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쯤 된 것 같아요. 어느 빵집에 앉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 며칠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고 있었구요. 다행인지 뭔지 어쨌거나 기다리는 사람이 오기 전에 책을 마저 읽었어요. 마지막 장을 덮는데...정말 심장에서 쿵!하는 소리가 나더라구요.
며칠 전에 친구들 모임이 있었어요. 양진호라는 이름도 나오고 ‘7년의 밤’이라는 소설도 나오고 그랬어요. 그리고 한 사람이 한나 아렌트라는 이름을 꺼내며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하더라구요. 참 오랜만에 떠올리는 두 가지였어요. 한나 아렌트와 악의 평범성.
<한나 아렌트>라는 영화를 봤어요. 무언가 묵직한 것이 마음에 안에 들어앉는, 무언가가 마음에 새겨지는 느낌입니다. 그녀의 생각도, 그녀의 삶도.
악이 평범할까요? 유대인 학살, 1차 2차 세계대전, 일본군 위안부...악은 평범할까요?
평범한 사람들이 악행을 저지르거나 악행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1980년 광주 시민들을 공격했던 한국군을 조사해보면 어떨까요? 그들은 악마였을까요? 우리 주변 어딘가에 광주 시민들을 때리고 죽였던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전두환 혼자서 그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폭행과 살인을 저지른, 사진과 영상에 담겨 있는 그 사람들이 여전히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거니까요. 그렇게 잔인하게 사람을 때리고 죽이는 일을 했을 거라고는 믿기지 않는 누군가로 우리 곁에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구요.
아이히만은 말합니다. 자신은 유대인을 죽이지 않았다고. 다만 위에서 시키는 일을 했을 뿐이라고. 광주의 군인 가운데 누군가는 말하겠지요. 그럼 내가 어떻게 했어야 했냐고. 군인인 내가 명령을 거부하고 총을 쏘지 않을 수 있었겠냐고.
아이히만과 광주의 군인은 왜 사람을 죽이는 일에 참여하게 된 걸까요?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그들에게는 책임이 없는 걸까요? 그러면 조선을 침략했던 일본 군인들에게도 책임이 없는 걸까요? 책임이 있다면 어느 만큼의 책임이 있는 걸까요? 만약 그들을 모두 법정에 세워 재판을 받게 한다면 어떤 처벌을 내려야 할까요?
오랜만에 한나 아렌트와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떠올렸던 모임을 마치고 집에 오니 책 선물이 도착해 있습니다. 책의 표지에 이런 말이 있네요.
“계속 공부해야 한다. 어둠의 일부가 되지 않기 위해서”
<한나 아렌트>에서 강조되는 말 하나가 사유의 부재입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될까 싶네요.
명령이니까, 어쩔 수 없으니까, 몰라서, 속아서, 잘못 알고 있어서, 원래 그러니까, 그냥, 더 뭐가 필요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어떤 연예인들이 이 소설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몇몇 남성들에게 욕을 먹었습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그냥 책을 읽었을 뿐인데 욕을 먹어야 하다니요. 심지어는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하니, 그 영화에 참여할 배우에게까지 욕을 퍼붓는 일이 벌어졌다고 하지요.
그렇게 욕하는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이나 <82년생 김지영>을 읽어 봤을까요? 읽어 보지도 않고 책에 대해서 욕을 하고, 심지어는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영화를 욕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그런 행동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그런 일은 왜 벌어지는 걸까요? 무엇이 그들을 화나게 하고 욕하게 만드는 걸까요? 읽지도 않은 책, 보지도 않은 영화 때문에 감정이 요동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도 전에 감정과 행동이 먼저 일어나느 걸까요.
<한나 아렌트>에도 한나 아렌트의 글을 읽어보지 않고 욕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아직 출판하지 않은 책을 출판하지 말라고도 하구요. 아이히만을 옹호했다고 하면서 비난을 퍼붓습니다. 물론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옹호한 적도, 유대인을 경멸한 적도 없구요. 글을 읽어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하면서 한나 아렌트를 궁지로 몰아세웁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이나 드라마 <시그널>은 여성들을 연쇄 살인하는 사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살인범을 찾고 진실을 밝히고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고, 꼭 이루어져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막으려면 이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 그 놈은 왜 그런 나쁜 짓을 저질렀는지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살인범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살인자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피해자를 막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살인자를 옹호하기 위해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분석하고 해석하고 이해가 필요한 겁니다. 이해하기 때문에 처벌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해는 이해고 처벌은 처벌인 거지요.
무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은 나 자신이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악을 줄이고 선이 피어나도록 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것이 용감함이고 화끈함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어떤 행동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악의 한 가운데 들어서 있는 것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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