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난드와 이사벨라 시절의 스페인에게 민족이라는 것은 먼저 기독교인을 말했다. 스페인의 통일은 인종청소와 함께 시작되었다. 1492년은 페르디난드와 이사벨라가 스페인에서 유대인을 몰아내기 위해 만든 ‘추방 명령’에 서명한 해이기도 하다. 통일 스페인 국가는 유대인들에게 세례를 받을 것인지 추방 될 것이지,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약 7만 명의 스페인 지역 유대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한 것으로 추정한다...‘추방 명령’이 실행된 7년 후인 1499년, 스페인 국가는 무슬림들에게도 선택하라고 했다. 개종 또는 이주. - 5쪽
누군가에게는 신과 같고 누군가에게는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한 국가. 그 국가라는 것이 사실은 세상을 ‘우리’와 ‘그들’로 나눈 뒤, 우리에게는 각종 권리와 혜택을 주면서 그들을 폭력으로 억압하거나 추방하는 과정에서 태어나고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만인에게 평등한 국가라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 아닐까요?
마약과 전쟁
인도차이나 지역 주변에서 프랑스는 식민지 점령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아편 세금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파오Pao 장군은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고지 마을에서 아편을 모아 롱 티엥Long Tieng과 비엔티안Vientiane으로 옮기는데 CIA의 ‘에어 아메리카’를 이용하였다. 에어 아메리카는 아편 시장을 확대하는데 핵심 역할을 하였다. - 66쪽과 68쪽
프랑스와 미국은 인도차이나 지역에서 식민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마약의 생산과 유통을 허용 또는 지원하였습니다. 중남미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친미 우파 조직들의 활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미국은 마약을 이용했습니다. 심지어는 마약 조직들이 마약을 미국으로 운반할 수 있도록 미국 정부가 거들어 주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지하드 직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는 헤로인이 생산되지 않았다. 이곳의 생산품은 (헤로인과는) 매우 다른 마약인 아편으로 규모가 작은 농촌 지역 시장에서 판매되었다. 아프간 지하드가 끝났을 때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국경 지역은 세계 최고의 아편과 헤로인 생산지가 되었으면 세계 아편 소비량의 75%를 공급하였고, 그 액수는 수십억 달러에 달했다. 2001년 초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유엔 마약 통제 프로그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아편 생산이 급속도로 증가한 것은 1979년이며, 1979년은 미국이 지하드를 지원하기 시작한 해라는 것을 밝혀냈다. - 143쪽
미국 정부와 CIA가 마약 생산 및 거래에 개입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전쟁에 대한 미국 내부의 압력 때문입니다. 의회와 시민들이 미국의 대외 정책을 비판하고 감시를 강화하자, 행정부는 비밀스러운 방식으로 외교 정책을 수행했고 필요한 자금을 마약을 통해 마련한 것입니다. 니카라과 우파 조직인 콘크라를 지원하기 위해 이스라엘 통해 이란에 무기를 판매한 것도 감시와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대리전쟁
중남미 좌파 세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미국이 선택한 것 가운데 하나가 ‘저강도 전쟁’입니다. 전투기와 탱크를 동원해 직접 전쟁을 벌이는 대신 납치, 살인, 강간, 파괴 등의 방법을 통해 적을 약화시키겠다는 겁니다. 말이 좋아 ‘저강도’이지 그 결과는 ‘고강도’였습니다. 미국이 누군가를 비난할 때 잘 쓰는 말인 테러를 미국과 그의 친구들이 저지르고 미국의 기독교 우파들은 이를 지원했습니다.
기독교 우파 후원자들 가운데 핵심 인물은 자신의 비과세 텔레비전 방송을 이용해 콘트라 지원금 3백만 달러를 모금한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과 니카라과 자유 기금(Nicaraguan Freedom Fund)을 설립한 워싱턴 타임즈의 운영자 통일교 교주 문선명이었다. - 110쪽
베트남 침공에서 패배한 이후 미국이 선택한 전쟁의 방법 가운데 하나는 대리전쟁입니다. 직접 나서기는 부담스럽고, 좌파나 민족주의 진영은 부수고 싶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세력을 키워 전쟁에 나서게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대리 전쟁에서 선봉장 역할을 맡습니다.
1983년 과테말라 정부가 원주민 마을에서 학살을 저질렀을 때 [타임Time]의 한 기자는 “이스라엘은 과테말라 정부에게 대테러 장비부터 비행기까지 모든 것을 팔았다” 그리고 “정글 속 정부군의 초소는 이스라엘군 주둔지의 복사판에 가까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카터 정부가 니카라과 정부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자 이스라엘은 니카라과로 갔다. “1978년 9월부터 소모사가 쫓겨나던 다음해 7월까지, 이스라엘은 “소모사가 니카라과 시민들에게 사용하는 무기의 98%”를 팔아먹었다. - 111쪽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한 것은 1979년 12월 소련의 침공 이후라고 알려져 있지만 글쓴이의 생각은 다릅니다. 전 미국 대통령 카터의 안보 보좌관이었던 브레진스키의 말 가운데 이런 게 있습니다.
1979년 7월3일 카터 대통령은 카불에 있는 친소련 정부에 대항하는 세력을 비밀리에 지원하라는 첫 번째 명령에 서명했다. 바로 그날, 나는 대통령에게 내 생각으로는 이 지원이 소련의 개입을 불러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 124쪽
소련이 개입했기 때문에 미국이 어쩔 수 없이 개입했다는 설명과 달리 미국이 반소련 세력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개입했기 때문에 소련이 개입했다는 설명입니다.
글쓴이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영향이 미국과 9.11에까지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소련을 잡기 위해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키운 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는 거지요.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은 끝이 났지만 냉전의 영향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겁니다.
1976년 9월, 미국의 동맹국들인 프랑스, 이집트, 이란, 모로코, 사우디아라비아가 모여 ‘사파리 클럽(Safari Club)'이란 것을 만듭니다.
이들이 아프리카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은 협정문의 바로 첫 문장에서 드러난다. “최근에 앙골라를 비롯해 다른 아프리카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아프리카가 소련이 부추기고 저지른 혁명전쟁의 무대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소련은 맑스주의를 지지하고, 맑스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개인과 조직들을 이용하고 있다.” -84쪽
19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사파리 클럽은 미국과 동맹국들의 이익을 위해 활동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사파리 클럽은 콩고에서 프랑스, 벨기에 광물 산업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저항운동에 맞서 싸웠습니다. 또 미국의 전략적 동맹국인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대결 상태에서 벗어나 협력할 수 있도록 모로코가 중간 다리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전쟁과 선전
지난 2010년 12월6일 발표한 <한.미.일. 3자 외교장관회의 공동성명>에는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동성명 전문보기)
장관들은 또 이란의 핵활동에 의해 야기되는 도전에 대처하는 데 있어 더욱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한국과 일본이야 이란에 대해 특별히 나쁜 감정이 있을 것 없으니 이런 문구는 미국의 요구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겠지요.
지난 2011년 6월10에는 데이비드 코언 미국 재무부 차관보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이번 방문의 목적은 ‘이란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지속함으로써 이란이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위한 국제금융체제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관련 기사 보기)
미국의 말대로 ‘이란의 핵활동’ ‘이란의 핵무기 개발’이라는 말을 자꾸 들으면 마치 이란이 세계 평화의 큰 위협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란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반면 미국은 8,500개가량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란은 미국을 공격한 적도 없고 공격할 가능성도, 의지도 없어 보입니다. 반면 미국은 이란을 공격할 가능성도 있고 의지도 있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과 이란 가운데 누가 세계 평화의 위협일까요?
선전은 현대에 와서 전쟁에 꼭 필요한 부분이 되었다...걸프전 기간 동안, 이라크군은 세계에서 4번째로 강한 군대이며 중동 지역과 그 너머 세계의 평화를 실제로 위협한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 196쪽
미국과 우파들이 이라크의 강력한 군대, 이라크의 핵무기, 이라크의 화학무기를 열심히 떠들었지만 결과는 미국의 가벼운 승리였습니다. 이라크에는 핵무기도 화학무기도 없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라크의 위협에 관한 뉴스를 듣는 동안 미국과 유엔이 이라크에 가한 경제제재로 수십만 명의 어린이들이 죽어갔다는 소식은 잘 듣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혹시 쇠뇌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세계를 사유하다
부시 대통령이 주도하는 미국과 전투적인 정치 이슬람 양쪽 모두 이슬람은 정치적 정체성이지 단순한 종교적, 문화적 정체성은 아니라고 한다. 양쪽 모두 “좋은 무슬림”과 “나쁜 무슬림으로 구별하며, 전자를 양성하려는 반면 후자는 공격 목표로 삼는다...부시와 빈 라덴 모두 종교적 언어를 사용하고, 선과 악이라는 언어를 사용하며, 타협은 없다고 한다. 우리 편이 되든지 우리에 대항하라고 한다. 양쪽 모두 제3의 길의 가능성을 부정한다...정치적 적과의 투쟁이 악마와의 투쟁이라고 정의 되는 순간, 이 투쟁은 성전이 된다. 그리고 성전 과정에는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 악마는 변하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253~254쪽
우리는 혹시 악마의 얘기에 속아서 악마의 편을 들면서 정의를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 하는 것은 아닐까요? 세상에는 우리에게 적도 동지도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존재를 애써 무시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마흐무드 맘다니Mahmood Mamdani의 <좋은 무슬림, 나쁜 무슬림Good Muslim, Bad Muslim - 미국, 냉전 그리고 테러의 기원America, the Cold War, and the Roots of Terror>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지역에서 어떤 노략질을 했는지 말합니다. 미국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뿐만 아니라 미국의 잘못된 정책이 미국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서도 얘기합니다.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정리한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런 일들을 통해 어떤 물음을 가지고 생각해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그리고 책의 맨 마지막에 한마디 남깁니다.
미국이 전 세계를 정복할 수는 없다. 미국은 세계 속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유와 평화 많은 지구별에서 살기 위해 우리 또한 세계를 사유하고 세계 속에서 사는 법을 배우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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