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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릭트 9]를 보고

순돌이 아빠^.^ 2010. 7. 9. 21:42


 

영화의 줄거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을 인간들이 ‘디스트릭트 9’이라는 지역에 몰아넣고 있다가 문제가 생기니깐 ‘디스트릭트 10’이라는 지역으로 옮기려고 하고,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고 우주선이 다시 움직여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인도주의?

 

외계인도 인간과 같이 말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존재이지만 그저 인간들에게는 통제하고 관리하고 지배해야할 대상일 뿐입니다. ‘골치 아픈 것들’은 한 곳에 몰아넣고 제발 눈에 안 띄도록 해야 할 뿐이지요. ET에서와 같은 인간과 외계인 사이의 우정은 없습니다. 가정의 평화를 깨는 골칫덩어리일 뿐이지요.

 

그나마 나은 경우가 주인공 남자인데요, 이 남자는 MNU라는 외계인 관리 회사에서 일합니다. MNU는 외계인을 잡아다 생체실험도 하고 그러지요. 겉으로는 지구의 평화를 내세우지만 무기회사이기도 한 MNU가 진짜 원하는 것은 외계인만이 사용할 수 있는 외계인 무기의 사용 방법을 알아내는 겁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용병을 동원해 외계인들을 때려 잡구요. 이름이 MNU 곧 다국적 연합. 거구로 읽으면 UNM이지요. 하는 꼴이 꼭 미국이나 UN과 같습니다.

 

주인공이 '그나마 나은‘ 경우라고 하는 것은 그나마 이 인간은 좀 덜 잔인하고, 외계인들을 쫓아낼 때도 ’법‘을 입에 올릴 줄 알거든요. 다른 인간들에 비해 덜 잔인하다는 거지 이 인간 또한 외계인의 알을 불태워 버리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이나 레바논 어린이들을 죽여 놓고 ’테러의 씨앗을 없앴다‘며 자랑스러워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인간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자신의 일을 따라 다니며 취재하는 텔레비전 카메라입니다. 카메라 앞에서는 어떻게든 뭔가 있는 척 하며 근사하게 꾸미려 하지요. 이 또한 UN이나 EU와 같습니다.

 

주인공이 ‘외계인 다루는 일’을 하다 외계인 유전자가 몸속에 들어와 몸이 점점 외계인으로 변하게 됩니다. 한 외계인이 치료 방법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주인공은 이 외계인을 치료를 위해 쓰다, 뜻대로 되지 않자 쉽게 버립니다. 요즘 흔히 말하는 부정적인 모습의 ‘인도주의’와 같습디다.

 

 

 

얼마 전 [조선일보]에 보니 아프가니스탄에서 USAID라는 미국의 해외 개발 원조 기관 건물이 공격을 받았다며 ‘원조 기관마저...’ 한탄 하듯 대문짝만하게 사진을 실었더라구요. USAID는 겉으로는 인도주의와 지원, 개발, 원조 같은 말을 내세우지만 국방부가 해외에 전쟁을 하러 갈 때 같이 갑니다.

 

열라 죽이고 두들겨 부수면서 이미지가 나빠지니깐 한쪽에서 USAID가 찔끔찔끔 ‘인도주의’ 사업을 하는 거지요. 물론 USAID의 활동은 100배, 1,000배 뻥튀기 되구요. 한국군이 이라크 갈 때 KOICA라고 하는 외교통상부 산하 국제 개발 원조 기관이 함께 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속 MNU가 그렇듯이 그들이 인도주의와 법을 내세우는 것은 카메라 앞에서나 그런 거지요. 인도주의 내세운다고 모두 믿었다가는 뒤통수 맞기 딱 좋습니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

 

영화에서 가장 야비하고 더럽고 이상한 인간은 결국 백인 인간도 외계인도 아니고 나이지리아 출신 흑인들입니다. 이들은 갇혀서 억눌리며 사는 외계인들을 후려쳐서 돈을 벌지요. 심지어는 외계인의 살을 먹으면 외계인의 영혼이 자신 속으로 들어와 인간들이 다루지 못했던 외계인의 무기를 다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잔인하고 멍청한 인간의 모습인 거지요.


 


'잔인한' 팔레스타인과 '인간적인' 이스라엘을 보여 줬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뮌헨]


영화 속 외계인과 나이지리아 출신 흑인은 현실 세계의 모습과도 같아 보입니다. 팔레스타인인들처럼 가만히 두면 도둑질하고 사람을 죽이고 쓰레기통이나 뒤질 인간들은 어디 한 곳에 가둬 놓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거지요. 디스트릭트 9는 인디언 보호구역이나 흑인 거주지역, 팔레스타인인 셈이지요. 거기서 흑인은 더 저질의 인간으로 그려지는 거구요.

 

현실의 정치언론․영화․학문 속에서 테러나 일삼는 아랍인, 더러운 흑인과 같이 표현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아랍인 테러리스트, 이슬람 테러리즘을 아무렇지 않게 떠드는 정치인이나 학자들을 쉽게 볼 수 있지요. 지배자들은 오해를 만들고, 오해는 쉽게 지배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미국이 그렇듯 한국도 국제 전쟁이나 자원 쟁탈전에 뛰어들면 들수록 다른 국가나 민족에 대한 오해를 더 많이 만들 거구요.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면서 ‘더러운 조선인’이라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살아 있는' 팔레스타인인의 모습을 잘 보여 줬던 영화 [아나의 아이들]

그리고 주인공의 몸이 외계인의 모습으로 변해가자 MNU는 이 주인공을 생체실험하려고 합니다. MNU의 고위직으로 보이는 주인공의 장인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사위의 생체실험에 찬성하지요. 캬~ 무섭더라구요.

 

영화가 조금 과장했는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세상에 있을 법한 일이더라구요. 돈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사위고 뭐고 그런 거는 중요하지 않지요. 돈에 눈이 멀면 부모 자식이고 인륜과 도덕도 모두 보이지 않지요.

 

인간들이 이런데 외계인은 다른 모습을 보여 줍니다. 몸이 변해가는 주인공을 보면서 외계인은 인간을 도와주려고 하지요. 외계인 생체 실험 현장을 보게 된 한 외계인이 인간들이 자신을 잡으려고 총을 쏘고 달려드는데도 동료들 구할 생각을 먼저 합니다.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컴퓨터는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다른 존재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모릅니다. 포크레인이 아무리 힘이 좋다고 하더라도 다른 존재를 위해 힘을 쓸 줄 모르지요. 남의 입장에서 자신의 힘을 쓸 줄 아는 존재만이 인간인 셈이지요.

 

영화 내용도 그렇고 극 영화이면서도 마치 다큐멘터리인 것처럼 만든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인상 깊은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