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여러 해 전에 한 영화제에서 ‘사창가에서 태어나’라는 제목으로 이 영화를 봤습니다. 이번에 다시 보니 ‘꿈꾸는 카메라’로 제목을 바꿨더라구요.
영화는 인도의 어느 성매매 지역,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나라는 한 사진작가가 아이들에게 사진 찍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아이들이 자신의 느낌대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나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서로의 생각도 얘기하고 여기저기 놀러도 다니고 그러지요.
자나는 아이들이 성매매 지역에서 벗어나 기숙학교에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많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받지 않으려고 하네요. ‘출신’ 때문에요.
어렵게 들어간 학교에서 계속 생활을 하는 아이도 있지만, 많은 아이들이 부모나 자신의 의지로 학교를 나와 집으로 돌아갑니다. 가족의 반대 때문에 성매매 지역을 아예 벗어날 수 없는 아이도 있구요. 그 아이의 할머니와 어머니는 성매매를 했습니다. 그 아이도 얼마 안 있으면 성매매를 시작하겠지요.
자나는 아이들이 찍은 사진으로 전시회를 엽니다. 전시회를 통해 모은 돈으로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도록 지원을 하지요.
한 아이는 네덜란드에서 열린 국제 사진 전시회에 초청 되어 외국 구경도 합니다. 그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세계, 그 바깥에 있는 세계와 만나는 거지요.
여자와 남자
아이들과 관련된 세상의 여러 모습이 펼쳐집니다. 제일 처음은 그 지역의 생활환경이지요. 좁고 햇빛 잘 안 드는 방에서 여러 식구가 모여 사는 환경은 건강에 그리 좋지 않겠지요.
엄마가 ‘일’을 할 때면 천 하나를 가려 놓기도 하고 아니면 아이들은 옥상에 가서 놀기도 합니다. 남자들은 술 먹고 엄마들을 찾아와 큰 소리 치고 욕을 하고 그러지요. 나쁜 사람들이에요.
아빠가 엄마를 때리기도 해요. 아빠가 늘 술 먹고 다니니까 엄마가 돈을 안 줬고, 그러자 아빠가 엄마를 때린 거지요.
한 엄마는 집을 나갔어요. 아빠는 맨날 마약에 취해 살구요.
엄마나 이모들이 성매매를 하지만 성매매 연령은 점점 낮아져서 언니들도 ‘일’을 하고, 이제 곧 그 아이들도 일을 하겠지요. 다르게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지 않네요. 가족들이 다른 성매매 지역으로 딸을 팔아버리기도 하는 판국이니.
인도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이 가족들이 딸과 여동생을 살해하는 거에요. 종교가 다르다고, 가족이 지정한 남자와 결혼하지 않는다고 죽여버리는 거지요. 여성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할 권리를 많이 억누르네요.
세상에는 이상한 남자들이 왜 이렇게 많은 가 몰라요.
술3종은 옷도 다 벗고 술 먹고 쇼도 하고 했다...손님들 중에는 경찰도 있고, 의사, 변호사 등...
경찰은 나에게 “이것밖에 못 놀아?”라고 말했다. 나는 화가 나서 경찰하고 옷을 벗고 사람들 앞에서 했다...나는, 사람들을 돌봐주고 나쁜 사람들을 잡는 게 경찰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경찰이 나한테 할 때 모습은 사람이 아니었다...
의사는 두 명. 둘 다 산부인과 의사, 내 옷을 찢고 사람들 앞에서 자궁에 손가락을 넣고 파고, 너무 아팠다. 그래서 나는 아프다고 했는데, 의사는 “너는 매일 하면서 개뿔이 아프냐”고 했다. 의사는 정말 못됐다. 자기는 여자환자가 오면 행복하다고 했다. 365일 매일 여자 자궁을 보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을 했다...
판사는 술 먹기 전에는 정말 친하고 우리의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술을 많이 먹고 나서는 나의 자궁, 가슴을 만지고 빨고 이빨로 물고 나를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다...판사는 같이 온 사람들한테 나의 자궁을 보라고 했고, 나의 가슴을 만지면서 나의 귀에 소리를 냈다. 하아 하아...
며칠 후 변호사가 왔다. 정말 지금까지 의사, 판사, 경찰보다 더 엉망이다...변호사는 한 번 하고 술 먹자고 했다...변호사하고 자고 나서 술을 먹고 나서 또 했다. 그때 정말 힘들었다. 맥주 10병 먹고 연애하고, 10병 먹고 연애하고...그때는 정말 자궁에 불이 난다. 눈물도 흐르고 정말 힘들었다.
- 성매매피해여성지원센터 살림, [너희는 봄을 사지만 우리는 겨울을 판다], 141~142쪽
돈을 줬다는 이유로 여성을 학대하는 남성, 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남성의 학대를 견뎌야 하는 여성.
돈을 줬으니 인간을 학대해도 되는 걸까요? 돈을 받았으니 학대를 견뎌야 하는 걸까요?
개개인을 따로 놓고 보면 이들의 만남이 우연인 것 같지만, 이들이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나게 된 것은 어쩌면 사회가 만들어낸 필연인지도 모르겠네요.
국가
자나가 아이들을 기숙학교에 보내려고 하자 공무원들은 이 서류 가져와라, 저 서류 가져와라 하면서 애를 먹입니다. 아비짓이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참여하기 위해 여권을 발급 받으려고 할 때도 서류 때문에 애 먹습니다. 정부가 시민을 위해 있는 건지, 시민을 위해 정부가 있는 건지 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2006~2010년, 5년 동안 세계에서 무기를 제일 많이 수입한 나라가 인도라네요. 국방 현대화를 위해 무기 수입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붓는 거지요.
국가는 그 많은 돈을 가난한 이들이 생활의 안정을 찾고, 희망을 만들어가는 데 쓰기보다 쓸 데 없는데 왕창 왕창 퍼붓는 것 같아요.
인도에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인도에는 정말 별의 별 것이 다 있어요. 사람이 직접 끌고 손님을 태우고 다니는 릭샤에서부터 핵무기까지요. 거리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구걸을 하고 있고, 잘 사는 사람들은 성이라고 해도 될 큰 저택에서 살지요. 빈부격차라고 할 것도 없을 것 같아요. 서로 너무 다른 세계에서 살아서요.
샤룩칸이 볼리우드 영화에서 화려한 춤을 추며 사랑과 가족에 대해 말하는 동안 가난한 이들은 거리에서 손님을 기다리네요.
그래도...
성매매, 성매매 지역 하면 먼저 윤리적인 잣대, 가해자-피해자의 잣대를 들이대기 쉬워요. 그런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 맞구요.
그리고 하나 더 생각한다면 그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거 아닐까 싶어요.
사실 지금까지 국제적으로 열리는 성매매 관련 회의에 많은 여성들이 참여하지도 못했지만, 참여한다 하더라도 ‘증언자’, ‘현직 매춘 여성’, ‘전직 매춘 여성’으로 참여해 왔을 뿐이다. ‘증언’은 삶의 과정, 즉 얼마나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어떻게 성매매로 유입되었으며 또한 현재는 어떤 불이익을 겪고 있는지 등의 내용으로 채워지곤 했다. - 막달레나의 집, [용감한 여성들-늑대를 타고 달리는], 98쪽
영화 속 아이들의 모습은 때로는 어둡고 때로는 슬프지만 또 때로는 밝고, 때로는 어쩜 저렇게 똑똑하게 말도 잘할까 싶기도 하고, 때로는 우와 정말 사진 잘 찍네 싶기도 하고 그래요. ‘성매매 지역 아이들’이라는 이름으로 박제화 된 게 아니라 그야 말로 살아 있는 거지요.
아이들을 짓누르는 사회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발에 쇠사슬을 묶은 것도 아닌데 제 발로 걸어 나갈 수도 없지만, 그 무게 속에서도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의 웃음과 연민, 우정은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거지요.
누구는 자나가 소개해 준 학교를 계속 다니기도 하고 누구는 학교를 나와 버리기도 해요. 영화를 보는 사람은 아이들이 외국 단체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면서 다른 삶을 찾았으면 하지만 아이들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겠지요. 학교라는 게 만병통치약은 아니니까요.
안타깝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마음 뭉클하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영화를 봤어요. 마음 깊이 잔잔히 여운을 남기는 좋은 영화였어요.
며칠 째 비가 계속 쏟아지네요. 이곳에 비가 내리면 먼 곳에도 비가 내리고 있겠지요.
함께 비를 맞지만 때로는 서로를 잊은 채 살아가는 우리들.
'성.여성.가족 > 성.여성.가족-책과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로이트 -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 : 성적 이상 (0) | 2012.06.27 |
---|---|
이종영 - [성적 지배와 그 양식들] (0) | 2012.03.16 |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을 보고 (0) | 2011.07.11 |
페넬로페 크루즈 - [귀향]을 보고 (0) | 2011.02.09 |
하이다 모기시, <이슬람과 페미니즘> (0) | 2010.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