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사는 과거의 행위를 계속해서 자신의 문제로 의식해 왔다. ‘시켜서 한 일이다, 모두가 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한, 결국은 자신의 인생도 없었던 것이 된다. 개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살다 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집단에 고정된, 단순히 집단 속의 한 사람으로 살다 가는 것이 돼버린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 다 자신의 행위로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되묻는 것만이 자신의 한 번뿐인 삶을 되찾는 방법이다. 그것이 유아사가 보낸 패전 후의 나날이었다. - 63
구라하시가 잔뜩 구겨진 종이쪽지를 아버지로부터 건네받은 것은, 아버지가 식도암으로 돌아가시기 1주일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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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으면 이것을 묘비에 새겨다오. 잊지 말고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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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舊 군대 근무 12년 8개월
그동안 10년을 중국 주둔 육군 하급간부(전 헌병 준위)로서 톈진, 베이징, 산시성의 린펀과 윈청, 구 만주 둥닝 등의 헌병대에서 근무했다. 침략전쟁에 참가.
중국 인민에게 했던 행위는 죄송스럽고, 오로지 사죄하는 바입니다. - 398
국가가 침략전쟁에 대해 사죄하려 하지 않을 때, 아버지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사죄했다. 일흔한 살의 생애를 전쟁에 대한 사죄로 마무리함으로써, ‘시켜서 한 전쟁’에서 ‘스스로 한 전쟁’으로 바꿔냈다. 그것은 ‘시키는 대로 하는 인간’으로 자라났지만, 죽을 때는 ‘스스로 하는 인간’, 비판하고 행동의 책임을 지는 인간으로 죽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 413
- 노다 마사아키, <전쟁과 죄책>, 또다른우주
말 그대로 위에서 시켜서 조선인도 중국인도 유대인도 폴란드인도 죽였다고 하지요.
위에서 시켜서 한 일이니까 책임이 없을까요?
군인은 명령에 따랐으니 책임이 없고 공무원은 지시에 따랐으니 책임이 없다면 과연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 걸까요?
오직 천황이나 도조 히데키, 히틀러나 괴링에게만 책임이 한정되는 걸까요?
죽임당한 사람의 입장에서도 과연 시켜서 한 놈은 책임없는 걸까요?
아니면 시킨 놈은 시킨 책임이 있고 실행한 놈은 실행한 책임이 있는 걸까요?
수십년이 지나도 유대인을 학살에 참여했던 독일군을 찾아내서 처벌하듯이
마찬가지로 수십년이 지나더라도 팔레스타인인 학살에 참여했던 이스라엘군을 찾아내서 처벌해야겠지요.
뭉뚱그려 이스라엘의 책임이다, 총리였던 네타냐후의 책임이다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한명 한명 이스라엘의 학살 가담자를 찾아서 재판을 하고 처벌을 해야 할 겁니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08035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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