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 섬들에 대해 탐험활동을 벌인 세력은 처음에는 스페인 왕실이나 자본가들이었다. 그러나 카리브해를 넘어 아메리카 대륙에서 정복사업을 추진한 세력은 황금에 굶주린 집단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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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의 은은 아프리카로부터 수많은 노예들을 수입하는 자금줄이 되었다. 신대륙에 수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고 식민지통치체제가 갖추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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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의 은은 활발한 해상활동과 상업 자본주의의 활동무대를 제공했다. 은이 제공한 기회를 바탕으로 해서 유럽은 무역을 통해 아시아 문물을 수입할 수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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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원시축적은 역시 식민주의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만들어서 자신들이 이미 식민지로 만든 아메리카 대륙에 끌고 간다. 북미 대륙을 포함한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이들의 노예노동을 바탕으로 대규모 플랜테이션 산업이 번창한다. 이곳에서 재배된 대표적인 원자재가 면화였다. 면화는 영국으로 수입되어 면방직 산업의 원료가 되었다. 영국이 생산한 면직물은 다시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을 주요 시장으로 삼아 수출된다. 아프리카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 그리고 유럽이 하나로 연결되어 한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삼각구조가 성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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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무역 및 노예제와 면산업은 동전의 양면이었다. 18세기 영국의 면산업 중심지는 영국에서도 식민지들과의 무역을 주로 담당한 항구들, 이른바 식민지무역항들이었다. 브리스틀과 글래스고, 그리고 리버풀이 대표적이었다. 특히 리버풀에서 면산업이 발달했다. 리버풀은 동시에 노예무역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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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리버풀을 대신하여 영국 면산업의 중심지로 된 것은 랭커셔였다. 랭커셔의 면산업 역시 아메리카 대륙의 노예제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1790년대 이후 미국 남부의 노예 플랜테이션들이 확장되고 유지된 것은 영국 랭커셔의 면공장들이 요구하는 원면 수요가 하늘을 찌를 듯 팽창을 계속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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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은 갈수록 내수시장보다 더 중요해졌다. 1814년이 되면, 영국 면방직산업에 대한 국내시장 수요가 3이라면 수출시장은 4에 달했다. 1850년이 되면 그 차이는 8대 13으로 확대된다. 영국 면방직산업 팽창을 주도한 것은 내수시장이 아니라 해외 수출시장이었던 것이다. 해외 수출시장의 핵심은 영국이 시장을 독점한 식민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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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노동은 유럽인들이 은과 함께 농작물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하였고, 동시에 유럽의 상품들을 아메리카 대륙에 들여와 팔 수 있는 시장도 제공했다.
- 이삼성,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2> 가운데
국가와 폭력을 이용해 아메리카 사람들을 지배
이들에게 노예노동을 시켜 은 생산
은으로 아프리카 노예 확보
아프리카 노예를 이용해 면화 생산
면방직 공장에서 노동자들을 노예처럼 부려 상품 생산
타인의 노동을 이용해 생산한 상품을 전 세계에 팔면서 자본가들은 이윤 챙김
인도의 반(半)노예노동이 영국을 위해 면화라는 원자재를 생산해주었다.
영국 면산업은 그것을 발판으로 더욱 팽창했다. 다만 인도의 경우는 노예공급이 인도 자체 안에서 이루어진 셈이어서 삼각주오의 두
축, 즉 한편으로는 노예공급, 또 다른 한편으로는 노예노동에 의한 플랜테이션이 인도라는 같은 장소에서 해결된다는 특징이 있었다.
인도는 물론 면방직산업의 시장이라는 역할도 동시에 담당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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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도는 전통적으로 면직물 수출국이었다. 인도가 영국 식민지로 된 후에도 처음 얼마 동안은 영국 동인도회사가 장려하는 가운데 인도
면산업은 유지되었다. 그러나 랭커셔를 중심으로 영국에서 면산업이 본격화된 이후 인도 면산업은 체계적으로 억압당했다. 식민지 인도는
탈산업화를 강요당한 것이다. 인도는 머지않아 랭커셔 면질물의 소비시장으로 전락했다.
- 이삼성,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2> 가운데
* 참고 : 영국이 생산한 면제품을 중국을 거쳐 일본이 수입. 이를 다시 조선에 판매하여 조선인들의 면포 생산량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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