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국가가 ‘과전(科田)’과 같은 것을 벼슬아치들에게 주지 않았을 시기에 이러한 ‘무업’의 양반의 생활은 더욱 ‘곤란’하였으리라는 구실을 공공연히 내걸고 지방고을의 ‘원[守令]’으로 부임할 것을 구하는 것은 고려․조선조 시대를 통하여 보통 있는 현상이었다. 이는 그 ‘원’의 자리를 이용하여 전국 토색으로서 생활의 밑천을 장만하자는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기 선조의 벼슬을 팔아가지고도 토색을 하는 형편에서 자신의 벼슬자리를 이용하여 토색하기란 더욱 용의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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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색은 봉건국가의 법령으로써도 금지되는 ‘비법적 행위’였다. 그러나 토색행위가 봉건국가권력과 결탁되지 아니하고 감행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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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양반중에서도 토색질을 하여야 먹고 살게 되어 있는 ‘무업’한 자들이, 즉 제이류계층이 고려․조선조 시대를 통하여 ‘유업’한 자들보다 많았으리라고 하는 것은 전기 서거정의 글에서도 볼 수 있었다. 봉건국가의 벼슬자리를 가장 동경하고, 악착하게 이에 매달리는 양반들도 주로 이 계층이었다. 봉건국가에 대한 ‘충성’도 이 계층에서 가장 강하였으리라고 생각될 수 있다...그 벼슬자리를 ‘먹을 자리’로만 알고 일신의 영달을 위하여는 그 어떤 짓도 사양치 않는 거기에 이 계층의 ‘충성심’의 본질이 있었다...‘충忠’은 우리네 양반에게 있어서는 대부분의 경우에 아무 실속이 없었던 공허한 하나의 도덕적 범주에 불과하였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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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의 윤리관에 있어서 국가라는 것은 원래 그 ‘강도질’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였다.
- 김석형, <조선봉건시대 농민의 계급구성>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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