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평화.함께 살기/삶.사랑.평화-책과 영화

재즈맨 블루스 A Jazzman’s Blues를 보고

순돌이 아빠^.^ 2022. 11. 28. 12:53

 

영화는 과거로 돌아가는 편지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와 같은 영화인가 했습니다.

순간 순간들, 장면 장면들이 마음에 많이 남는 작품입니다. 

순수와 깨끗

바이우는 리앤을 좋아합니다. 리앤에게 사랑한다고 하고 결혼하자고 하지요. 그때 리앤이 울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난 순결한 여자가 아니야

i’m not a pure girl

‘pure’라는 말이 귀에 콱 박히더라구요. 영화의 맥락으로는 pure라는 말이 순결하다거나 깨끗하다는 뜻이겠지요. 남성은 아니고 여성을 향해 하는 말입니다.

 

퓨어 블루베리, 퓨어 바닐라, 푸어 콜라겐...

퓨어라는 단어는 우리가 흔히 물이나 음식과 관련된 곳에 많이 씁니다.

퓨어라는 말들이 붙은 것들도 따져보면 이런 저런 물질들을 넣거나 뺀 것일뿐, 그 자체로 ‘순수’하다거나 ‘깨끗’하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도대체 뭐가 순수한 거고 뭐가 깨끗하냐는 거지요.

순수나 깨끗이란 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일뿐 그 자체로 순수나 깨끗을 확증/보장하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하물며 사람, 그것도 육체적인/물질적인 의미로 순수한/순수하지 않은 사람, 깨끗한/깨끗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섹스로 말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섹스라고 하면 두 신체 기관이 접촉을 하고 자극을 하고 마찰을 일으키는 그런 일들입니다. 심리적으로나 인간 관계의 측면을 빼고 보면 그렇습니다. 

리앤은 자신이 섹스를 했기 때문에 순수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묻고 싶습니다. 인간에게, 인간의 육체에게 순수하다는 것, 깨끗하다는 건 뭘까요

백인의 육체는 깨끗하고 흑인의 육체는 깨끗하지 못한 걸까요

리앤을 강간한 할아버지는 자신이 순수하지 못하다거나 깨끗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겁니다. 오직 원하지 않는 일을 한 리앤만이 그런 생각을 하지요.

무스탕 릴리의 여름

순수와 깨끗은 무엇이며

왜 남성에 대해서는 갖지 않는 생각을 여성을 향해서는 갖게 되는 걸까요

남성이 여성에 대해 생각하든, 여성이 여성에 대해서 생각하든 말입니다

게다가 왜 강간을 한 할아버지는 당당하고 큰 소리 치고, 피해를 입은 리엔은 숨기고 좌절해야 하는 걸까요

심리적으로 보면 누군가에게는 아주 대단히 큰 일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또 가만히 따져보면 여성의 성기가 남성의 성기와 접촉을 했느냐 아니냐는 그 자체로만으로는 그리 큰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여성과 남성이 눈빛을 교환할 수도 있고, 손을 잡고 악수를 할 수도 있는 거지요. 가겹게 포옹을 하는 것도 흔한 일입니다.

신체의 접촉 여부보다 오히려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접촉의 과정에 어떤 일이 있었냐는 겁니다. 

리앤-바이우처럼 둘이 좋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리앤-할아버지의 경우처럼 리앤이 원치 않는데 그런 것일 수도 있지요.

심지어 할아버지는 리앤의 가족이고, 보호자였는데도 말입니다. 

신체의 접촉 여부가 아니라 접촉 과정에서 일어난 사랑이나 교감, 강제나 폭력의 기준으로 놓고 보면 리앤이 아니라 오히려 할아버지가 ‘순수’하지도 못하고 ‘깨끗’하지도 못한 거지요.

죄책감을 느끼고 비난을 받아야 할 것은 리앤이 아니라 할아버지가 되는 겁니다.

 

리앤은 순결하지 못한 여자여서 다른 남자와 사랑할 수 없는 여자가 아니라

리앤은 폭력의 피해자이고,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이지요. 피해는 피해이고 사랑은 사랑입니다. 

차이와 지배

리앤과 할아버지는 여성과 남성입니다. 그리고 그건 그냥 다른 겁니다. 다르다는 것이 지배해야 할 이유가 되지 못하듯, 다르다는 것이 지배당해야 할 이유가 되지도 못합니다. 

그저 지배하는 자가 어떤 점을 내세우며 지배할 뿐이지요. 중요한 것은 그 차이나 다름이 아니라 지배자가 지배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실현하고 있다는 겁니다. 

차이의 존재나 존재의 차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의 욕망과 욕망의 지배에 문제가 있는 거지요 

바이우가 군대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탄 장면이 있습니다. 그 한 가운데 colored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버스 천장에도 발조심 하라면서 그 글이 있구요. 유색 인종은 그 선 뒷쪽으로 타라는 거겠지요. 

만약 버스에 ‘쌍꺼풀’이라고 적어 놓고 눈에 쌍꺼풀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좌석을 구별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습니까. 게다가 쌍꺼풀이 없는 사람을 경멸하고 모욕한다면 말입니다. 

그런 어이 없는 일이 미국 사회에 있었던 거고, 미국의 백인들이 그짓거리를 했던 겁니다. 

바이우가 큰 도시의 무대에서 노래를 합니다. 흑인인 친구가 대기실로 찾아옵니다. 친구가 바이우의 공연을 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지요. 

극장을 운영하고 출연진을 관리하는 사람은 백인입니다. 손님도 백인만 있지요.

노래를 하고 연주를 하고 춤을 추는 건 흑인인데, 그 일로 큰 돈을 버는 것도 백인이고 그 공연을 즐기는 것도 백인입니다. 

쉽게 말해서 일하는 놈 따로 있고 돈 벌고 노는 놈 따로 있는 거지요. 

여기까지만 해도 열 받는데, 사람 죽이는 걸 별 일 아닌듯 벌이는 백인들을 보면 더 열 받습니다. 

큰 일이 아니어도 상관 없어요. 그냥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향해 휘파람을 불었다는 말 한마디면 됩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중요하지 않고, 해당 여성이 그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ytn

백인 남성들은 무리를 짓고 총과 횃불을 들고 흑인을 찾아가 쏘고 두들겨 패고 나무에 목 매답니다. 

가스가 차 있는 건물 안에 불꽃이 튀는 것과 같습니다. 

흑인을 향한 적개심과 폭력성이 항시 끓어오르고 있던 상황에서 작은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불을 붙이는 거지요.

흑인이 무슨 말과 행동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백인이, 특히 백인 남성들이 흑인을 향해 폭력을 사용하고 싶어하고 지배 구조를 유지/강화하고 싶어하는 거지요. 

폭력을 사용할 기회를 찾고 있고, 지배 구조에 변화가 생기는 걸 못 견뎌하는 거지요.

백인우월주의를 내세운 시위대들이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미국 국기와 남북전쟁 때 남부군 깃발을 함께 들고 행진하고 있다. 2017.8. 13. AP 연합뉴스

흑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여성을 지배한다는 것이 그들의 정체성이자 자부심인 셈이지요.

나의 소유물인 벡인 여성에게 흑인  남성이 접근했다고 여겨지면 분노가 폭발하는 겁니다.

백인이자 남성인 그들의 심리에 집단적으로 어떤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거구요.

리앤이 백인인 남편에게 그전에 살던 보스턴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자 남편이 말하지요.

당신이 떠나면 내 꼴이 얼마나 우스워지겠어?

if you left, you know how much embarrassment that would cause me?

남들한테 뭐라고 해?

What would i say to everyone?

아내가 떠난다고 하니 남편이 하는 말입니다. 왜 떠나려고 하는지, 어떤 점이 힘든지 등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습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지가 보다 중요하지요.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결혼도 하고 함께 살고 건가요? 자신이 바라는 근사한 남성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아내를 이용하고 있는 건가요?

평소에는 근사한 척 지적인 척 하던 남편이 리앤을 강하게 움켜 쥡니다. 리앤을 겁을 먹지요.

우리 집안 체면을 생각해서 이렇게 정리하자. 

to defend my god Clayton name, 

그러니까 여기서 사모님을 살든

now you could have a good life here.  

삶을 포기하든 해.

or no life at all.

리앤은 할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았고, 엄마가 바이우를 죽이겠다는 위협 때문에 바이우와 고향을 떠났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남편이 물에 빠트려 죽이겠다고 합니다. 

지가 말하는 good life이거나 no life를 선택하라고 합니다. 쥐약이냐 독약이냐를 선택하라는 식입니다. 한쪽은 good이 아니고 한쪽은 life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백인 남성들은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흑인을 죽이겠다고 합니다. 리앤의 남편도 쪽팔림과 체면을 제일 먼저 내세우며  죽이겠다는 거지요.

흑인은 흑인이라고 죽이고 두들겨 패고, 아내는 아내라고 죽이고 두들겨 패는 겁니다. 

그들의 명예와 체면을 위해.

행복을 꿈꾸는 마음으로

1930, 40년대 미국 남부 지방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 보니 한편으로는 이야기가 좀 어둡습니다.

그런 반면 영화를 밝게 하는 면들도 있지요. 음악입니다. ost도 참 좋습니다

https://youtu.be/YPcnQ2cI6rc

Rocks in my Bed | A Jazzman's Blues

무거운 이야기에 밝음을 줬던 것이 음악이듯, 현실의 힘겨운 삶을 견디는데 도움을 줬던 것도 음악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 속에서 흑인들이 엄마의 카페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웃듯이 말입니다. 백인이라고는 없는 곳에서 마음껏 소리칠 수도 있구요.

https://youtu.be/Kv7lOJlNvvE

Make Me A Pallet (On Your Floor)

저는 특히 엄마의 노래와 춤이 정말 좋더라구요. 그러고보니 엄마는 노래와 춤만 잘하는 게 아니네요.

무책임한 남편과 살면서 식구들을 먹여 살렸어요. 남의 집 빨래도 하고 농사도 짓고 술집도 운영했지요.

늘 바이우를 무시하고 조롱하던 아빠와 형 앞에서 바이우를 격려하고 감싸줬던 것도 엄마구요.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면 칼을 들고 가만 두지 않겠다고 했던 엄마구요.

엄마가 하하 하고 크게 웃으면 그 웃음이 얼마나 멋진지 몰라요.

곁에 있거나 그렇지 않거나 엄마는 바이우에게 큰 힘과 용기가 되는 사람이었어요. 

아빠와 형이 바이우를 약하게 만들었다면, 엄마는 바이우를 강하게 만들고 위협에 맞설 수 있도록 도운 것이겠지요.

남편도 자식도 다 떠나고, 일거리도 끊기고 술집도 망해가는 상황에서 땅에다 먹을 것을 심는 엄마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저렇게 저렇게 어떻게든 살아남았고 버텼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리앤은 늘 표정이 없거나 어둡습니다. 바이우와 있을 때만 활짝 웃고 자신의 속마음을 얘기하지요. 하루는 리앤이 바이우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표정이 어둡네 you look sad

얼굴 펴 don’t be

같이 있을 때만은 행복을 느끼고 싶어. i need you to be happy because we can't be sad together.

참 마음 뭉클한 말이었습니다. 늘 불안과 힘겨움 속을 떠돌던 리앤에게 바이우와의 만남은 비로소 웃게하고 안심할 수 있는 그런 순간이겠지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도 너는 슬프지 말고 행복해지라는 걸테구요.

https://youtu.be/lH6I04P9Oh0

Paper Airplanes | A Jazzman's Blues

영화 막판에 리앤의 아들이 리앤 앞에 마주 서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이든 리앤은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지요.

그런데 리앤은 바이우가 남기고 간 노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리앤이 지난 수십년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영화에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왜 리앤은 아들의 모습은 알아보지 못하지만 바이우의 음악 속에 살게 된 걸까요

남편이 그렇듯 아들도 백인우월주의자에 흑인을 혐오하는 인간입니다. 아들과 함께 나오는 남부군 깃발이 아들의 정신상태를 보여주는 거겠지요.

이렇게 지배와 폭력을 일삼는 인간들 속에서 리앤이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물론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산 것도 아니지요.

물질적으로는 살아 있으나 행복을 꿈꾸는 마음으로 보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산다는 건 무엇일까요

하나는 물질적으로 육체적으로 살아야겠지요.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에게는 행복을 꿈꾸는 마음도, 그런 행복을 찾으며 살고 싶은 마음도 있다는 거겠지요. 사랑을 찾는 이유이기도 할 거구요.

바이우가 엄마 곁에 있고 싶어하고, 리앤이 바이우 함께 있고 싶어하는 이유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