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예술과 함께

서울시 오페라단 - 푸치니, <투란도트>를 보고

순돌이 아빠^.^ 2018. 4. 29. 08:13


0. 집회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은 사기극이다, 문재인 정권은 퇴진하라 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집회가 한창이었습니다. 저는 남북정상회담 장면을 보면서 마음이 뭉클하고, 더 잘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저분들은 저하고 생각이 다른 가 봅니다.

 

언제였더라...오페라 <맥베드>를 보러 세종문화회관에 온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박근혜 정권은 퇴진하라 라고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한창이었지요. 지휘자였던 구자범은 당시 상황에 맞게 이게 나라냐 라며 노래를 연주 했구요.

 

누군가 좋아하는 것을 누군가는 싫어하고

누군가 싫어하는 것을 누군가는 좋아하겠지요






 

1. 칼라프의 사랑

 

극의 시작부터 살벌합니다. ‘죽여라’ ‘죽여라를 외치고, 사람 목을 자르는 일이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벌어집니다.

 

칼라프는 예쁜 공주 투란도트를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건 도전을 합니다. 이미 많은 남성들이 공주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해서 죽임을 당했는데도 말입니다.

 

예쁜 여자를 차지하는 일이 목숨을 걸만큼 중요한 일일까요? 칼라프에게는 그렇습니다. 여러 남성들에게 예쁜 여자, 자신이 마음에 들어 하는 예쁜 여자를 차지하는 일은 목숨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주 아주 중요한 일이지 싶습니다.

 

에이 나는 그 정도는 아니야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잘했다거나 잘못했다고 할 것도 없고, 그냥 많은 남성들이 예쁜 여자를 좋아합니다. 예쁜 여자에게 호감을 느끼고, 다가가려고 하고, 말을 걸고, 만지고 싶어 하고, 섹스를 하는 상상을 하고 그러지요. 기회가 되면 차지하고, 소유하고, ‘내 여자로 만들고 싶어 하구요.

 



칼라프의 아버지도, 오랫동안 칼라프를 사랑해 왔던 류도, 그 동네의 많은 사람들도 칼라프를 말립니다. 어리석은 짓이라고, 다른 여자도 많은데 왜 그러냐고, 그만두라고...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지요. 껍데기를 벗으면 모두 같은 인간 아니냐고.

 

모두가 말려도 칼라프는 꿈쩍하지 않습니다. 정열에 빠진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의 말도, 마음도 잘 안 느껴집니다. 말 그대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바라는 것을 이루고 싶은 마음 뿐이지요.

 

젊은 베르테르에게 무슨 말을 해야 마음을 바꿀 수 있었을까요

 

 

칼라프는 투란도트가 어떤 감정을 갖고 있고, 어떤 생각을 하며, 대화의 방식은 어떻고,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등은 모릅니다. 아는 것은 예쁘다는 것이지요.

 

예쁜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도전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승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자신이 바라는 예쁜 여자, 그리고 권력을 쟁취하지요.


 

칼라프가 부르는 ‘nessun dorma(공주는 잠 못 이루고)’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파바로티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불렀고, 영화 <파파로티>에서 이제훈이 부르기도 했구요. 그냥 들으면 아주 낭만적이고 멋드러진 노래입니다. 그런데 극의 가운데서 들으니...마음이 무겁더라구요. 동네 사람들이 자기들이 죽게 생겼다며 칼라프에게 온갖 사정을 다 하는데도, 칼라프는 그 사람들의 절박함은 무시하고 오직 자신의 승리와 쟁취를 위해 ‘nessun dorma’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맥베드에게 무슨 말을 해야 마음을 바꿀 수 있었을까요






공주는 왜 잠 못 이루었을까요? 칼라프를 열렬히 사랑해서? 마음이 들뜨고 기대가 가득차서? 사실은 그게 아니고 칼라프의 여자가 되는 게 싫고, 칼라프와 결혼하는 게 싫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칼라프는 투란도트를 향해 내가 너한테 입맞춤을 할 것이고, 너는 내 것이 될 것이다 라며 노래를 하는 거지요.

 

칼라프는 자신의 이런 마음 상태를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2. 투란도트의 사랑

 

제가 보기에 투란도트는 폭력적인 지배자이자, 남성으로부터 지배당하고 싶지 않은 여성입니다.

 

투란도트의 말 한 마디에 사람의 목이 날아갑니다. 극이며 영화에서는 쉽게 표현되는 장면이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하면 어떨까요? 문재인이 박근혜에게 맞서든, 홍준표가 문재인에게 맞서든 고문을 하고 두들겨 패고 참수를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비유를 해서 죽음과 같은일이라고 할지는 몰라도 실제로는 고문도 참수도 일어나지 않지요.

 

<투란도트>에서 세 명의 남자들이 한창을 얘기합니다. 왕과 공주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지요. 대나무와 호수가 있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언제쯤 고향에 갈 수 있을까 노래하는 사람들이구요. 또한 신하가 하는 일이란 게 사람의 목을 자르는 일이냐며 한탄하는 사람들이기도 하구요.

 

 

투란도트가 동네 사람들에게 한 남자의 이름을 알아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름을 알아내기 전에는 아무도 잠들 수 없다고 합니다. 어이없는 일이지요. 자기한테 문제가 생겼으니 풀고 싶으면 혼자 알아서 하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한테 도움을 요청하든지 하는 게 아닙니다. 나한테 문제가 생겼으니, 너희들이 풀라고 명령을 합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은 잠을 못 자는 것은 물론이고, 혹시 문제를 풀지 못해 죽게 될까봐 벌벌 떱니다.

 

권력이고, 무서운 권력이며, 무서운 권력을 쥔 지배자입니다.

 

 

 

백성들에겐 무서운 권력자인 투란도트가 알고 있는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어떤 남자의 여자가 된다는 것은 굴복과 복종이 따르는 일이라는 걸. 그래서 그 누구의 소유도 되지 않겠다고, 결혼하지 않겠다고, 나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소리칩니다. 투란도트에게는 결혼이란 것이 행복 희망 꿈 설레임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모욕감으로 다가오는 거지요.

 

그런데...그렇게 싫다고 하는 투란도트에게 칼라프가 억지로 입맞춤을 합니다. 강제추행이지요. 강제추행 뒤에 투란도트는 칼라프의 여자가 되어서 결혼을 합니다.

 

칼라프가 그랬듯이 투란도트 또한 칼라프가 어떤 감정이나 생각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심지어 그의 이름을 안지도 얼마 되지 않으니까요.

 

아무튼...그토록 거부하던 남자의 강제추행과 이어진 결혼. 극의 이야기가 갑자기 이상하게 흘러간다고 느낀 부분입니다. 제가 만약 투란도트이고 여성이면 그토록 거부하던, 게다가 자신을 추행했던 남성과 결혼을 하고 싶을까요? 추행과 이어진 결혼, 어쩌면...칼라프의 꿈이자 남성들의 희망사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극중에서 투란도트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3. 류의 사랑

 

<투란도트>에서 제일 마음에 남은 사람이 류입니다. 그의 노래도 너무 좋았구요. 마지막에 고문을 받고 죽어 가면서 부르는 노래는 너무 애절하더라구요. ㅠㅠ

  

류는 칼라프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늙고 힘없는 칼라프의 아버지를 오랫동안 돌보지요. 아버지도 류의 죽음에 큰 슬픔을 느낍니다. 죽이라고, 고문하라고 소리치던 동네 사람들도 류의 죽음을 보고 안타까워합니다.







칼라프는 투란도트를 소유하려 하고, 투란도트를 억지로라도 자기 곁에 두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면서 사랑이라고 하지요.

 

류는 칼라프를 위해 노력하고, 칼라프를 위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납니다. 그러면서 사랑이라고 하지요.

 

소유하고 지배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고, 감싸주고 아껴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를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마음과

다른 사람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