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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 [대논리학](Ⅲ) 개념론-개념일반에 대하여, 구분

순돌이 아빠^.^ 2011. 11. 16. 08:46

헤겔 - [대논리학] 개념론-개념일반에 대하여, 구분



 

헤겔, [대논리학](개념론), 벽호, 1997

 



머리말

황무지와 같은 곳에 새로운 도시를 세운다는 것이 그 나름의 어려움을 수반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경우보다도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다 낡아 버렸으면서도 워낙 견고하게 세워진 것이어서 쉴 새 없이 누군가가 자기의 소유물이나 거처로 삼아 왔던 그러한 도시에 새로운 시설을 마련한다는 것은 이에 필요한 재료가 아무리 충분할지라도 그보다 한층 더한 또 다른 종류의 장애요소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무엇보다 명심해야 할 것은 흔히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던 재래의 많은 소재들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이 되겠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무엇보다도 명심해야 할 것은 흔히 가치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던 재래(在來)의 많은 소재들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이 되겠다. - 17쪽

도대체 인식에 있어서 진리 그 자체보다도 더 숭고한 것이 또 어디에 있을 수 있겠는가? - 18쪽

개념일반에 관하여

개념은 우선 존재와 본질에 대한, 즉 직접적인 것과 반성에 대한 제3자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가 있겠다. 이런 한에 있어서 존재와 본질은 곧 개념이 생성되는 계기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서 개념은 이들 양자를 자체내에서 몰락시키면서 동시에 이를 보존한다고도 할 동일성으로서의 바로 그 양자의 기초이며 진리이기도 한 것이다. -19, 20쪽

존재와 본질을 고구 대상으로 하는 객관적 논리학이야말로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개념의 발생기원에 대한 서술이라고 하겠다. 이를 좀더 자세히 따져 보면 실체는 이미 실재하는 본질이며, 더 나아가서 그것은 존재와 합일된 상태에서 현실성을 띠는 한에 있어서의 본질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개념은 오직 실체를 그의 직접적인 전제로 삼고 있는가 하면 또한 이 실체는 현현된 것으로서의 개념이 즉자적인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리하여 결국 인과성과 교호작용을 거쳐 가는 실체의 변증법적 운동이야말로 개념의 직접적인 발생을 뜻하거니와, 또한 바로 이 발생과정을 통해서 개념의 생성이 서술되기도 하는 것이다. - 20쪽

진정한 반박을 행하기 위해서는 반대자의 힘 자체 속으로 파고들어서 바로 그 힘이 휘둘러 대는 작용권내에 스스로 진(陣)을 치고 들어 앉아야만 한다. 따라서 반대자를 공략하는 데 있어서 다만 그 자신의 외면만을 겉돌면서 전혀 그의 본거(本據)가 아닌 곳에서 자기의 권리를 보유할 수 있을 듯이 행세한다면 이는 사태의 전말을 전도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스피노자 철학을 반박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란 우선 그의 입장을 본질적이며 필연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난 뒤에 두 번째로 그의 입장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기자신을 벗어나면서 더 높은 상태로 고양되도록 하는데 있을 뿐이다. - 26쪽

이 규정성의 자기와의 합치를 뜻한다고도 할 자기자신에 대한 규정성의 이와같은 관계는 또한 못지 않게 규정성의 부정이기도 한 까닭에 결국 이러한 자기자신과의 동등성을 의미하는 개념은 모름지기 보편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또한 못지 않게 이 동일성은 부정이라는 규정을 지니는 가운데 오직 이 동일성이 스스로 자기에게 관계하는 부정이며 혹은 규정성이란 점에서 개념은 이제 개별이 되는 것이다. 결국 여기서 보편과 개별은 각기 저마다 총체성을 이룸으로써 서로가 자체내에 타자의 규정을 내포하는바, 이럼으로써 이들 두 개의 총체성은 결코 둘일 수가 없는 단 하나의 것 - 28쪽

결코 우리는 상식의 세계에서나 통용되는 권위에 추종하는 어떤 확신 따위를 문제로 삼을 수는 없으니, 오직 개념을 위조로 하는 학문에 있어서의 개념의 내용과 의의는 바로 그것의 발생 단초를 포함해서 이미 우리가 다루는 문제의 배후에 놓여 있다고 할 내재적인 연역을 통해서 확증돼야만 할 것이다...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이와같은 개념을 탐구하는 일에 매달리지도 않을뿐더러 혹시 개념에 대해서 논할 경우라 할지라도 그에 대해서 아예 처음부터 이해하고 있다는 식의 전제를 내세우기 때문이다. - 29쪽

개념에 대하여 온갖 조잡한 뒷소리를 퍼뜨리면서 실로 사유의 최고단계를 차지하는 바로 이 개념을 경멸하는가 하면 또한 반대로 개념적으로 파악될 수도 없으며 도대체 개념적으로 파악하려고 하지도 않는 태도를 과학적 및 도덕적으로 가장 고귀한 것으로 여기는 풍조가 오랜 세월에 걸쳐서 관습처럼 되어 왔을 뿐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풍조가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이다. - 29쪽

어떤 대상을 개념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오직 자아가 바로 그 대상을 자기의 것으로 삼는 가운데 그 속을 침투해 들어감으로써 다시 이것을 자기의 고유한 형식으로, 다시 말하면 그 자체를 곧바로 규정성이기도 한 보편성으로, 혹은 이것을 곧바로 보편성이기도 한 규정성으로 이끌어 들이는 데 있을 뿐이다.
흔히 직관이나 표상 속에 주어져 있는 대상이란 아직도 외면적이며 외타적일 뿐이니, 오직 개념적 파악을 통해서 비로소 대상은 그 스스로가 직관이나 표상 속에서 지니고 있던 즉자대자적 존재성을 피정립성으로 전환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즉 자아가 사유하는 가운데 대상에 침투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볼 때 대상은 오직 사유되는 가운데서 비로소 즉자대자적일 수 있으며 반대로 그것이 직관이나 표상 속에 머물러 있을 때는 다만 가상에 지나지 않는다. 사유는 대상이 처음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때에 지니고 있던 그의 직접성을 지양함으로써 바로 이 대상을 하나의 피정립적 존재로, 피정립성을 띠도록 만들어 놓지만 그러나 실은 그의 이와같은 피정립적 존재성이야말로 다름아닌 그의 즉자대자적인 존재성 혹은 객관성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의 대상은 바로 이 객관성을 다름아닌 개념 속에 담고 있으니, 바로 이 개념이야말로 대상을 자체내로 흡수해 버리는 자기의식의 통일인 것이다. - 33쪽

개념이 그 자체로서는 아직 완전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것은 이 개념과 실재성의 통일을 의미하는 이념으로까지 고양돼야만 한다는 점이 인정돼야만 하겠거니와, 또한 이것은 개념의 본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분명하게 드러나야만 하는 것이기도 하다. - 36쪽

흔히 사람들은 [그것은 다만 개념에 불과할 뿐이다.]라고들 말하지만, 이것은 다만 이념만이 아니라 오히려 감성적, 공간적 내지는 시간적인 면에서 손에 잡힐 듯한 존재를 개념보다도 더 유의의有意義한 것으로 하여 바로 이 개념에 대립시키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이와 마찬가지 근거에서 사람들은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인 것보다 열등한 것으로 취급하는바, 왜냐하면 바로 이 추상적인 것에서는 이러저러한 갖가지 소재들이 제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36쪽

실재하는 것 속에 담겨 있는 풍요한 것을 수용함이 없이 다만 궁핍한 추상의 경지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단적으로 오성의 무능을 나타내는 것이 되겠다. - 36, 37쪽

사유는 단지 현상에 지나지 않는 소재를 오로지 개념 속에서만 현현되는 본질적인 것으로 지양하거나 또는 환원하는 것이 되는 셈이다. 그리하여 만약 구체적인 현상으로부터 개념 속으로 받아들여져야만 하는 것이 단지 징표나 기호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면 다만 이것은 대상의 감성적이며 개별적인 규정에 불과한 것 - 37쪽

철학이란 단지 생기(生起)된 사실을 이야기로 엮어 나가는 데서 그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철학은 그러한 사실 속에 깃들인 참다운 것에 대한 인식이어야만 하거니와 또한 더 나아가서 이러한 진리를 터전으로 하여 바로 거기서 서술된 단시 생기된 사건으로 나타나는 것을 개념적으로 파악해야만 하는 것이다. - 38쪽

사유의 객관성은 곧 개념과 사물의 동일성이며, 또한 이 동일성은 곧 진리라고 하는 사실이 분명히 표명되어진 셈이다.
바로 이 점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논점은 즉, 사유가 하나의 소여된 대상을 자기 것으로 삼고 이를 다루어 나감으로써 모름지기 이 대상은 변화를 입게 되며, 또한 이럼으로써 그것은 하나의 감성적 대상으로부터 사유된 대상으로 바뀌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초래되는 상태에서도 결코 대상 자체의 본질성이 변화하는 것은 전혀 아니며, 오히려 그 대상은 자기의 개념 속에 받아들여짐으로써 비로소 그의 진리를 마련한다는 것이 된다.
다시 말해서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 있는 소여(所與)된 직접성 속에서는 대상이 다만 현상이나 우연성을 뜻할 뿐이지만, 오직 이 대상을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경우의 대상인식은 바로 그것이 즉자대자적으로 있는 상태에서의 대상에 대한 인식이어야만 하는 까닭에 결국 개념이야말로 대상의 객관성 그 자체가 되는 셈이다. - 41쪽

구분

개념은 이미 고찰된 바에 따라서 존재와 본질의 통일임이 드러났다. 그런데 본질이 존재의 최초의 부정인가 하면 존재는 바로 이 부정에 의해 가상(假象)으로 화(化)한 것이라고 한다면 개념은 곧 두 번째 부정, 혹은 최초의 부정을 부정한 것이 된다. 이런 점에서 개념은 회복된 존재이긴 하지만, 그러나 이것은 자기자체내에서 무한한 매개와 부정성을 발휘하는 것으로서의 존재를 뜻할 뿐이다. - 49쪽

개념이 그의 객관성 속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자유의 형식을 취하는 완성된 상태가 곧 적격(適格)한 개념, 즉 이념이다. 결국 이념의 영역에 해당하는 이성이야말로 그 스스로가 노정된 진리이거니와 따라서 개념은 모름지기 이러한 진리 속에서 전적으로 자기와 맞먹는 실현을 기(期)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개념은 이제 이러한 자기의 객관적 세계를 그의 주관성 속에서, 그리고 이 주관성은 객관적 세계 속에서 인식하는 가운데 마침내 자유로운 것으로 나타난다. - 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