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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희망의 딸들>을 보고

순돌이 아빠^.^ 2021. 4. 11. 11:48

인도에 가본적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인도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구요. 한국에서 수 십 년을 살아도 한국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르는데, 한 1년 인도에 있었다고 인도에 대해서 뭘 알 수 있을까 싶어요.

 

다만, 영화 속에 나오는 몇몇 장면은 낯설지 않더라구요. 릭샤라든지 손으로 밥을 먹는다든지, 전기도 수도도 없는 흙과 나무로 지은 집이라든지, 십대에 이미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은 여성들이라든지...

영화 <희망의 딸들daushters of destiny>은 인도에 사는 불가촉천민 출신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에요. 여성이라는 말이야 한국에도 있는 말이니, 일단 낯설지 않다고 해도 불가촉천민이라는 건 뭔지 싶어요.

 

음...저는 불가촉천민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그냥 봐서는 그 사람이 불가촉천민 출신인지 아닌지 몰라요. 얼굴에 씌여 있는 게 아니거든요. 게다가 저 같은 외부 사람에게는 신분이 뭔지 알지도 못하고 중요하지도 않았구요. 

 

그런데 그 신분, 그 제도 속에서 살고 그 영향을 받고 사는 사람들한테는 아주 중요한 일인 거지요. 아미르 칸이 나왔던 <라간>이란 영화에 보면 다른 사람들이 불가촉천민과는 운동 경기도 같이 하지 않으려는 장면이 나와요. 불결하고 더럽다고요. 

 

하지만 그건 그들의 생각이고 느낌일 뿐이에요. 백인이라고 깨끗하고 흑인이라고 더러울리 없듯이, 브라만 출신이라고 깨끗하고 불가촉천민 출신이라고 더러울리 없잖아요. 

불가촉천민 집안 출신이고 가난한데다 여성인 인간이 신분과 빈곤과 성性의 무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어떤게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엄마가 살았던 삶과는 다른, 좀 더 자유롭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이 영화는 그 하나로 교육의 길을 보여줘요. 한 학교에서 아이들을 꼬마 때부터 먹이고 재우고 가르쳐서 대학까지 보내요. 교육을 받고 진학을 하고 직업을 가져서 독립적인 삶을 살도록 후원해주는 거에요. 그 과정을 거쳐가고 있는 여성들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구요. 

 

학교의 취지나 교육 내용만 보면 참 훌륭하고 좋아요. 그런데 그 과정을 거쳐가는 학생들은 이런 저런 고민이 많아요. 얼른 결혼을 하라는 가족들, 자신과는 다른 삶의 길을 가고 있는 언니를 질투하는 동생, 헤픈 년 바람난 년 같은 욕을 해대는 동네 사람들, 한없는 무게로 나를 끌어당기는 가난, 학교의 운영 방향과는 다른 가수라는 꿈 등등. 

 

<희망의 딸들>의 영어 제목은 'daughters of destiny'에요. '운명의 딸들'쯤 될까요? "가난한 불가촉천민 출신의 여자"라는 것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인 걸까요? 아니면 벗어날 수 있는 운명일까요?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가다보면 비행기 안에 있는 화면에 'Destination 000km' 같은 말이 뜰 때가 있어요. 목적지까지 000km 남았다는 뜻이겠지요.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운명destiny라는 것이 팔자나 족쇄라는 말로 들리기보다는 목적지destination와 연결되어 생각나더라구요. 슈~웅~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가듯이 영화 속 사람들이 자기 삶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거지요.

 

가난한 불가촉천민 출신의 여자라는 것이 팔자나 족새가 되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꿈과 희망을 찾아 나아가는 삶이 그들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싶더라구요. 

노력하고 혼란을 겪고 불안하기도 하고 고민되기도 하고 이럴까 저럴까 싶기도 할 거에요. 예전부터 그랬다느니 다들 그렇게 사는 거 아니겠냐느니 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려면 그만큼 극복해야 될 것도 많겠지요.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 곁에 있고 싶지만, 엄마와는 다른 삶을 엄마와 떨어진 곳에서 살려면 더 많은 용기와 도전이 필요할테구요. 

 

무언가를 꼭 해내야 할 것 같은 책임감 같은 것이 힘겹게 다가올 수도 있어요. 내 어깨 위에 커다란 돌덩이가 올려져 있는 것 같은 힘겨움이 다가올 수도 있구요.

 

아니면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봤으니, 남들이 '그래서 걔네들 어떻게 됐데?'하는 물음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구요. 

저는 그들의 삶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구요.

 

그저 제 마음은 '응원'뿐이에요. 

 

어떤 학교를 가고

어떤 직업을 갖든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는대로 살고

기쁨과 행복이 많은 인생을 누리길 빌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