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여성.가족 1304

엘레나 페란테,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를 읽고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가운데 세번째 책이에요. 어쩌면 우리 가운데 누군가는 릴라나 레누의 모습을 닮았을 거에요. 누군가는 스테파노나 엔초의 모습을 닮았을 거구요. 피에트로의 엄마 같은 사람도 있을 거고 레누의 엄마 같은 사람도 있을 거에요. 저는 니노를 보면서 제 모습이 여러번 떠오르더라구요.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으로...ㅠㅠ 그 많은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 삶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뭉클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무언가 떠오르기도 하고 조마조마하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건...그만큼 내가 살아온 모습이기도 하고 내가 바라보거나 겪어본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겠지요. 물론 그 많은 일들을 하나하나 세세히 느끼거나 생각하진 못했을 거에요. 대부분은 휙 지나가기도 하고 어~~~하는 사이..

상냥하고 평온한 남성을 좋아하는

릴라는 엔초에게서 무엇을 본 걸까. 나는 릴라가 엔초에게 본 것이 그녀가 지난날 스네파노나 니노에게서 본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릴라는 엔초를 통해 모든 것을 바로잡기를 원했다. 스테파노의 경우에는 일단 돈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지자 실체 없고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이 드러났었다. 니노의 경우에는 지성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지자 릴라에게 아픔만 남기고 시꺼먼 연기처럼 증발해버렸다. - 136 릴라는 엔초가 다른 여자에게 반해서 자신을 쫓아낼가봐 두려웠다. 살 곳이 없어지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었다. 당장은 햄공장에서 일하고 있었고 자신이 강하다고 느꼈다. 놀랍게도 예전에 스테파노와 결혼해 수중에 돈은 많았지만 그에게 종속되어 있을 때보다 더 강하다고 느꼈다. 그보다는 엔초의 상냥함을 잃을까봐 두려..

활동적이고 자유로운 여성에 대한 성적인 비난

동네에는 내 책과 끊임없이 혼자 여행을 하는 나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 어머니는 나를 창녀라고 부른 정육점집 아들들을 내 남동생들이 흠씬 두들겨 팼어야 했다고 고함을 질렀다. 엘리사에게 네 언니처럼 더러운 짓거리를 해보라고 요구한 엘리사와 같은 반 사내아이의 면상도 박살을 내야했다고 악을 썼다. - 112 - 엘레나 페란테, , 한길사, 2020

엘레나 페란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를 읽고

재미 있는데 유익하다고 할까요? ^^ 제가 좋아하는 맷 데이먼이 나오는 시리즈는 완전 재미있어요. 그런데 유익할 건 별로 없어요. 제가 본이 가진 싸움의 기술을 배울 것도 아니고. ㅋㅋㅋ 근데 이 책은 재미도 있고 배울 것도 많아요. 특히 릴라의 삶을 보면...책장을 넘길 때마다 조마조마 해요. 좀 잘 됐으면 좋겠다 싶고...안타깝기도 하고...화가 나기도 하고...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인간의 삶이나 마음에 대해서는 참 배울 게 많은 책이에요. 특히나 여성이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요. 에밀 졸라의 도 그러 면에서 참 좋았어요. 이런 마음일 수 있겠구나, 이런 것을 느꼈겠구나 싶어요. 소설이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소설이 이 정도면 현실은 어떨까 싶어 아프기도 해요. 작가가 직접 겪..

남편과 헤어진 기쁨

릴라는 집을 살펴본 다음 임대 계약을 체결하고 석 달치 집세를 선불로 주었다. 집에 들어갈 때만 해도 기분이 너무 좋았다. 평생 자신의 일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과 헤어진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렇다. 그녀는 그 감정을 기쁨이라고 표현했다....선한 마법사의 마법 덕분에 고통받던 곳에서 사라져 행동이 약속된 새로운 곳으로 이동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 497 - 엘레나 페란테, , 한길사, 2020 드라마 에서 혜원의 엄마가 말합니다. 남편이 청혼을 하고 그것을 받아들인 날이 불행의 시작이었다고, 릴라도 그렇지요. 다정하고 호감을 주던 스테파노의 모습은 결혼 첫날부터 사라지고, 남편이라는 것을 내세우며 폭행과 강간을 일삼았으니까요.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나 결실이 아니듯 이..

남성/남편에게 살해될지 모른다는 여성의 두려움

릴라는 갑작스럽게 공책을 대학살 장면과 피투성이 이미지로 채우기도 했다. 릴라는 절대로 '나는 살해될 것이다'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역에서 일어난 범죄에 대한 기록을 공책에 남겼고 가끔은 이를 재구성하기까지 했다. 여성을 대상으로한 살인사건들에서 릴라는 범인의 분노와 피투성이가 된 범죄현장을 강조해서 묘사했다. 뉴스에는 보도되지 않은 구체적인 내용을 덧붙이기도 했다. 눈에서 눈알을 파내고 칼로 목을 베고 내장을 찌르고 가슴을 관통하고 젖가슴을 잘라내는 장면, 배꼽 아래까지 칼로 그어 배가 터지고 날선 칼날로 성기를 긋는 장면을 적나라라하게 묘사했다. 자신도 실제로 당할 수 있는 처참한 죽음을 언어화함으로써 두려움을 최소화하고 통제 가능한 것으로 만들려는 것 같았다. - 479 - ..

내면의 공허감을 안고 종속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실비오 솔라라에게 갑자기 결혼식 증인을 부탁하는 순간부터, 스테파노가 성스러운 유물보다 더 소중히 여긴다고 생각했던 구두를 신고 마르첼로가 피로연장에 모습을 나타냈던 그 순간부터, 스테파노가 처음으로 폭력을 행사한 신혼여행부터, 스테파노가 그녀안에 심어놓은 살아 있는 그 존재가 내면의 공허감 속에 자리 잡게 됐을 때부터, 릴라는 커져만 가는 참을 수 없는 느낌과 갈수록 자신을 압박해오는 온몸을 으스러뜨릴 것 같은 엄청난 힘에 압도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느낌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고 지배적인 것이 되었다. 라파엘라 카라치는 제압당해 형체를 잃고 스테파노의 모습에 융해되어 그의 종속적인 존재인 카라치 부인이 된 것이다. - 168 - 엘레나 페란테, , 한길사, 2020 youtu.be/9FUqqIA..

아빠/남자친구/남편의 지배와 폭력

지난날 릴라는 마르첼로가 내 손목을 잡고 팔찌를 망가뜨렸다는 이유만으로 마르첼로에게 칼을 빼들고 달려들었다. 그 일이 일어난 후에 나는 릴라의 몸에 마르첼로의 몸이 닿기만 해도 릴라가 그를 죽여버릴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랬던 릴라가 지금 스테파노에게 어떤 공격성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모습을 보아왔다. 낯선 남자는 우리 몸에 손가락 하나 댈 수 없지만 부모님과 남자친구 남편은 원한다면 언제든지 우리의 뺨을 때릴 수 있다고 배우면서 자라왔다. 그들은 우리를 사랑하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를 제대로 교육시키고 알아들을 때까지 다시 가르치기 위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 68 - 엘레나 페란테, , 한길사, 2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