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예술과 함께

백건우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연주 / 다섯 번째 – 자유로움

순돌이 아빠^.^ 2017. 9. 8. 10:49

 

 

201795, 5번째 연주가 있는 날입니다. 예술의 전당에 일찍 도착해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예술의 전당 길 건너편에 있는 <백년옥>이란 두부 음식점으로 갔습니다. 예전에 한가람 미술관에 전시회를 보러 와서 먹어 봤던 곳입니다. 메뉴판을 보니 오늘은 왠~지 날이 흐려서 그런지 팥칼국수가 땡기네요.

 

제가 팥 들어간 것을 좋아하거든요. 팥죽, 단팥빵, 팥빙수 그리고 비비빅까지 ^^






 

밥을 먹고 연주회장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습니다. 가을 저녁 바람이 시원합니다. 분수에서는 음악에 맞춰 분수쇼가 펼쳐집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소리 지르며 뛰어다닙니다. 저도 할 줄만 알면 저 음악에 맞춰 분수대 앞에서 춤을 추고 싶은 마음입니다. 어스름 저녁, 가을바람, 분수, 아이들 그리고 춤이 어우러지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사실 제가 사는 경기도 고양시에서 예술의 전당까지를 매일 왔다 갔다 한다는 게 작은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참 신기하지요? 자기 돈 주고 이 먼 길을 매일 왔다 갔다 하게 만들다니...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게 만들뿐만 아니라 기다리게 하고 설레게 하는 그 힘 말이에요.

 

 

연주회장으로 들어섭니다. 이런 저런 공연에 갈 때,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만 빼고 거의 대부분은 가장 싼 가격의 자리를 예매합니다. 그러다 보니 높은 곳에서 공연을 볼 때가 많습니다. 이번 연주회도 모두 3층에서 봅니다. 그런데 1R석이 아니고 3층이라고 해서 음악을 느끼는데 무슨 불편함이 있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1층 무대 정면에서 보는 것보다는 위쪽에서 보는 게 연주자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어 좋을 때가 많습니다.

 

피아노 연주라고 경우는, 연주자의 오른쪽 뒤쪽 위에서 바라보면 연주자 손의 움직임이 잘 보입니다. 연주자의 오른쪽 앞쪽 위에서 바라보면 연주자의 표정이나 페달 밟는 발이 잘 보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R석이냐 B석이냐가 아니라, 음악과 연주자를 향해 열려 있는 제 마음이겠지요. 가만히 음악을 향해 마음을 열어 놓고 있으면 어느 자리에 있으나 음악이 제게 말을 걸어오고, 어떤 느낌을 전해 줄 거니까요.

 

 




 

 

연주가 시작됩니다. 정말 신기한 것은 연주가 시작되고 5초가 지나지 않아 매일 먼 길을 오가는 피곤함 같은 게 사라진다는 겁니다. 10초가 지나면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하고, 15초가 지나면 정신이 맑아지기 시작합니다. 영혼의 종합비타민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마음의 보약이라고 해야 할지 싶네요.

 

...참 편안하고 자유롭네...

 

오늘 연주를 보고 들으면서 가장 크게 들었던 생각입니다. 오른손을 가운데 두고 왼손이 저음 부분과 고음 부분을 오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들었습니다. 빠르게 복잡한 음들을 치면서 좌우로 넘어 다니는 데도 그렇게 편안해 보일 수가 없더라구요. 피아노 건반을 치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 위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았습니다.

 

피아노라는 무대 위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니 저 하늘 어디선가 소리들이 내려오는 것 같습니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였을까요? 너무 오래된 일인데다 제 머리가 점점 나빠져서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무튼 어디선가 어떤 것으로부터의 자유와 무언가를 향한 자유에 관한 글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백건우의 연주를 들으니 어떤 매인 것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그 자신을 향한, 그 자신의 내면을 향한 자유로움 같은 것이 떠올랐습니다. 외부의, 그 누군가 또는 그 무엇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스스로 깊어지고 맑아지는 자유라고 해도 될지 싶구요.

 

저 또한 저리 편안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연주를 마치고 나오는데 함께 음악을 들었던 분이 말씀하십니다.

 

~ 역시 자유로우려면 실력이 있어야 돼.

 

맞는 말입니다. 그냥 자유롭고 싶다고 해서 자유로워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적에도 제가 사는 세상에서는 그렇습니다.

 

피아노 소나타 한 곡을 연주하기 위해 피아니스트들은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할까요?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후회하고 돌아보고 반성하고 자신감이 생겼다가 좌절했을까요?

 





 

저의 피아노 선생님과 나눈 얘기가 있어요.

 

선생님 아니 어떻게 미리 생각하신 것도 아닌데 악보를 그냥 펴면 보자마자 그렇게 칠 수 있어요? 정말 신기해요

 

하하하...고등학교 때였어요. 학교에서 책상에 엎드려 잤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친구들이 제가 엎드려 자면서도 책상 위에 손을 올려서 피아노를 치고 있더라는 거에요.”

 

정말 깜짝 놀라겠더라구요.

 

 

저의 바이올린 선생님과 나눈 얘기가 있어요.

 

선생님 아니 어떻게 무슨 곡인지 이름만 대면 그렇게 바로 연주를 할 수 있어요? 악보도 없이?”

 

하하하...한창 많이 할 때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곧바로 연주를 할 수 있을 만큼 연습을 했어요

 

피아노 샘이나 바이올린 샘의 얘기를 들으면 살짝 무섭기까지 하더라구요. 저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고...

 

 

 

아무튼 백건우도 그렇게 연습하지 않았을까요? 연습하고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생각하고 연구하고 돌아보고,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그렇게 해서 저렇게 자유롭게 된 건 아닐까요? 무림의 고수가 끝없는 수련을 통해 자유로워지듯이 말이에요.

 

 

 

자유는

노력 위에 쌓아 올린

아름다움인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