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맺어준 커플]이라는 인도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 내용을 알아서 본 것은 아니고 그냥 무작정 샤룩칸이 나온다고 해서 본 거지요. 역시 멋지더라구요. 영화에서 샤룩칸은 우연히 결혼을 하게 된 아내의 사랑을 얻기 위해 무진장 애를 쓰는 사람으로 나옵니다. 아내를 기쁘게 하고 아내를 웃게 하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하지요. 사람이란 게 참 신기해요. 누가 억지로 그렇게 하라면 할까 싶어요.
사랑에 관한 이야기
이 책은 파이드로스, 파우사니아스를 거쳐 아가톤과 소크라테스까지 여러 명의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사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 놓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여기서의 사랑은 조국에 대한 사랑, 돈에 대한 사랑 뭐 이런 것은 아니고 쉽게 말해 연애와 관련된 사랑이지요.
연애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먼저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를 떠올리겠지만 이 책에서 계속 나오는 것이 남성과 남성의 사랑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소년 애인과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요.
그러고 보면 사랑도 그 형태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달라지는 가 봅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살았던 때에는 남성과 남성의 사랑이 자연스럽기도 하고 때론 자랑스럽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요즘 어떤 분들은 동성애라고 하면 더러운,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주장하며 동성애 관련 내용이 나오는 드라마까지 씹어 대시기도 하지요. 심지어 출산율이 떨어지는데 남자들끼리 거시기를 하면 애는 누가 낳느냐는 훌륭한 말씀까지... [향연]에서 파이드로스가 이런 말을 합니다.
어린 사람에게는, 그것도 아주 어렸을 적부터, 자기를 사랑해 주는 쓸 만한 사람을 갖는 것보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에게는 쓸 만한 소년 애인을 갖는 것보다 더 크게 좋은 어떤 것이 있을지 나로서는 말할 수 없거든 - 67쪽
그러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묶어 한 부대에 편성하면 전투에서도 쉽게 도망가지 않고 잘 싸울 거라 생각합니다. 실제 그런 부대가 있었다고 하구요.
사랑, 오묘하고 절묘한
파이드로스가 사랑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 말하자 이어 파우사니아스는 사랑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행위 자체가 그 자체만으로는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네. 가령 지금 바로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그게 술 마시는 일이든 노래하는 일이든 대화하는 일이든 간에 이것들 가운데 아무것도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은 없네. 다만 행위 속에서 그것이 어떻게 행해지느냐에 따라 그러그러한 것이라고 드러나게 되는 거지. 아름답고 올바르게 행해지면 아름다운 것이 되고 올바르지 않게 행해지면 추한 것이 된다는 말이네. 사랑하는 일도 바로 이러하며, 그래서 에로스 일반이 다 아름답거나 찬미받을 만한 게 아니라 아름답게 사랑하도록 유도하는 에로스만 그러하네. - 74쪽
사랑 밖엔 난 몰라, 사랑한 후에, 사랑하기 때문에 등등 노래방에 가보면 정말 많은 노래가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살면서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고 사랑 때문에 웃기도 했다가 사랑 때문에 울기도 하고 그러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렇게 중요하고 우리 마음과 인생을 쥐어 흔드는 사랑에 대해 별로 깊이 생각해 보질 않은 것 같아요. 그냥 좋으면 사랑한다고 하고, 싫어지면 빠빠이 하는 정도 밖에는... 정말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을 그저 저 하고 싶은 대로 습관대로 했던 거지요. 그러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을 괴롭히기도 하고 그랬던 겁니다. 사랑이라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 제대로 해야 좋은 건데 말입니다.
아가톤이 이런 말을 합니다.
무엇에 관해서 어떤 찬양을 하든 찬양의 옳은 방식이 단 하나 있는데, 그건 이야기의 대상인 자에 관해서 그자가 어떤 자여서 어떤 것들의 원인이 되는지를 이야기로 죽 풀어 가는 것이네. 그러니 우리도 에로스를 찬양하되 바로 이렇게, 우선 그 자신이 어떤 자인지를 찬양하고, 그 다음에 그가 준 선물들을 찬양해야 마땅하네. - 106쪽
사랑을 해서 좋으냐 나쁘냐에 관해 얘기하다가 이제는 좋으냐 나쁘냐 이전에 사랑 그 자체가 무언지에 대해 먼저 말해 보자는 게 아닌가 싶어요. 소크라테스가 아가톤에게 묻습니다.
에로스는 그 어느 것에 대한 에로스도 아닌가, 아니면 어떤 것에 대한 에로스인가? ... 에로스는 그가 어떤 것에 대한 에로스라고 할 때의 그 어떤 것을 욕망하는가, 안 하는가? ... 그가 욕망하고 사랑하는 바로 그것을 가진 상태에서 욕망하고 사랑하나, 아니면 안 가진 상태에서 그리 하나? - 118~119쪽
사랑이 어떤 대상을 욕망하는 것이라는 것, 욕망은 결핍에서 온다는 것, 사실 우리에게 이런 것들은 낯선 생각입니다. 사랑이라고 하면 ‘니 내 좋나? 내도 니 좋다’ ‘머 해 주꼬?’ ‘니 와 내 안 쳐다보노?’ 등등에만 익숙한 우리로써는 사랑이란 게 무언지를 묻는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 짓까지 해서 사랑이 무언지를 알아야 되나 싶기도 하고 그렇지요. 그런데 제대로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겠지요. 하다못해 새로 나온 핸드폰 기능을 익히는데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하물며 사랑이야...
디오티마가 소크라테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앞에서 합의한 대로 사랑이란 좋은 것이 늘 자신에게 있는 것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로부터 우리가 좋은 것과 더불어 불사를 욕망한다는 것이 필연적으로 따라 나옵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로부터 사랑이 불사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 필연적으로 따라 나오지요. - 136쪽
지금 여기서 하는 이야기는 우리가 ‘사랑’이라고 말하는 모든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어느 하나의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언젠가는 죽고 마는 유한한 존재가 ‘낳음과 출산’을 통해 유한함을 극복하려하는 것과 관계있다는 거지요. 영원을 추구하는 것의 좋지 않은 면도 디오티마가 지적합니다.
당신이 그들의 명예 추구...그들은 이것을 위해서라면 제 아이들을 위해서 그러는 것보다 훨씬 더하게 무슨 위험이든 감수한다든지, 돈을 쓴다든지, 어떤 노고든 마다 않고 한다든지, 또 그걸 위해 죽는다든지 할 태세가 되어 있습니다. - 139쪽
아름다운 것 그것 자체
디오티마는 사랑을 ‘내 니 좋다, 니도 내 좋나?’에서 그치지 마라고 말합니다.
이 아름다운 것들에서부터 시작하여 저 아름다운 것을 목표로 늘 올라가는 것 말입니다. 마치 사다리를 이용하는 사람처럼 하나에서부터 둘로, 둘에서부터 모든 아름다운 몸들로, 그리고 아름다운 몸들에서부터 아름다운 행실들로, 그리고 행실들에서부터 아름다운 배움들로, 그리고 그 배움들에서부터 마침내 저 배움으로, 즉 다른 아닌 저 아름다운 것 자체에 대한 배움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마침내 그는 아름다운 바로 그것 자체를 알게 됩니다. 친애하는 소크라테스, 인간에게 삶이 살 가치가 있는 건 만일 어딘가에서 그렇다고 한다면 바로 이런 삶에서 일 겁니다. 아름다운 바로 그것 자체를 바라보면서 살 때 말입니다. - 144~145쪽
우리 가운데 사랑이 무언지 알고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잘 없지요. 일단 빠지고 나서 ‘아하 내가 사랑에 빠졌구나’ 합니다. 사랑에 빠진 뒤에 그나마 생각을 한다면 ‘내 니 한테 잘 해 줄게’ 정도지요. 만약 여기서 ‘내 니 한테 잘 해 줄게’는 물론이요, 상대의 영혼 속에 자리한 좋은 모습을 찾고 그것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으면 어떨까요?
어느 만큼 시간이 지나면 이제 조금은 지겨워지는 때가 오지요. 뜨거운 사랑의 열정이 식은 뒤에 함께 만나고 생활하는 사람의 영혼 안에 깊고 맑은 빛이 담겨 있음을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뜨거운 열정이 없으니 사랑이 사라진 게 아니라 사랑이 또 한 번 성장하고 발전하는 순간이지요.
가까운 그 사람에게서 찾은 빛을 다른 사람에게서도 찾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무심히 스치던 그 사람들이 어느 날 의미 있게 다가오고 그들의 웃음이 나를 기쁘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서 ‘산다는 게 이런 거구나’ ‘산다는 건 이래서 좋은 거야’를 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것도 나 혼자 잘 살아서 좋은 게 아니라 모두 함께 잘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를 알게 된다면 더더욱 좋겠지요.
내 마음 좋아서 시작한 사랑이 점점 커지고 깊어져 삶이 무언지, 세상이 무언지를 알고 실천하는 단계로까지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지요. 부족함은 크고 모자람은 많은 우리가 사랑을 통해 조금씩 더 나은 인간이 되어 갈 수 있다면 참 행복한 삶이겠지요.
좋은 책을 읽으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향연]은 저를 기분 좋게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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