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감의 상태’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것은 상태가 아닌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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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 공감적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국면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상대방이 개인적으로 지각하고 있는 세계로 들어가서 완전히 거기에 익숙해 지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방 안에서 흐르고 있는 느껴진 의미들의 변화, 곧 두려움, 분노, 부드러움 또는 혼란, 그 무엇이든 그가 경험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순간순간 민감하게 되는 것을 포함한다. 이는 잠시 상대방의 삶을 살면서 판단하지 않고 그 안에서 섬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 사람이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의미들을 지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의식적인 감정들을 완전히 들춰내지는 말아야 한다. 그것은 너무 위협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세계에 대해서 당신이 느낀 점을 표현해 주는 것을 포함한다. (그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당신이 새롭고 두려움 없는 눈으로 바라본 대로 그에게 전해 주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느낀 것이 정확하지 자주 그와 함께 점검하고, 그의 반응에 의해 안내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그 사람의 내면세계 안에서 그의 신뢰할 말한 동반자다.
상대방이 경험하고 있는 흐름 가운데 있는 가능한 의미들을 짚어 줌으로써 당신은 그 사람이 이 유용한 형태의 참조체계에 초점을 맞추도록 돕고, 그 의미들을 보다 충분히 경험하며, 그 경험 가운데서 좀 더 전진해 나가도록 도와준다.
이런 식으로 상대방과 함께해 주는 것은 당신이 편견 없이 상대방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하여 당분간 자신의 견해와 가치들을 내려놓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읨에서 이것은 당신 자신을 내려놓는 것을 말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충분한 확신이 있어서 기이하고 별난 것으로 판명된 다른 사람의 세계 안에서도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며, 원할 때는 언제든지 자신의 세계로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설명을 통하여 공감적이 된다는 것은 복잡하고 요구사항이 많고 강하면서도 미묘하고 부드러운 존재방식이라는 것이 분명해졌을 것이다.
뛰어난 재기와 통찰력 있는 진단은 공감과는 상관이 없다. 치료자들이 공감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정도는 그들의 학업 성취나 지적인 능력과 관계가 없다. 또한 개개인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나 진단을 내리는 능력과도 관계가 없다. 사실상 후자와는 부정적인 상관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발견이다. 공감에서 학구적인 탁월함이나 진단기술이 중요하지 않다면 공감의 자질은 대부분의 임상적 사고, 즉 심리학적·정신의학적 사고와는 다른 대화의 영역에 속해 있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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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적인 존재방식은 공감적인 사람들에게서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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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자들, 교사들 그리고 부모들은 도움을 받으면 공감적이 될 수 있따. 그들 자신의 슈퍼바이저들, 교사들, 부모들이 민감하게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라면 그들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특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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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하고 붙잡기 어려우며 치료에서 극히 중요한 이 자질이 ‘타고나는 것’아니라 배울 수 있으며, 더욱이 공감적인 분위기에서 가장 잘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격려가 된다.
공감은 소외감을 해소한다. 공감을 받는 사람은 적어도 그 순간만은 자신이 인류와 연결된 한 부분이라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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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융은 정신분열증 환자들이 자신들이 이해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더 이상 정신분열증 환자가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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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적 이해의 두 번째 성과는 그 대상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이 있는 모습 그대로 가치 있고 존중받으며 수용된다고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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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상대방과 그의 세계를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리고 어느 정도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가 인식하고 있는 세계를 정확하게 인식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 대상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들려지게 된다. “이 사람이 나를 신뢰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구나. 아마 내가 무슨 가치가 있긴 한가 보다. 어쩌면 나도 나 자신을 가치 있게 여겨도 될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나를 좋아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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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가장 높은 수준의 공감적 표현은 수용과 무비판이다. 이것은 진실이다. 왜냐하면 당신 안에 상대방에 대한 평가적인 견해가 형성되어 있다면, 당신이 그 사람의 내면세계를 정확하게 인지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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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진정한 공감은 언제나 평가적, 진단적 성격을 배제한다. 상대방은 이를 놀라움으로 지각한다. “내가 판단받지 않는 것을 보니 그동안 생각했던 것만큼 내가 약하거나 비정상적이지는 않은가 보네. 아마 그렇게 심하게 나 자신을 정죄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렇게 해서 자기 수용의 가능성이 점차 증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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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서 제대로 이해받게 되면 사람은 자신의 개성과 정체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랭은 “정체감을 인식하려면 자신을 알고 있는 타인의 존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부버도 우리의 존재에 대해 타인이 확인해 주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말했다. 공감은 사람이 정체감을 가진 독립적이고 가치 있는 모습으로 존재하는 데 필요한 확인을 제공해 준다.
- 글출처 : 칼로저스, <칼 로저스의 사람 중심 상담> 가운데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슬픔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
서로 다른 마음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공감하지는 못하고 권력은 유지하고 싶을 때,
그런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면 태어날 때부터 공감을 못했던 것은 아닐 건데
이런 저런 상처와 고통 때문에 공감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공감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어쩌면 더더욱 간절히
누군가 자신을 공감해 주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니
다른 사람을 짓누르고 괴롭히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그들도 공감 받으며 자신을 치유하고 행복의 길을 찾았으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건
남을 누르고 올라설만한 힘을 갖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관계를
얼마나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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