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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순돌이 아빠^.^ 2015. 1. 13. 14:41



프리모 레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돌베개, 2014





나치의 절멸 수용소에 대한 최초의 소식들은 격동의 해인 1942년에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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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그 소식들이 전하는 엄청남 때문에 그 이야기들을 거부하려 했다. - 9

거의 모든 생환자들이 말로든 글로 남긴 그들의 기억 속에서든 포로생활을 하던 밤에 자주 되풀이되던 꿈을 상기한다. 세부적인 면에서는 제각각 다르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한결같다. 집으로 돌아가 소중한 사람에게 자신이 겪은 고통들을 안도하면서 또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꿈, 그러나 믿어주지 않는, 아니 들어주지도 않는 꿈이다. 가장 전형적인 (그리고 가장 잔인한) 형태로는 상대방이 몸을 돌리고 침묵 속으로 가버린다. - 10

라거(강제수용소)에 대한 진실을 확산시키지 않았다는 것이야 말로 독일 민족이 저지른 가장 중대한 집단 범죄의 하나이며 히틀러의 테러로 인해 독일 민족이 다다른 비겁함을 가장 명백하게 증명해 주는 것이다. 관습 속으로 들어와버린 비겁함, 너무나 깊어서 남편이 아내에게, 부모가 자식에게도 입을 열지 못하게 만드는 비겁함이다. 이 비겁함이 없었더라면 그토록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고 유럽과 세상은 오늘날 달라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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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거의 악행을 알고 있던 수많은 잠재적 ‘민간인’ 증인들 역시 의도적인 무지와 두려움으로 침묵했다. 특히 전쟁 마지막 몇해 동안 라거들은 복합적이고 확장된, 지역사회의 일상생활 속으로 깊숙이 스며든 체계를 구축했다. 사람들이 “수용소 세계”라고 부른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지만, 실제 그곳은 폐쇄적인 세계가 아니었다. 크고 작은 공산품 기업과 농산품 회사, 군수공장들이 수용소가 공급하는 공짜나 다름없는 노동력으로부터 이윤을 뽑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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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사용된 독약의 공급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1942년부터 급격히 늘어난 주문량은 눈에 띄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의심을 낳을 수밖에 없었고, 물론 의심을 샀다. 그러나 그 의심들은 두려움과 돈벌이의 욕심, 맹목과 우리가 앞에서 언급했던 의도적인 어리석음에 의해, 그리고 몇몇의 경우는(아마도 소수의 경우) 광신적인 나치의 복종에 의해 질식돼버렸다. - 14~16

포로들이 자신이 놓인 비인간적인 조건들 속에서 자신들의 세계에 대해 총체적 관점을 갖기란 힘든 일이다...봉인된 화물열차를 타고 굽이굽이 돌아 죽을 만큼 힘든 여행을 한 뒤 도착한 그 라거가 유럽의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들은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다른 라거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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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자신의 옆에서 일했던 동료가 내일이면 갑자기 사라지고 없었다. 사라진 동료는 옆 막사에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세상에서 지워졌을 수도 있다. 그것을 알 방법이 없었다. 결국 그는 폭력과 협박의 거대한 건물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그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생각해낼 수 없었다. 그 자신의 눈은 매순간 필요한 욕구들로 인해 바닥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 16, 17

그 누구도 16세기 내내 아메리카에서 스페인 정복자들이 저지른 학살에 대해 무죄라고 말하길 원치 않는다. 그들은 적어도 6,000만명의 인디오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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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렇게 우리는 인디오들에게 행한 학살을 “다른 시대의 일”이라고 치부해버림으로써 마음 홀가분해지려고 하지 않았던가? - 22

수용소 관리를 위해서는, 새로 입소한 사람은 그에게 붙은 딱지가 무엇이든 간에 정의상 적수였고, 하나의 사례나 또는 조직된 저항의 싹이 되지 않도록 당장에 무너뜨려야 했다. 이 점에 대해서 SS 군은 명확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자주 얼굴에 가해지던 즉각적인 주먹질과 발길질, 정말로 화가 나서든 화난 척 해서든 간에 분노를 쏟아내며 미친 듯이 내리르는 명령 소리, 입소자들을 완전히 벌거숭이로 만드는 것, 털이란 털은 모조리 깍는 것, 누더기를 입히는 것 등, 라거별로 서로 다르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수용소 입소 시에 수반되었던 모든 불길한 의식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 42

다른 모든 공동체에서 ‘신참’과 ‘신입생’에게 그러듯이...수용소에 새로 들어온 사람은 조롱받고 잔인한 장난질을 당했다. 라거에서의 삶이 일조의 퇴보를 가져왔다는 것, 정확히는 수형자들을 원시적인 행동들로 이끌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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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시받는 연장자 무리는 새로 들어온 신입으로부터 자신의 굴욕감을 배설할 대상을 발견하고 그를 희생시켜 보상을 받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신입을 희생양 삼아 위에서 받은 모욕의 무게를 떠넘길 더 낮은 계층의 사람을 만들려는 것이었다. - 43

말로 한 이야기든 글로 쓴 것이든 생환자들의 기억들 중 대부분이 이렇게 시작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즉, 수용소의 현실에 맞닥뜨린 최초의 충격은 예견하지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었던 누군가의 공격이었는데, 관리자 포로라는 새롭고 이상한 적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 관리자 포로는 손을 잡아주고, 안심시켜주고, 길을 가르쳐주는 대신 모르는 언어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달려들어서는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새로 들어온 사람을 길들이려 하고, 자신은 잃어버렸지만 상대는 아직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을 존엄의 불씨를 꺼뜨리고자 했다. 그러나 만약 새로 들어온 사람이 자기 존엄을 지키고자 감히 반응을 보인다면 정말로 큰일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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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다른 관리자들이 위협받은 질서를 지키기 위해 달려오고, 죄인은 기들여지거나 죽ㅇ르 때까지 체계적이고 분노에 찬 구타를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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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른 곳에 기진맥진할 정도로 전력하고 있던 나치에게는 점령국들로부터 독일 권력의 대리인들과 관리자들, 질서유지군을 조달받는 것도 불가피한 문제였다. -44~45, 47

권력은 어느 정도 통제된 것이든, 찬탈한 것이든, 위로부터 수여 받은 것이든, 아래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든, 정당한 자격이 있어서 부여받은 것이든, 공동의 연대로 부여받은 것이든, 아니면 피로써 또는 부로써 부여 받은 것이건 간에 인간사회 조직의 모든 형태 속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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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작업반 카포들에서 보듯,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관리자들이 가졌던 권력은 낮은 계급의 관리자의 권력이라 해도 실질적으로 무제한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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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그들은 자기 아래 놓여 있는 사람들이 어떤 위반이라도 하면, 또는 아무런 이유 없이도 처벌이라는 명목으로 극악무도한 잔혹행위를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 51, 52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권력을 원했다. 특히 사디스트들이 권력을 원했다. 물론 숫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커다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특권의 지위란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과 굴욕을 가할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 53

좌절한 사람들도 권력을 원했다...당국에 경의를 기꺼이 표하는 자에게 권력이 자비롭게 주어지며, 이런 식으로 그들은 달리는 도달할 수 없는 사회적 진급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억압받는 사람들 중의 많은 이들이 권력을 원했다. 그들은 억압하는 자들로부터 전염되었고 무의식적으로 억압하는 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 53

라거의 포로들은 전 유럽 국가의 사회 각계각층에서 온 수십만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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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의 극단적 예는 아우슈비츠와 기타 절멸 수용소의 존더코만도스에서 볼 수 있다...그들에게 주어진 특혜란 몇 달 동안 충분히 먹을 수 있다는 것 정도였다. SS는 “특수부대”라는 적당히 애매한 이름으로 포로들의 한 그룹을 지정한 뒤 화장터의 운명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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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부대는 대부분 유대인으로 구성되었다...유대인을 화로 속에 넣어야 했던 것도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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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묵묵히 따르는 태도를 특정하게 유대인적인 어떤 특성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은 분명히 해두자. - 55, 56, 58, 59

게토의 위원장(또는 원로)이라는 임무는 본질적으로 끔찍한 것이다. 그래도 그것도 하나의 자지라고 사회적 인정을 받고 신분을 한 계단 높여주는 것이었으며 권리와 특권들, 즉 권력을 부여해주는 자리였다. 룸코프스키는 권력을 열렬히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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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 가 그는 절대 계몽군주의 옷을 입은 자기 자신을 보게 되었고, 물론 그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지만 훌륭한 행정가이자 질서정연한 인간이라는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한 독일 주인들이 그 길로 그를 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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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자신의 굶주린 신민들로부터 룸코프스키는 복종과 존경뿐만 아니라 사랑 또한 받기를 열망했다...그는 빵 4분의 1 덩어리를 얻기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는 뛰어난 예술가들과 장인들의 부대를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에게 희망과 신앙의 빛 속에 새하얀 수염과 백발을 한 자신의 초상을 넣은 우표를 그리게 하고 인쇄토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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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굳건하고 강한 손”을 찬양하는 찬가들과 자신의 덕으로 인해 게토에 넘치는 평화와 질서를 찬양하는 찬가들을 궁정시인들로 하여금 자곡하게 했다. 매일같이 전염병으로, 영양실조로, 독일군의 약탈로 황폐해진 끔찍한 학교의 어린이들에게 “선견지명으로 앞날에 대비하는 우리의 사랑하는 위원장님”에 대한 칭송을 작문 주제로 내줄 것을 명령했다. - 71~73


모든 독재자가 그러하듯이 그도 질서 유지라는 명목하에 경찰 병력을 서둘러 조직했다. 그러나 실상은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고 자신이 만든 규율들을 집행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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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코프스키가 자신의 신민들의 반항의 움직임(다른 게토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우치에도 시오니즘, 연맹주의 또는 공산주의에 뿌리를 둔 대담한 정치적 저항의 소그룹들이 존재했다)을 서둘러 진압할 때의 그 가혹함은 독일인에 대한 노예근성에서라기보다 차라리 제왕인 자신에게 가해진 모욕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73, 74

권력은 마약과도 같다. 권력에 대한 욕망도, 마약에 대한 욕구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러나 (룸코프스키의 경우처럼) 우연하게라도 한 번 시작된 뒤에는 중독되고 필요한 투여량은 점점 더 많아진다. 또한 현실에 대한 부정과 전지전능을 갈구하는 유아적 꿈으로 돌아가는 일도 나타난다. - 77

국가사회주의와 같이, 무시무시한 부패 권력을 행사하는 지옥같은 체제로부터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체제는 자신의 희생자들을 타락시키고 그들을 자신과 비슷하게 만든다. 크고 작은 공범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 체제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매우 단단한 도덕적 뼈대가 필요하다. 자신의 전(全) 세대와 마찬가지로 우치의 장사꾼 하임 룸코프스키의 도덕적 뼈대는 약했다. 그러나 우리의 뼈대, 오늘날 유럽인들의 도덕적 뼈대는 얼마나 강한가? 만약 불가피하게 몰릴 때, 동시에 유혹이 우리 마음을 부추길 때 우리들 각자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룸코프스키의 이야기는 라거의 관리자들과 카포들에 대한 매우 유감스럽고 우려스러운 이야기이다. 한 체제를 위해 일하고 그 체제의 죄에는 자진해서 눈감아버리는 하위 권력층들의 이야기이다. 서명에는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까 모든 것에 죄다 서명을 하는 중간 간부들의 이야기이다. 고개를 가로젓지만 묵인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며, “내가 하지 않으면 나보다 더 못한 다른 사람이 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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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코프스키처럼, 우리 역시 권력과 위신에 현혹되어 우리의 본질적인 나약함을 잊어버린다. 우리 모두 게토 안에 있다는 것을, 게토 주위엔 담벼락이 둘려 있고 그 밖에는 죽음의 주인들이 있으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기차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렇게 우리는 자발적이든 아니든 간에 권력과 타협하게 하는 것이다. - 78~80

우리의 신임 카포는 다른 식으로 때렸다. 발작적이고 악의적이고 사악한 방식으로, 코를, 정강이를, 생식기를 때렸다. 그는 아프게 하기 위해 때렸고, 고통과 굴욕감을 유발시키기 위해 때렸다. 많은 다른 사람들이 그러듯이 맹목적인 인종적 증오 때문만도 아니었다. 고통을 가하려는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내며, 마구잡이로, 아무런 구실도 없이 자기 밑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랬다. - 86

많은 사람들이(나 자신도) 포로생활 중에 그리고 그 후에 ‘수치심’, 즉 죄의식을 느꼈다는 것은 수많은 증언들에 의해 확인되고 입증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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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무슨 죄인가? 모든 것이 끝났을 때, 우리가 휩쓸려 들어가 있던 체제에 대항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아니면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인식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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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을 시도했던 사람은 적극적 저항이 가능했던 집단적·개인적 상황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안다. 또한 적극적 저항이 불가능했던 상황들이 훨씬 더 일반적이었다는 것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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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성적 측면에서 보면 그다지 수치스러워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수치심은 그대로 남았다. 무엇보다도 저항할 힘과 가능성을 가졌던 사람들의 몇몇 빛나는 본보기 앞에서 그랬다. 이에 대해 나는 [이것이 인간인가]의 <마지막 사람> 장에서 언급했다. 이 장은 무감하고 겁에 질린 포로들 앞에서 한 저항자가 공개 교수형을 당하는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에는 우리를 잠깐 스쳐갔다가 ‘나중에’ 되돌아온 생각이다. 즉, 너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당연히 너도 했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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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 연대감의 측면에서 실패했다는 자책 또는 비난은 더욱 현실적이다. 동료에게 의도적으로 해를 끼치고 빼앗고 구타한 데 대해 자신이 유죄라고 느낀 생존자들 소수이다. 그런 일을 한 사람들은(카포들, 그러나 그들만이 아니다) 그 기억을 지운다. 그에 반해 거의 모든 사람들은 도움을 베풀지 않은 데 대해 자신이 유죄라고 느낀다.

더 약하고 더 서툴고 더 나이가 많거나 아니면 너무 어린 옆자리의 동료는 도움을 청함으로써, 또는 단순히 ‘있다’는 사실(이미 그 자체로 간청하고 있다)만으로 집요하게 괴롭힌다. 그런 동료는 라거에서의 삶에서 늘 존재한다. 연대감을 요구하거나, 인간적인 말이나 충고 한마디를 구하거나, 그저 들어주기라도 바라는 것은 매일 보편적으로 있는 일이었지만, 그런 요구가 충족되는 일은 드물었다. 시간도, 공간도,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도, 인내심도, 기운도 없었다. 보통 그런 요구를 받는 사람도 자기 입장에서는 도움이 필요한 처지에 있었다. - 85, 89~91

갈증은 배고픔보다 더 시급한 문제이다. 배고픔은 신경에 복종하고 이따금 멈추기도 한다...그런데 갈증은 그렇지 않다. 갈증은 숨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배고픔은 기진맥진하게 만들지만 갈증은 광폭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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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물을 모두 마셨다. 찔끔찔끔 한 모금씩, 수도꼭지 밑에 번갈아가며, 우리 단 둘이서만 몰래 마셨다. 그러나 수용소로 돌아오는 행진길에 시멘트 가루로 온통 회색이 된 다니엘레가 내 옆에 서게 되었다. 그의 입술은 갈라지고 두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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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뒤 백러시아에서 다니엘레는 굳은 목소리로 내게 그 일에 대해 말했다. 왜 너희 들은 되고 나는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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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수치심은 합리화될 수 있을까, 없을까? 그 당시에도 나는 답하지 못했고 지금도 답하지 못하고 있지만, 수치심은 있었고 여전히 있다. 구체적이고, 무겁고, 영구적인 수치심 말이다. - 93~95

다른 사람 대신에 살아남았기 때문에 부끄러운가? 특히, 나보다 더 관대하고, 더 섬세하고, 더 현명하고, 더 쓸모 있고, 더 자격 있는 사람 대신에? 그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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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자리를 빼앗은 적도 없고, 누구를 구타한 적도 없으며(그럴 힘이라도 있었겠는가?), 어떤 임무를 받아들인 적도 없고(맡겨지지도 않았지만...), 그 누구의 빵도 훔친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 95, 96

히틀러 치하의 12년간, 보지 않는 것이 모르는 것이며 모르는 것이 공모와 묵인에 대한 자신들의 부담을 덜어줄 것이라는 환상 속에서 대부분의 독일인들이 그렇게 행동했다. - 101

젊은 나치스트들에게 세상에는 오로지 하나의 문명, 곧 독일 문명만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단단히 주입되어 있었다. 따라서 과거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다른 모든 문명들은 오직 그 자체 내에 독일적 요소를 담고 있는 한에서만 그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러므로 독일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정의상 야만인이었다. 만약 포로가 자신의 언어로, 아니 자신의 비(非)언어로 표현하려고 고집스레 애쓴다면 몽둥이 질을 해서 입을 다물게 하고, 밀고 당기고 운반하는 등의 일을 하는 제자리에 갖다 놓을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멘쉬Mensch, 곧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109

우리의 ‘정치범’ 동료들이 매주 집에서 온 편지를 받는 시간은 우리에게는 가장 우울한 시간이었다. 우리가 타인이라는 생각, 멀어진 사람들이라는 생각, 조국에서, 아니 인류로부터 잘려나갔다는 생각이 온몸을 짓눌러 오는 시간이었다. - 124

전쟁은 나쁘거나 사악한 목표라 하더라도 어떤 목표를 겨냥한다. 전쟁은 이유 없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고통을 가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물론 고통을 있다. 집단적이고 가혹하며 부당한 고통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쟁의 추가적인 부산물일 따름이다.

히틀러의 12년은 다른 많은 역사적 시공간들과 폭력을 공유한다. 그럼에도 나는 그 시기만의 특징이 쓸데없는 폭력의 만연이었다고 믿는다. 오로지 고통을 유발하려는 목적 그 자체가 목적인 폭력 말이다. - 127

2주간 지속될 수도 있는 여행...을 위해 독일 당국은 식량도, 물도, 나무 바닥을 덮을 깔개나 짚도, 생리현상을 해결할 용기도, 글자 그대로 아무것도 마련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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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 호위대는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플랫폼이나 선로 중간에 아무데나 쭈그려 앉는 것을 보면서 즐기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지나가던 독일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혐오감을 드러냈다. 이런 놈들은 비극적 운명을 맞아도 싸다, 하는 행동을 보면 알잖아. 저들은 멘쉔Menchen, 인간이 아니다, 짐승이다, 돼지들이다, 너무나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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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생활 첫 며칠 동안 숟가락이 없다는 사실은 이와 똑같은 무력감과 박탈감을 불러일으켰다...숟가락 없이는 매일 죽을 개처럼 핥지 않고는 먹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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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수용소가 해방되었을 때 우리는 창고에서 막, 도착한 강제이송자들의 짐꾸러미에서 나온 알루미늄, 강철, 심지어 은으로 된 숟가락 수만 개 외에도, 완전히 새것인 투명 플라스틱 숟가락 수천 개를 발견했다. 그러니까 이것은 근검절약의 문제가 아니라 굴욕감을 주려는 정확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 132, 134, 135, 138

제3제국의 반유대주의 법률은 편집증적 궤변을 늘어놓으며 유대인 음악가와 오케스트라가 아리아인 작곡가들의 악보를 연주하는 것을 금했다. 이 악보들이 오염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 140

문신 작업은 그다지 아프지 않았고 1분 이상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다. 문신의 상징적인 의미는 모두에게 너무나 분명했다. 즉, 이것은 지워지지 않는 표식이었다, 이곳에서 너희들은 결코 나갈 수 없다. 이것은 도살될 운명인 짐승들과 노예들에게 찍히는 낙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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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의 폭력은 아무런 이유가 없는, 폭력 그 자체가 목적인 폭력이었고 순전한 모욕이었다. - 143, 144

정통 나치주의자에는 모든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것이 명백하고 뚜렷하고 분명한 사실이었음에 틀림없다. 그것은 하나의 신조였고 자명한 명제였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임신한 여자들도, 아니 임신한 여자들은 특히 더 죽임을 당해야 했다. 미래의 적이 태어나지 못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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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을 머나먼 곳에서, 무의미한 여행 끝에 폴란드의 가스실 문턱에서 죽게 만들려고 굳이 끌고 가 기차에 태우는 그 고생을 해야 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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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3제국에서 최선의 선택, 위로부터 강요된 선택은 포로들에게 최대한의 괴로움, 최대한의 정신적·도덕적 고통을 짜내는 것이 아니었는지 정말로 생각해보게 된다. ‘적’은 죽어야 할 뿐만 아니라 고통 속에서 죽어야 하는 것이다. - 144, 145

라거의 SS들은 교묘한 악마라기보다는 둔감한 야수들이었다. 그들은 폭력적이 되도록 교육받았다. 폭력은 그들의 혈관 속에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당연했고, 분명했다. 그들의 얼굴에서, 그들의 몸짓과 언어에서 폭력은 새어나왔다. ‘적’에게 굴욕감을 주고 고통을 겪게 만드는 것이 날마다 하는 그들의 업무였다. 이런 것들에 대해 그들은 이성적 사고를 하지도 않았고, 다른 목적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이 유일한 목적이었다. 나는 그들이 우리와 다른, 사악한 물질로 만들어진 인간들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사디스트, 사이코패스는 그들 중에도 있었지만 소수였다). 그저 그들은 지금의 도덕이 전복된 상태로 되어 있던 학교에 몇 년 동안 있었던 것뿐이다. 전체주의 체제에서 교육과 프로파간다와 정보는 아무런 장애물도 만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무제한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다. - 146, 147

나는 종종 내 동료들에게서 (가끔은 나 자신에게서도) 흥미로운 현상 하나를 발견했다. ‘잘된 일’에 대한 열망이 매우 뿌리 깊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주어진 것이 가족이나 자신에게 해롭고 적대적인 노동이라 할지라도 ‘잘하도록’ 무던히 애썼으며, ‘잘 못’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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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숨을 구해준 폿사노 출신의 벽돌공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독일과 독일인들, 그들의 음식, 그들의 말, 그들의 전쟁을 혐오했지만, 폭탄에 대비한 방호벽을 쌓아올리는 일이 맡겨졌을 때에는 벽돌들을 제대로 교차시키고 필요한 모든 석회를 발라가며 곧고 단단한 벽을 세웠다. 명령을 존중해서가 아니었다. 전문적인 일에 대한 존엄성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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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으로 트레블링카의 부지런하기 이를 데 없는 학살자 슈탕글에게도 작용했던 것이다. 그는 인터뷰 도중 질문자에게 짜증을 내며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나의 자유의지로 했던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잘해야 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아우슈비츠의 사령관 루돌프 회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의 가스실 발명을 이끈 창조적 고통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와 똑같은 미덕을 자랑스러워했다. - 148, 149

그들은 “이해하려 하지 마라”라는 라거에서 배워야 할 첫 번째 현명한 격언에 먼저 적응했다. 거기 그 현장에서 이해하려는 행위는 다른 라거에서 온 많은 포로들이나, 아메리처럼 역사와 논리와 도덕을 알고 있으며 더구나 수감생활과 고문을 겪었던 포로들에게도 쓸데없는 노력이었다. 차라리 굶주림과 피로에 맞서서 일상의 투쟁에 에너지를 쏟는 편이 훨씬 쓸모 있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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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에 익숙한 단순한 인간은 이유를 묻는 쓸데없는 고문으로부터 안전한 곳에 있었다. - 172, 173

지식인은 (‘독일 지식인’이라고 나는 그의 말에 덧붙이고 싶다) 그 속성상 권력의 공범이 되는 경향이 있고, 따라서 권력을 승인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 말이다. 지식인은 헤겔의 자취를 따르는 경향이 있으며, 어떤 국가든 국가를 신격화하는 경향이 있다.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존재를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 역사는 이러한 경향을 확인해주는 숱한 사례를 남겼다. - 175

아메리처럼 나도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라거에 들어왔다.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해방을 맞았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오히려 라거의 경험이, 그 무시무시한 부당함이 내 불신을 한층 더 굳혔다. 그것은 내가 신의 섭리나 초월적 정의의 그 어떤 형태도 마음속에 품지 못하도록 막았고, 지금도 여전히 막고 있다. 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왜 가축 칸에 있어야 했단 말인가? 왜 어린아이들이 가스실로 갔단 말인가? - 176

아메리는 죽게 될 지에 대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죽을지에 대해 생각했다고 말한다.

가스실의 독이 그 효과를 발휘하는 데 필요한 시간에 대해 토론을 벌이곤 했다. 페놀 주사에 의한 죽음의 고통스러움에 대해 짐작해보곤 했다. 뒤통수를 한 대 맞고 죽는 것을 바라야 할까, 아니면 의무실에서 기력이 소진해서 죽는 것을 바라야 할까? - 180

포로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은(그리고 훨씬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가혹한 경험을 한 모든 사람들은) 중간지대가 거의 없이 두 가지 범주로 뚜렷이 나뉜다. 곧 침묵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와 같은 태도를 취하는 데에는 양쪽 다 분명한 이유가 있다. 단순화해서 내가 “수치”라고 부르는 저 심적 불편함을 더 깊이 느끼는 사람들, 자기 자신과 평화를 이루지 못한 사람들, 또는 상처가 아직도 화끈거리는 사람들은 침묵한다. - 182

괴벨스와 슈트라이허의 반유대주의 선전은 결실을 맺었다. 대부분의 독일인들, 특히 젊은이들이 유대인을 증오했고 멸시했으며 국민의 적으로 간주했다. - 188

무엇보다, 나의 책장에는 단테와 보카치오 옆에 아돌프 히틀러가 권좌에 오르기 여러 해 전에 쓴 [나의 투쟁]이 있다고 섰다. 엄청난 재앙을 가져온 이 남자는 배신자가 아니었다. 극도로 명확한 생각들을 가진, 일관성 있는 광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그 생각들을 바꾸지도 않았고 결코 숨기지도 않았다. 그에게 찬성표를 던진 사람은 당연히 그의 생각들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었다. 피와 땅, 생활공간, 영원한 적으로서의 유대인, “지상 최고의 인류”를 구현하는 독일인들, 독일의 지배를 위한 도구로 대놓고 간주된 다른 나라들 등, 그 책에는 없는 게 없다. - 219

L.I.는 웨스트팔리아의 도서관 사서이다...그녀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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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는 유대의 별을 단 사람들을 여기저기서 마주치는 일이 있었지만, 저는 그들을 집에 받아주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했을, 집에 묵게 해주는 일을 그들에게는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들을 돕는 일에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저의 죄입니다. 저는 오로지 기독교의 용서에 의지함으로써만, 이러한 제 자신의 끔찍한 가벼움과 비겁함과 이기주의를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