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본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이것이 세번째 입니다. <소년 아메드>도 좋았고, <내일을 위한 시간>도 좋았습니다.
<로제타>는 내용도 그렇고 영상도 그렇고 연기도 그렇고 모두 모두 좋은 영화였습니다.
그런데…그냥 좋다고만 하기에는…
나쁘다는 게 아니라…로제타의 삶이…ㅠㅠ
영화의 시작부터가 마음에 쿵 하고 다가왔습니다.
우당탕탕 쿵쾅거리며 씩씩하는 그녀의 뒷모습.
영화 내내 흔들흔들합니다.
그냥 흔들거리는 것만이 아니라 진흙탕에 빠져서 허우적댑니다.
왜 이렇게 로제타의 삶은 뭐 하나 쉽게 풀리는 게 없을까요.
로제타가 뭐 특별한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높은 지위를 갖겠다는 것도 아니고, 많은 돈을 벌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평범한 삶’을 찾고 싶은 것뿐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때가 되면 음식을 먹고, 시끌할 때도 있지만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고.
그냥 그런 ‘평범한 삶’을 꿈꾸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그토록 어려운 일이라니…
그러고보면 로제타만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우리 사는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그저 ‘평범한 삶’을 꿈꾸는 데 그것을 이룰 수 없어서 힘겨워 합니다.
그 단순한 것이 왜 그렇게도 힘든 일인지…
‘그래도 살다보면 좋은 날이 올거야’라거나 ‘세상 일 다 마음 먹기 달린 거지’라는 말들이 오늘은 참 공허한 소리로 들립니다.
도대체 그 좋은 날은 언제 오는 걸까요? 로제타가 진흙탕 같은 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마음을 먹지 않아서일까요?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도 살 수 있고 저렇게도 살 수 있는 여유로운 사람들의 한가한 충고인 걸까요?
이 영화 앞에서는 저조차 희망을 갖자거나 내일을 꿈꾸자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절망하자거나 모든 것을 포기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로제타가 저토록 아등바등 씩씩대고 버둥거리며 살아보려고 하는데 제가 어떻게 절망이니 포기니 같은 말을 떠올릴 수 있겠습니까.
희망이란 말도 절망이란 말도 가벼운 주둥이 놀림처럼 느껴지는 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입김이 나도록 춥고, 시시때때로 아픈 인생입니다.
어떻게 한 인간의 삶을 바라보고, 느낄지에 대해 깊은 깨달음 같은 걸 준 영화입니다.
에밀 졸라 <목로주점>에 나오는 제르베즈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구요.
다른 때 같았으면 이렇게 정말 훌륭한 작품을 만든 감독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은…감사하다고 하기에는…감사하지 않다거나 작품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로제타와 <로제타> 앞에서는 쉽게 무언가 긍정적인 말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짙도록 쓰린 한 인생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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