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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영 - [성적 지배와 그 양식들]

순돌이 아빠^.^ 2012. 3. 16. 19:09



남성은 여성을 지배하고 있을까? ‘그렇다’라고 한다면 다음 질문은 ‘왜?’ ‘어떻게?’이다. 왜라는 물음 통해서 우리는 남성 지배의 동력을, 어떻게라는 질문을 통해 남성 지배의 구조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쉽게 답만 구하려 하기보다 진지하게 물음을 던지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1장 성적 지배의 일반적 구조

남자들은 말할 것이다. “나는 나의 아내를 지배하지 않는다.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 여자들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나는 결코 남자로부터 지배받지 않는다. 나의 남편은 나를 아껴주고 사랑한다.” - 14, 15쪽

흔히 있는 일입니다. 자신이 아내를 지배하고 있다거나 남편이 자신을 지배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으며 이를 완강하게 거부합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남들 앞에서는 ‘별 문제 없는’ 부부로 보이고 싶을 수도 있고, ‘지배가 아냐 사랑이야’라고 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세뇌할 수도 있을 겁니다.

남성이 자신의 의사를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자에게 부과하는 것 - 18쪽

내가 누군가에 의해 보호받는다는 것은 나 자신의 열등성을 함의하는 일이다. ‘보호’라는 말은 결코 대등한 관계를 전제하지 않는다...사랑의 한 형태로서의 ‘보호하는 사랑’은 성적 지배에 의해 침투된 사랑이다. - 20쪽

남자는 세상의 공격이나 비참으로부터 가족이나 여자를 지키는 튼튼한 울타리가 되고, 여자는 살림 잘하고 애들과 남편 뒷바라지 잘하면 좋은 부부가 되는 걸까요? 보호의 대가로 지배를 요구하고, 보호의 대가로 복종을 수용한다면 그게 좋은 부부일까요?

여자는 왜 보호 받는 존재가 되었을까요? 보호 받으려고 하는 본능 지니고 태어나서? 아니면 태어난 이후 사회 속에서 남자들에 의해 보호받는 존재로 만들어져서?

타자들을 ‘보호’하는 행위 속에서 지배자로서의 만족감을 누린다는 것 - 23쪽

평범한 남자로서의 그는 자신의 여자로부터 자기확인을 획득하고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충족시키고자 한다...남자는 여자의 지지를 필요로 한다. 남자는 여자의 우상이고자 한다. - 24쪽

남자들은 여자로부터의 인정에 매우 크게 의존하므로, 여자가 인정을 해주지 않을 때 깊은 상처를 받는다. 남자들은 자신들을 인정해주고 흠모하는 여성적 사랑을 갈망한다. - 26쪽

여자를 지배하려 한다는 것은 남성들의 객관적 실재이다. 반면 ‘인정하고 흠모하는 사랑’으로서의 여성적 사랑을 여자로부터 받고자 하는 것은 남성들의 욕망이다. 그러나 이러한 욕망은 남성들의 객관적 실재에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그러한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하나의 매개항이 필요하다. 즉 ‘보호하는 사랑’으로서의 남성적 사랑 말이다. - 28, 29쪽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자만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여자는 단지 집안에서 가사노동만을 담당할 때, 남자만이 세계에서 주체의 자격을 갖게 되고 여자는 탈주체화된다. - 35, 36쪽

부르디외의 이러한 분석에 따를 때 남성은 경기자이고 여성은 응원자이다. - 37쪽





MBC 드라마 [내조의 여왕]에서 오지호를 비롯한 남성들, 김남주를 비롯한 여성들의 관계가 경기자와 응원자의 관계는 아니었을까요.

축적된 폭력의 경험이 두려움을 만들고, 두려움이 느껴질 때는 새로운 폭력을 피하기 위해 자동적으로 복종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내와 자식들이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은 어떤 ‘이의제기’에도 부딪힐 위험이 없는 자동적인 지배가 실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 45쪽

생각이 없고 감정이 없어서 말 안하는 게 아니겠지요.

오스카 루이스는 다음과 같이 적는다. “그[남편]는 존경을 받기 위해 가족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한다.” 테포스틀란의 남편들이 친밀성을 꺼려하는 것은 신비화에 입각한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 45쪽

가족보다는 남성공동체에서의 위세가 자신의 남성적 정체성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회에서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빼앗긴다는 사실은 씻을 수 없는 치욕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 47쪽

그들은 여러 여자들과 성교를 하고서 그것을 남성공동체에게 과시하는 것이다. “자, 나는 얼마나 남성적인가!”라고 - 48쪽

자본가들이 자본의 논리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하듯이 태포스틀란의 남자들도 남성공동체의 이데올로기로부터 빠져나갈 수가 없다. 두 경우 모두 이탈은 존재의 몰락을 뜻한다. - 50쪽

남성적 사랑이 토대하고 있는 신비화는 그의 동물성의 필연적인 노출에 따라 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55쪽


2장 가부장제의 발생

가부장제는 가장으로서의 아버지의 지배를 뜻하는 것...부권제(父權制로 번역될 수 있는 것 - 63쪽

가부장제는 다른 한편으로 가장으로서의 아버지들, 즉 가부장들의 연합체가 여성들과 미혼남자들을 지배하는 체제로 이해될 수도 있다. - 63쪽

가부장제는 가족에서의 남성지배와 사회적 수준에서의 남성지배가 접합된 것 - 65쪽

핵심적 공동체로서의 남성들의 결사는 주어진 하나의 인간집단을 ‘공동체’로 조직하면서 그 ‘공동체’를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종속된 ‘공동체’로 만들어버린다...남성들은 공동체적 지배를 통하여 동시에 가족을 지배하는 것 - 67쪽

중요한 점은 가부장제의 발생이 친족제도를 지니지 않는 군단사회로부터 친족공동체적 사호로의 이행기에 자리잡는 듯이 보인다는 것이다. - 74쪽

우리는 가부장제의 주체로서의 남성결사는 친족제도의 확립과 동시적으로 구성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때 친족제도는 다른 공동체와 여자를 교환하기 위해 여자를 관리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남성결사는 다른 공동체와의 결혼동맹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친족제도를 재생산하려는 목적을 지니는 것이다. - 80쪽

일반성은 보편성과는 달리 어떠한 필연성을 내포하는 것이 아니다. - 83쪽

보노보는 암컷이 수컷보다 약하지만 물리적으로 싸움을 할 때도 암컷이 이긴다...객관적인 물리적 힘의 우위를 제압할 수 있는, 또는 무화(無化)시킬 수 있는 또다른 층위가 개입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83쪽

남자와 여자가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이 여자를 교환하는 것이다. 즉 교환의 주체는 두 공동체의 가부장들이다. - 85쪽

친족공동체 내의 남성결사는 자체 내의 친족적 규정성에 따라 결혼을 조직하면서, 여자획득을 위한 사적(私的) 투쟁을 제거하는 것이다. - 92쪽

여자는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에게 속하고 결혼한 이후에는 남편에게 속하는 것이다. - 100쪽

남편이 죽고 나면 아들이나 다른 친척 남자들에게. 왜냐하면 여자는 집안의 소유물이니까.


3장 사랑에 맞서는 남성공동체

국가형성 이후 가부장제는 어떻게 변모될까? 가장 중요한 사실은 국가형성 이후 남성지배적 친족공동체의 권력이 일정하게 해체된다는 것이다...국가가 친족공동체의 자립성을 일정하게 해체하고 가족과 직접 관계를 맺는 곳에서 가부장제의 재생산은 국가와 가족의 일이 된다.  - 11쪽

사랑은 가부장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위험이다. 사랑은 가부장제에 의해 부과되는 결혼과 대립한다. - 117쪽

사람을 만날 자유마저 법적으로 제약하는 여자 ‘감호’의 극단화는 도대체 어떤 심리적 배경을 갖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어떠한 사랑도 없이 결혼한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서 사랑의 눈을 뜨는 것에 대한 불안이 신경증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 아닐까? - 124쪽

평등한 입장에서 합의를 하여 가족을 구성하지만, 가족을 구성한 이후 여자는 남편에 대한 예속관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 133쪽

부단한 ‘비주체화’의 과정을 통해 여성의 비주체성이 재생산되는 것 - 142쪽

가족유폐적 성적 지배양식이 여성들의 저항을 봉쇄하는 방식은 여성들을 특수한 방식으로 ‘비주체화’하는 것이다. 즉 여성들로 하여금 사회생활에 있어서 어떠한 주체성도 행사하지 못하게 하고, 그리하여 여성들을 가정 속에 분리시키고 고립화시키는 것이다. 여성들로 하여금 주체성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은 여성의 주체성을 남자가 대신 떠맡는다는 것이다. 여성이 주체가 되어야 할 자리에서 남자가 그녀를 대신해 주체의 역할을 해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후견제’이다. - 144쪽

여자와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 남자는 남성공동체의 연대적 질서로부터 이탈한다...남성의 성적 욕망은 당연히 여성 쪽을 향하는 것 - 150쪽

‘누구에게 속한 여자’와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아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여자’ 사이의 구분은 여자를 몸으로, 소유대상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소유의 기준은 바로 독점적 성관계이다. - 152, 153쪽

수절...여자가 끝끝내 자기를 사랑해서 잊지 못하고 사모해주기를 바라는 판타즘 - 154쪽

몸을 한 남자(자기자신)에게만 바치는 여자에 대한 나르시스적 판타즘, 자신이 그 여자에게 초월될 수 없는 절대적 대상이 되려는 판타즘 - 156쪽


4장 여성의 주체성을 거부하는 남성공동체

사랑이 가부장의 욕망을 격퇴하고 스스로를 가족의 구성원리로 관철시키지만 남성적 사랑을 통해 성적 지배가 관철되는 양식을 우리는 성적 지배의 부르주아적 양식이라 부를 수 있다. - 162쪽

부르주아 국가는 남성들의 국가이다. 남성들은 절대주의 국가에 의한 부정적 규정성하에서 자립적 개인의 이념을 내세우고 또 그 이념에 자기운동적 자립성을 부여한다...남성들은 스스로가 자립적 개인성의 이념을 하나의 보편적 이념으로 내세웠으면서도, 그 이념이 여성에 대해서까지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을 용인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 164, 165쪽

가족 내에서 여성들의 일정한 사물화를 지향하는 것 - 166쪽

10월 혁명 직후인 1917년 12월 19일과 그 1년 뒤인 1918년 10월 17일 새로운 법령들이 발포되어 가족의 영역에서 남성의 모든 특권을 폐지하고 경제적․사회적․성적 영역 등 모든 영역에서 남성과 완전한 동등한 권리들이 여성에게 인정되었다. 여성들은 자기의 거주지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게 되었고 또 성(姓)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었다...사실상 10월 혁명 이후 결혼과 이혼의 사적 영역으로의 편입은 지극히 단순한 원리에 입각해 있었다. 오로지 두 당사자의 합의만이 결혼과 이혼을 결정할 수 있다는 원리 - 172, 174쪽

자기를 지배하는 자에 대해서는 계급투쟁을 하지만 자기자신은 지배를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여성해방은 계급투쟁을 저지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용인되게 되고, 남성중심적 계급투쟁은 이른바 ‘보편성’을 획득하게 된다. - 179쪽

남성들은 여성해방이 특히 여성들의 성해방으로 구체화할 때 전율한다. - 180쪽

성해방에서 진정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딱 한가지이다. 즉 여자가 남자의 소유물이기를 그친다는 것이다. 여자의 성해방은 여자를 다시 주체로 탄생시킨다. - 186쪽

‘놀이로서의 사랑’ 또는 ‘에로틱 우정’은 타자에 대한 소유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즉 타자의 내면에 폭력적으로 침투하려는 열정으로부터 해방된, 그리하여 비극성이 부재하는 연애의 관계이다. - 191쪽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노동자들은 스스로를 노동시장에 상품으로 내놓는다. 연인들은 어떠할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인들은 혹시 ‘사랑의 시장’에 스스로를 상품으로 내놓는 것은 아닐까? - 193쪽

사랑의 시장의 상품들 사이의 관계는 자본에 의해 매개된 판타즘을 서로가 서로에 대해 투사하는 관계로, 사실상은 간(間)주체적 관계가 아니라 단지 각자가 자기 내부의 상상적 관계 속에 고립되어 있는 관계일 뿐이다. 서로는 서로에 대한 투사된 판타즘의 담지체에 불과한 것이다. - 197쪽

어떤 영적인 것이 생성될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적 보편성에 기초한 서로간의 내면적 교류를 통해서일 것이다. - 210쪽

인간적 보편성이 존재하고 그 기초 위에서의 생활경험의 차이에 따라 여성적 주체성과 남성적 주체성이 분기(分岐)하는 것이다...문제는 바로 남성적 주체성이 인간적 보편성을 참칭한다는 것이다. - 211쪽

오늘날 스웨덴에서 결혼과 이혼은 완전히 사적인 영역에 속하게 되었다...우리는 결혼과 이혼의 사적 영역으로의 편입이 바로 가부장제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가족의 공공화는 가족 내에서의 사적 지배를 제거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스웨덴에서 이러한 가족의 공공화의 대표적인 예는 아이의 ‘시민적’ 권리의 보장이다. - 214쪽

남성이 남성적이고 여성이 여성적일 때 바로 성적 지배가 관철된다. 따라서 스웨덴에서 남성적 정체성과 여성적 정체성의 소멸과정은 일종의 해방적 ‘탈정체화’ 과정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 217쪽

인간 동물들이 자신들의 있는 그대로의 동물성을 서로 드러낸 상태에서, 서로간에 배려를 하는 것 - 224쪽



5장 이행의 문제

정체성은 상징적 질서 내의 이상적(理想的) 특질들에 대한 정체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즉 정체성은 ‘나는 어떠어떠한 사람이다’라는 의미에서의 자아상(自我像)에 다름아닌데, 이 자아상은 상징적 질서에 준거하여 형성된 것이면서도 자신의 실재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상적인 것이다. - 230쪽

‘흑인에게 잘해주는 착한 백인’, ‘가난한 자에게 잘해주는 착한 부자’와 같은 상상적 자아상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상상적 자아상을 가진 자가 자신의 백인적 정체성이나 자신의 부를 포기할 의사가 없다면 그들의 ‘의식적인 선한 의도’는 단지 자아상의 향유를 위한 장식에 그치는 것일 뿐이다. - 231쪽

그렇다면 남성들은 자신들의 지배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인가? 결국 여성들에 의한 ‘계급투쟁’만이 유일한 해결책인가? 그렇다. 여성들에 의한 ‘계급투쟁’만이 유일한 길이다. 양성간의  상호적인 배려가 과연 ‘계급투쟁’의 결과 생성될 수 있을까? 그렇다. 일단 남성들을 여성들과 동등한 위치로 끌어내리기 위해 ‘계급투쟁’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양성간의 진정한 배려는 오직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대등한 주체로 대할 때만 가능하다. - 232쪽

여성들의 ‘계급투쟁’의 결과로 남성들이 자신들의 언어와 무의식적 정체성을 버리고 ‘전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 233쪽

남성들로 하여금 자신의 무의식적 정체성을 파괴하고 ‘전향’하도록 하는 힘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우리는 일단 그러한 힘의 발생을 우선 ‘위선에 대한 거부로부터 생각해볼 수 있다. - 238쪽

그러한 자기연민은 자신을 악에 속하지 못하게 하려는 진정한 자기연민이다...그러한 ‘자기에의 배려’를 지닌 자의 존재방식이란 타자를 위선적으로 지배하는 행위로부터 스스로를 철저히 보호하는 것이다. - 241쪽

타자의 고통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는 고통과 타자의 고통에 대해 눈을 뜨게 하는 고통 - 255쪽

타자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는 자는 타자의 고통 속에서 자신의 과거의 고통을 보는 것이라고 말이다. 다라서 고통당하는 타자를 돕는 것은 바로 자신의 과거를 돕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일종의 기묘한 일체화 내지 동일화 현상이다. 고통받고 있는 현재의 타자와 고통받았던 과거의 자신이 일체화되는 것이다. 즉 타자 속에서 나 자신을 보는 것이다. - 256쪽





자신이 계속 피지배자의 고통으로부터 이득을 얻을 때 피지배자의 고통에 교감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게다가 문제는 자신이 그로부터 이득을 얻고 있는 피지배자의 고통이 결코 지배자에게는 고통으로 생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배자는 피지배자의 고통 속에서 자신의 과거의 고통을 보지 못한다. - 259쪽

이때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감수성이 인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세계를 느끼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그 세계를 인식한다는 것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 260쪽

중요한 것은 감수성이 일반화된 인식에 대한 요청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청은 어떤 존재에 대한 ‘느끼고 받아들임’으로 인한 것이고, 이러한 의미에서 ‘느끼고 받아들임’은 그 존재에 대해 일정한 애정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 261쪽

감수성은 일반화된 인식에 이르고자 열망한다. 또 일반화도니 인식 그 자체가 역으로 감수성을 생성시킬 수도 있다. - 261쪽

타자의 고통의 이유에 대한 인식은 자기자신으로 하여금 타자의 입장에 서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 - 267쪽

이 세계에 대한 ‘전쟁’과 이 세계에 속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 268쪽

여성들의 ‘계급투쟁’을 위한 남성들의 ‘전향’은 인간적 동물성으로부터 인간적 주체성으로의 이행을 구성한다. - 270쪽

인간 동물 내에 이와 같은 주체성의 형성이 없다면 펼쳐질 것은 너무나도 당연히 ‘동일한 것의 영원한 반복’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동일한 자연법칙의 반복일 것이기 때문이다. - 2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