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의 지배가 근대 헌법이나 의회제도의 공식적인 정지 내지 폐지를 수반하는가, 아니면 그런 입헌적 형태를 유지하면서 진행되는가 하는 것도,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역시 원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런 제도의 한계 효용의 문제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의회제가 혁명의 교두보가 된다면 그것은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경우처럼 폐기될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의회제(좁은 의미의 의회내각제만이 아니라 대통령제를 포함하여)가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인 이유로 그런 위험에서 벗어나 있고 의회에서 반혁명세력이 압도적인 다수를 점하고, 그런 상황이 당분간 변화하지 않을 전망이 있다면, 의회제가 각별히 파시즘의 진전에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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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스가 바이마르체제 하에서 합법적으로 권력을 확립했다는 전설을 아직도 믿는 사람들이 간혹 있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 한 마디 해두고자 한다. 바이마르체제 하의 관료(특히 사법부)가 얼마나 공공연하게 그리고 은근 슬쩍 그 정치적 중립성의 원칙을 파기하고, 반동단체를 원조하여 ‘법의 지배’를 내부로부터 공허하게 만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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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스 독재에 최초의 그리고 결정적인 법적 근거를 부여해준 다름아닌 수권법의 성립과 그후의 경과를 보면, 그 전설이 완전히 근거가 없다는 것은 금세 드러나게 된다. 확실히 그 법은 바이마르 헌법 제76조의 규정에 따라서 출석의원 3분의2라는 다수로 라이히 의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그 전에 이미 공산당의 국회방화사건의 조작에 이ㅡ해서 실질적으로 비합법화되었으며, 1933년 3월의 의회 개원식에 앞서 모든 공산당 의원(81명)과 일부의 사회민주당 의원들은 미리 체포되어 있었다. - 300
- 마루야마 마사오,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한길사, 2007
합법적이라거나 법대로 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정의롭다거나 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합법적이긴 하지만 그 법 자체가 힘센 놈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을 수도 있고
법대로 했다고 하지만 그 법을 적용하고 실행하는 과정이 돈 많은 놈들 위주로 이루어질 수도 있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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