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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 : [야생의 사고] 7장~9장

순돌이 아빠^.^ 2012. 4. 11. 19:33

레비-스트로스. 한길사, 1996년


제7장 종으로서의 개체

보르네오 섬 내륙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페낭족의 인명체계...연령과 가족 안에서의 위치에 따라서 페낭족은 세 종류의 이름으로 불린다. 개인명, 친명(...의 아버지, ...의 어머니), 그리고 상명(喪名)이라고 할 수 있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 이름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상부(喪夫), 상질(喪姪)과 같이 죽은 친척과 본인간의 가족관계를 나타낸다. - 282

친명과 상명은 친족관계 때문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관계’명이다. - 282

아랍식으로 ‘아부 아흐마드’라고 하면 아흐마드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또한 장남의 이름을 따기 때문에 그 사람의 장남이 아흐마드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국에도 00이 엄마, **이 아빠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지요. 또 항렬이라는 게 있어서 이름을 보면 집안 내의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름만 가지고도 백발의 할아버지가 십 대 소년에게 백부님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거지요.

어렴풋하게나마 상명과 유사한 것은 ‘widow'(미망인)를 칭호로서 쓴 영국의 오래된 관습 - 284. Needham의 글 인용

남성의 ‘veuf'(홀아비)라든가 ’orphelin'(고아)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어찌하여 처에게만 한정시키고 있는가? 아이는 부성을 태어나면서 갖게 된다. 우리들의 사회에서는 그것이 혈통의 분류소(分類素)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성에 대한 아이와의 관계는 부모가 죽어도 변하지 않는다. 어른인 남서에게는 더욱 그러하며 부성에 대한 관계는 독신이든 처자 있는 사람이든 홀아비든 변하지 않는다. 여성에게는 좀 다르다. 남편을 잃으면 ‘00씨 미망인’이 된다. 이것은 남편의 생전에는 그녀가 00씨의 부인이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녀는 이미 자기의 본명을 포기하고 다른 주체와의 관계를 표현하는 이름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 된다. - 284

상명을 사용함으로써 그는 어떤 한 관계의 일항이 된다. - 291

여성이 재혼할 때 새 남편은 전 남편의 자식뿐 아니라 누구와의 사이에서든 자기 처가 일생 동안 낳은 아이 모두에게 새 이름을 붙여주게 된다...새로운 관계가 생기면 그 관계의 영역 안에서 반드시 재명명의 과정이 시작된다. - 293

Brassica rapa가 고유명의 성격을 나타낸다고 하면 그것은 식물학에 능통한 사람만의 일이며 또 그러한 사람만이 “Brassica rapa는 좋은 견본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식물학자에게 이것은 단순한 변별적 음성과는 전혀 다르다. 왜냐하면 그는 라틴어 단어의 의미와 분류법의 규칙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 296

개에게는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일은 어떤 불쾌감을 주며 때로는 핀잔받는 일이기도 하다...다른 클래스의 동물보다 조류 쪽이 그 종으로부터 사람의 이름을 취하기 쉬운 것은 바로 새가 사람과 전연 다르기 때문에 인간과 유사하도록 허용된다는 점에 있다. - 297

Brassica rapa라는 학명은 캐비지 무라는 통칭이 갖는 자족성을 제거하고 그것을 어떤 속의 일종, 즉 전체의 일부분으로 만들어낸다. - 309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차이의 근거는 그들 이름의 언어학적 성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마다의 현실을 분할하는 방법이나 각 문화가 가지고 있는 문제(하나의 사회 집단 속에서도 각 개별 사회마다 다를 수 있는)에 따라서 분류의 작업이 정해지는 여러 가지 한계에 있다. - 310, 311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동일 인종(인종이라는 용어가 명확한 의미를 가진다는 가정하에서)에 속한 사람들은 한 나무에서 발아하고 개화하고 시드는 개개의 꽃에 비교할 수 있다...그런데 사회생활 때문에 이 체계에는 기묘한 변환이 생긴다. 즉 사회생활을 통해 생물학상의 각 개체가 각 개성을 발달시키게 되는 것이다...개성이란 말하자면 ‘단일개체적’ 관념이다. 어떤 개인이 죽으면 소멸되는 개성이란, 생각하는 방법과 행동양식의 종합체로서 독자적이며 대치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한 종의 꽃이 화학적으로는 모든 식물 종과 같은 원소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독자적인 종합체를 이루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311

서양에서는 이 ‘토테미즘’이 인간화(개인화) 되어 있는 것뿐이다. 서양 문화에 있어서는 마치 개인이 각각 자기의 개성을 토템으로 하고 있는 것같이 느껴진다. 개인의 존재를 기표라 하면 개성은 기의가 된다. - 312

어떤 이름이 ‘고유명사’라고 느껴진다는 것은 절대적인 기준에서가 아니고 일종의 문화체계 속에서 그 단어가 그 이상 분류할 수 없는 최종 수준에 위치한다라는 점에 있다. 고유명사는 언제나 분류의 끝에 머무는 것이다. - 312

제8장 되찾은 시간

대립을 만들 수 없을 때까지 인간은 분류하기를 그치지 않는다...분류가 정지하는 것은 동물이나 사물의 경험적 속성에 따른 뜻하지 않은 장애가 생겨서도 아니며 분류 기능이 마비되어 저절로 멈추는 법도 없다. 갈 곳까지 간 연후 임무를 완전히 수행했기 때문에 정지하는 것이다. - 316

현실 세계의 도식의 작용에 의해서 서서히 순화되어가며 그 극한에 이르러서는 이 작업의 의도이기도 하지만, 단순한 이항 대립(위와 아래, 오른쪽과 왼쪽, 전쟁과 평화 등)의 형태로 남는다. - 316쪽

인식의 차원에서

야생의 사고를 규정하는 것이, 인류가 이미 그 후로는 경험할 수 없었던 강한 상징 의욕이며 동시에 전적으로 구체성을 향한 세심한 주의력이며 또 이 두 태도가 실은 하나라는 것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라면, 그것은 바로 야생의 사고가 이론적․실제적 견지에서도 콩트가 그 능력을 부정한 ‘지속적 관심’에 바탕을 두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인간이 관찰하고,  실험하고, 분류하고, 추론하는 것은 알 수 없는 미신의 책동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또 우연의 장난도 아니다. - 319





존재는 동시에 주체로서 또 객체로서 서로 부딪힌다. - 321, 322

상대가 이야기할 때 음성으로 표현된 기호는 의미를 담고 온다. 언어 음성을 통해 분해해서 추출되는 요소의 하나하나는 기호가 아니고 기호를 만드는 수단이다. 그것은 변별적 단위이며 다른 단위와 바꾸면 반드시 의미가 변화한다. 그러나 그 단위 자체는 의미의 속성을 포함하지 않고 다른 단위와의 결합이나 대립에 의해서 의미를 포함한다. - 322

차가운 사회가 자체의 성공을 위해 제도로써 우연적인 인구요인의 영향을 제한하며 집단 내에 혹은 집단 간에 나타나는 대립을 완화하고 또 개인적 집단 활동의 틀을 영구화하여 회귀적 연쇄로 조절 작용을 행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 결과의 축적으로 경제적․사회적 대변동을 야기하는 사건의 비회귀적 연쇄는 곧 파괴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와 같은 연쇄의 형성을 예방하는 효과적 방법을 사회가 마련하여야 한다. 그것은 잘 알려진 방법이다. 역사적 생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지만 그러나 내용 없는 형식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 337

과거를 역사 과정의 한 단계로 보기보다는 시간을 초월한 모델로 생각하며 거기에 집착하는 것은 도덕적 혹은 지적 결함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채택된 입장을 나타낸다. 그 체계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하나하나의 기술, 규칙, 습관에 대해 끈질기게 반복되는 정당화의 수단은 세계 어디서나 “조상들이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유일한 주장이다. - 338

토템의 실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개개의 동물은 기표의 역할을 할 뿐 성스러움은 그 동물이나 그 도상(圖像)과 결부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느 쪽으로도 표시될 수 있는 기의에 결부되는 것이다. 요컨대 예를 들어 국립도서관 소장인과 같이 권위있는 도장이 찍혀 있다는 것만으로 사료가 신성해지지는 않는다. 사료 자체가 성스러운 것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찍히는 것이다. - 344

제9장 역사와 변증법

민족지적 분석은 인간 사회의 경험적 다양성을 뛰어넘어서 상수(常數)에 도달하고자 한다. - 354

내가 생각하는 환원의 조작은 다음의 두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정당화되지 못하며 또 가능하지도 않다. 그 첫째 조건은 환원되는 여러 현상의 내용을 감소시키지 말 것. 각 현상 주위의 변별적 풍부함과 독자성에 기여하는 모든 요소를 빠뜨리지 말고 수집해두어야만 한다. 망치를 들고 못이 아닌 것을 쳐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목적한 수준이 어떤 것이든 간에 이 환원의 조작에 의해 기존 관념이 통째로 뒤집히더라도 감수하여야만 한다. 민족지적 환원에서 추론된 보편적 인간성의 관념은 과거에 형성된 보편적 인간성의 관념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 될 것이다. - 355

과학적 설명은 복잡에서 단순으로의 이행이 아니라 난해한 복잡성을 좀더 이행가능한 복잡성으로 바꾸어 놓는 일이다. - 355

자아는 타자에 대립하는 것이 아니며 인간과 세계도 대립하지 않는다. 인간을 통해서 배운 진리는 ‘세계에 속한다’, 또 그렇기 때문에 중요하다. - 355

인간에 대한 진실은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존재양식 사이의 상이성과 공동성으로서 구성되는 체계 가운데 존재한다. - 357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은 개인적 독자성이라는 덫에 걸려 있는 사람들쪽에서 오히려 더 쉽게 이루어지는 듯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보편성에 대한 인식의 문을 굳게 닫게 된다. - 357

미개인이 ‘복합적 의식’을 갖고 분석이나 논증의 노력을 한다는 것은 사르트르에게는 참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레비-브륄 같은 사람보다 한술 더 뜨고 있다. 디콘의 저작으로 유명해진 암브림 섬의 원주민은 조사자에게 혼인규율이나 친족조직이 어떻게 기능하는가를 모래 위에 그림을 그려 설명해 보였다. 이것은 결코 예외적인 것이 아니며 민족지의 문헌에는 이와 같은 기록이 산적해 있다. - 360

‘미개인’과 ‘문명인’을 구별하는...이 체계가 보여주는 것은 역사의 구체적 모습이 아니라 역사를 만드는 인간들의 추상적 도식이다. - 364

원주민들이기 때문에 비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원주민들은 비원주민들과 다른 방식으로 논리를 표현했을 수도 있음. 유럽인=논리적, 원주민=비논리적이라는 사고는 대상을 인식한 것이기 보다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닐지.

우리들은 인간의 실제 경험을 관찰하여 그것을 현재 시점에서 분석하고 가능한 한 깊이 과거를 더듬어서 역사적 사정을 파악한 뒤 모든 사실을 백일하에 재구성하여 의미를 갖는 전체성 속에 조립한다. - 362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말할 때 일어난 장소는 어디인가? 어떤 혁명, 어떤 전쟁의 에피소드 하나하나는 대량의 심리적․개인적인 움직임으로 분해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심리적 움직임은 각각 무의식적인 생리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으며 또 그 변화는 뇌, 호르몬, 신경현상으로 분해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현상의 기초 자체는 생리적․화학적인 성질의 것이다. - 367

야생의 사고의 특성은 그 시간성에 있다. 그것은 세계를 공시적이면서 통시적인 전체로 동시에 파악하려고 한다...야생의 사고는 세계도를 써서 자기의 지식을 깊게 한다. 이와 같은 사고가 정신적 구조물을 만들고 그것이 세계를 닮으면 닮을수록 세계에 대한 이해는 쉬워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야생의 사고를 유추적 사고라 정의할 수 있다. - 375

나는 이성이란 ‘실천’을 통해 발달하고 변형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인간의 사유 양식은 세계와 타자에 대해 어떠한 관계를 갖는가를 나타낸다. 그러나 ‘실천’이 사상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먼저(논리적인 의미에 의해서이며 역사적 의미에서는 아니다) 사고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실천‘의 전제 조건은 심리현상과 뇌의 객관적 구조의 형태에 주어져 있다. 그것이 없이는 실천도 사상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 375, 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