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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 [전함 포템킨]을 보고

순돌이 아빠^.^ 2011. 2. 15. 19:09

영화는 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 ‘혁명’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무성영화라서 그런지 배경 음악이 더 잘 들리더라구요.

 

[전함 포템킨]의 시작이자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혁명'의 시작 부분 

 

1905년 그러니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 전 황제가 권력을 잡고 있던 시절, 러시아 전함 포템킨에는 해군 병사들이 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장교는 계속 모욕을 주는 것도 모자라 썩은 고기를 좋은 고기라고 먹으라고 합니다.

 

병사들이 썩은 고기로 만든 국을 안 먹겠다고 하자 함장은 이들을 죽이느니 어쩌니 떠듭니다. 참다못한 병사들은 오히려 장교들을 물에 빠트려 버리고, 이 과정에서 한 병사도 살해 됩니다.

 

죽은 병사의 시신이 오데사 항구에 도착하자 오데사 시민들은 병사의 죽음을 애도하며 반란을 일으킨 병사들에게 환호를 보냅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러시아 군대는 시민들을 향해 발포를 하고, 시민들은 계단을 쫓겨 내려옵니다. 거리는 혼란, 아우성, 고함으로 가득 찹니다. 우왕좌왕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시민과 줄 지어 행진하며 총을 쏘는 군대.

 

이 부분을 영화사에서 중요한 장면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궁금하시면 인터넷에서 ‘오데사 계단 씬’이라고 검색을 해 보시면 됩니다.

그러나 저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새로운 기법을 썼고, 이후 영화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아니겠지요.

 

새로운 기법보다 중요한 것은 낡은 체제 속에서 러시아 시민들이 까닭 없이 죽어갔고 병사들은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일 겁니다.

 

군대
 
세상 많은 군대의 역할은 시민의 생명이나 자유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힘 있고 돈 있는 놈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외부의 적을 가정해서 군대를 유지하다가도 필요하면 내부의 적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게 세상 많은 군대입니다.

 

일제 식민지가 되는 과정, 4.3항쟁, 5.16 쿠데타와 박정희 독재정권, 광주항쟁, 베트남 침공, 이라크 파병 등 수많은 사건 속에서 조선과 대한민국 군대는 시민의 생명과 자유를 지키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들을 해 왔습니다.  정부의 정치 선전이 아니라 실제로 대한민국 군대가 어떤 큼지막한 일들을 해 왔냐는 겁니다.


만약 누군가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공격을 한다면 대한민국 군대는 제일 먼저 누구를 지키러 나설까요? 보통의 시민 100명입니까, 이건희나 이재용 같은 높으신 분 1명입니까?

 

막연하게 조국이라고 하지 말고 실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군대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키러 나설지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전함 포템킨]의 한 장면. 군대는 무엇을 위해 총을 드느냐가 중요합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들과 관련된 영화나 책을 보면, 싸움이 나면 사회 구성원들이 직접 전사가 되어 싸움에 나섭니다. 군대와 민간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한 사람이 이 역할도 하고 저 역할도 하는 겁니다.

 

군대가 없어도 되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겠지요. 그래도 세상사는 데 군대가 필요하다면 군대는 시민의 군대여야 합니다.

 

시민의 군대라는 것은 시민들이 구성하고 시민들이 운영하며 시민들을 위해 움직인다는 말이겠지요. 시민들이 생각도 하고 토론도 하고 참여도 하면서 사회를 운영하고 정부도 만들도 그러듯이 군대 또한 그 뿌리는 시민입니다. 시민이 주체가 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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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에서 이겼냐 졌냐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군대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느냐 입니다.

 

힘 있는 자들이 자신들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시민들을 군대로 끌고 가서 노예처럼 부려 먹다 필요 없으면 내다 던지는 군대는 필요 없습니다.

 

장교가 필요하다면 장교를 힘 있는 놈들이 지명하는 것이 아니라 군인들이 선출하면 됩니다. 군대의 장교를 어떻게 투표로 결정하냐구요?

 

국군통수권자라는 대통령도 투표로 결정하는데 군대의 장교라고 투표로 결정 못할 게 뭐 있습니까?

 

군대도 군인들이 스스로 토론하고 운영 방향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군대가 헌법 아래에 있는 거라면 헌법이 말하는 대로 민주주의를 실천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오합지졸이 되지 않겠냐구요? 군대가 오합지졸인데 만약 적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자신을 방어할 수 있냐구요?

 

그렇게 따지자면 세계 최강의 무력과 군대를 가진 미국과 소련은 왜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에서 패배했습니까?

 

가장 적은 힘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데 있어 가장 큰 힘은 군인들 스스로가 참여하고 자기 의지를 갖는 겁니다. 도살장에 소 끌려가듯 억지로 끌려가서 국가를 지키라는(사실은 높은 곳에 계시는 그분들을 지키라는)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참여해서 시민의 자유와 행복을 지키는 겁니다.

 

 

[전함 포템킨]에서 장교들에게 억눌리던 병사들의 표정과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에 나선 병사들의 표정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감독은 이들의 흥분과 열정을 수많은 대사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 없는 화면으로 표현합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구더기 득실거리는 썩은 고기마냥 필요하면 가져다 쓰고 필요 없으면 쓰레기로 버려지는 군인이 아닌 겁니다.

사진작가 최민식의 사진이 그렇듯 흑백 화면이 인간의 삶과 감정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영화였습니다.

 

좋은 작품에 박수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