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냐 야만이냐 노암 촘스키 [패권인가 생존인가]를 읽고
지 난 06년 9월 유엔 총회장에서 재미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볼리바리안 혁명으로 사회주의 운동을 펼쳐가겠다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유엔 총회장에서 미국을 조롱했던 거죠. 그리고 그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책을 한 권 권했는데, 그 책이 노암 촘스키의 ‘패권인가 생존인가 - 미국은 지금 어디로 가는가’입니다.
우주도 전쟁터
우리의 군사력은 잠재적인 적들이 미국의 국력을 능가하거나 대등해지겠다는 희망 하에서 군사력 증강을 추구하는 것을 단념하도록 할 만큼 충분히 강해질 것이다. - 본문 19쪽
2002 년 가을, 미국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에 대한 발표 내용입니다. 저는 이 내용을 읽으며 섬뜩함을 느꼈습니다. 오직 군사력만으로 한 치의 오차나 조금의 변화도 허용치 않겠다는 ‘결의(?)’에 찬 표현이지요. 소련이 망가진 뒤에 가뜩이나 미국에 대응할 만한 힘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은 거울을 보며 뽀빠이마냥 양팔을 들어올리고는 ‘난 더 강해져야 해, 더 강해져야 해’ 하며 주문을 외우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이런 태도는 지구라는 별만으로는 공간이 부족했는지 우주까지 전쟁터로 만들고 있습니다.
국 가안보 전략이 발표되고 몇 주일 후에 수립된 계획은 우주 시스템을 “우리 나라의 국방 효율성의 열쇠”로 보고 있다. 미국은 우주의 “통제”에서 “소유”로 나아가야 하며, 우주의 소유는 국가안보 전략에 따라 영속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주의 소유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 즉각적인 교전”을 가능하게 할 것이며, 따라서 “우주로부터의 공격”이 전투계획의 일부로 편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 본문 289쪽
이 런 식의 결의(?)를 밝힌 뒤에 첫 희생자로 이라크가 선택 되었습니다. 91년 1차 이라크 침공 뒤에 10여년의 걸친 경제제재로 어린이 50~60만 명을 포함해 100만 명 이상을 살해한 미국이 핵무기도, 화학무기도, 오사마 빈 라덴과도 관계가 없는 이라크를 공격한 겁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껍데기만 남은 유엔마저 훌훌 벗어 던지죠.
백악관의 앤드루 카드 수석보좌관은 파월의 발언에 동조하여 “유엔은 회의를 열고 토의를 할 수 있으나, 우리는 그들의 허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 본문 44쪽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국 제정치학에서 중요한 사례로 나오는 것 가운데 하나로 ‘쿠바 미사일 위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소련이 미국 바로 밑에 있는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려고 하자 미국과 소련 사이에 핵전쟁까지 벌어질 뻔 했던 사건이라고 흔히 말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연 그것이 ‘쿠바’ 미사일 위기였냐 하는 것입니다.
1959 년 친미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쿠바 혁명이 일어난 뒤 미국은 쿠바 정부를 뒤엎기 위해 온갖 노략질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미국이 지원하는 테러리스트들이 수차례 쿠바를 군사 공격하였고, 미국의 직접 침공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쿠바의 선택은 소련 쪽으로 기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즉, ‘쿠바’ 미사일 위기가 아니라 ‘미국’ 침공 위기였던 거죠. 하지만 당시의 사건을 가리키는 명칭에서는 마치 쿠바가 무슨 큰 문제라도 일으킬 듯이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미국의 대쿠바 봉쇄정책과 공격위협이 계속되고 있지만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 미국”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정치와 언론, 교육, 문화 등을 통해 대중의 의식이 조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예로, 우리는 21세기의 주요한 사건으로 ‘9.11 테러’ 를 기억합니다. 그렇다면 1988년 미군이 이란 민간 항공기를 격추시켜 300명 가량이 사망한 사건은 어떻습니까? 니카라과에서 산디니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군사공격과 학살을 감행하고 경제봉쇄 정책을 취해 결국에는 정권을 무너뜨린 것은 어떻습니까? 인도네시아 공산당이 민중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인도네시아를 움직이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이 수하르토 독재정권을 수립하면서 대량학살이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미 국 항공기들이 리비아를 폭격하여 수십 명의 일반시민들을 살해했다. 이 폭격은 TV의 황금시간대를 겨냥한 역사상 최초의 테러 공격이었다. 그것은 모든 주요 TV 방송의 저녁 뉴스 방송 시작 시간에 맞추어졌는데, 이는 병참 지원상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감안할 때 대단한 기술적 묘기였다. - 본문 122, 123쪽
다 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의 사건이나 상황을 두고 지배집단과 저항집단이 다른 의견을 가지는 것뿐만 아니라 기억하는 사실 자체가 달라야 합니다. ‘9.11’만을 기억하고 미국의 리비아 폭격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코끼리 다리를 붙잡고 이것이 코끼리의 전부라고 말하는 꼴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의지만 있다면, 기회는 있다
세상에 여러 사람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노암 촘스키의 글을 읽으면 ‘이 사람 정말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상대가 빼도 박도 할 수 없도록 치밀하게 자료를 제시하고, 단순히 자료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해석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패권인가 생존인가]를 읽으면서 로자 룩셈부르크라는 사람이 던졌다는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아 마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는 질문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던져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한국만 해도 스스로를 보수보다는 진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조차 생활의 안정을 만끽하며 다른 이들의 고통보다는 자신의 안락함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 지만 나의 삶이 나른하다고 해서 다른 이들의 삶도 나른한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혁명이란 것을 조롱꺼리나 가게에서 살 수 있는 상품쯤으로 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또 어떤 사람은 울분이 터져 미칠 것 같은 이 놈의 세상이, 그 뿌리부터 바뀌어야 숨을 쉴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해석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세상을 바꾸는 일이 되는 겁니다.
지 금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선택하고 있습니까? 그리 길지 않은 자기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어떤 방향으로 진행시키고 있습니까? 만약 그 방향이 썩은 세상의 뿌리를 자르고 희망의 싹을 틔우는 일이라면 우리는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 겁니다. 오늘은 비록 우리가 미국의 이라크 침략조차 막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들의 폭력보다 강한 우리의 의지가 서럽도록 아픈 세상을 감싸게 될 것입니다.
위 기에 처한 우리 인류의 미래가 이들 민중세력이 어떻게 발전하느냐에 따라서 크게 좌우될 것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의지만 있다면, 기회는 있다. - 본문 298, 29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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