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흐테르는 여행 중 감시의 시선에 차츰 익숙해졌지만,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나는 전적으로 무감한 인간만은 아니다. 나는 지속적인 부담감이 무척 싫다. 그렇지만 나 자신 안으로 침잠함으로써 내가 느끼는 역겨움과 싸울 수 있었다” - 312
피셔디스카우는 이렇게 썼다. “그와 같은 인간을 한두 마디로 묘사하는 건 억지스럽거니와 되지도 않을 불가능한 일이다. 리흐테르는 선뜻 매력을 발산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 안으로 침잠하곤 했다.” - 345
심리학자 앨런 윌리스는 저서 <사람들은 어떻게 바뀌는가>에서 대중과의 만남이 리흐테르로 하여금 자신의 내부로 침잠하도록 하였다며 이렇게 적고 있다
…
만약 이를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이런 정도가 될 것이다. ‘나는 중요한 일을 시도하려 한다. 그리고 나는 최대한 진지한 태도로 이 일에 임하려 한다. 나는 아름다움과 의미를 창조하려 작정하고 있지만, 온 세상 모든 것이 이러한 노력을 위협한다. 기침 소리, 지각 관객, 3열에 앉은 수다쟁이 여인들, 그리고 연주 자체에 상존하는 위험들, 즉 집중력과 기억력 상실, 착각, 힘 빠진 손 등 이 모든 것들이 내 시도를 가로막는 장애물들이다. 나는 열정을 동원하여 그들과 맞서고 내 목적을 보호하고자 한다 - 381
- 카를 오게 라스무센,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피아니스트>, 풍월당
그의 연주를 들으면 그가 외향적이거나 과시적인 인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이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처럼
뭔가 빠르고 힘차고 강한 소리로 왔다갔다 할 때조차 그렇습니다.
리흐테르가 왜 침잠하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개인적인 성향일 수도 있고, 소련이라는 사회 상황과도 관련 있을 수 있겠지요.
어떤 사람은 외로움과 고독을 나눠 비교하기도 했지요.
외로움이 외부나 다른 사람과의 단절 때문에 오는 말 그대로 외로움이라면
고독은 작가나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고 발견하고 만들기 위해 홀로 집중할 때를 말한다구요.
외톨이가 아니라 홀로서기일 수 있는 거지요.
그의 음악을 떠올리고 그가 내면으로 침잠했다는 말을 들으면
아...그래서 이런 연주를 하게 됐구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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