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와는 강한 척하는 인간의 어쩔 도리 없는 나약함을 줄곧 보아왔다. 만주사변 직후 펑텐에서 경비를 서던 학생들의 공포심과 그것을 견디다 못한 살인,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의 초년병 교육 시절, 인격이 퇴행하여 죽음에 빨려들어 가던 병사들의 모습, 스자좡병원과 베이징 제1육군병원에서 전쟁 영양실조증으로 말라비틀어지고 왜소하게 오그라들어 죽어가던 병사들, 혹은 자살하는 병사, 그들은 약탈 전쟁에 적응할 수 없음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도망죄로 총살당하기 직전의 병사들. - 125
우리는 그냥 ‘사과하고 용서합시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 베이징 땅에서, 제 눈앞에서 구덩이를 파고 목이 베어져 죽어간 중국인들을 보았습니다. 목이 잘리는 순간에도 그 사람들이 그대로 죽을 수 없어 ‘일본 살인마’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 127
형은 근위병이었다. 근위병은 궁성을 지키는 일왕 직속 군대이며, 가족을 조사한 후 선발한다. 그런 가정에서 태어나, 산촌에서 무럭무럭 자란 오노시타는 ‘전쟁이란 일본의 군대와 중국의 군대가 격렬하게 싸워 이긴 쪽이 여러 가지 요구를 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확약을 하게 한 뒤 종전에 이르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배웠고 마을 어른들도 그렇게 말했으며, 신문이나 라디오도 그렇게 전했다.
그러나 실제로 겪어본 전쟁은 식량도 제대로 배급받지 못하고, 마음들을 습격해 강도, 방화, 강간을 저지르는 집단적인 난동에 불과했다. 더구나 3년이 지나도 병장이 되지 못하는 상등병들이 그 울적함을 달래려 살인을 했다. 그들은 주둔지의 위안소와는 달리 마을에서는 공짜로 여자를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타락한 무리였다. - 375
- 노다 마사아키, <전쟁과 죄책>, 또다른우주
많은 한국인들이 6.25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습니까. 얼마나 많이 두려움과 분노와 울분을 느꼈습니까.
누군가는 쉽게 말합니다.
"까짓거 한판 뜨자!"
아니면 심지어 아주 낭만적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조국의 영광을 위해 내가 멋지게 한번 싸우고 오지 뭐"
하지만 정말 전쟁이란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고 낭만적인 일입니까.
영화로도 만들어진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없다>에도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전쟁에 대해 말로만 전해들은 남학생들이 전쟁을 까짓거 별 일 아닌 것으로 여기지요.
일본인들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막상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이들은 결코 쉬운 일도 낭만적인 일도 아닌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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