
그냥 뭘 잘 몰라서, 속임수에 넘어가서라고만 하기에는...오히려 그들은 배운 것도 많고 아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었지요.
그들의 정신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고, 그래서 그런 일까지 벌였다고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요.
위 사진은 카미카제가 되어 출발하는 군인을 향해 꽃을 들고 환송을 하는 여학생들의 모습이에요.
자폭을 해서 곧 죽으러 가는 사람들에게 꽃을 흔들며 환송을 한다는 게…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국가기록원>의 자료에 따르면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베트남 파병 병력의 누계는 32만 명에 달했다’라고 하네요.
미국이 베트남을 침공하는데, 한국도 동참을 했던 거지요.
남의 나라 침공에 32만명이 참여 또는 동원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지지/응원했지요. 아직까지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구요.
히틀러와 독일 때문에 수백만의 유대인들이 학살되었고, 수천만의 사람들이 전쟁에서 죽었어요.
너무나 큰 사건이어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죄다 알기조차 어렵겠지요.
히틀러의 이상한(?) 아니면 반사회적인 심리 상태, 그리고 그에 동조하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던 독일인들.
일본에도, 한국에도 그런 비슷한 심리 상태와 대중의 행동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게 제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이유에요.
인간이 그런 식의 심리 상태를 가질 수 있고, 그런 식의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이 히틀러와 독일의 일만이 아니라 세상 곳곳에서 벌어졌다는 것.
<히틀러-파시즘의 진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수만인지 수십만인지 모를 그 수많은 사람들,
그 수많은 사람들이 자로 잰 듯 줄을 지어 있고
그 수많은 사람들이 어두운 밤에 횃불을 들고 행진을 하고
그 수많은 사람들이 히틀러를 향해 손을 흔들고 꽃을 뿌리고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이었습니다.
놀랍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저것이 인간인가 싶기도 하고
저것이 인간이구나 싶기도 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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