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착취.폭력 1642

정치, 선전과 선동

히틀러는 처음에 남다른 혹은 독특한 정치 사상을 지닌 논객이 아니라 선동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 히틀러는 남들이 흉내 내지 못하는 방식으로 공포심과 편견과 적개심을 끌어내고 부추겼다. 히틀러는 독창적이지 않은 생각을 독창적으로 선전했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내용을 말할 수는 있었겠지만 별반 효과는 없었다. - 218 - 이언 커쇼, , 교양인

대중의 증오심 또는 혐오감과 선동

레히펠트에서 히틀러가 대중을 선동할 때 즐겨 써먹는 무기는 반유대주의였다. 그렇지만 유대인을 거세게 공격한 것은 당시의 여론을 말하는 보도에서 드러나듯이 뮌헨 시민들 사이에 파다하게 퍼져 있던 정서를 대변한 데 불과 했다. - 205 히틀러가 어느 것보다도 잘할 자신이 있었던 일은 자기 안에 깊숙이 박혀 있던 증오심을 퍼올려 다른 사람들의 증오심을 부채질 하는 것이었다. - 217 - 이언 커쇼, , 교양인 무작정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대중의 심리에 깔려 있는 혐오나 증오 같은 정서를 바탕으로/이용해서 선동을 합니다. 그것이 유대인에 대한 것이든 여성이나 흑인에 대한 것이든 증오심을 가지고 있으니 선동이 가능한 것이고 선동을 하니 혐오감이 커지는 것이구요

전쟁으로 세상을 확 바꾸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

중산층 젊은이 사이에서는, 특히 학생 조직에서는, 전쟁열이 전쟁을 통해서 타락하고 생명력을 잃은 부르주아 질서의 굴레에서 드디어 해방되리라는 낙관론과 손을 잡았다. “우리는 이 세상의 유일한 치유책인 전쟁을 찬미하련다” 이탈리아의 미래파가 그렇게 선언한 것이 겨우 몇 년 전의 일이었다. 그런 정서는 1914년 7월과 8월에, 물론 다는 아니었지만 유럽 전역에 흩어져 살던 수많은 젊은이의 심금을 울렸다. 유럽 다른 나라의 지배층도 그랬지만 독일의 지도자들도 몇 년을 끌어온 지루한 갈등과 거듭되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력 충돌이 필요하고 또 바람직하다는 정서가 자리를 잡았다. 후세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낯설게 다가온 것은 특히 지식인 사이에서 두드러진 경향이었지만 전쟁을 구원과 부활로, 분열과 반목을 ..

성격과 욕망, 권력과 투쟁

이런 성격 특성들을 하나로 묶는 히틀러 내면의 강한 욕구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끝없는 자기 우월감이었다. 권력은 히틀러의 최음제였다. 히틀러처럼 자아 도취에 빠진 사람에게 권력은 목표를 잃고 헤매던 젊은 시절에 목표를 제공했고, 화가로서 퇴짜를 맞고 사회적으로 파산 선고를 받아 빈의 싸구려 여인숙에서 지내고 1918년의 패전과 혁명으로 주변 세계가 와르르 무너진 인생 전반기의 쓰라린 좌절감을 보상해주었다. 권력은 히틀러를 너무나 강렬하게 빨아들였다. … 개인화된 권력을 무한정 추구하려는 욕망은 만족을 모르는 영토 정복 야심으로 이어졌다. 승산이 지극히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럽 대륙을 혼자서 집어삼키기 위해, 그리고 나중에는 세계 패권을 쥐기 위해 터무니없는 도박을 벌였다. 더 많은 권력을 손에 넣기 위..

영웅을 기다리는 대중과 지도자의 카리스마

히틀러는 (아주 형식적인 의미에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었지만) 그저 당 지도자라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높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권력을 누린 것이 아니었다. 히틀러는 독일을 구해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감에서 권력을 이끌어냈다. 다시 말해서 히틀러의 권력은 제도에서 나온 권력이 아니라 ‘카리스마’에서 나온 권력이었다. 그것이 제 구실을 하려면 다른 사람들이 히틀러 안에서 ‘영웅적’ 특성을 볼 마음가짐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31 새로 들어온 당원 중에 히틀러를 유력 인사들에게 소개하는 데 발벗고 나선 사람이 둘 있었다. 인맥이 두터운 사람이었던 쿠르트 뤼데케는 한때는 도박에 빠져 있었고 바람둥이였지만 다녀본 데가 많아서 ‘세상 물정에 훤했고’ 승부사 기질이 있는 사업가였는데 “뜻이 맞는 지도자가 어디 ..

지배자의 정신건강과 권력의 위험성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마오는 변덕이 심해졌고 속마음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 마오는 어떤 정책을 극한까지 밀고 가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었다. … 마오의 집무실 ‘국향서옥’에서는 병적인 의심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정치국의 한 급진파 인사는 이렇게 기억했다. “마오의 말년에는 아무도 그를 신뢰하지 않았다. 우리는 매우 드물게 그를 만났으며…직접 대면할 때면 우리는 그가 오류라고 지적할 만한 잘못된 말을 할까 봐 두려움에 떨었다,” … 마오는 의심이 너무나 많아져서 끊임없이 측근의 충성을 확인해야 안심했다. … 저우언라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주석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라면 그 누구라도 배신했기 때문이다. 저우언라이의 수양딸은 홍위병에게 끌려가 고문을 받았고, 감옥에 갇혀 학대당하다가 죽..

정치적 열광에 빠져서 타인을 공격하는

절정에 오른 종교적 열광과 같은 흥분이 거리마다 넘쳐흘렀다. 독립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소수의 사람들은 이 성스러운 익살극의 실체를 꿰뚫어보았다. 몇 주 뒤 한 학생은 다음과 같이 썼다. “문화대혁명은 대중 운동이 아니다. 총은 든 한 사람이 대중을 조종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그러지 못했다. 마오는 정치적 고지를 공략할 새로운 유격대를 발견했다. 중국의 젊은 한 세대 전체가 절대적인 복종심을 품은 채 마오를 위해 죽고 죽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 354 일찍이 1965년 1월에 펑전은 정치국 동료들에게 그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는 잔잔한 수면 아래 폭력성이 커지고 있으며 그것은 ‘무차별적 투쟁’의 형태로 폭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마오가 문화혁명을 추진하는 데 이용했던 에너지가 바로 그 ..

권력과 관료, 지배 받으면서 지배하는

1950년대 말 마오는 제국 체제의 정상에 있었다. 이 체제는 레닌주의적 조직 구조로 강화되었으며, 모든 권력과 특권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게 되어 있었다. … 중국의 한 역사학자는 이렇게 지적했다. 이런 체제 안에서 “모든 관리는 두 얼굴을 한다. 상급자 앞에서는 노예이고 하급자 앞에서는 폭군이다” - 275 - 필립 쇼트, , 교양인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권력에 따라 사람의 지위가 정해지고 그 정해진 지위에 따라 복종하거나 지배하는

정의나 자유를 내세웠지만 새로운 귀족층이 된 자들

이런 과정을 거쳐 표출된 비판의 주된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지식인들은 1949년에 국민당의 실정을 종식시킨 해방자로서 공산당을 환영했다. 하지만 공산당은 집권한 지 8년도 채 안 되어 권력과 특권을 독점하고 스스로 인민으로부터 유리된, 새로운 관료주의적 계급으로 변했다는 것이었다. 마오가 헝가리 봉기에서 끌어낸 교훈이 틀리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비공산당원 입장에서 볼 때 당 간부들은 정말로 “인민과 유리된 귀족층”으로 변했던 것이다. - 204 - 필립 쇼트, , 교양인 저들이 주로 내세우는 말이 자유와 해방 아니면 인민이나 국민이지요 인민을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겠다던 자들이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고 국민의 자유를 지키겠다는 자들이 되레 시민의 자유를 빼앗고 있지요. 그들만의 세계에서 온갖 권력과 특혜를..

조지 오웰, <동물 농장>을 읽고

제가 딱 좋아할만한 글입니다. ^^ 뭐랄까…작가의 문제 의식 같은 게 싱싱하게 살아있다고 할까요? 글 속의 이야기도 참 재미있구요. 물론 그냥 재미있다고만 하기에는 참 씁쓸합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스탈린이 지배하던 소련 사회를 빗댄 작품이라고 합니다. 나폴레옹이나 스노볼이라는 인물부터 해서 동물과 동물들, 동물과 인간들 사이의 관계들까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모습이지요. 마치 이나 같은 책의 핵심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 같기도 하구요. 스탈린과 소련이 너무 너무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쉽게 다른 것과 비교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다만, 스탈린과 소련의 사례를 가지고 다른 국가나 사회의 모습을 비춰볼 수는 있겠지요. 혁명과 해방을 외치던 자들이 어떻게 다시 지배자가 되어 민중들을 착취하고, 그들을 억압하고 ..