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평화.함께 살기/삶.사랑.평화-책과 영화

도스토옙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읽고

순돌이 아빠^.^ 2017. 12. 30. 06:55

나 자신의 모습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아는 A의 마음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구요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나 <카라마조프 형제들>의 드미트리 카라마조프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마음이 분노 우울 답답함 좌절감 절망감 등을 느끼며

다른 사람을, 세상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남들이 듣거나 아니거나 마음에는 욕과 싸움이 계속 일어나는 삶이

안타깝고 무겁게 다가옵니다


인간이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지... 




도스토옙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 문예출판사, 2017

 

전에는 관청에 근무했지만 지금은 무직자다. 나는 짓궂은 관리였다. 남에게 난폭하게 대했고 그것으로 쾌감을 느꼈다.

...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 옆으로 시민들이 여러 가지 일을 문의하러 다가오면, 나는 이를 갈면서 큰소리로 호통을 쳐서 누구든 꼼짝 못하게 혼내 주고는 스스로 억제할 수 없는 만족을 느꼈다. - 8

 

나는 짖궂은 인간이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결국은 아무것도 되지 못한 위인이다. 악인도 될 수 없었고, 선인도, 비열한도, 정직한 인간도, 영웅도 벌레도 될 수 없었다. 지금 나는 내 방 구석에서 최후의 나날을 보내면서 슬기로운 인간은 제정신으론 아무것도 될 수 없다, 오직 바보 같은 자들만이 무엇이든 될 수 있을 뿐이다, 라는 부질업는 자위로 스스로를 우롱하고 있는 것이다.

...

나는 먹고 살려고, 오직 그 때문에 관리 생활을 해왔지만, 작년에 먼 친척 한 사람이 6천 루블이라는 돈을 나한테 주도록 유언하고 죽었으므로 나는 즉시 사표를 내고 이 방구석에 틀어박히고 말았다. 나는 전부터 이 방에 살고 있었지만, 이번엔 아주 여기에 틀어박히고 만 것이다. - 10

 

나는 선()이라든가,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라든가 하는 것을 분명히 의식하면 할수록, 더욱 깊숙이 자기 내부의 흙탕속에 빠져들어 옴짝달싹도 못하게 되어버린다. 무엇보다 난처한 것은, 그것이 모두 우연이 아니고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같이 생각된다는 것이다.

...

때로 말할 수 없이 저주스런 페테르부르크의 늦은 밤에, 초라한 내 방에 돌아오면서 오늘도 또 비열한 짓을 했구나, 그러나 일단 저지른 일은 돌이킬 수 없지 않은가, 라고 열심히 의식 속에서 되풀이하고는 남 몰래 스스로를 힐난하며 내 몸을 물어뜯고 쥐어뜯고 한다.

...

이 경우의 쾌감은 너무나도 강력하게 자기의 굴욕을 의식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 자기가 막다른 벽에 부딪혀서 그 괴로움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달리 아무런 방도도 없다, 벗어날 길이 없다, 이제 새삼스레 딴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설사 다른 무엇으로 변할 수 있다는 신념도 있고 시간적 여유도 있었다손 치더라도 나 자신 그런 변화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고, 또 원했다 하더라도 결국은 별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변해야 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데서 일종의 쾌감이 생기는 것이다. - 13

 

자기의 원한을 풀거나 전체를 상대로 자기 의견을 고집하거나 하는 인간은 예를 들면, 어떤 식으로 할까? 일단 그들이 복수심에 사로잡히기만 하면, 그 순간 그들의 온 존재에는 그 감정 이외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그런 인간들은 마치 성난 황소처럼 뿔을 밑으로 드리우고 목적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돌진한다. 벽에라도 부딪히지 않는 한 그것을 제지할 도리는 없다.

...

그럼 이번엔 이 생쥐의 행동을 살펴보기로 하자. 가령 이 생쥐도 모욕을 당하고(이놈은 노상 모욕을 당하고 있지만) 역시 복수를 벼르고 있다고 하자. 이 생쥐의 마음속에는 피리 자연과 진리의 사람보다도 더욱 증오심이 쌓이고 쌓여 있을 것이다. 또 같은 악으로 모욕자에게 복수해야겠다는 더럽고 저열한 욕망이 이 생쥐의 뱃속에서는 자연과 진리의 사람보다 몇 배나 더 추악한 모양으로 들끓고 있을는지 모른다. - 16

 

거기에서, 악취가 풍기는 더러운 지하실에서 모욕과 냉소에 짓밟힌 우리 생쥐는, 냉랭하고 도기 찬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증오에 잠긴다. 그리고는 40년쯤 계속해서 자기가 당한 수치스러운 모욕의 극히 세세한 점까지 남김없이 상기하고는 그럴 때마다 더욱 수치스러운 세부를 제멋대로 덧붙이면서 자기의 공상으로 짓궂게 자신을 조롱하고 자극하는 것이다. 즉 자기의 공상을 부끄럽게 여기면서, 여전히 모든 것을 상기하여 마음속에서 자꾸만 되씹다가, 이런 것도 역시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다는 구실 하에 얼토당토 않은 것을 꾸며내서 자기 자신을 모욕한다. 이렇듯 무엇 한 가지 관대하게 눈감아 버리려 하지 않는다.

...

자포자기에서 40년 동안이나 의식적으로 자신을 지하실에 생매장하고 있었다는 사실 19

 

사람이 복수를 하는 것은 그 안에 정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그는 근본적 이유, 다시 말해서 정의를 발견했으므로, 모든 점에서 완전히 안심하고 그것이 떳떳하고 옳은 행위라는 확신을 가지고서 침착하게 복수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는 것이다.

...

복수의 대상 자체가 어느새 흩어져버리고, 논거는 안개처럼 사라지고, 책임의 소재도 밝혀낼 수 없게 되고 만다. 그리고 내가 받은 모욕이 이미 모욕이 아니라 무슨 숙명 같은 것으로 되어버린다. - 28

 

인간이 창조를 사랑하고 진로를 개척하기를 좋아한다는 건 재론의 여지도 없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인간이 파괴와 혼돈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건 대체 어쩐 일일까? - 49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명백한 사실이지만, 나 자신 터무니없이 허영심이 강했고, 따라서 자신에 대한 요구가 너무나 엄격했기 때문에, 거의 혐오에 가까운 불만을 가지고 자신을 바라볼 때도 가끔 있었다. 나는 내 얼굴을 미워하고 추악하게 여겼을 뿐만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저열한 표정이 깃들어 있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래서 언제나 출근하면 남이 나의 저열함을 느끼지 않도록 될 수 있는 대로 꿋꿋한 태도를 취하고 고상한 표정을 지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 - 66

 

그 당시 나를 괴롭혔던 것이 또 하나 있다. 다름 아니라, 누구 하나 나를 닮은 자도 없거니와 나 역시 아무와도 닮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외톨이인데 저자들은 모두가 한통속이다하는 생각에 나는 사로잡혀버렸었다. - 68

 

나는 진창 속에 뒹굴고 있으면서도 경우에 따라선 나도 영웅이 될 수 있다고 자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웅이 되면 더러움을 털어버릴 수 있다. - 85

 

나는 모든 인간에 대하여 승리한 기분이다. 사람들은 물론 내 앞에 굴복하여, 내가 지닌 모든 완성의 덕을 자진해서 인정하지 않으 수 없게 된다. 그러면 나는 그들을 용서해 준다.

...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나에게 키스한다...그러나 나는 무릅쓰고 새로운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맨발로 길을 떠난다. - 87

 

내가 그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나의 공상이 행복의 절정에 달해서, 당장에 세상 사람들, 아니 온 인류를 포옹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시기가 도래 했을 때뿐이다. - 88

 

우리는 입으로는 청렴이니 명예니 하면서 미사여구를 늘어놓고 있었지만, 그래도 극히 소수자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즈베르코프 앞에서 굽실거렸다.

...

게다가 어찌 된 셈인지 동급생들 사이에서는 즈베르코프를 세련된 옷차림과 에티켓 면에서 제일급에 속하는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이 점은 나를 분개시켰다. 자기 가치를 한 번도 의심해 본 일이 없는 듯한 쨍쨍 울리는 그의 음성과 스스로 자기의 익살을 만족하게 여기는 모습을 나는 진정 미워했다. - 92

 

동시에 나는 이런 사실들을 너무 과장해서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나는 이미 자신을 억제할 수 없게 되었다. 오한으로 온몸이 와들와들 떨릴 지경이었다.

...

무엇보다 화가 난 것은, 실제로 그런 건 나한테 전혀 필요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미리부터 잘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결코 그들을 압도하거나 정복하거나 매혹하기를 원하는 건 아니다. 설사 그 목적을 달성했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나에겐 한 푼의 가치도 없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아아, 이날 하루가 어서 빨리 지나가기를 나는 하느님께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 103

 

나는 홧김에 포도주와 과실주를 큰 컵으로 마구 마셨다. 평소에 별로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이내 취기가 올랐고, 취기가 오름에 따라 더욱 화만 났다. 느닷없이 놈들에게 모욕을 주고 나서 이 자리를 떠나버리자. 기회만 있으면 트집을 잡아 한 번 본때를 보여주는 거다! 우스꽝스런 놈이지만 머리는 좋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해야지.... - 112

 

나는 어디까지나 확고부동한 태도를 취한 채 그들 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들은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그들과의 화목을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 116

 

애정만 있으면 불행 속에서도 세상을 살아나갈 수가 있으니까. 슬픔 속에서도 인생은 좋은 거야. 아무리 어려운 살림살이라도 인생은 역시 아름다운 것이거든. 그런데 여긴 뭐가 있어? 더러운 시궁창, 악취가 코를 찌르는 시궁창이라고밖엔 말할 수 없잖나!

...

이제는 냉정하게 이치를 따지고 있을 수도 없게 되었다. 나 자신의 말에 감동하면서 점점 열을 올리게 된 것이다. 나는 지하의 세계에서 터득한 비밀스런 사상을 한시바삐 피력하고 싶어졌다. 무언가 홀연히 나의 내부에서 타오르면서 어떤 목적을 나한테 제시한 것이다. - 137

 

나는 손뼉이라도 칠 듯이 반가웠다. 그렇다. 이런 나이 어린 여자의 영혼쯤은 맘대로 주무를 수 있을 것이다! - 139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했을 경우를 상상해 보라구. 그야말로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행복이 안겨지는 거야. 신혼 초에는 부부싸움도 그 행복의 양념 구실을 하지.

...

식구들도 그걸 보고 모두들 좋아하지. 모든 것이 즐겁고 기쁘고 평화롭기만 하고... - 142

 

아들 딸이 생기게 되면 아무리 힘들 때도 모든 게 행복하게 여겨지는 거야. 사랑을 간직하고 마음을 꿋꿋이 가지고 있기만 하면 되지. 그때는 힘든 일도 즐거움이 되고 아이들을 위해 배를 곯는 일이 있어도 괴로운 줄도 모르게 되지. 아이들이 나중에 그걸 고맙게 여겨 부모를 더욱 사랑하게 될 테니까.

...

아이가 있으면 살기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돼먹지 않은 소리야! 아이를 기르는 재미는 그야말로 천국의 행복이라 할 수 있어!

...

리자는 아기를 좋아하나? 난 좋아해. 얼굴이 불그레한 조그만 사내야이가 엄마 젖을 열심히 빨고 있어 그 모자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떤 사내든지 아내한테 마음이 끌리게 마련이야! - 144

 

당신은 어쩐지...꼭 책이라도 읽는 것처럼 말을 하는군요그 음성은 다시 냉소적인 어조를 띠고 있는 듯싶었다.

 

이 말은 나의 자존심을 몹시 손상시켰다. 그와는 전혀 다른 말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

오냐, 어디 보자!’하고 나는 생각했다. - 146

 

그때 너한테 가기 전에 어느 연회석상에서 나는 모욕을 당했었다. 그 패거리 중의 한 장교를 때려주려고 그 집에 갔던 거야. 그런데 그놈을 놓치고 말았기 때문에 누구한테든 분풀이를 해서 울적한 기분을 풀어야 했다. 마침 네가 나타났기 때문에 나는 너를 실컷 조롱했던 거야. 내가 모욕을 받았으니 나도 누구를 모욕해야겠다는 심사였지.

...

권력, 그렇다. 그때 나는 권력이 필요했다. 너의 눈물, 너의 굴욕, 너의 히스테리 그것이 내가 필요했던 거야! - 180

 

나는 이미 사랑을 할 수조차 없게 된 인간이다. 왜냐하면, 거듭 말하거니와 나에게 있어 사랑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우월권을 잡고 폭군처럼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평생 이와는 다른 사랑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 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