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형태는 실로 이처럼 “피지배자를 중대한 시점에서 지배 신분의 정신적 세계로부터 배제한다)는 점에 그 본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것 때문에 현실의 정치적 지배는 순수한 지배관계(위에서 말한 주인-노예관계)만으로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귀결을 낳게 된다.
노예의 주인에 대한 복종에서는, 복종의 자발성이 제로 혹은 제로에 가까운 정도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거기에는 본래 복종행위가 있다기보다도 복종이라는 사실상태가 있는 데 그칠 뿐이다. 주인의 채찍이 둔해지거나 혹은 쇠사슬이 풀리는 정도에 따라서, 노예의 사보타주 정도는 이른바 물리적 필연으로 커지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의 생산성이라는 점에서는 노예 노동만큼 비능률적인 것은 없다. 생산력의 발전이 어느 단계에 이르게 되면, 대부분의 경우 노예제가 그 사회의 지배적인 생산양식이 되지 못하고 부역지대의 형태로 하거나 현물지대의 형태로 하건, 어쨌든 필요노동 부분과 잉여노동 부분의 귀속관계가 보다 객관화되는 그런 형태로 이행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하물며 정치적 사회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 그와 같은 긴장관계밖에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피지배자를 억압하기 위해서 지배자가 유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권력기구는 쓸데없이 거대하기만 할뿐 아니라 대내관계와 더불어 모든 정치적 사회의 존재근거인 대외적 방어라는 면에서 현져한 취약성과 위험성을 배태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모든 통치관계는 한편으로는 권력, 부, 명예, 지식, 기술 등의 가치를 다양한 정도와 양식으로 피지배자들에게 분배해줌으로써 본래의 지배관계를 중화시키도록 하는 물적 기구와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통치를 피지배자의 심정 속에 내면화함으로써 복종의 자발성을 불러일으키려는 정신적인 장치도 발전시켜온 것이다. -472
- 마루야마 마사오,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한길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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