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의 베르디 <맥베스>를 보았습니다.
극이나 노래도 그렇고, 무대나 의상, 소품 같은 것들도 확확 다가오는 작품이었습니다.
커다란 눈처럼 생긴 무대 장치는…<전설의 고향>에 나올 법한 우리 개인 개인이 어찌하기 어려운 더 큰 힘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더 큰 힘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거지요.
곳곳에 펼쳐지는 붉은 색은…죽고 죽이는 비참한 인간의 모습 같기도 하고, 운명과도 같은 늪에 빠진 인간의 처절한 모습 같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아예 그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면 모를까, 일단 한번 그 길, 권력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고 나니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거지요.
예전에 서울시오페라단이 했던 <맥베드>를 보았을 때는 뭐랄까…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가 죄책감과 고통을직접 표현하는 것이 크게 와 닿았다면…이번엔…
인물들의 자기 표현이 뿐만아니라 그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것들이 그들이 빠져 있고, 헤어날 수 없는 굴레 같이 느껴졌습니다.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는 왜 그렇게 권력에 집착했던 걸까요
권력 자체도 역시 가치이며, 게다가 그것은 타인(집단)의 제 가치의 박탈을 포함하는 인간관계의 통제이므로, 권력은 다른 어떠한 가치를 추구하는 기반으로서도 유효도가 높다.- 마루야마 마사오,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깊게 생각을 했든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그리 했든 아무튼 권력을 가지면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여겼겠지요.
권력을 잡으면 이제 꿈 같은 행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 같았겠지요. 그런데 정작 그 둘의 삶은 죄책감과 후회로 휘청거립니다.
게다가 확보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또 누군가를 죽여야 하고, 또 끝없이 투쟁을 해야 하는 거지요.
홉스가 이미 예리하게 통찰했던 것처럼 “꼭 알맞은 권력에 인간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보다 많은 권력을 얻지 않으면 현재 가지고 있는 권력도 확보할 수 없다”는 권력 특유의 다이내미즘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마루야마 마사오,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권력을 얻기 위해 누군가를 해치고 죽였으니 반드시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원한을 품고 복수를 하고 싶어 할 겁니다.
그들의 행동이 부정의하거나 잘못됐다 여기는 사람들까지 분한 마음을 품고 욕을 하고 반란을 일으키겠지요.
또한 권력이 주는 이익이나 매력 때문에라도 누군가는 호시탐탐 그 자리를 넘볼 겁니다. 조선의 왕들이 불안에 떨었던 이유도 그때문이었을 거구요.
최고의 권력을 얻는 그 순간,
거대하고 강력한 투쟁의 늪에 빠지는 겁니다.
지켜내지 못하면 뺏기게 되고,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을 판인 거지요.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순간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큰 올가미에 매이는 순간이 되는 거지요.
극 가운데 붉은 천이 무대 한가득 길게 드리우듯이
자유를 얻었다는 그 순간이 사슬에 묶이는 순간이 되는 겁니다.
윤석열과 김건희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을 얻었다고 생각한 그 순간부터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감옥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또 누군가를 공격하고 감옥으로 보내고
위험이 될만한 인물을 내쫓고 자신을 방어해 줄 사람을 자리에 앉히고
제도를 바꾸고 언론을 압박하는 등의 난리를 부리지요.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원하지 않았고 예상하지 않았던 일들에 대응하는데도 정신이 없고 바쁠 겁니다.
까닥 말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온갖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여차하면 박근혜가 그랬듯이 자리에서 쫓겨나 감옥을 갇힐 수 있으니까요.
그들이 원해서 갖게 된 것은 무엇이고
그들이 원하지 않았지만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가 권력을 쥐는 순간 옴싹달싹할 수 없는 권력의 사슬에 매이듯이
윤석열과 김건희 또한 지금 그 사슬에 매여 허우적대고 있는 건 아닐까요
레이디 맥베스는 정신이 이상해져서 헛소리를 해대지요.
맥베스는 죽어서야 안식을 얻었다고 하구요.
전두환은 끝내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자는 자기 할아버지를 학살자라고 했습니다.
만약 저세상이나 영혼이라는 게 있다면 전두환은 자신의 손자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게 될까요
권력자의 말로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다른 사람을 많이 괴롭힌 사람일수록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뿐만 아니라
남의 눈에 피눈물이 흐르게한만큼 자신도 세상의 손가락질에서 두고 두고 벗어나지 못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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