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해방. 민족과 계급의 이익

고려시대 노비제의 기본 윤곽은 원간섭기元干涉時期에 원(元)이 누차 고려의 노비제를 폐지코자 시도하고 고려의 왕과 귀족이 그에 저항하는 과정에 매우 선명히 드러나 있다. 1300년 충렬왕(忠烈王)이 원에 올리 표문(表文)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옛적 우리 태조(太祖)가 자손에게 유훈을 내리기를 천류(賤流)는 그 종자(種子)가 있으니 이들을 양인으로 절대 해방시키지 말라, 만일 그렇게 하면 그들이 국가의 요직을 차지하고 난을 일으켜 끝내 사직이 위태하리라 하셨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나라 법에는 그 8세호적(世戶籍)이 천류에 관계되지 아니하여야 벼슬을 얻게 되며, 무릇 천인이 되는 것은 부나 모의 한편이 천류이면 곧 천인이 되는 ‘일천즉천’의 원리에 의하며, 나아가 비록 주인이 양인으로 해방하더라도 그 소생(所生)을 다시 천인으로 돌리니, 끝끝내 그들은 양인이 될 수 없는 법이다. 만약 이러한 구장(舊章)을 폐하면 나라의 기틀이 무너지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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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숙왕(忠肅王)대에 최유엄崔有渰이 원(元)에 건너가 원이 고려 노비제를 폐하고자 함을 극력 저지하고 돌아왔는데, ‘국인(國人)’이 손을 들어 울면서 ‘우리 삼한(三韓)을 보존한 이는 최시중崔侍中이라’고 환영하였다. <고려사>에서 ‘국인’이라 함은 경도인을 말한다. 곧 그들이야말로 노비제 폐지에 가장 큰 이해의 당사자들이었다.

- 이영훈, '한국사에 있어서 노비제의 추이와 성격', 역사학회, <노비.농노.노예> 가운데

같은 민족이라도 아무리 떠들어 봐도

지배하는 놈은 지배하는 놈이고

지배당하는 놈은 당하는 놈이고.

계급의 이익이 민족의 이익에 앞서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