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착취.폭력/지배.착취.폭력-여러가지

석굴암과 미륵사 그리고 국가권력

순돌이 아빠^.^ 2013. 3. 18. 10:36



어깨를 부자연스럽게 치켜올리고 얼굴은 웃음기가 없이 근엄해진 이들 불상은 장중한 위엄을 강조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전제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국왕의 위엄을 과시하려던 현상과 서로 상응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
석굴암石窟庵은 후실後室 중앙의 주존불主尊佛을 중심으로 십일면관음보살을 위시한 여러 보살상․나한상․인왕상․사천왕상 등이 하나의 조화된 미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주존불은 거구巨軀이면서도 신체의 각 부분이 균형 잡힌 조화를 이루어서 하나의 이상적인 부처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조각은 부드러운 선에 의하여 사실적으로 처리됨으로써, 보는 사람에게 인간적인 느낌을 가지게 한다.


한편 그러면서도 간략하게 처리된 추상적 기법이 범할 수 없는 근엄성을 또한 느끼게 한다. 이러한 이상주의와 사실주의, 그리고 추상주의의 적절한 결합은 주위의 보살상이나 나한상, 또는 인왕상이나 사천왕상 등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 있다. 이상적 여래세계의 재현인 석굴암은, 그러므로 경덕왕이 전제왕권을 중심으로 이룩하고자 노력한 현실세계에서의 꿈을 종교적인 세계에서 나타내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이기백․이기동, <한국사강좌1-고대편> 가운데




<미륵사지 서 동당간지주 및 서탑 전경>

<미륵사 학술자료 디지털콘텐츠> 홈페이지에서 http://mireuk.nricp.go.kr



무왕은 미륵사를 창건하여 미륵삼존을 모심으로써 백제를 미륵의 용화세계로 만들겠다는 종교적 의지를 표방하였던 것이다...무왕은 미륵사 창건을 통해 보륜(寶輪)을 굴리면서 정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전륜성왕을 자처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왜 익산에 미륵사를 창건하였느냐 하는 점이다. 그 해답은 익산 지역과 무왕의 관련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익산은 무왕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어서 인연이 깊었다. 또 이 지역에 어머니의 세력 기반이 있었다...익산의 지역 세력을 주용하는 것, 익산에 왕궁을 조영하는 것 등과 같은 정치적 측면과 더불어 사상적인 측면에서 왕권을 강화하는 작업도 포함되었다.
- 노중국, <백제사회사상사>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