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대한 군사행동이 확대․장기화함에 따라 일본제국주의와 미․영 제국주의의 무력충돌을 불가피했으므로 일본제국주의는 새로운 대규모 전쟁에 대응하기 위해 그 세력권 안에 있는 모든 지역에서 군수자원의 총동원과 군수공업의 급속할 발전을 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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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증된 군수산업의 노동력 수요는 부인과 유․소년 노동력으로 충당되었다. 통계상으로는 1943년 6월 현재 모든 광산노동자의 8%는 부인노동자였고, 노동자 30인 이상의 공장에서 총사용노동자의 30%가 부인노동자였다. 또 노동자 30인 이상의 공장에서 15세 이하의 유년공은 51,000명으로 사용노동자 총수의 22%, 19세 이하의 소년공은 58,000명으로 25%, 유․소년공 모두 109,000으로 48%였다.
- 이기수, '경제사', 전석담. 박극채 외, <조선경제사탐구>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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